아리스토파네스의 변론(草)

6. 철학자의 문제

병든소 2015. 8. 6. 18:09

6. 철학자의 문제

 

6.1. 아테나이 시민 여러분, 아뉘토스를 위시한 고발인들이 갖다 붙인 소크라테스의 죄목에 대해 그 자신의 변론1을 듣고 나서도, 배심원들이 그가 유죄라고 판단할 수 있었던 근거가 무엇이었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2, 그리고 곧 이어서 유죄 판결을 받은 그에게 고발인들이 요구한 극형을 받아들인 배심원들 가운데 왜 그를 꼭 죽여야 하는지 이해했던 사람이 몇이나 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3, 소크라테스가 무슨 일로 왜 아뉘토스에게 고발당했는지를 모르는 사람은, 그날의 배심원들은 말할 것도 없고 그때 아테나이에 살던 사람들 중에, 단 한 사람도 없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들은 고발자들이 전에 소크라테스와 대화하다가 그에게 모욕을 당했었기 때문에 그 앙갚음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기도 했겠지만, 그런 사람들까지도 포함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제는 죽고 없는 알키비아데스나 크리티아스나 카르미데스가 아니라도, 소크라테스가 어울렸던 일부 젊은이들이 과두정 때는 물론이고, 참주정 때에도 모두 곤봉을 들고 채찍을 휘두르며 잔혹한 앞잡이 노릇을 했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있었고, 민주정이 다시 들어선 뒤에도 대사면이 없었다면 재판으로 처벌을 받았을 그런 사람들과 소크라테스가 계속 어울리고 있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런 아테나이의 분위기를 소크라테스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아뉘토스로서는 대사면 때문에 아테나이의 정변과 관련된 죄목으로는 그를 고발할 수 없어 갖다 걸 죄목을 찾는 데 고심하다가, 크세노폰이 알키비아데스의 길을 걷고 있고, 소크라테스 역시 일부러 그러는지 그 제자들이 저지런 일에 조금도 구애받지 않고, 대사면은 내려졌지만 참주정에서 저질렀던 짓이 있어 그래도 무언가 반성의 빛을 보여야겠다고 근신하는 젊은이들을 일부러 찾아다니며, 지금도 그들에게 헛바람을 넣으려 하고 있어, 하는 수 없이 억지로 죄목을 찾아 고발한 것이었겠지만, 소크라테스로서는 이미 도시가 내린 사면을 받은 전체 시민 가운데 한 시민으로서 사면 받은 사안으로 고발당했다고 항변하거나, 아니면 그가 재산을 빼앗아라 사람을 죽여라 한 것도 아닌데, 그가 어울렸던 여러 부류의 사람들 가운데 한 부류가 벌인 짓 때문에 고발당고 벌을 받을 이유가 없다고 따지면 될 일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소크라테스는 아뉘토스보다 더한 억지를 부리며, 고발자들이 정한 죄목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않고, 그날의 재판정에서 고집스럽게 그가 고발당한 그 죄목들에 한해, 그의 변론을 엮어 나갔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아니 소크라테스는 왜 그래야만 했을까요?

 

 

6.2.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 케팔로스와도 잘 알고 지냈고, 참주정에게 핍박 받는 과정에서 살라미스의 레온에 대한 태도를 보고 더욱 소크라테스에 대한 호감과 신뢰를 키웠으며, 망명 중에 아뉘토스를 알게 되어 민주정의 복원에도 기여했고, 이제는 재판정에서의 변론서 작성 능력으로 제법 인정 받고 있는 뤼시아스가, 그에 대한 존경의 마음으로 써 준 변론서를 몸에 맞지 않는 옷이라며 소크라테스가 정중히 사양한 까닭을 알기 위해서는4, 뤼시아스가 그에게 보여 주었던 변론서의 변론 취지에 대해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뤼시아스는 아뉘토스가 이미 대사면의 적용에 대한 논란을 일으킬 수 없도록 애매한 죄목으로 소크라테스를 고발했다는 점과, 그런 아뉘토스가 배심원들에게 미칠 정치적 영향력을 감안할 때, 소크라테스가 그 재판에서 고발자들이 요구하는 극형을 피하기 위해서는 대사면을 내세우지 않으면 안 된다고 판단하고, 젊은이들을 타락시킨다는 타락의 실체가 바로 아테나이에 사는 사람이면 누구나가 다 아는 알키비아데스나 크리아스와 카르미데스 그리고 크세노폰 같은 사람(제자)들의 반민주정적이고 반아테나이적인 행동을 가리키는 것이라면, 그들이 잘못한 책임을 소크라테스가 질 이유가 없다는 것과5, 설사 책임을 져야 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이미 대사면으로 면책되었다는 사실에 그의 변론 취지를 맞추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일흔이 넘은 소크라테스를 법정에 세운 아뉘토스의 의도를 아무리 아테나이의 우수마발이라 해도 그 재판에 나올 배심원들이 모를 까닭이 없는데, 그래서 고발자들이 일부러 절대로 재판정에서 그 실체를 규명할 수 없을 '타락'과 '다른 신'을 죄목으로 삼은 것인데, 그들의 의도에 끌려, 실체가 모호한 죄목에 대해 변론하고 재판을 받는다면 자칫 불상사를 피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그들이 갖다 건 죄목에 대해서는 그것이 전적으로 소크라테스에 대한 오해에서 나온 것이며, 소크라테스는 도시가 믿는 신을 믿을 뿐만 아니라, 그가 도시의 젊은이들에게 그들이 타락하지 않도록 가르쳤으면 가르쳤지, 도시의 신 대신 혼자만의 신을 믿고, 또 도시의 젊은이들을 타락시켜 그가 특별히 덕 볼 게 무엇이 있어 그랬겠냐며, '타락'이나 '다른 신'을 부정하는 요지로 변론서를 작성했겠지요6. 그러면서 자연히 뤼시아스는 소크라테스 집 안에 있는 제우스의 신단과, 공공의 자리에서 신들에게 바친 제물과, 그가 구했던 신탁들에 대해 말했을 것이고, 소크라테스와(에게) 어울리던(배웠던) 사람(제자)들 가운데는 크리티아스도 있었지만, 크리티아스의 박해를 피해 망명 길에 올랐다가 트라쉬볼로스와 아뉘토스 등과 함께 돌아온 뒤 얼마 전에 죽은 강력한 민주정 지지자이자 소크라테스의 최고 추종자 카이레폰도 있었다는 사실을 말했을 것이며, 결정적으로 무엇보다 크리티아스와 칼리클레스가 참주정 당시 소크라테스에게 젊은이들과 어울리는 것, 즉 대화하는 것을 금지시킨 일을 지적했을 것이고, 그 지적에 더해 이번에는 그 반대로, 소크라테스가 하는 젊은이들과의 대화에 대해 아뉘토스를 위시한 고발자들이 문제 삼는 모순에 대해서도 빼지 않고 지적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야기를 크리아스로부터 알키비아데스 그리고 최근의 크세노폰으로 옮겨 가면서 대사면에 대해 거론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뤼시아스는 그 재판의 성격을, 아뉘토스의 모호한 교육이나 종교의 문제로부터 아뉘토스가 의도하는 분명한 정치의 문제로 끌고 와서, 소크라테스가 알키비아데스나 크리티아스의 정치와는 무관함을 주장하고, 설사 한 작은 부분에서 정치적 책임이 있다 하더라도 대사면으로 면책된 일임을 강조해 무죄방면을 얻으려 했을 것입니다7. 그렇지만, 이런 식의 뤼시아스의 변론 취지는 그가 존경하는 소크라테스를 아뉘토스가 설치한 정치 형틀에서는 구해낼 수 있었을지는 몰라도, 그 형틀에서 빠져 나오기 위해 그는, 그와의(그의) 어울림(가르침)에도 불구하고, 알키비아데스나 크리티아스나 카르미데스나 크세노폰이(을) 도시가 바라는 훌륭한 사람이(으로) 되지(만들지) 못했고, 다시 말해 그들이(을) 아테나이를 위해 대다수의 아테나이 사람들이 바라는 일을 하지(하도록 만들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아테나이와 아테나이 사람들을 해치면서까지, 그들 자신들이 바라는 대로 그들만을 위해 사는 사람들이(로) 되고(만들고) 말았다는 사실로, 소크라테스가 자랑하는 여러 사람들과(에게) 어울림(가르침)의 실체를 만천하에 드러내어야만 하는 부끄러움에 더해, 크리티아스나 카이레폰의 경우처럼 정치적인 상반의 예는 그렇다손 치더라도, 뤼시아스가 결정적이라 생각하고 넣은 크리티아스와 아뉘토스 같이 정치적으로 서로 적대적인 양쪽 모두로부터 비난받는 그 어울림(가르침)의 모순을 지적당해야 되는 것이 소크라테스로서는 견딜 수 없었을 것이고, 더우기 재판정에서 드러내고 싶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뤼시아스의 변론 취지가 이런 내용이었다면, 그 변론은 확실히 소크라테스의 몸에는 맞지 않는 껄끄러운 모순의 옷이었을 것이어서, 소크라테스로서는 그런 옷을 걸치고 광대처럼 재판정에 나설 수는 없었겠지요.

 

6.3. 소크라테스가 져야 한다는 알키비아데스나 나머지 제자들의 행태에 대한 책임은 가르침으로 사람을 훌륭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해야 물을 수 있는 문제이므로, 과연 가르침으로 젊은이들을 훌륭하게 만들 수 있느냐고 하는 의문8에 대해서는 앞으로 계속 논의해 나가겠습니다만, 소크라테스와 젊은이들과의 대화를 문제 삼는 크리티아스나 아뉘토스 이 둘의 모순은, 스트렙시아데스의 아들 페이딥피데스가 소크라테스에게 배운 하늘에서 일어나는 일이 땅 위의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쳐 날짜를 바꾸어야 하는 자연에 대한 지식, 그리고 약한 논리로 강한 논리를 이기는 변론술, 이 두 가지 덕분에 채권자들을 무찌르고 빚을 갚지 않게 되어 의기양양해진 스트렙시아데스의 즐거움과, 그 즐거운 기분으로 연 집안 잔치에서 자기의 요청에 따라 페이딥피데스가 부른 노래가 하필 에우리피데스의 연극에 나왔던 반인륜적인 가사의 유행가여서, 그 가사의 내용이 역겨워 터트린 스트렙시아데스의 분노 -스트렙시아데스의 이 분노는 부자 간의 싸움으로 번져 페이딥피데스가 그 아버지를 때리게 했고, 제우스를 갖다 댄 페이딥피데스의 존속 폭행의 정당성 앞에 망연자실해진 스트렙시아데스로 하여금 소크라테스의 학원에 불을 지르도록 합니다- 사이의 모순과 같은 것인데, 스트렙시아데스의 즐거움과 분노 사이의 모순은 굳이 설명을 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수긍할 내용이지만9, 자기의 교습(대화) 행위를 두고 정치적으로 정반대의 성향을 가진 크리티아스와 아뉘토스가 모두 문제로 삼는 모순에 대해서는 자기가 적극적으로 설명하지 않는다면 사람들이 그 이유를 쉽게 이해할 수 없어 오히려 더 큰 오해를 불러올 수 있고, 그렇다고 앞앞이 설명한다면 그가 젊은이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왜 가르쳤는지 그 내용을 일일이 말해 주어어야 하는 번거러움에 더해, 설사 어떻게 설명이 되었다 해도, 사람들이 빚을 갚지 않으려는 스트렙시아데스나 아버지를 때린 페이딥피데스 둘 다 나쁘다고 보듯이, '그렇다면 둘 다 문제 삼을 만했네'라고 수긍함으로써, 그 둘의 모순이 자기의 교습(어울림)의 모순으로 고스란히 전가되는 위험을 감수해야 되었기 때문에 소크라테스는 뤼시아스 대신 자신의 변론 취지를 택했었다고 믿어집니다.

 

6.4. 따라서 소크라테스는 그 재판에서 어떤 일이 있더라도 정치를 직접적으로 개입시켜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을 것입니다10. 그가 평소 소신대로 법에 대한 존중의 의미가 작용했던 것도 배제할 수 없는 이유 중의 하나였겠지만, 무엇보다 대사면을 거론한다는 자체로 마치 그가 사면을 받아야 되는 어떤 정치적 잘못을 인정한다는 인상을 줄 수가 있고, 아울러 정치가 개입해서 정치적인 인과와 그에 따른 책임을 인정해야만 적용받을 수 있기 때문에, 뤼시아스조차 직접적인 변론 이유로 내세우기를 꺼려했던 대사면의 적용 여부가 그 재판을 주도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그랬음 직해 보이지만, 그보다도 제가 보기에, 그는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드러내는 것이 그날의 재판을 그가 바라는 재판으로 이끌어 가는 데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믿었을 뿐만 아니라, 그 자신의 정치적 입장이 그런 장소에서 논란이 될 수 있을 만큼 간단하지 않다는 것을 스스로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11. 아무튼 그것은 크리티아스나 아뉘토스가 이구동성으로 정치적 이유 때문에 그에게 같은 문제를 제기했던 것을 보아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겠지요. 따라서 아뉘토스가 진짜 고발자인 이상 정치적인 편견을 재판정에서 걷어 내기 어렵다고 판단했고,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고발자들을 정치적이지는 않지만 여전히 그에게 적대적으로 비칠 사람들로 바꾸어 놓고 재판을 시작하기로 작정했습니다. 

 

6.5. 이런 이유로 소크라테스가 고른 또 다른 고발자가 바로 저였습니다. 티몬이나 아메이푸시아스도 소크라테스를 조롱하는 희극을 만들어 올렸지만12, 아무래도 그들보다는 저를 가리키는 것처럼 보이는 그 이름을 아는 희극작가 하나를 제외하고는, 이름을 알 수 없는 한 무리의 고발자들이 오래 전부터 계속해서 자기를 상대로 결석 재판하듯이 비방하고 중상했다고 비난하면서, 저를 포함한 그림자 같은 그 형체 없는 고발자들이 자기를 직접 고발하여 재판정에 세운 아뉘토스의 무리들보다 더 무섭다고 지적한 뒤, 저를 포함한 형체 없는 그 고발자들이 배심원들이 어렸을 때부터 자기에 대한 편견을 심어 놓았기 때문에 그 편견을 걷어 내는 것이 재판에서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역설했습니다. 다시 말해 소크라테스는 언제나 그의 행동이나 언사에 대해 적대적이었던 렘노스 출신의 소피스테스 안티로코스나, 아테나이의 안티온 같이13 그가 이름들을 알고, 많은 아테나이 사람들도 그와의 적대적인 관계를 어느 정도 아는 사람들은 쏙 빼고서, 사람들이 실제 그런 일들이나 그런 사람들이 있었는지 알지 못하는, 그야말로 형체도 없는 그림자 같은 고발자들을 만들어, 저와 함께 그 재판정에서 아테나이 시민 여러분께 자기를 고발한 고발자라고 함으로써 그에 대한 재판이 가진 정치적 문제, 다시 말해 정치성으로부터 자기에 대한 편견의 문제로 바꾸어 놓으려했습니다.

 

6.6. 아테나이 시민 여러분, 소크라테스는 저를 포함한 그림자처럼 형체도 없는 사람들이 자기를 미워했기 때문에, 그것이 씨앗이 되어 아뉘토스가 직접적인 고발자가 되었다고 말함으로써 아뉘토스 고발의 정치색을 씻어 내고, 그 재판에서의 정치적인 편견에서 벗어나는 데에 성공했는지는 몰라도, 그 대신에 그 형체 없는 사람들이 가진 자신에 대한 미움의 실체가 무엇인지, 다시 말해 그들은 자기의 어떤 면들을 나쁘다고 미워하고 그래서 또 어떤 방법으로 결석 재판에서 고발했는지를 밝히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는데, 그리하여 나온 소크라테스의 발명이란 것이 겨우 그가 저의 연극 "구름"에 나오는 그런 황당하고 우스꽝스런 짓을 하지 않았다는 것과, 그리고 가르침의 대가로 돈을 받지 않았다는 것 정도에 지나지 않아 저를 놀라게 했습니다. 사실 이 정도의 이유라면 일찌기 그를 괴롭히고 고발했다는 그림자 같은 형체 없는 무리들이란 게 결국 저와, 저의 연극 "구름"이라는 말 밖에 되지 않는데, 이것이야말로 소크라테스가 스스로 그림자 같은 형체 없는 일군의 고발자들을 지어 내어, 저를 포함한 무고無辜한 사람들을 무고誣告한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마는, 설마 소크라테스가 그랬을 리가 있나 싶어 가만히 소크라테스의 발명을 다시 새겨 보니, 그의 발명 가운데 주의 깊게 가려서 들어야 할 말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소크라테스가 자기는 레온티노이의 고르기아스나, 케오스의 프로디코스나, 엘리스의 히피아스 같은 소피스테스가 아니라는 말이었습니다14. 결국 이 말은 소크라테스가 저의 '"구름"'의 작품  의도를 소크라테스가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다는 것이고, 이 말은 자기를 소피스테스로 취급했던 모든 사람들이 자기를 일찌기 고발한 사람들이라고 알려 주는 말이 되고, 다시 말해 이 때문에 아뉘토스도 자기를 젊은이들을 잘못 가르친 소피스테스로 간주하고, 그를 잘못 고발하였다는 말이 되어, 이것으로 그는 자기도 프로타고라스나 아낙사고라스처럼 취급되어, 그들이 페리클레스와 연관된 정치적 내용의 고발을 당하고 재판을 받았듯이 그렇게 몰려 가고 있지만, 자기는 절대로 프로타고라스나 아낙사고라스 같은 소피스테스나 자연철학자가 아니므로, 그런 편견을 가지고 고발한 것도 잘못일 뿐더러, 앞으로 재판에서도 자기를 소피스테스 중의 하나로 보는 편견을 없애라고 한자리 깔아 둔 것이었겠지만, 자신을 소피스테스라기보다 변론술사라고 소개하는 고르기아스나 이소크라테스와는 또 다른 이유로 소크라테스가 자신이 소피스테스가 아니라고 하는 강한 부정이 저의 눈에는 소크라테스의 문제15의 시발점16으로 보였습니다.

 

6.7. 여러분 아시다시피, 제가 저의 연극으로 실명으로 개인을 공격한 것이 소크라테스가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물론 저의 첫 작품이 얼치기 소피스테스를 공격하는 것이기는 했지만, 얼치기 소피스테스로 대치할 만한 마땅한 희극적 인물이 없어, 형제 둘의 상반된 모습을 투영하여 얼치기 소피스테스의 영향을 보여 드렸기 때문에 소피스테스를 두고는 소크라테스가 처음이 되었고, 전체적으로는 얼치기 정치꾼을 공격한 클레온이 제가 처음 실명을 사용한 희극적 처치인물이었습니다. 물론 클레온은 저의 작품 "바뷜로니아 사람들"에 나온 클레온이 한 것과 같은 짓을 하지 않았다며 저를 고발하고, 겁주고, 괴롭혔지만, 저의 작품을 보고도 아테나이 시민 여러분들이 클레온을 그냥 두는 곳을 보고, 기회 있을 때마다 그를 공격하여 여러분의 주의를 환기시켜 드리려 했을 뿐만 아니라, 그를 권좌에서 몰아내는 연극 "기사들"을 만들어 또 한번 클레온을 공격할 정도였지만, 야속하게도 아테나이 시민 여러분들은 그냥 웃고 넘기기만 했지 저의 연극으로 인해 그에 대한 지독한 편견을 가지는 것 같지 않아서 속이 상하던 차에, 소크라테스 이전 이후에 기회 있을 때마다 공격했던 에우리피데스의 경우 역시, 야속하게도 아테나이 시민 여러분은 에우리피데스를 저 아리스토파네스보다 더 좋아하시는 것 같아 속상해 하곤 했지요. "구름"과 그 밖의 연극에서 소크라테스를 우스개로 삼은 것이, 에우리피데스의 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 클레온을 우스개 삼았던 양보다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적은데도17, 소크라테스에 대해서만 여러분들의 편견을 이끌어 내는 데 성공했다니, 저로서는 집안의 광영입니다만, 제가 보기에 제가 아테나이 시민 여러분의 편견을 얻는 데 성공했던 것이 아니라, 소피스테스로 인한 소크라테스의 문제가 마치 저 때문에 모든 사람이 그를 소피스테스로 여긴다고 착각하게 했겠지요.

 

6.8. 실제로 그 당시 아테나이 사람들 가운데서 소크라테스가 사람들이 자기를 아테나이에 있는 소피스테스들 중의 한 명으로 보는 것을 아주 싫어하였다는 것을 잘 아는 분은 거의 없었을 것입니다. 누구나 아이들을 가르치는 사람이면 소피스테스인 줄 알지, 자제들의 교육에 큰 관심이 없는 하루 벌어 하루 먹는 아고라의 장사치들이나 아티케에서 올리브나 포도 농사 짓는 농사꾼들은 말할 것도 없고, 자제들의 교육에 관심이 많은 귀족들이나 부자들이라 해도, 어떻게 알키다마스나 에우에노스와 안티로코스나 안티폰은 교사sophistes들이고, 고르기아스와 이소크라테스는 그들이 주장하는 대로 소피스테스가 아니라 변론술사rhetor들이며, 특히 소크라테스는 그가 절대로 그렇게 인정받고 싶지 않은 소피스테스가 아니고 그냥 소크라테스거나, 아니면 남들에게 캐묻기로 달려드는 논박술사dialektor이거나, 아니면 스승 뻘인 아낙사고라스의 자연학을 거짓말로 치부하며 자기는 그런 자연학을 하지 않는다고 부정하니18, 데모크리토스나 엠페도클레스나 제논이나 파르메니데스나 힙포크라테스를 가리키는 말 자연철학자physikosphilosophos에서 자연이란 말을 빼고 그냥 철학자philosophos라며 구별했겠습니까? 하기야 그래서 그랬는지, 남들이 소피스테스들과 자신을 구별하지 못하는 것이 싫어서 그랬는지, 그는 보통의 소피스테스들과는 다른 몇 가지 행동들을 보여주긴 했었습니다. 그는 교사라는 품위를 지키기 위해 몸단장하기보다는 그의 형편대로 헤어진 옷에 맨발로 다니면서, 학원을 차려 놓고 가르친 것이 아니라 주로 부잣집들이나 유명한 집들의 젊은이들이 모이는 뤼케이온과 같은 체육관이나 공원의 주랑 같은 데를 일부러 찾아가서 어울렸고(가르쳤고), 그가 그렇게 만나는 그 젊은이들의 생활이 여유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들로부터 어떤 형태로도 가르침에 대한 대가를 받지 않았다는 점에서 보면(그들과의 어울림의 대가라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고 보면), 분명 그가 보통의 소피스테스들과는 다른 교사(친구)였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이 때문에 그는 특히 안티폰19으로부터 자주 힐난을 들어야 했는데 안티폰을 위시한 소피스테스들 입장에서 보면, 그가 분명 '젊은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행동은 교사라는 직업의 정체성에 대한 심각한 훼손을 초래하는 모순을 저지르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안티폰의 이런 힐난에 대해, 가르침의 대가라며 돈을 받는다면 돈을 내는 사람이면 누구나 다 가르쳐야 되기 때문에, 다시 말해 스트렙시아데스나 페이딥피데스까지도 꼭 가르쳐 주어야 하기 때문에, 자기가 가르칠 사람을 자기가 고르는 자유를 위해 돈을 받지 않는 것이라고 대답했었는데20, 안티폰은 돈을 받지 않는 이유만 듣고, 젊은이들을 골라 가르쳐야 하는 이유는 따져 묻지 못했습니다만, 만일 오늘 우리가 소크라테스로부터, 그의 목적이 가르치는 것이었다면, 물론 젊은이들이 대상이어야 했겠지만, 어울리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왜 하필 젊은이들이어야 했으며, 또 그가 왜 젊은이들을 골라서 가르쳐야(어울려야) 되겠다고 생각했고, 또 왜 하필이면 그 가르칠(어울릴) 젊은이들을, 안티폰이야 돈을 제대로 받기 위해서라 하겠지만, 돈도 받지 않을 거면서 왜 부잣집과 유명한 집 자제들에게서 주로 찾았는지21, 그 이유에 대해 그의 설명을 듣는다면 그것으로 우리는 소크라테스의 문제의 본질, 즉 그의 모순을 있는 그대로 보게 되겠지요.

 

 

6.9. 아테나이 시민 여러분, 제가 일찌기 헬라스의 여기 저기서 몰려든 얼치기 소피스테스들을 경계하여 만든 희극 "잔치에 온 손님들" 속의 소피스테스에 대해서 소크라테스가 가타부타 말이 없었던 것은 혹시 몰라서 그랬다 치더라도, 그 같은 소피스테스들의 사변적 유희가 전쟁의 어지러움을 타고 민회에서 말만 잘하면 되는 정치에 퍼져나간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급기야 일상 생활 속에도 재판을 통해 뜬구름 잡는 식의 변론 유희가 판을 치는 것을 보고, 그런 얼치기 소피스테스들을 경계하여 만든 희극 "구름" 속의 소피스테스에 대해서조차 일언반구 없이, 다만 그 연극 속 소피스테스의 이름이 자기의 이름과 같다는 이유로 자기가 무고하게 얼치기 소피스테스로 고발당했다며 울분이나 털어 놓는 것으로는 자기가 무엇인지를 설명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왜 자기가 소피스테스가 아닌가도 가려 주지 못하는 데도 불구하고, 소크라테스는 그날 재판정에서 자기가 저 때문에 아테나이 사람들로부터 미움을 받았다고 말하면서, 그 이유에 대해서는 짐짓 딴청을 부리며, 저를 위시한 그림자 같이 형체 없는 사람들 때문이라며 불평하고, 여러분들이 소크라테스가 늘상 그렇게 해 왔다고 믿고 계시는 그 유명한 시치미 떼기 수법을 동원하여, 아테나이 사람들이 모두 잘 알고 있는 그 재판의 정치적인 이유는 전혀 자기와 관계가 없는 것처럼 시치미를 떼고는, 저를 포함한 다수의 아테나이 사람들이 자기를 프로타고라스 같은 정치적인 소피스테스나22, 아낙사고라스 같은 정치적인 철학자로 잘못 알고 미워하기 때문에 재판을 받는 것처럼 잔뜩 딴전을 벌인 다음, 이번에는 자기가 많은 사람들로부터 미움을 받는 또 다른 까닭을 하나 내놓았습니다. 그리고 소크라테스가 이 두 번째의 미움을 이야기 할때, 놀랍게도 그는 카이레크라테스를 증인으로 내세우면서까지 그의 죽은 형 카이레폰을 끌어들였습니다. 뤼시아스였다면 정치적인 장면에서 불러냈을 카이레폰에 대한 이야기를 소크라테스는 델포이의 퓌티아에게 '소크라테스보다 더 현명한 사람이 있습니까?'라 묻는 장면에서, 자기와의 돈독한 관계를 설명함과 동시에, 그가 배심원들과 함께 추방되었다가 돌아왔던 사람임을 은연 중에 드러내는 방법으로 불쑥 나타나게 했는데, 당연히 카이레폰은 퓌티아에게서 '소크라테스보다 더 현명한 사람은 없다'라는 대답을 들은 대로 소크라테스에게 전달했다고 했겠지요. 카이레폰에게서 신탁 이야기를 들었던 그때가 저의 연극 "구름"이 나오기 전인지 후인지 혹은 그 무렵인지 모르나23, 그는 이 신탁을 전해 듣고 확인하러 직접 델포이로 간 일부터, 진짜 자기가 가장 현명한지를 확인해 보려고 이 사람 저 사람 만나 그들이 얼마나 많이 그리고 잘 알고 있는지 캐묻고 다닌 일까지 말하면서, 그렇게 확인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특별한 캐묻는 방식 때문에 사람들로부터 미움을 사게 되었다고 설명했고, 그렇지만 그는 어쨌든 간에 결국에는 자기가 그 신탁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24. 그가 시치미를 뚝 떼고, 뤼시아스의 변론서를 버리면서 스스로 변론에 나서, 저와 같은 그림자들에게서 받은 오래된 형체 없는 미움을 배경으로 깔고, 그 미움에서부터 아폴론의 신탁을 화두에 올려, 신에 대한 그의 태도를 보여주려 한 대목과, 그렇게 신을 믿고 신탁을 따른 행동으로 인해 오히려 아테나이 사람들로부터 또 다른 형태의 미움을 받았기 때문에, 재판정에 나온 것으로 풀어 간 것은, 과연 그가 사람들 가운데 최고로 머리가 좋다는 것을 증명하기에 충분한 것이었습니다.

 

6.10. 그는 도시가 믿는 아폴론을 그도 믿었다는 것을 퓌티아가 주는 신탁을 그도 받았다는 것으로 증명하고자 했으며, 그 신탁에 대해서는 내용이 너무나 터무니없어 보여 스스로 확인에 나섰고25, 확인한 결과 그가 만난 모든 사람이 지혜롭지 못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26, 따라서 그 신탁의 내용이 신이 내린 반어법적인 교훈이었다는 것, 다시 말해 사람들이 모두 각자 자기가 지혜롭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신만이 지혜롭고 인간의 지혜는 전혀 가치가 없다는 것, 바꾸어 말해 지혜에 관한 한 사람들이 자신의 지혜가 보잘 것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가장 지혜롭다는 것이어서, 그런 점에서 신이 그 본보기 삼아 소크라테스의 이름을 빌려 사람들에게 준 교훈이라고 자의적으로 해석함으로써 신탁에 대한 그의 믿음을 증명하여 아울러 신에 대한 자기의 믿음을 증명한 다음, 그는 아직까지도 아폴론이 준 교훈을 이행하느라 분주히 사람들을 만나 지혜롭지 못하다는 것을 지적하며 신을 돕고 신에게 봉사하고 있다고 말해, 신에 대한 그의 믿음은 말할 것도 없고, 신이 그에게 신의 뜻을 행하도록 맡겼다는 냄세를 피우면서 신이 그에게 보인 믿음도 과시하였고, 아울러 그 봉사의 방법 때문에 미움을 받아 재판정에 선 것처럼 아테나이 사람들에게 인식시키려 노력하고 있었습니다. 여기까지 소크라테스로서는 그의 변론의 모두冒頭 발언을 마친 셈이지만, 저는 이것으로 이미 그가 그날의 재판정에서 아테나이 시민 여러분께 하고 싶었던 자기 변론을 모두 다한 것으로 들었습니다. 

 

6.11. 이미 소크라테스의 두 세대 전에 콜로폰의 크세노파네스는 절대적인 신의 존재와 지혜와의 관계에 대해 말하며, 호메로스와 헤시오도스가 인간들 사이에서도 손가락질 받을 파렴치한 짓을, 다시 말해 신들끼리나 신들이 인간들에게 서로 속이거나, 도둑질하거나, 간통하는 따위의 짓을 시켰다고 욕하면서27, 그 바람에 사람들은 신들이 자기들처럼 생겼다고 생각하는데28, 그렇다면 에티오피아 사람들은 그들의 신이 코가 납작하고 검은 피부를 가졌다고 말할 것이고, 트리케 사람들은 그들의 신이 눈이 파랗고 머리카락이 붉다고 말할 것이며29, 심지어 소나 말이나 사자조차,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그들의 신을 그들과 같은 형체로 생각할 것30이지만, 그러나 그 모든 신들이나 인간들 가운데 가장 위대한 '하나의 신'은 그런 신들이나 필멸의 것들과는 형체나 생각이나 그 무엇 하나 조금도 같지 않다31고 단언했을 뿐만 아니라, 그는 지혜에 대해 말하면서도, 필멸의 인간들에게 드러나 있어서 그들이 보는 모든 것32이 그것인가 싶지만, 누구도 신들에 대해서나, 그리고 자신이 말하는 모든 것에 대해서 분명한 것을 알지 있지 못하며, 또 알지 못할 것이듯이, 우연히 누가 완벽한 지혜를 말했다 해도 그가 그것을 알고 말했다 하기 어려우므로, 결국 필멸의 인간들은 어떤 것에 대해 형성된 각자의 의견33이 완벽한 지혜와 비슷한 것이라 믿어지게끔 하는34 수밖에 없는데, 사실 그 절대적인 '하나의 신'이 필멸의 인간들에게 그의 지혜를 처음부터 모든 것에 다 드러내어 준 것은 아니어서, 필멸의 인간들은 시간을 두고 그 속을 들여보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노력 끝에 더 나은 것을 찾아내어야만 한다35고 결론지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이런 생각, 다시 말해 지혜는 신의 것이고 필멸의 인간은 살짝 들여다볼 수 있을 뿐이라는 생각이 철학자들 사이에 만연했을 때, 크세노파네스의 한 세대 뒤이자 소크라테스의 한 세대 앞인 프로타고라스는 이와는 확실히 다른 방법으로 지혜를 찾아 나섰습니다. 이미 앞에서 제가 한번 여러분께 말씀 드렸다시피, 프로타고라스가 보기에는 신의 존재도 그렇지만 신의 지혜란 것 역시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것이어서, 필멸의 인간이 따지기에 시간이 대단히 아까운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필멸의 인간인 프로타고라스는 있는 것에 대해 가지는 인간들의 생각, 즉 있는 것을 인식하여 얻어지는 인간의 지혜에 더 많은 신뢰를 보내고, 그런 인간의 지혜를 모아 서로 키우는 데에 정진해야 한다고 말한 것이었습니다. 어쩌면 그 때문에 그는 철학자로서 뿐만 아니라, 오히려 소피스테스로서의 역활을 저 충실히 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있는 것과 없는 것에 대한 인식술을 가르치려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크세르파네스나 프로타고라스의 지혜에 대한 태도와는 달리, 소크라테스는 지혜를 신의 것으로 절대화하였으며36, 지혜의 절대적인 가치를 믿으면서 지혜가 바로 절대적인 신이라고 말한 것이었습니다. 바꾸어 말해 소크라테스에게는 신의 지혜가 최고여서, 필멸의 인간이 지혜를 운운하며 인간적 지혜를 따지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고, 그래서 인간 소크라테스는 그 모든 것에 대해 가지는 인간의 생각, 즉 그 모든 것을 인식하는 인간의 지혜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그런 인간의 지혜를 지우고, 그 안에 절대적이고 하나인 신의 지혜를 찾아 채워 넣어야 한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그가 그런 지혜의 신에 대한 봉사자로서의 역활을 해 왔다고 여러분 앞에서 증언할 수 있었는데37, 신과 그 지혜에 대한 봉사자로서의 소크라테스의 입장을 정리해 본다면, 필멸의 인간인 소크라테스가 부딪치는 그의 문제와 그의 모순을 이해하기가 한결 수월하겠지요. 그렇다면 지금부터 여러분과 함께 소크라테스가 죽음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되었던 그의 문제와 그의 모순을 드러내기 위해, 그의 평소 언행과 그날의 변론의 내용으로 들어가 봅니다.

 

6.12. 아테나이 시민 여러분, 무엇보다 먼저 소크라테스는 그가 오로지 신들만이 가진 절대적인 지혜를 언급하는 순간 그는 오히려 프로타고라스와는 전혀 다른 의미로, 그가 의도했든 그렇지 않았든, 도시가 믿는 신들을 부정하는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아테나이가 믿는 팔백 만이 넘는 신들 모두가 절대적인 지혜를 가졌는데, 마치 헤라의 역활이 제우스와 다르듯이 헤라의 지혜가 제우스의 지혜와 다른 것이라면, 소크라테스가 믿는 그 절대적인 신의 지혜는 신들 사이에도 서로 다를 수 밖에 없어, 결국 프로타고라스가 말했다시피 필멸의 인간들이 그들이 지닌 지혜의 척도였듯이, 불멸의 신들도 소크라테스가 믿는 그 절대적인 지혜의 척도가 될 수 밖에 없게 되고 맙니다. 이런 모순을 피하는 방법은 단 한 가지 신은 단 하나일 뿐이라고 말하는 것 밖에 없습니다. 다시 말해 신들이 모두 단 하나의 절대적인 지혜를 공유한다고 말해야 할 뿐만 아니라, 그런 신들의 이름이나 하는 일이나 심지어 모습까지도 다른 까닭은 본디 하나인 신의 절대적인 지혜가 세상에 스스로를 드러낼 필요가 있을 때 그것에 따라 여러가지 편의를 취하기 때문일 뿐, 아테나이가 믿는 신들이든 이방인들이 믿는 신들이든 간에 궁극적으로 신들이라면, 모두 절대적인 지혜라는 단 하나의 신으로 존재한다고 말하는 수 밖에 없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소크라테스는 아테나이 사람들에게 헤라나 제우스는 본디 같은 하나의 신인데 필요에 의해 다르게 나타났을 뿐이라고 말하거나, 아니면 헤라나 제우스는 절대적인 지혜를 가지고 있지 않은 우상일 뿐 절대적인 지혜를 가진 절대적인 신은 그 신들 위에 따로 있다고 말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소크라테스로서는 신의 지혜를 들먹임으로써 그가 받는 미움이 신에게 봉사한 사람에 대한 부당한 구박으로 몰고, 아울러 자신이 얼마나 신에 대해 열심히 봉사했는가를 밝혀 고발자들을 단숨에 무고한 신의 봉사자를 무고한 사람들로 몰 수 있다고 믿고 싶었겠지만, 그 방법은 결과적으로 그 스스로 그가 믿는 신이, 크세르파네스의 '절대적인 하나의 신'과 같은 신인지는 말하지 않았지만, '도시가 믿는 신'과 다르다는 것을 밝힌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38.

 

6.13. 물론, 저는 그런 당착이 소크라테스의 잔꾀에서 나온 임시 변통의 결과라 믿지 않습니다. 소크라테스는 뤼시아스의 변론서를 읽고 돌려줄 정도로 그 재판에서 보여줄 자신의 모습을 미리 충분히 머리 속에 그려 보고 나왔을 것이 틀림없기 때문입니다. 그에게 있어 신을 믿느냐 마느냐 하는 것은 단순히 제물을 올리고 복을 빌면 복을 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신을 믿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필멸의 인간 가운데서 특별하게 현명하고 지혜롭다고 보이는 사람들조차 헷갈려 하는 세상의 온갖 일에 대해 절대적인 지혜를 가진 신을 믿느냐 마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39. 따라서 누가 절대적인 신의 지혜를 믿는다면, 그의 눈에는 필멸의 인간들이 내놓는 인간적인 지혜는 비록 그것이 신의 지혜에 근접했다하더라도 단지 한 지혜로운 인간의 의견일 뿐 진리일 수는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데, 소크라테스는 이런 결론에 도달하기 위해 그의 직관이나 추론에 의하지 않고, 일일이 현명하다는 사람들의 의견들을 경험하는 방법을 택함으로써, 그런 사람들과 불필요한 마찰과 불화를 감수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지요. 소크라테스가 자기의 믿음을 자기의 직관과 추론으로 충분히 확인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일일이 사람들의 지혜를 경험해 보는 확인을 통하려 했던 것도 그의 문제인데, 그것은 그가 경험을 통해 적을 만들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 경험을 통해 인간적인 지혜가 신의 절대적 지혜에 도저히 접근할 수 없다는 것만 확인했을 뿐, 다시 말해 자기는 모른다는 것이나마 알고 있지만, 인간적인 지혜는 자기가 모른다는 사실조차 모른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을 뿐, 그런 확인을 통해 그 절대적인 신적 지혜가 반드시 존재해야 하는 이유와, 그것이 신에게 있어야만 하는 이유를 밝히는 일을 게을리 하는 바람에, 결국 인간이 가진 지혜의 가치가 세상에 대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며, 그 인간적인 지혜가 세상에 대해 마땅히 해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를 밝히는 일에 소홀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이런 소홀함 때문에 소크라테스는 프로타고라스나 아낙사고라스가 만들 수 있었던 페리클레스 정도의 정치지도자도 만들지 못하고, 고작 알키비아데스나 크리티아스를 만들어 내었지 않았나 싶지만, 소크라테스가 결코 그들 모두를 바람직한 정치 지도자로 간주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생각하면40, 인간적인 지혜에 대한 그의 불신이 정치에 있어서도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소크라테스의 문제로 보입니다.

 

 

6.14. 저는 그동안 여러 번 이런 소크라테스의 소홀함, 다시 말해 신에게 속한 절대적인 지혜에 대해서는 자기 말대로 온갖 욕을 다 먹으며, 그리고 지독한 가난을 감수하면서까지 봉사하면서, 한 필멸의 인간이 그에게 속한 그 인간적 지혜로 세상에 대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왜 가르치지 않는지에 대해 그와 마주하는 영혼으로서 기회가 생길 때마다 비판해 왔었지만, 그는 그날의 재판에서도 이런 그의 문제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소크라테스가 신에게 봉사하느라 지독하게 가난한 신세가 되었다고 한탄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그가 젊은이들을 타락시켰다는 고발에 대해 발명한답시고 꺼낸 말, 즉 그를 따라다니던 '여가 많은 부잣집 아이들'이 그가 사람들에게 하는 캐묻기를 보고 즐거워했으며, 게다가 그 캐묻기 수법을 다른 사람들을 상대로 흉내내어 그 수법에 당한 사람들로부터 원성을 듣기도 했는데, 이런 일 때문에 그런 젊은이(제자)들의 소행까지 자기가 모두 고스란히 뒤집어 쓰게 되었고, 그 때문에 사람들로부터 젊은이들을 타락시킨다는 비난을 받는다고 변명하였을 때41, 저는 그 변명으로 그가 그 자신의 문제를 다시 한번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것이라 보았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소크라테스가 자기의 캐묻기 수법를 흉내내는 젊은이들의 행동을 자기에게서 아주 잘 배운 제자(젊은이)들의 좋은 학습 태도로 평가하고42, 그래서 그들을 옹호할 줄 알았는데, 그는 그 행동에 대해 그들을 타락했다고 비난하는 보통 사람들과 똑같은 시각으로 나쁜 행동인 것으로 받아들이면서, 그 나쁜 행동에 대한 책임을 전적으로 철이 덜 든 그 젊은이(제자)들에게 돌리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십시요. 그것이 진짜로 그 철부지들의 책임이라면 소크라테스는 도대체 그 젊은이(제자)들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기(어떻게 어울리기) 위해 자기가 여러 사람들에게 캐묻는 것을 보고 그들이 즐거워하도록 데리고 다녔습니까? 설마하니 소크라테스가 제자(젊은이)들 앞에서 명망 있는 사람들을 특유의 캐묻기로 능멸함으로써 자신에게 내려진 그 신탁을 완성시켜 가는 과정이 자랑스러워, 철없는 제자(젊은이)들에게 재미로 보여 주려고 그랬겠습니까43? 그랬을 리가 있겠습니까? 그의 대전제인 '훌륭한 사람이 훌륭하지 않은 짓을 할 리가 없다'를 생각하면, 소크라테스가 그랬을 리가 없지요. 그렇지 않다면 최고의 인간적 지혜를 가졌다고 믿어지는 사람을 만나고, 캐묻기로 그 지혜의 정도를 가늠해 볼 때마다 생겼던 미움이라는 후유증까지도 받아들이는 당대 최고로 현명한 사람인 소크라테스가 그 철부지 제자(젊은이)들에게 가르쳐 주려고 했던 그 무엇을 위해 소크라테스는 그들의 행동을 옹호했었어야 마땅했는데, 그는 그때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소크라테스는 당대 최고의 현명한 사람인 자기가 구사해도 생기는 캐묻기 수법의 후유증에 대해 설명하고, 그 철부지 제자들이 캐묻기 수법을 잘못 구사했을 때 생길 문제들에 대해 주의를 준 다음, 남을 놀리는 데 캐묻기 수법을 구사하지 말라고 당부하지 않았을 리가 없어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그는 그들에게 그렇게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고, 그런데 그들이 자기의 당부를 듣지 않았다고 발명했었어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않고, 그 대신 시치미를 뚝 떼고 남의 이야기 하듯 전부 철부지들의 잘못 탓으로 돌리고 있었습니다. 실제 소크라테스는 그의 제자 안티스테네스가 해어진 옷을 입고 다니는 자기를 닮으려는지 저고리의 어깨 솔기가 터진 곳을 남의 눈에 띄게 일부로 드러내어 입고 다니는 것을 보고, 그 저고리가 안티스테네스의 허영을 훤하게 보여주는 것이라며 나무랐었다는데44, 그가 제자들이 함부로 캐묻기 수법을 써 먹는 것을 보고서도 잘하는 짓이라고 그냥 두지는 않았을 것 아닙니까? 일이 이런 것이라면 소크라테스는 도대체 무슨 이유로 그 젊은이들이 당부를 무시한 채, 어른들을 놀리기 위해 자기의 케묻기 수법을 써 먹은 것을 그들 책임으로 두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을까요? 이 물음의 답은 소크라테스의 '누가 젊은이들을 훌륭하게 만드는가'에 대한 논란 속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6.15. 소크라테스가 그날의 재판에서 멜레토스에게 따지고 캐물었던 쟁점들 가운데 저의 주목을 끈 대목은 '젊은이들을 훌륭하게 만드는 것'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먼저 '누가 젊은이들을 훌륭하게 만들 수 있느냐'를 놓고 소크라테스가 억지스럽게 묻고, 멜레토스는 대답을 못해 빌빌거리는 것처럼 능청스럽게 대응하며 '모든 사람이 그렇게 할 수 있다'45는 대답을 내놓는데, 이때 소크라테스의 결론이 걸작입니다. 아테나이 모든 사람들이 다 젊은이들을 훌륭하게 만드는데 자기 혼자만 그들을 타락시키고 있다는 것이냐며, 멜레토스에게 과연 그러냐고 억지를 부리니, 멜레토스는 과연 그렇다고 확인해 주는 것 말입니다46. 소크라테스로서는 그날 따라 (젊은이들의) '훌륭함'(혹은 타락)이란 무엇인가라든지, '훌륭한 젊은이'는 어떤 젊은이인가라든지, 어떻게 하면 '훌륭한 젊은이'가 될 수 있는가 따위의 캐묻기식 질문은 제쳐 두고, 곧바로 '누가 젊은이들을 훌륭하게 만드는가'라고 물어 준 것인데, 그가 왜 그 질문을 거기서 아뉘토스가 아니라 멜레토스에게 했는지 그 까닭은 그가 아뉘토스와는 같은 문제로 이미 한번 따로 붙었었기 때문이라고 보아야 하겠지만, 어쨌거나 '모든 사람'이라는 기가 차서 말을 잇지 못하는 답을 멜레토스로부터 얻었다는 것은 그가 잘못 물었다는 말이어서, 소크라테스가 애당초 그 질문에 대해 준비해 두었던 답이 따로 있었다면 그는 바로 그 준비된 답으로 직행했어야 했고, 아니라면 처음부터 그는 '누가 젊은이들을 타락시킬 수 있는가'를 물어, 누구나 젊은이들을 훌륭하게 만들 수 있다는 답이 멜레토스에게서 나온 것처럼 '모든 사람이 젊은이들을 타락시킬 수 있다'는 답이 나오도록 물었어야 했습니다. 결국 멜레토스의 능청스런 태도에 흥분한 소크라테스는 참으로 고집스럽게도 이미 자기에게 캐묻기 훈련을 받았던 적이 있는 멜레토스를 얕잡아 보고 마구 몰아세우며 다구쳤다가, 모든 사람이란 답이 나오자 머리가 띵해졌는지, 더 이상 젊은이들을 훌륭하게 만드는 문제에 대한 자기 주장을 하지 못하고, 갑자기 훌륭함에서 타락으로 화제를 돌려, 젊은이들을 훌륭하게 만드는 '모든' 사람 속에는 자기도 포함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자기를 제외시켜, '자기만 젊은이들을 타락시키느냐'고 또 다시 억지를 부리고, 또 다시 능청스런 '그렇다'는 답을 듣는데, 이것으로 그는 오히려 멜레토스의 시치미 떼기에 걸려 들고 말았습니다. 사실 그때 소크라테스가 심호흡 한번하고 흥분을 가라앉힌 다음, 억지 대신 그의 특기인 분별을 동원했더라면 멜레토스의 그 시치미 떼기를 단박에 물리칠 수 있었을 텐데 아까운 일이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젊은이들은 훌륭하게 만드는데 오직 한 사람 이 소크라테스만이 젊은이들을 타락시킨다니 내가 없어져 주겠다. 그러면 이제부터 아테나이의 모든 젊은이들이 훌륭하게 된다는 것 아니냐? 멜레토스여! 그대는 이래서 나를 고발한 것인가? 아테나이 시민 여러분이여! 그대들도 이 말을 믿는가? 그렇다면 아테나이의 젊은이들이 모두 훌륭해질 수 있도록 내가 기꺼이 죽어 주겠다. " 흥분한 소크라테스는 이런 반격을 생각하지 못하고, 또 다시 멜레토스를 다구칠 것이어서, 그때 소크라테스는 어떤 사람이 젊은들을 훌륭하게 만들며, 어떤 사람이 타락시키는지에 대해 자신의 답으로 모두를 납득시키지 않으면 안 되도록 상황으로 자기가 이끌고 말았습니다.

 

6.16. 사실 그는 이런 시답잖고 꼴 같지 않은 말싸움 조금 전에, 다시 말해 '젊은이들을 훌륭하게 만드는 것'에 대해 말싸움을 벌이기 전에, 그리고 소크라테스가 자기는 소피스테스가 아니라고 발명했던 말끝에, 그때는 '누가 젊은이들을 훌륭하게 만드는가'에 대해 소싯적에 칼리아스와 나누었던 대화를 소개했는데, '인간으로서 그리고 한 도시의 시민으로서 갖추어야 할 덕목에 대해서 잘 알고, 또 그것을 칼리아스의 두 아들에게 가르쳐 줄 사람이 있겠는지 없겠는지'를 질문받은 칼리아스가 '있다'고 대답하자, '그가 누구이고 얼마에 가르쳐 주는지' 물었고, '파로스 사람 에우에노스인데 보수가 5 므나'라고 알려 주자, 소크라테스는 뜻밖에도 너무나 순순하게(그런 사람이 있을 리가 있나 하는 느낌을 줄 수도 있었겠지만), (진짜로 그가) 그렇다면 에우에노스가 '훌륭한 사람'이라고 말하면서, 자기는 '그런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다'라고 말했다는 것이었습니다47. 이 대화에 따르면, 소크라테스가 생각하는 '훌륭한 젊은이'는 '인간으로서 그리고 시민으로서의 덕목에 대해 가르침을 받아 잘 알고 있어야' 하고, 그런 덕목은 그것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가르쳐 줄 수 있는 것이며, 다시 말해 '훌륭한 젊은이'는 누구 자격을 갖춘 사람에 의해 만들어질 수 있으며, 젊은이들을 훌륭하게 만들어 주는 사람, 즉 그것을 가르쳐 주는 사람은 적당한 보수를 받아 마땅한 훌륭한 사람이라고 평가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소크라테스는 자기에게 그런 지식이 없기 때문에 그가 에우에노스 같은 소피스테스가 아니라고 무언으로 결론지었고, 자기에게 그런 지식이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델포이의 신탁을 확인하러 다니게 되었다며, 그 다음에 나온 인간적 지혜와 신적 지혜에 대한 주장의 말머리로 삼고 있었습니다. 칼리아스와의 그 대화에서 젊은 소크라테스가 말한 "그런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다"의 지식이 그런 덕에 대한 지식인지, 그런 덕을 가르치는 기술을 말하는 지식인지, 혹은 둘 다인지 나타내지 않았습니다만, 적어도 소싯적의 그가 지녔던 '훌륭한 젊은이'가 어떤 젊은이인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대한 그의 인식은 짐작할 수 있게 해 주었는 데 반해, 나이 일흔에 선 재판정에서 자기를 고발한 멜레토스에게 다시 '누가 젊은이들을 훌륭하게 만드는가'를 묻는 늙은 소크라테스는 '훌륭한 젊은이'에 대한 어떤 언급도 없이 다짜고짜 '누가 만드냐'고 따지고 있어, 칼리아스의 아들 문제로 드러냈던 소싯적에 지녔던 그의 인식이 그대로인지 어떻게 좀 변했는지 알 수 없었고48, 결국 저는 두 번 다시 그로부터 '누가 훌륭한 젊은이들을 만드는가'에 대한 어떤 설명도 들을 수 없었습니다. 그 대신 소크라테스는 그의 죄목인 타락에 대해서만 멜레토스의 능청스런 대답을 고집스럽게 반박해 가며, 설사 어떤 사람이 누구를 나쁘게, 다시 말해 타락하게 했다 하더라도, 그 행위가 결코 고의일 수는 없다고 강변하고, 고의가 아닌 잘못은 가르침의 대상이지 치죄의 대상이 아니므로, 고의가 아니게 젊은이들을 타락시킨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먼저 자신에게 그 잘못을 고치도록 가르침을 줄 생각은 아니하고49, 그 대신 치죄의 장소인 재판정으로 자기를 불러내었으니 이 고발은 잘못되었다고 호통치고 있었습니다50.  

 

6.17. 아테나이 시민 여러분, 그날 재판정에서 소크라테스가 자신이 소피스테스가 아니라고 말한 다음, 이어서 '누가 젊은이들을 훌륭하게 만드느냐"고 물었던 것은 그것에 대해 그가 준비해 두었던 대답을 여러분께 해 드리고 싶었기 때문이었는데, 졸지에 '모든 사람'이라는 답이 나오자 어이가 없었던지 준비했던 말을 꺼낼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젊은이를 타락시키는' 이야기로 넘어가고 말았지 않았나 여기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지금부터 잠시 왜 그가 재판에서 그 문제에 대한 대답으로 자기를 변호해야겠다고 생각했으며, 그 대답이 자기를 변호할 수 있다고 믿고 그가 준비했었던 내용이 과연 무엇이었을까를 한번 찾아보려 합니다. 왜냐하면 젊은이들을 훌륭하게 만드는 그 누구에 대한 젊은 소크라테스의 생각이 재판정에 서서 자기 변론을 위해 정리한 늙은 소크라테스의 생각과 어떻게 달라져 있는가를 들여다보고 나면51, 그 속에서 제가 말해 왔던 그의 문제, 그의 모순을 찾아볼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6.18. 그리하여 저는 소크라테스가 준비했던 대답을 찾기 위해 제일 먼저 그가 고발자들의 미움을 사 재판을 받게 되었다는 소문들 중의 하나에 주목했습니다. 그 소문에 따르면, 민주정의 회복으로 참주정에서 곤봉에 채찍을 들었던 젊은이들이 불안해 하던 차에 대사면이 내려져 젊은이들이 쭈빗거리며 조금씩 다시 움직임을 되찾아 가던 무렵, 그렇지만 참주정 아래에서 아테나이를 떠나지 않고 아테나이에서 살고 있었던 사람들에 대해 아직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어 여러가지로 눈치를 보며 스스로들 근신하고 있었던 무렵, 그를 그다지 달갑게 여기지 않을 아뉘토스의 집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하루는 소크라테스가 찾아가 이런 저런 이야기 끝에, 바로 이 '누가 젊은이들을 훌륭하게 만드는가'를 가지고 아뉘토스에게 캐묻기를 벌이게 되었는데, 거기서 아뉘토스가 '누구도 사람을 훌륭하게 만들 수 없다'는 소크라테스의 얼토당토 않은 결론과, 또 그런 결론을 얻기 위해, 아테나이의 많은 훌륭한 사람들이 틀림없이 그들의 자제들을 훌륭하게 만들기 위해 가능한 모든 가르침을 받도록 했을 것임에도 그렇게 되지 못한 그들 자제들의 경우를 들먹이며, 그들을 나쁘게 말하는 것을 듣고 격분하여, 말조심하라고 경고했다는 것이었습니다52. 이 소문은 마침 아뉘토스의 집에 유숙하고 있던 테살리아의 파르사로스에서 온 한 젊은이 메논의 입으로 사방에 퍼졌는데, 대화의 내용보다는 그 대화 끝에 아뉘토스가 소크라테스에게 경고를 주었다는 사실 때문에 아테나이 사람들로부터 많은 관심을 끌었습니다. 소크라테스 역시 그 소문이 퍼진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고, 아뉘토스로부터 고발당한 이유 중에 그 소문의 경고도 포함된 것이라면, 이 기회에 소문이 나게 된 전후 사정을 아테나이 사람들에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고53 그에 대한 대답을 준비해 둔 다음, 재판정에서 질문을 제기하고 당사자인 아뉘토스가 아닌 멜레토스에게 물었다고 보입니다.

 

6.19. 소문을 전한 그 젊은이 메논은 그후 크세노폰처럼 퀴로스의 반란에 용병 대장으로 참가했다가 그곳에서 죽어, 두 사람 간의 대화 내용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그 소문이 전하는 소크라테스의 결론, 즉 '누구도 젊은이를 훌륭하게 만들 수 없다'는 것은 칼리아스가 젊은 소크라테스에게 있다고 밝힌 파로스에서 온 소피스테스 에우에노스가 훌륭한 젊은이들을 만드는 걸 보지 못했다는 말이고, 다르게 말하면 여러분이 모두 잘 아시다시피 칼리아스의 어려운 말년 생활이 말해 주듯 그에게서 배운 칼리아스의 아들들이 훌륭한 젊은이도 훌륭한 사람도 되지 못했다는 말이며, 그와 같은 경우를 그날 이후에도 아테나이의 다른 명문가에서도 수없이 보아 왔다는 말일 뿐만 아니라, 그런 소크라테스의 예들 가운데는 아뉘토스가 훌륭하다고 생각했던 사람들까지 들어가 있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좀 극단적으로 말하면 이 같은 소크라테스의 결론은 오랜 세월 동안 소크라테스가 아테나이에서 단 한 사람의 훌륭한 젊은이도 찾을 수 없었다는 말이기도 한데, 만일 단 한 사람이라도 있었다면 소크라테스는 그가 누구에게서 어떻게 무엇을 배워 훌륭한 젊은이가 될 수 있었는지 그 특유의 캐묻기로 알아내고 말았을 것이고, 그래서 누가 젊은이들을 훌륭하게 만드는지 알았을 텐데 그런 경우가 한 차례도 없었다는 것이고, 다른 경우라면 훌륭하다고 알려진 젊은이에게 누가 그를 훌륭하게 만들었는지 알아보다가 자기의 캐묻기에 걸려, 결국 그가 훌륭하지 못한 젊은이로 판정이 내려졌다는 이야기겠지요. 혹시 그런 캐묻기 끝에도 여전히 훌륭한 젊은이로 남을 수 있었다면 틀림없이 그는 그를 훌륭하게 만들어 준 사람의 이름을 한 사람도 댈 수 없었기 때문이었겠지만, 설마 그런 사람이 있었겠습니까? 있었다면 소크라테스가 그 사람 떠받들고 온 아테나이에 이 사람을 보라며 떠들어 대었겠지요. 그래도 소크라테스가 아테나이에는 훌륭한 젊은이가 하나도 없다고 말하는 위험을 피해 잠자코 있을 때, 한사코 우리가 이런 저런 젊은이들을 가리켜 훌륭하다고 내세우면, 소크라테스가 못 이기는 척하며 내놓을 답이라고는 그가 훌륭한 젊은이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그렇게 되는 성품을 타고 났다는 것밖에 없을 것이고, 그나마도 유전으로 타고 난 것이 아니라, 바로 신에게서 받아 타고 난 것이라 말할 수밖에 없게 되었을것입니다. 왜냐하면 소크라테스는 이미 아뉘토스를 격분시킬 때 그 앞에서 열거했듯이, 훌륭한 아버지의 아들이 훌륭하게 되지 못한 경우들을 많이 보아, 그것이 결코 유전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금 제가 소크라테스가 하고 싶었던 말을 정리해 보면 이런 말이 되겠습니다. "훌륭한 젊은이는 결코 누가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다. 오직 신이 점지하여 훌륭한 젊은이로 태어날 뿐이다."

 

6.20. 멜레토스가 소크라테스만큼 오랜 세월에 걸쳐 열정적으로 젊은이들을 훌륭하게 만드는 문제에 대해 공부했을 것 같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날 소크라테스가 멜레토스를 젊은이들을 훌륭하게 만드는 문제나 타락하게 만드는 문제에 대해 조금도 고민해 보지 않았다고 몰아친 것이나, 아낙사고라스의 자연학 이론을 인용해 삼척동자도 그 책을 일고 비웃을 내용을 자기가 가르치며,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는 것이냐고 따지자, 그렇다는 멜레토스를 방자하고 무절제한 사람이라고 욕을 한 것은 좀 심해 보였습니다54. 아뉘토스에게도 그랬을 것 같습니다만, 칼리아스에게는 모든 아테나이의 아버지들이 그들의 자제 교육에 많은 신경을 쓸 것이라 전제하고 묻고 따지다가, 당연히 멜레토스가 자기의 기대대로 버벅거리기만 하고 말문이 막혀야 되는데, 어쩐 일인지 궁지에 몰리는 것 같았는데도 결국은 능청스레 할 대답 다해 나가자, 그 역시 분명히 그의 자녀 교육 문제로 고민했을 텐데도55, 그를 젊은이들의 문제에 조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사람으로 치부하고 몰아친 것은 그 재판정의 사람들이 멜레토스의 대답에 동조하는 것을 피해 가기 위한 것 아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그 때문에 자기가 준비해 갔던 대답, 훌륭한 젊은이는 누가 어떻게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신이 점지하여 태어날 뿐이라는 주장도 거두어 들인 것 아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재판정에 왔던 스무 여덟의 플라톤이 그의 스승을 위해 한마디 하려고 나섰다가 아직 어리다고 모두들 내려오라고 하는 바람에 '제가 아직 어리지만'이라는 말 밖에 못하고 내려가야 했었을 만큼, 그날 나온 배심원들은 한결 같이 그들의 자녀들 교육 문제로 오래 고민해 왔었거나, 아니면 지금 고민하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는데, 그렇게 스스로 자녀 교육에는 일가견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 앞에서 젊은이들을 훌륭하게 만드는 문제에 대해 '모든 사람이 그렇게 한다'는 멜레토스의 대답이 '아무도 그럴 수 없다'는 자기 주장과 맞부딪쳤을 때, 누가 더 자기의 주장을 합리화하여 재판정에 나온 모든 사람들을 납득시키기 좋은지 소크라테스는 단박에 알았을 것입니다. 소크라테스가 자기 주장을 옹호하기 위해서는, 소문이 전하는 대로 이미 아뉘토스에게 경고를 받아야 했을 정도로, 좋은 가정에서 태어나 좋다는 교사들에게 많은 교육을 받았는데도 불구하고 훌륭하게 되지 못한 젊은이들의 부정적인 경우를 예로 들어, 또 다시 새로운 적들을 쌓아야 하는 데 반해, 멜레토스는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 평범한 교육을 받고도 훌륭한 젊은이로 인정받아 모두에게 칭찬을 듣는 긍정적인 경우를 예로 들어, 모두에게 우호적인 분위기로 만들어 가면서 자기의 주장을 펼 수 있는 차이를 단박에 깨닫고, 소크라테스는 더 이상 그 문제를 거론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사실 가르침으로 세상 사람들을 모두 훌륭하게 만들 수 있다면 세상에 훌륭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마는, 소크라테스가 그날 그 문제를 더 이상 거론하지 않고 접은 까닭은 의외로 모든 사람이라는 멜레토스의 대답에도, 그때 그 대답을 했던 멜레토스로서는 죽었다 깨어나도 몰랐을, 정곡을 찌르는 평범한 진실이 있음을 놓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면 그것이 무엇일까요?

 

6.21. 젊은 소크라테스가 칼리아스에게 제시했던 훌륭함의 뜻과 훌륭한 젊은이의 모습에 대해 그날 재판정에 선 늙은 소크라테스는 배심원들에게 달리 변화된 생각을 보여주지 않았는데, 아마 그것은 그가 더 이상 캐묻지 않아도 훌륭함이 무엇이며, 어떤 젊은이가 훌륭한지에 대해 모든 사람들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수도 있고, 더우기 그런 것들 다 알고 있다고 해서 훌륭한 젊은이인 것은 아니며, 그런 것들 다 몰라도 훌륭하게 자라는 젊은이들이 있다는 것까지도 모두 다 잘 알고 있다고 느껴, 일부러 더 말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었을런지도 모르지요. 그래서 그는 곧바로 '누가'라고 물었고, 그가 늘 쓰기 좋아했던 비유대로, 의사가 되고 싶으면 의사에게 가서 배워야 하듯이 훌륭한 젊은이가 되려면 당연히 훌륭한 사람에게 배워야 해서, 누가 젊은이들을 훌륭하게 만드는가에 대한 그의 대답은 반드시 '훌륭한 사람'이어야 했는데, 젊은 소크라테스는 과연 그런 사람이 있겠는지가 궁금했기 때문에, 그래서 있다면 바로 그 사람이 '훌륭한 사람'이라고 칼리아스에게 대답했던 반면에, 늙은 소크라테스는 '훌륭한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라, 있다 해도 그 사람이 꼭 훌륭한 젊은이를 만드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래서 신적인 점지를 받아 훌륭한 인성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라고 준비했었을 것 같은데, 어쩐 일인지 그는 그렇게 답하지 못했습니다. 

 

6.22. 아테나이 시민 여러분, 여러분이 생각하시기에도 의사가 되기 위해서는 의사에게 의술을 배우는 것이 가장 빠르고 틀림없는 길이겠습니다만, 소크라테스 같이 심술궂은 사람이 있어 구태여 그냥 의사가 아니라 훌륭한 의사가 되는 길은 뭐냐고 물어 오면, 그래도 그 대답 역시 제일 먼저 의사에게 의술을 배워야 하는 것임에도, 사람들은 과연 그것이 훌륭한 의사로부터의 가르침인지, 훌륭한 의사가 되고자 하는 사람의 진지한 열의인지, 뛰어난 재능인지, 남다른 인성인지, 아니면 이 모두가 어우러져야 되는지 따위를 따지면서 제법 그럴듯한 논의를 시작해 나갑니다. 물론 의사가 된다는 말은 아픈 사람을 고치는 데 필요한 기술과 지식을 갖춘다는 말이어서, 이미 그런 기술과 지식을 가지고 있는 의사에게 배우고 전수받는 것이 가장 빠르고 틀림없는 길이지만, 훌륭한 의사가 된다는 것은, 그래서 훌륭한 의술도 갖춘 의사면 더욱 좋겠지만, 반드시 훌륭한 기술과 지식을 갖추어야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의사가 된 이후에 의사가 해야 하는 일을 훌륭하게 수행한다는 말이 아닌가 보여지기 때문에, 의사가 되는 길과 훌륭한 의사가 되는 길이 따로 있다는 생각은 너무나 당연하고, 그래서 훌륭한 의사가 처음부터 훌륭한 의사가 될 사람으로 태어 나거나, 혹은 처음 의사가 될 때부터 그렇게 만들어질 수도 있겠지만, 설사 그렇다 해도 훌륭한 의사란 결국 의사가 된 한 사람이 의사로서의 행동을 훌륭하게 수행해 온 것을 오랫동안 지켜본 사람들로부터 그렇다고 평가를 받아야 밝혀지는 것이므로, 의사가 되는 길과 훌륭한 의사가 되는 길은 서로 달라서, '의사는 의사가 만들고, 훌륭한 의사는 스스로가 만든다"가 옳은 말 아니겠는지요?

 

6.23. 의사와 훌륭한 의사의 경우가 그렇다고 해서, 누가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사람에게 배워야 한다고 말하면 여러분 보시기에 우선 그 말이 맞고 그르고를 떠나 꼭 말장난 같고, 한 걸음 더 나아가 훌륭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도 우선 사람으로부터 사람이 되는 것부터 배워야 한다고 말하면 이제 말장난도 그런 말장난이 없게 되고 맙니다만, 훌륭한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 훌륭한 사람의 가르침인지, 훌륭한 사람이 되고자 하는 사람의 진지한 열의인지, 뛰어난 재능인지, 남다른 인성인지, 아니면 이 모두가 어우러져야 되는지를 점잖게 말하기 시작하면 제법 그럴 듯한 논의를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목수나 의사가 된다는 말만큼 사람이 된다는 말도 무슨 말인지 잘 알면서도, 목수나 의사가 되기 위해 목수나 의사에게 배워야 한다는 것은 그렇지 하면서, 사람이 되기 위해 사람에게 배워야 한다는 것은 말장난으로 듣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만일 사람이 된다는 말이 한 사람이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고, 그들과 더불어 사는 데 필요한 기술과 지식을 갖춘다라는 말로 받아들여진다면, 누구는 이런 기술과 지식을 따로 덕(목)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만, 확실히 사람들은 어릴 적부터 어른이 되기까지, 물론 어른이라고 다 사람이 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사람들 사이에서 그들이 하는 언행을 보며, 따라 하는 것이 좋은 것과, 그 반대로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것을 가려 가면서, 조금씩 더불어 사는 데 필요한 기술과 지식을 배우고 익히며 사람이 되어 간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인데, 여기까지 보면 훌륭한 사람 역시 사람부터 되어야 하고, 적어도 그런 사람이 되는 데는 모든 사람이 정면교사든 반면교사든 교사의 역활을 하는 것이라, 멜레토스의 대답이 틀리지는 않아 보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직접 겪으며 사람이 되는 과정은 한 아이가 육체적으로 성장하는 과정보다 훨씬 더 긴 경우가 많아서, 옛날부터 사람들은 어른 몸에 어린 생각이 저지르는 사달들을 막기 위해 어린 몸에 일찍 어른 생각을 주입하는 노력을 기울이게 되었고, 그 때문에 집에서 뿐만 아니라 논밭에서나 바다에서나 그밖에 일하는 작업장들에서 먹고 사는 데 필요한 기술과 지식을 가르칠 때에도, 그런 먹고 사는 기술과 지식에 더하여,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사는 기술과 지식도 함께 가르치는 등 언제 어디서나 그런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런 노력의 방편들 가운데 가장 대표적이고 전문적인 것이 교사들의 교육일 것입니다. 교사들의 전문적인 가르침이 생기자 사람들은 마치 교사가 돈을 받고 더불어 사는 기술과 지식을 도맡아 가르친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그래서 사람들로부터 배운다는 말이 말장난처럼 들리게 되었지만, 사실 그렇게 배운 기술과 지식은 가족이라는 틀 안에서나, 같이 뛰어 노는 동무들 사이에서나, 먹고 살기 위해 기술과 지식을 배우는 곳에서, 직접 부딪쳐 가며 그 기술과 지식을 가다듬고 단련시키지 않으면 별무소용이라, 교사에게 따로 배우든 그렇지 않든, 사람이 되는 기술과 지식은 결국 모든 사람들에게서 배운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훌륭한 사람을 누가 만드는가에 대한 대답도 의사의 경우처럼, 한 사람이 오랫동안 사람이 해야 할 바를 훌륭하게 수행해 오는 것을 지켜본 사람들이 그 사람을 훌륭하다고 평가해서 밝혀지는 것이어서, 그런 평가를 얻을 만큼 '스스로 꾸준히 사람이 해야 할 바를 다한다'라야, 다시 말해 '인간의 도리를 꾸준히 지키고 그것들을 수행하여 스스로를 훌륭하게 만든다'라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그 답은 "사람은 사람이 만들고, 훌륭한 사람은 스스로가 만든다"라야 하겠지요.

 

6.24. 사실 소크라테스가 그날 재판정에서 멜레토스로부터 '모든 사람'이란 답 대신에, 제가 답해 드린 훌륭한 의사나 훌륭한 사람의 경우처럼, '훌륭한 젊은이는 스스로가 만든다'라는 답을 들었다면 어떤 반응을 보였을지 궁금하기 짝이 없습니다. 앞에서 훌륭함은 오랫동안 꾸준히 보여준 한 사람의 행동들로 많은 사람들에 의해 평가된다고 말씀 드렸습니다만, 제가 보기에 한마디로 훌륭함은 어느 정도 인생을 살아 제법 나이가 든 사람들에게서나 볼 수 있는 것이라는 말인데, 소크라테스는 젊은이에게서도 훌륭함을 찾을 수 있으며, 또 그들의 훌륭함이 누구에 의해 만들어진다고 믿지 않았었기 때문에, 그가 누구냐라는 문제를 제기했던 것 아니었나 생각되어 저의 대답에 대한 반응이 궁금해진 것입니다. 물론 평범한 사람도, 어떤 때는 나쁜 사람조차도, 이따금 훌륭한 언행을 보이듯이, 꼭 나이 든 사람이 아니라도,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젊은이들은 젊은이들 대로 그 안에서 훌륭함을 갖추고 있을 것이므로, 그런 문제 제기에 토를 달 것은 없지만, 그 재판 이전에 멀리는 소싯적에 칼리아스에게와, 가까이는 그 재판이 있기 불과 몇 년 전 아뉘토스에게 그 문제를 제기했던 것은 서로 같은 문제를 진지하게 다룬 것으로 보이는데 반해, 그날의 재판에서 멜레토스에게 다시 이 문제를 제기했을 때는 어쩐지 그가 그 고발 내용 때문에 타락한 젊은이들이 아닌 젊은이들을 가리켜 훌륭한 젊은이라며 조롱 삼아 비유적으로 한 것처럼 들렸기 때문에, 더구나 모든 사람이라는 더 심한 조롱에 놀라 그가 말 문을 닫고 그 문제에 대한 자기의 답을 내놓지 않았기 때문에, 제가 내놓은 답에 대한 그의 반응이 궁금한 것입니다. 이제 그 문제에 대한 저의 답에 보일 그의 반응을 알아보기 위해 저는 우선 훌륭한 젊은이가 어떤 젊은이를 가리키는지부터 알아보고, 아울러 그가 말했던 젊은이들이 성인이 되기 전의 아이들을 가리켰는지, 아니면 여러분 아시다시피 우리 아테나이는 나이 열여덟이면 성인이 되고, 서른이면 공무를 담당할 수 있게 되는데, 성인이 된 뒤 공무를 맡을 수 있게 되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가리켰는지56, 아니면 이미 공무를 맡아 보기 시작한 멜레토스 정도의 젊은 어른57을 가리키는지도 먼저 짚어 볼까 합니다. 젊은 소크라테스가 칼리아스의 두 아들을 언급했을 때는 아직 더 배워야 하는 성인이 되기 전의 아이들을 젊은이들이라 한 것처럼 보이지만, 아뉘토스에게 갔을 때는 부모의 훌륭함이나 열성적인 교육이 훌륭한 젊은이를 만들지 못했다는 예를 드는 바람에 격분을 샀다는 걸 보면 배울 만큼 배우고 이미 성인이 된 젊은이를 가리킨 듯이 보이고, 크세르파네스나 파르메니데스의 시에 심취했었던지 어려서부터 시를 쓰는 공부에 몰두하던 플라톤이 나이 스물이 되던 해, 전쟁 스무네 번째 해에 에우리피데스가 아테나이 디오뉘소스 축제의 비극 경연에 자기의 연출로 올린 마지막 작품이 되고 만 삼부작 "오이노마오스"와 "크뤼십포스" 그리고 "오레스테스"를 보러 갔다가, 비극 경연 심사장에서 소크라테스가 에우리피데스와 신인 비극작가들에게 하는 이야기를 듣고, 시에 대한 꿈을 접고 그 대신 철학을 배우겠다며 그에게 달려갔을 때, 그 플라톤을 자기가 꿈에서 본 백조라며 제자로 받아들인 걸 보면58 비록 성인이 되었으나 아직 더 배워야 하는 젊은이를 가리킨 듯이 보이고, 재판정에서 말한 젊은이 역시 타락한 젊은이들을 멜레토스와 같은 또래로 염두에 둔 지칭이라고 보면, 그리고 배우는 아이들을 보고 타락했느니 어쩌니 손가락질했을 리는 만무하다고 보면, 아무래도 성인이 되고 공무를 담당하기를 기다리는 젊은이들, 다시 말해 성숙해 가는 젊은이들을 가리켰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타락이라고 낙인 찍힌 그들의 행동에 대해 소크라테스가 자신의 책임을 조금도 느끼지 않고 냉정하게 그들에게 그 책임을 돌리고 있었던 이유도 그들이 철없는 아이들이 아니라 성인이 되어 자기 앞가림을 해야 할 젊은이들이었기 때문이라 생각하면 더욱 확실해지는 듯합니다.

 

6.25. 그렇다면 열여덟에 성인이 되어 도시 일에 참여하거나 징발되어 도시민으로서의 권리와 의무를 배워 나가다가, 서른이 되어 순번에 의해서나, 추첨으로, 또는 선출이 되어 공직을 담당할 수 있는 서른이 될 때까지 열두 해 동안이라면 한 젊은이를 두고 훌륭하다고 평가할 충분한 시간이 된다고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한 젊은이를 오래 지켜보다가 훌륭하다고 평가한다면 그 훌륭함은 어떤 것일까요? 설마 이미 훌륭한 사람이 된 젊은이를 가르키는 것은 아니겠지요? 훌륭한 사람이 될 자질을 보이고, 또 그렇게 되기를 희망하며 열심히 자신을 단련시켜 가는 것이 젊은이들의 훌륭함인가요, 아니면 출세에 대한 야망으로 가득찬 것이 그것인가요? 서른이 넘자 바로 장군으로 선출되었던 알키비아데스는 훌륭한 젊은이였을까요? 테칼리아로 쫒겨가 그곳에서 지내야했던 크리티아스는요? 정치에 별로 뜻이 없었지만 소크라테스로부터 정치 참여의 권유를 받았던 카르미데스는요59? 아테나이에서 트라쉬불로스나 아뉘토스와 함께 하거나 그들에 반대하여 그들보다 더 나은 아테나이를 만들기 위해 사는 삶보다, 아테나이를 떠나 페르시아의 퀴로스나 스파르테의 티브론과 아게실라오스를 통해 그의 삶을 이어갔던 크세노폰은요60? 그들 모두 훌륭한 젊은이들이었을까요? 그랬다면 그들은 어째서 훌륭한 장군이나 정치가나 훌륭한 사람이 되지 못했을까요? 훌륭한 젊은이가 되는 것은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인가요? 소크라테스는 알키비아데스나 크리티아스나 카르미데스나 크세노폰이나 그밖에 그가 어울리던 젊은이들에게 젊은이들의 훌륭함에 대해, 사람의 훌륭함에 대해 가르칠 지식이 그때까지도 생기지 않아 그들을 훌륭하게 만들 수 없었을까요? 그렇다면 소크라테스는 무엇 때문에 그들과 대화하며 지냈을까요? 옛날 아가톤의 집에서 밤 늦게 알키비아데스가 그의 스승 소크라테스를 띄울 때 들어보니까 그가 소년들과의 잠자리를 즐긴 것 같지도 않았는데 말입니다61.

 

6.26. 아테네 시민 여러분, 저는 그날 재판정에 나온 소크라테스의 친구들이나 그의 제자들이 플라톤이 그랬던 것처럼 소크라테스를 위해 증언대에 나서고자 하였으나 번번히 제지당하거나 끌려 내려온 뒤 울화에 차서 토로했던 소크라테스의 행적들을 토대로, 그리고 제가 평소에 들어 왔던 그에 대한 소문들을 더하여, 이 의문에 대한 답을 여러분께 한번 보여 드리고자 합니다.  소크라테스가 하루는 크세노폰이 좁은 골목을 지나갈 때, 지팡이로 크세노폰을 멈추어 세워 놓고는 이런 저런 맛있는 음식 이름들을 대며 그 음식들의 재료들을 어디에 가면 살 수 있느냐고 물어, 크세노폰이 식료품 가게가 어디 있는지 가르쳐 주었더니, 그 다음에 사람들은 어디에 가면 훌륭하고 뛰어난 사람이 될 수 있느냐고 물었는데, 크세노폰이 대답을 못하니까 자기를 따라와서 배우라고 했다는 이야기나62, 소크라테스의 장남 람프로클레스가 어머니 크산티페에게 화를 내는 것을 보고 은혜를 갚는 행동에 대해서, 그래서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에 대해서 가르쳤다는 이야기나63, 아프리카의 퀴레네에서 자기의 제자가 되기 위해 아테나이로 온 아리스팁포스가 사치하고 극기심이 모자란다는 것을 알고는 다스리는 자와 다스림을 받는 자의 행동 양식이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지를 비교하며 자제와 인내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다는 이야기나64, 자기의 이름을 날리는 길은 어떤 일에 탁월하게 되는 길밖에 없는 것이라며, 허세와 기만으로 피리의 명수인 양 좋은 옷을 입고 여러 도우미들을 데리고 다닐 수는 있지만 실제 연주가 탁월하지 않으면 금방 들통이 나서 수치를 당한다고 허세와 기만을 경계토록 했다는 이야기나, 몸이 허약해 신체 단련을 싫어하는 에피게네스에게 체력이 가장 적게 드는 사색을 할 때도 몸이 허약하면 자칫 잘못된 생각에 빠지는 만큼 자신을 위해서는 물론이고 주위나 도시를 위해서라도 올륌피아의 경기에 나가는 사람에게 뒤지지 않을 정도로 아름다운 몸과 뛰어난 힘을 기르도록 했다는 이야기나65, 이 이외에도 여러가지로 많은 젊은이들의 미덕들 가운데 특별히 지녀야 할 미덕은 바로 도를 지나치지 않는 것이라며 절제나 중용을 강조했다는 이야기나, 자신의 모습을 거울에 비춰 보고 아름답다면 그것에 걸맞는 덕과 교양을 갖춘 사람이 되도록하고, 추하다면 덕과 교양으로 그 추한 모습을 덮도록 하라며 영혼을 살찌우는 덕과 교양을 키울 것을 주문했다는 이야기66들을 모아 보면, 놀랍게도 소크라테스는 그가 생각하는 훌륭한 젊은이의 모습이 어떤 모습인지 그들에게 너무나 구체적으로 그려 보여주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런 덕목과 교양의 습득과 실천을 통해 훌륭한 젊은이가 되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었다는 것까지도 알 수 있게 되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소크라테스에게 훌륭한 젊은이란, 소싯적의 소크라테스가 칼리아스에게 말했던 대로, 훌륭한 사람이 되기 위한 덕목을 습득하고 실천해 나가는 젊은이였고,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그가 만나던 젊은이들 모두가 훌륭한 젊은이가 되도록 가르치고 있었다는 말이 됩니다.

 

6.27. 더군다나 저는 그런 이야기들 가운데서 소크라테스가 이런 덕목의 습득과 실천 말고도 젊은이들의 친구와의 교유에 대해, 특히 젊은이는 자기의 친구들로부터 가치 있는 친구로 존중 받고 신뢰를 얻기 위해 자신을 훌륭하게 가꾸는 노력의 중요성에 대해, 유난히 자주 강조했다는 이야기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67, 소크라테스가 평소에도 사람들이 자기가 가진 양의 숫자는 정확히 대답하면서 친구가 몇이나 되는지는 잘 대답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비꼬곤 했었다는 이야기는 들었었지만, 실제로 제자들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친구와 우정을 나누도록 많이 가르쳤다는 사실68이 놀라웠기 때문이었습니다. 친구들과의 교유에 관한 이야기들 가운데 제가 특히 주목한 이야기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여러 제자들이 같이 있는 자리에서 안티스테네스에게 노예들에게 각기 그 값이 있듯이 친구들에게도 각기 값이 있는 것인가 물었을 때, 물론 안티스테네스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대답하자, 이에 대해 소크라테스가 그 제자에게 말하기를, 그렇다면 각자가 자기 자신이 자기의 친구들에게 얼마만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 스스로 돌아보고, 될 수 있는 한 소중한 가치를 지닌 친구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는 이야기이고69, 또 하나는 크리톤의 아들 크리토프로스에게 어떤 친구와 교유하는 것이 좋겠는지 물으면서, 물론 크리토프로스는 훌륭한 젊은이들과 사귀고 싶다면서 어떻게 그런 젊은이인지 알 수 있겠는지 물었고, 이에 대해 소크라테스가 크리톤의 아들에게 말하기를, 어떤 한 길에서 우수하다고 인정 받고 뛰어난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젊은이가 바로 그런 친구인데, 그가 사귀고 있는 친구들의 면면과 그가 그 친구들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사귈 만한 젊은이인지 알 수 있을 것이고, 또 그런 젊은이라면 당연히 그 친구 역시 그와 같은 친구와 사귀고 싶을 것이므로 자기 자신 또한 그렇게 되기 위해 정진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다는 이야기70였습니다.  

 

6.28. 아테나이 시민 여러분, 소크라테스의 이런 행적들에 대한 이야기들에 제가 정말 감짝 놀란 까닭은, 소크라테스가 칼리아스의 아들들을 훌륭한 젊은이로 만들려고 달려든 에우에노스처럼 그도 자기가 만나던 젊은이들을 훌륭하게 만들기 위해 가르침을 주었던 것 아니냐는 반박 건수 때문은 절대 아니고, 자기는 한사코 소피스테스가 아니라고 하더니 젊은이들을 만나 한 짓이라고는 결국 에우에노스와 다를 바 없는 것 아니냐며 소크라테스를 빈정거릴 거리를 찾았기 때문은 더더욱 아닌 것이, 희한하게도 그는 정진하는 모습을 보여 주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로, '훌륭한 젊은이는 훌륭하게 되고 싶은 젊은이 스스로가 만든다'고 이야기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런 노력을 하는 젊은이들이 서로 교유를 통해 정진해 나가는 것이 좋다면서 그 방법까지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떤 도시민이 훌륭한 도시민인지, 그래서 훌륭한 도시민이 되기 위해 젊었을 때부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그의 생각이 이런 것이었다면, 제가 도시민이 해야 할 바를 가르치는 것에 대해 그와 마주설 까닭이 없었을 것이듯이, 도시가 해야 할 일을 도시민에게 말하는 것에 대해서도 지금까지처럼 제가 소크라테스와 마주하는 영혼으로서 서 있었을 까닭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6.29. 아테나이 시민 여러분, 아무튼 이 놀람의 끝에서 저는 소크라테스의 문제를, 그의 모순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칼리아스의 아들들 경우에는 자기에게 에우에노스와 같은 지식이 없어 자기는 훌륭한 젊은이를 만들 수 없다고 했던 젊은 소크라테스가 언제부터 어떤 연유로 태도를 바꾸어 훌륭한 젊은이를 만드는 일에 나서게 되었을까요? 그날 재판정에서 그가 말했다시피, 무엇보다 소크라테스는 한동안 신탁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아보기 위해 남들의 미움을 마다 않고 인간적인 지혜의 가치 없음을 터득할 때까지 분주한 나날을 보냈을 것이고71, 그날 재판정에서 일부러 말하지는 않았지만 틀림없이 틈틈이 알키비아데스고 크리티아스고 글라우콘이고 카르미데스 같은 정치 지망생들을 만나 어떤 사람이 어떻게 도시를 다스리는 것이 좋은가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을 것이고72, 그가 재판정에서 멜레토스에게 정색하고 단언했듯이 그렇게 만났던 젊은이들 모두가 타락하지 않고 가족들이 바라고 친지가 바라고 도시가 바라는 대로 훌륭한 젊은이들이 되도록 같이 놀면서 어울렸을 것이고(그가 재판정에서 증언했듯이 결코 가르치는 것은 아니었을 것이고)73, 그날 재판정에서 툭 털고 고백하지는 않았지만, 알키비아데스의 허영과 무절제나, 아리스팁포스의 사치와 쾌락이나, 크리티아스와 카르미데스의 독단과 무자비함에 절망하여, 그런 사람을 젊은이일 때 알아보고 골라 내기 위한 노력도 하였을 것입니다. 그 뿐만 아니라 그는 크리톤으로 하여금 돈을 들여 파이돈을 구하게 한 다음, 제자로 삼은 것이 아니라, 철학을 공부하게 하고, 크세노폰에게 배우라고 따르게 하고, 찾아온 플라톤을 백조라며 반기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러는 동안 그에 대한 소문이 아테나이에서나 전체 헬라스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아프리카나 아나톨리아의 도시들에도 퍼지자, 사람들이 그를 찾기 시작했고 젊은이들도 그에게 배우겠다며 몰려들기 시작했을 것이고74, 소크라테스는 그렇게 모인 사람들이나 젊은이들이 훌륭한 사람이 가지는 덕목이나 교양을 배워서 안다고 해서 모두 그렇게 훌륭한 사람들이 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에 훌륭한 사람을 만들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염려를 떨칠 수 없었을 것이고, 그 연유가 태어난 본성 때문인지 가르침 때문인지 알고 싶었을 것이고, 결국 이 의문에 대한 그의 답은 찾기 위해 더 많은 사람들이나 젊은이들을 만나 가르쳐(어울려) 보려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노력의 끝에 그는 제가 생각했던 스스로 훌륭하게 만드는 것의 원천이, 다시 말해 스스로 훌륭하게 되고자 하는 한 사람의 의지가 교육이나 지시나 요구에 의해 생기는 것이 아닐 뿐 아니라, 그런 의지가 생길 성장기의 환경이 따로 있어서거나 부모나 선조 가운데서 찾아볼 수 있는 기질이나 유전적 특성이 따로 있어서 주어지는 것도 아니고, 오직 부작위적인 '신적 작용theia moira'75에 의해 주어지는 '신의 선물'76로써 한 사람의 영혼 속에 깃드는 것이라 확신하였을 것입니다

 

6.30. 그리고 소크라테스는 알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영혼에 깃드는 그 부작위적인 신적 작용은 때가 되면 자연적으로 드러나는가, 그것이 발현할 수 있는 어떤 조건을 갖추었을 때에만 드러나는가?' 그리고 소크라테스는, '자기가 캐물었던 질문에 대답하지 못해, 그가 지혜롭지 못하다고 판정했던 사람들 중에 정말 훌륭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던 것인가' 자문하고, 곰곰히 그들을 돌이켜 보기도 하였을 것입니다. '그 사람들 가운데 신적 작용이 그들 영혼에 깃든 사람은 아무도 없었던 것인가, 아니면 아직 때가 되지 않아 영혼에 깃든 신적 작용이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었던가, 아니면 그것이 발현될 여건이 아직 성숙하지 않았던 것인가?' '아는 것이, 다시 말해 지혜가 덕이고, 덕이 바로 지혜이므로, 훌륭하디훌륭한 사람은 반드시 신적인 지혜를 갖추고, 신적인 덕을 갖추고 있을 것인데, 만일 그것이 때가 되어야 드러나고, 여건이 갖추어져야 발현한다면, 그 때와 그 여건은 신적인 것인가 인간적인 것인가? 그것이 만일 신적인 것이라면, 신적 작용이 아직 나타나지 않았을 뿐인 사람에게, 아니 그보다 신이 한 사람의 영혼에 신적 작용을 불어 넣어 주지 않아 그럴 뿐인 그런 사람들에게, 신적 지혜가 없다고, 다시 말해 신적인 덕을 갖추지 못했다고, 자기가 모른 것조차 모른다고, 다시 말해 자기가 덕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다고, 그래서 훌륭하디훌륭하지 못하다고 타박해도 좋은 것인가, 소크라테스는 며칠이고 꼼짝도 하지 않은 채 곰곰히 생각해 보았을 것입니다.

 

6.31. 그리고 스스로 물었을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신의 영역이라면 인간이 할 일은 무엇인가77? 신을 닮는 수밖에 없는 것인가? 필멸의 인간이 불멸의 신을 닮는 길은 무엇인가? 썩어서 없어지고, 타서 없어지는 필멸의 육신으로 어찌 신의 지혜를, 바꾸어 말해 신의 불멸을 닮을 것인가? 인간의 존재를 어찌 없어지고 사라지는 육신으로 증명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인간에게는 불멸의 요소가 아주 없는가? 다시 말해 필멸의 인간이 불멸의 신과 닮은 것은 전혀 없는가? 인간에게서 불멸의 요소는 이것이다라고 내놓을 것은 무엇인가? 신적인 작용은 왜 인간의 육신이 아니라 영혼에게 깃드는 것인가? 인간이 정녕 신을 본떠서 만들어진 것이라면, 그것은 필멸하는 인간의 육신은 아닐 것이고, 그렇다면 바로 인간의 영혼이 아니겠는가? 정녕 그런 것인가? 그러므로 인간이 자신의 영혼을 돌보는 것은 바로 신을 돌보는 것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한 인간이 열심히 돌보고 살찌운 그의 영혼은 불멸인가? 그것이 불멸이라면 그 자체로 불멸인가 아니면 신적 작용에 의해 불멸인가? 또 그것이 불멸이라면 어떻게 영속한다는 것인가? 영혼의 영속이 한 인간에게서 다음 태어나는 다른 한 인간으로의 이전을 말하는 것이라면, 한 영속하는 영혼이 다시 어떤 인간에게 발현할 때, 그 영혼의 상태는 그 전의 상태에서 시작하는가 아니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가? 그렇게 수없이 강조해 왔던 영혼을 살찌우는 일은 영속하는 영혼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한 인간의 육신에 깃들었지만, 돌보지도 않아 버려지고, 살도 찌워지지 못해 마침내 마르고 비루해진 영혼의 경우는 또 어떻게 되는가?

 

 

6.32. 아테나이 시민 여러분, 소크라테스가 다른 도시들처럼 며칠 동안 재판하는 것이라면 모두를 설득할 수 있을 것이라며 하루에 끝나는 재판의 아쉬움을 토로했지만78, 그 하루의 시간을 멜레토스를 위시한 고발자들이나, 재판관들이나, 재판을 관람하는 아테나이 시민 여러분께 단 한 번도 자기의 입장을 납득시키기 위한 말을 하는 것을 듣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그는 그가 유죄 판결을 받는다면, 아뉘토스나 멜레토스가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비방과 시기 때문인데, 바로 그 비방과 시기가 많은 다른 훌륭한 사람들에게 유죄 판결을 내렸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므로 자기에게만 그럴까 봐 걱정할 일도 아니라고79 말한 다음, 아주 장황하게 트로이아에서 죽음을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할 바를 다한 반신반인의 영웅들 이야기를 서두로, 자신의 이야기, 즉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군대의 지휘관이 시키는 대로 정해 준 위치를 지킨 사실까지 들먹이며, 죽음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조차 모르면서, 죽음이 두려워 올바르지 못한 짓을 해야 한다면, 다시 말해 지혜를 사랑하여, 스스로와 남들에게 캐묻고 살도록 신이 지시한 것을 하지 말아야 한다면, 그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뿐더러 회피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말하고, 설사 방면해 준다 해도, 재물이나 명성이나 명예는 추구하면서도, 슬기나 진리나 최대한으로 훌륭한 자신의 영혼을 추구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지금까지 자기가 해 온 대로 그들이 훌륭한지 아닌지 캐물으며 살아갈 것이니까, 죽이든지 풀어 주든지 마음대로 하라며, 설득은커녕 최후통첩 식으로 말했습니다80. 이 말로 재판정에서 소동이 일어날 정도였는데도 불구하고, 소크라테스는 들어 좋은 말이니 소동 일으키지 말고 잠자코 들으라며, 지금 스스로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여러 재판관들 앞에서 밝히고 있는 사람을 처형한다면, 그것은 자기를 해치기보다 그 여러 재판관들 그들 스스로를 해치는 것임을 알라면서, 그 까닭은 아뉘토스도 멜레토스도 전혀 자기를 해치지 못하기 때문이고, 또 그것은 가능하지도 않은 것이 한결 나은 사람이 한결 못한 사람에 의해 해를 입는다는 것은 가당치 않기 때문이라고 비방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소크라테스는 한술 더 떠, 자기가 변론을 하는 것도 자기를 위해서가 아니라, 재판관들이 자신에게 유죄 판결을 내림으로써 여러 사람들을 위한 신의 선물에 대해 그들이 뭔가 잘못을 저지르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이니, 자기를 처형하고 나면 자기와 같은 또 다른 한 사람을 쉽게 찾을 수 없기 때문이라고 불손한 언사를 쏟았지요. 그리고 이어서 자기가 신의 선물임을 증명하기 시작했는데, 다름 아닌 다이모니온을 또 다시 들고 나오면서, 영리한 노인 소크라테스는 그제서야 정치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자기에게 나타나는 다이모니온은 무엇을 권유하지는 않지만, 사소한 것이라도 하지 말아야 할 것은 신호를 보냈는데, 그 가운데 다이모니온이 자기가 정치를 못하게 말린 것은 아주 잘한 일이었다며, 자기가 정치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밝힌 것이었습니다. 그렇지 않고 정치하는 공인이었다면 법에 어긋나거나, 올바르지 않은 것을 보아 넘기지 못하는 자신의 태도 때문에 벌써 죽었을 것이라며, 그 증거로 아르기누사이 해전의 뒷처리를 두고 장군들을 일괄 기소한 위법에 항거한 일과, 30인 참주정이 살라미스 사람 레온을 잡아 오라고 했을 때 불복하고 집으로 가 버린 일, 이 두 가지 정치적인 사건을 들었는데, 그가 사인私人으로 올바른 일을 거들고, 마땅히 올바른 것을 중하게 여겼기 때문에 살아 있는 것 아니겠냐며81, 은근 슬쩍 비정치적이고 사인인 자기를 지금 정치적인 이유로 죽이려 하느냐고 아테나이 시민 여러분께 묻고 있었던 것입니다.

 

('7. 철학자의 영혼'에서 계속)

 

 

 

  1. 재판정에서 소크라테스가 직접 스스로를 변론했던 내용은 플라톤의 '소크라테스의 변론apologia sokratous'과, 크세노폰이 쓴 '회상memorabilia', '변론apologia'으로 전해지고 있다. 플라톤은 직접 재판정에서 재판 과정을 지켜보았으나, 크세노폰은 그 재판을 지켜본 헤르모게네스라는 소크라테스의 오랜 제자(친구)로부터 전해 들었을 뿐이었는데, 크세노폰은 전언을 확인할 수도 없는 처지여서 전해 들었던 대로 썼겠지만, 플라톤은 재판 기록도 남아 있었고, 무엇보다 그 재판을 지켜본 많은 사람들이 아직 살아 있어, 그의 다른 대화편들처럼 그의 편의에 의해 각색하거나 창작할 수는 없었을 것이므로, 특별히 다른 전거나 기록에 상충되는 일이 없는 한, 소크라테스가 재판정에서 스스로를 변론한 내용을 가장 사실에 가깝도록 전하고 있다고 판단하여, 일차적으로 플라톤의 '소크라테스의 변론'을 바탕으로 고발자들의 고발 내용과 소크라테스의 변론 내용을 이해해 나갈 것이다. 그러나 책의 제목이 말하듯이,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변론을 전할 뿐이지, 전체 재판 과정은 전해 주지 않아, 결국 전체 재판 과정에 대해서는 그의 변론 내용을 바탕으로 유추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고, 게다가 플라톤이 전하는 소크라테스의 변론 내용이 고발자들의 고발 내용만큼이나 포괄적이고, 구체적이지 못해, 소크라테스의 죄목에 대한 실체적인 고발 내용이나 증언들을 찾아낼 수 없다는 점이 아쉽지만, 얼마 되지 않는 소크라테스에 대한 자료들을, 대다수를 차지하는 플라톤의 대화편들에 나오는 소크라테스를 제외한 다른 자료들을 엮어, 소크라테스의 변론에서 그의 영혼의 모습이 어떻게 담겼는지 찾아볼 수밖에 없다. [본문으로]
  2. 소크라테스의 재판 과정을 직접 가서 보고 들은 플라톤은, 소크라테스가 자신이 고발되었다는 사실을 통고 받고 나서, 고발 내용과 그 고발이 어떤 법을 어겼다고 하는 건지 알아도 보고, 그에 따라 재판 준비를 해 볼 요량으로 스토아 바실레우스를 찾아갔다는 사실과, 거기서 에우튀프론을 만나, 그에게 그곳을 찾은 까닭을 설명하는 장면을 소개하는데, 이때 소크라테스는 고발자들이 '젊은이들이 어떤 식으로 타락하게 되며, 누가 그렇게 하는지 알고 있다'고 말한다고 에우튀프론에게 대답하면서도(플라톤,'에우튀프론'2c), 정작 에우튀프론이 소크라라테스가 무얼 했기에 젊은이들을 타락시켰다고 고발자들이 주장하는지 묻자(같은책,3a), 의뭉스런 동문서답으로, '자기가 생소한 신들을 만들어 내면서, 고래의 신들을 믿지 않는다'고 고발자들이 주장한다고 대답하고(같은 책,3b), 젊은이들을 타락시킨다는 것이 어떤 행동을 가리키는지에 대해서 잘 몰라, 그것에 대해 물었던 에우튀프론 역시 놀랍게도 소크라테스의 이 동문서답을 듣고는, 조금 전에 그가 했던 질문에는 전혀 개의치 않은 채, 과연 신에 대한 전문가답게, 먼저 소크라테스의 다이모니온을 언급하며, 주저리 주저리 오히려 고발의 편의성까지 언급하며 해설해 주면서, 소크라테스가 젊은이들을 타락시켰다는 구체적인 사례에 대한 언급을 서로가 회피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플라톤은 틀림없이 재판정에서 있었을 고발자들의 구체적인 타락 사례 증언도 모두 무시하고, 기껏 구체적인 변명으로 딱 두 가지만 들고 있는데, 소크라테스로서는 책임질 일도 아니라는 한가로운 젊은이들의 흉내내기와('소크라테스의 변론'23c-e), '다이모니온daimonion신령神靈적인 것'에 대한 설명뿐(같은 책,31c-d), 소크라테스가 고발자들로부터 어떤 구체적인 범법 행위를 지적 받았었는지 일체 밝히지 않고 있다. 이에 반해, 재판 당시 티브론의 군대에 있어, 그 재판 과정에 대해서는 재판을 지켜보았던 헤르모게네스로부터 이야기를 전해 들었을 뿐인 크세노폰은 그 전언을 바탕으로, 몇 가지 구체적인 고발자들의 증언 내용을 밝히고 있는데('회상'제1권2장), 알키비아데스와 크리티아스가 어떻게 소크라테스를 이용하고 그로부터 떠나갔는가를 비분강개하여 소상히 전한 다음, 이어서 젊은이들을 타락시켰다는 구체적인 고발 내용을 전하기를, 첫째가 소크라테스가 아버지를 바보로 알도록 만들었다는 것이고, 둘째가 아버지뿐만 아니라, 근친들도 경시하도록 가르쳤다는 것인데, 병자에게는 의사가 소송에는 변론사가 필요할 뿐 그들은 병이나 소송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고, 셋째로 친구들 역시 호의를 가졌다 해도 도울 만한 실력이 없으면 가치가 없다고 가르쳤다는 것인데,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또 그것을 설명할 수 있는 자만이 존경할 가치가 있다고 말해, 친구들을 이용 가치로 보도록 만들었다는 것이고, 넷째가 유명한 시인들의 시구에서 곤란한 부분만 골라(크세노폰은 고발자들이 헤시오도스의 한 시구, '일을 함은 부끄러움이 아니고, 다만 게으름만이 치욕이니라.'를 예로 들어, 소크라테스가 일이라면 부정한 것이든 파렴치한 것이든 하는 것이 더 낫다고 가르치는 데 썼다고 전한다.), 그것을 해설하면서 악을 행하고 폭력을 쓰도록 가르쳤다는 것이며, 다섯째로 귀향하려는 아르고스 사람들을 만류하러 다니는 오뒷세우스가(호메로스,'일리아스'제2권179-210) 아가멤논의 태도를 따지고 들어 비난하는 테르시테스를(같은 책,제2권211-243) 질타하며 황금 홀로 매질하는(같은 책,244-269) 장면을 자주 인용하며, 지체 높은 자가 천민이나 가난한 사람들을 매질하는 것을 잘한 일로 칭찬하였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내용의 증언들 가운데 어떤 것이 소크라테스에게 유죄를 인정할 만한 것이었는지를 설명하는 사람은 지금까지 아무도 없었는데, 다만 크세노폰만이 그의 책 '변명'25에서, 사형을 선고 받은 소크라테스가 그 당시 아테나이에서 사형을 선고할 수 있는 범죄들을 나열하며, 어덯게 자기에게 사형을 선고할 수 있었는지 놀랍다고 항의하는 모습을 전할 뿐이다. [본문으로]
  3. 형량 결정 전 소크라테스에게 유죄 판결을 내린 280명 가운데 몇 명이나 극형까지를 염두에 두었는지 알 수 없으나(거의 모두가 최악의 경우 추방시킨다고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소크라테스 자신도 깜짝 놀란(플라톤,'소크라테스의 변론'36a) 220명의 무죄 판결자 가운데 최소 80명이(극형을 판결한 360표를 분석해 보면, 유죄 판결자 전원이 극형을 판결했다고 가정했을 때 무죄 판결자 중 극형 판결자가 80명이라는 것이고, 유죄 판결자 전원이 극형을 판결하지 않았다고 보면, 무죄 판결자 중 극형 판결자 수는 더 늘어난다. 다시 말해 소크라테스가 제시한 벌금형 판결자 140명이 모두 무죄 판결자들은 아니었을 것이므로, 무죄 판결자들 가운데 다수가 극형을 판결하였다는 것이다.) 벌금형도 아니고 극형을 판결하게 만든 변수는, 소크라테스의 영빈관에서의 만찬형 제안과, 자신이 추방형을 고발자의 극형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할 수 없는 이유와, 그리고 이어진 은화 1므나의 벌금형 제안 밖에 없었다. 만일 고발자들의 배심원들에 대한 회유나 압박이 있었다면 유뮤죄 판결에도 있었을 것이고, 특별히 형량 판결에서 두드러졌다고 보기에는 무죄 판결자들의 동요가 너무 심해 변수가 될 수 없다고 보면, 극형 판결의 사유가 젊은이들을 타락시킨 죄나, 신에 대한 불경죄보다, 소크라테스가 재판 과정에서 범한 재판 모독죄, 아니 배심원들에 대한 모욕죄, 더 나아가서 그런 재판 제도에 대한 모독죄, 따라서 궁극적으로 아테나이의 체제 전반에 대한 모독죄에 대한 징벌이었다 아니 할 수 없어 보인다. 따라서 결과적으로 소크라테스는, 그 재판에서, 비록 아뉘토스가 대사면을 피해 편법으로 불경죄를 갖다 걸기는 했지만, 아뉘토스의 그 편법 고발 뒤에 숨겨진 진짜 고발 사유가(아뉘토스는 소크라테스가 아테나이의 민주정 체제에 대한 잠재적인 적으로 보았을 것이다.) 정당한 것이었음을 배심원들 대다수에게 소크라테스 스스로 증명해 보인 꼴이 되고 말았다. [본문으로]
  4. 소크라테스는 자기가 직접 변론서를 작성해 보려고 두 번이나 애써 보았으나, 다이모니온의 만류로 포기했다고 그를 걱정하여 변론서 작성의 중요함을 일깨워 주는 그의 친구이자 제자인 헤르모게네스에게 술회했을 만큼, 재판을 맞는 처음(크세노폰,'회상'제4권8장)의 자세는 변론에 적극적으로 임해 재판관들을 설득하겠다는 것이었는데, 뤼시아스의 변론서도 사양한 것을 보면, 재판에 임박해서 재판을 바라보는 시각과 대응책이 바뀌었음을 알 수 있다. 아마 이때 소크라테스는 설득으로 재판관들의 처분에 매달리는 대신, 그들을 논리적으로 압도하리라 결심한 것 같다. [본문으로]
  5. 플라톤은 이 책임 문제에 대해 두 가지 이유를 들어, 과도하게 분명한 어조로 소크라테스의 책임을 부인하는데(소크라테스의 변론'33a-b), 하나는 소크라테스를 비방하는 사람들이 그의 제자라고 지적하는 사람들까지를 포함해서, 그 누구에게도 그 무엇을 그가 가르친 적이 결코 없다는 것이고, 다시 말해 소크라테스는 가르침이란 행동을 한 적이 없으며, 다른 하나는 그가 어떤 누구도 가르치지는 않았지만, 그 누구이든 자기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는 사람들과는 언제 어디서나 어울리며 대화는 가리지 않고 나누었는데, 그렇다고 해서 그리고 그것 때문에, 그들 가운데 누가 선량한 사람이 되건 아니 되건 간에 그것에 대해 그가 책임진다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다. 비록 크세노폰 역시 플라톤이 왜 그렇게 소크라테스의 가르침 행위와 그 책임에 대해 강하게 부정하는지 그 이유를 잘 이해했는지, 소크라테스가 가르침을 베풀어 주겠다는 등의 말을 누구에게나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다고 했지만(그의 책,'회상'제1권2장), 바로 이어지는 문장에서 다만 제자로서 그의 훈도에 따른 자는 한평생을 두고 서로에게 좋은 친구가 될 것으로 믿었다며, 제자라는 말이나 훈도라는 말을 쓰고 있는 것에서 보듯, 다른 한편으로, 크세노폰이나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는 소크라테스가 여러 사람들을 가르쳤다고 증언하고 있기 때문에, 이 단락에서는 플라톤이 전하는 소크라테스의 주장을 감안하여 기술하였고, 따로 괄호 속에 크세노폰이나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가 증언하는 소크라테스의 행적을 기술하였다. 그리고 차후에는 크세노폰이나 디오게네스가 소크라테스의 가르침을 받았다거나 받으려 했다고 지목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제자나 가르침이라 기술하고, 나머지는 플라톤의 소크라테스를 인용하여 일반적인 인칭과 어울림 또는 대화라 기술하는데, 필요에 따라 괄호 속에 따로 부기하였다. [본문으로]
  6. 실제로 플라톤도 소크라테스가 재판정에서('소크라테스의 변론'), 모두가 오해이며(20c-d,28a), 젊은이들을 타락시킬 이유가 하나도 없고(25e-26a,33c-34b), 남들 같이 도시가 믿는 신들을 믿는다고(26c,28e) 변론했다고 전하고 있다. [본문으로]
  7. 소크라테스는 어떤 형태로든 알키비아데스, 크리티아스, 카르미데스, 그리고 크세노폰의 이름을 들먹이는 것 자체가 자기에게 불리할 것이라는 것을 잘 이해하고 있었고, 실제 플라톤도 '소크라테스의 변론'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그 사람들의 이름으로 쓴 대화편들과, 다른 어떤 대화편들에서도 그들의 반민주정적이고, 심지어 반 아테나이적이었던 행적들을 거론하지 않았다. 오히려 소크라테스는 재판의 마무리 수순으로, 재판 과정을 지켜보고 있던 소크라테스 주위 사람들의 이름들을 거명하며, 그들 중 그 누구도 타락한 사람이 없다는 것을 밝혀 줄 증인으로 내세우고 있었다.('소크라테스의 변론'33d-34b) [본문으로]
  8. 플라톤,'프로타고라스'319a-320b, '메논'86c-96d. 가르침의 문제는 바로 누가(어떤 사람이) 누구에게(어떤 사람에게) 무엇을 어떻게 가르치느냐의 문제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누구에게-어떤 사람에게 가르치느냐의 문제로 귀결하고 만다. [본문으로]
  9. 소크라테스로부터 교습을 받고 나온 아들 페이딥피데스가 너무나 쉽게 채권자가 걸어 올 소송에 대해 대책을 내놓는 것을 보고('"구름"'1170-1200), 대단히 만족하고 즐거워서 그 아들을 위한 잔치를 준비하는 스트렙시아데스와(1201-1210), 그 잔치에서 보여 주는 그 아들의 노래와 연주 악기에 대한 점잖지 못한 취향에 분노하여(1333-1373), 그 아들과 다투다 얻어 맞고(1374-1390), 그 아들의 아버지 폭행에 대해 여러 사람들에게 하소연하는데(1321-1325), '구름'과(1345-1350,1391-1396) 코로스 대장은(1351-1352,1397-1398) 스트렙시아데스의 즐거움과 분노, 페이딥피데스의 패륜과 그에 대한 합리화 논증을 냉정하게 바라보고 있다. [본문으로]
  10. 아테나이로 돌아와 아테나이에서 살기로 작정한 플라톤은 아주 적극적으로 소크라테스의 정치성-결코 민주정에 호의적일 수가 없는 정치성에 대한 언급을 회피하였고, 크세노폰은 아테나이에 돌아가 살기를 포기한 사람답게 구태여 소크라테스의 정치성을 감출 필요를 느끼지 못한 듯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런 플라톤의 태도에 반발하는 듯하다. [본문으로]
  11.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크라테스는 재판정에서 도시가 그에게 요구한 두 가지 역활을 거부한 데 대해 정당성의 이름으로 옹호하는 반면(플라톤,'소크라테스의 변론'32a-d), 크리티아스의 대화 금지에 대해서는 거론조차 하지 않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명령에 대해 말꼬리를 잡고 비웃었을 뿐, 정당성의 이름으로 대화 중단을 거부하지는 않았으면서(크세노폰,'회상'제1권2장), 재판정에서는 크리티아스의 명령을 받아들인 것과 같은 태도로, 젊은이들을 타락시킨다면, 앞으로 젊은이들과 어울리며 대화하지 않겠다고 말하지는 않는데, 만일 소크라테스가 투덜거리기는 하면서도 재판정에서 앞으로 젊은이들을 만나지 않겠다고 선언했더라면, 결코 사형은 선고되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본문으로]
  12.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그리스 철학자 열전'제2권5(19),(28). 그러나 티몬과 아메이푸시아스, 그리고 그들의 작품에 대해서는 달리 알려진 것이 없다. 고대 그리스 희극의 단편들은 에우폴리스며 크라티노스도 소크라테스를 희극적 대치인물로써 그들의 희극에서 우스개로 삼았다고 전하고 있다. [본문으로]
  13. 같은 책,제2권5(46). [본문으로]
  14. 플라톤,'소크라테스의 변명'19e. [본문으로]
  15. 니이체가 말하는 플라톤의 소크라테스를 두고 붙인 '소크라테스의 문제'와는 전혀 다른 입장에서 보이는 그의 모순을 이 글에서 드러내고자 '소크라테스의 문제'라 붙인 것이다. [본문으로]
  16. 소크라테스의 문제의 시발점을 그가 '가르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플라톤이나 크세노폰 모두 한결같이 소크라테스가 가르침을 베풀겠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고 대단히 유념하여 강조하고 있다)'으로 보는 이유는 그가 한평생 주장했던 '덕이 바로 앎'이라는 것, 다시 말해 아는 것이 바로 덕이라고 하면서도, 그 덕(앎)을 키우는 방법 가운데 지름길로 보이는 가르침에 대해서는 그의 역활을 적극적이고도 강력하게 부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꾸어 말하면, 언제부터인가 소크라테스는 그 덕(앎)이 가르쳐 주어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지만, 그 덕(앎)이 어떻게 생겨서 키워지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깨닫지 못하여 헤매고 있었는데(결국 소크라테스는 영혼의 불멸과 선험으로 귀착한다.), 그것을 가르치고 키워 준다며 돈을 받는 소피스테스들의 태도는 영락없는 사기꾼의 그것과 같아 보여, 소피스테스테스들을 경멸하면서, 자기가 소피스테스로 보일까 봐 노심초사했던 것이 스스로의 문제점으로 드러나는 시발점이 된 것이다. [본문으로]
  17. 아리스토파네스가 클레온을 공격한 것은 그의 두 희극 '"바뷜로니아 사람들"(1200행 정도로 간주)'과 '"기사들"(1405행), 그리고 다른 6개의 작품에서 21번(모두 100행 정도)으로 모두 2650행 정도이고, 에우리피데스의 경우 '"테스모포리아 축제의 여자들"(1231행)'과 '"개구리들"(1533행)', 그리고 다른 4개의 작품에서 7번(모두 150행 정도)으로 모두 2910행 정도인데 반해, 소크라테스의 경우는 '"구름"(미완성 개작 1511행을 원작 행수로 간주)과 다른 2개의 작품에 2번(모두 10행 정도)으로 모두 1520행 정도일 뿐이다. [본문으로]
  18. 플라톤,'소크라테스의 변론'26d. [본문으로]
  19. 크세노폰,'회상'제2권6장. 이 안티폰antiphon은 소크라테스에게 적대적이었던 점술가로 알려졌으나(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그리스 철학 열전'제2권5(46);아리스토텔레스가 단절된 그의 책 '창작론' 제3권에서 쓴 것을 라에르티오스가 인용), 스톤I.F.Stone은 그의 책 'The Trial of Socrates'(편상범,손병석역 '소크라테스의 비밀')에서 안티폰이 최초로 인간의 평등을 주장했다고 하면서, 아티폰의 책 '진리에 대하여'의 단편들을 인용하였고(Kathleen Freeman,'Ancilla to the Pre-Socratic Philosophers'단편14의148), 또 안티폰이 '피통치자의 동의'라는 개념을 도입하여, 자연법과 인간이 만든 법을 구별하였으며(같은 책,147.), 또 안티폰은 그의 다른 책 '조화에 대하여'를 통해 복지구가에 대한 최초의 이론가였다고 소개하고 있는데, 이런 정도의 안티폰이라면 정말 소크라테스가 철학자라기보다 천방지축으로 보였을 것이 틀림없어, 아리스토텔레스가 쓴 대로 안티폰은 소크라테스에 대해 적대적이었을 것이다. [본문으로]
  20. 이때 소크라테스는 자기는 자기가 모른다는 것만 알기 때문에 남을 가르칠 수 없다고 대답하지 않았고, (가르칠 수도 있지만,) 가르치지 않을 자유를 위해 돈을 받지 않는다고 대답한다. [본문으로]
  21. 소크라테스가 자기는 빈민들의 자제들과도 자주 어울렸다고 하겠지만(플라톤,'소크라테스의 변론'33a-b.), 빈민들과 그 자제들이 일을 하지 않고 한가로이 소크라테스와 올리브 농장이나, 포도밭이나, 혹은 저자 거리에서나, 공방에서나, 혹은 노꾼들이 모여 쉬는 항구의 선술집에서 노닥거리고 지냈을 리는 만무하게 여겨진다. 크세노폰도 소크라테스가 언제나 집 밖에서 지냈는데, 새벽부터 산책을 하거나 (체육)도장에 나가고, 시장이 붐비는 오전에는 시장에 있으며, 그 후로는종일 언제나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 있었기 때문에, 누구나 그의 이야기를 듣고, 담론할 수 있었다고 전하는데('회상'제1권1장.), 담론을 나누고, 그의 이야기를 한가로이 들을 수 있었던 사람들이라면 그들은 먹고 살 것 있는 한량들이었을 것이다. [본문으로]
  22. 프로타고라스는, 한 소년을 데리고 자기를 만나러 온 소크라테스를 보고, 소피스테스라는 이유로 사람들로부터 받는 거부감 때문에 정체를 숨기기보다, 자기는 오히려 스스로 소피스테스임을 밝히면서, 매우 조심스럽게 돈을 받고 사람들을 더 나아지도록 조언하는 일을 업으로 삼아 오래 그 일을 해 왔다고 밝히면서(플라톤,'프로타고라스'317b-c), 소피스테스들이 옛날부터 많은 사람들에게 거부감을 주어 왔던 이유가 바로 소피스테스들이 한 도시의 젊은이들 가운데서 가장 빼어난 젊은이들을 상대로 친지들이나 연장자나 동무들과의 어울림을 그만두고, 그 소피스테스와의 어울림을 통해 더 나은 사람들로 되라고 설득할 경우, 적지 않은 시기와 적대감을 받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는데(같은 책,316c-d), 이것은 늙은 프로타고라스가 젊은 소크라테스의 태도를 보고서는 이내 소크라테스가 드러내는 소피스테스에 대한 적대감을 느꼈기 때문에, 성의껏 한 젊은이의 자기에 대한 적대감을 완화시켜 보려 한 노력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젊은 소크라테스의 적대감은 누그러지지 않았고, 마치 늙은 프로타고라스 때문에 자기와 어울려야 하는 그 소년이 자기 대신 늙은 소피스테스와 어울리고 싶어 하는 것에 대한 분풀이라도 하듯이, 프로타고라스의 소피스테스로서의 역활에 대해 (짧게 짧게 대답하라며) 꼬치꼬치 부정적 심문을 계속하는데, 이때의 젊은 소크라테스는 자기가 모른다는 사실만 아는 젊은이가 아니라, 오히려 훌륭함이나 훌륭함을 만드는 것에 대해 놀랄 만큼의 해박한 견문과 자기 주장을 드러내어 보인다. 이 젊은 소크라테스는, 늙은 프로타고라스가 그 소년을 하루가 다르게 나아지도록 하고(같은 책,318a), 집안 일과 도시 일을 가장 능력 있게 처리할 수 있게 조언한다는 말을 듣자(같은 책,318e-319a), 그 말이 사람을 훌륭하게 만든다는 말 아니냐며 간단히 정리한 다음(319a), 여러 사람들의 경우를 들어 훌륭함이 가르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고(320b), 프로타고라스는 프로메테우스를 예로 들며 훌륭함에 관련해서는 모든 사람을 조언자로 받아들이는 것이 합당하며(누가 젊은이들을 훌륭하게 만드는가라는 소크라테스의 힐문에 대한 멜레토스의 다대답이 모든 사람들이다.('소크라테스의 변론'25a)), 훌륭함이 선천적으로나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닌 만큼, 마음 씀으로 가르치고, 마음 씀으로 수련한다면 갖출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하고(323c-d), 그래서 어테나이 사람들이 정치적인 문제에 갖바치가 조언하는 것도 합당하게 받아들이는 것도, 그들이 훌륭함은 갖추어질 수 있고 또 가르쳐질 수 있는 것이라 믿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하며(324c), 사람들은 저마다 마음을 써서 훌륭함을 가르치려 하는데, 그가 누구이든지 사람을 훌륭하게 되도록 하는 데에 뛰어나다면 그것은 좋은 일이라고 답한다(328a-b). 이 이후에도 소크라테스는 훌륭함의 요소들로 보이는 올바름, 경건함, 절제, 용기, 지혜 등등을 시모니데스의 시를 놓고 집요하게 따지고 들어(329c-351b), 그 훌륭함의 요소들이 결국 앎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데에 프로타고라스의 동의를 얻어 내고(360e-361c), 훌륭함이 무엇인지 그것이 가르쳐질 수 있는 것인지 계속 알아보기로 한다(361c-362a). 이렇게 한 젊은 소년을 증인으로 삼아, 늙은 소피스테스 프로타고라스를 상대로 젊은 소크라테스가 자기 주장을 관철시키도록 연출한 플라톤은(아리스토파네스의 소크라테스는 스트렙시아데스의 아들 페이딥피데스를 정론과 사론이 벌이는 논쟁을 지켜보게 하고, 그 논쟁을 통해 누구에게 배울지 고르라며 자기는 빠진다.('"구름"'886,1147-1149)), 그 소년이 늙은 소피스테스 프로타고라스와 젊은 철학자 소크라테스 사이의 논쟁과 담론을 보고, 프로타고라스와의 어울림을 포기하고 소크라테스와의 어울림을 택했는지, 아니면 보통의 아테나이 사람들이 훌륭함은 가르침으로 갖추어질 수 있다고 믿었던 대로 프로타고라스와의 어울림을 택했는지, 그래서 어느 한쪽을 택한 그 소년이 훌륭한 젊은이가 되었는지 말았는지에(아리스토파네스는 페이딥피데스가 사론을 택해 마침내 아버지 스트렙시아데스가 빚을 갚지 않아도 되도록 해주고, 잔치 끝에 아버지를 폭행하는 정당성을 증명할 정도로 뛰어난 사론가가 되는 것을 보여 준다.('"구름"'1201-1205,1427-1429)대한 이야기는 전하지 않는다. [본문으로]
  23. 이정호는 그의 번역서 플라톤의 '크리티아스'에서(정암학당 플라톤 전집 '크리티아스'pp36,6-11), 소크라테스가 본격적으로 철학에 뛰어든 것은 그의 나이 마흔이 되던 BC429 포테이다이아 전투 출정 직전, '델피의 신탁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무지의 지를 깨우치면서부터'라고 말하면서, 전장에서 돌아온 후 그는 집안을 돌보는 일은 아예 제쳐두고, 거리로 나가, 자기와 대화를 나누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가리지 않고 대화에 끌어들여, 상대가 무지의 지를 깨닫기까지 끈질기게 문답을 이끌어 나갔다'고 쓰고 있다. [본문으로]
  24. 플라톤이 그의 전체 대화편에서 소개하는 소크라테스의 대화 상대자 가운데, 소크라테스의 캐묻기에 걸려 불쾌해진 나머지 그에 대해 미움이나 그 밖에 어떠한 형태로의 적대적 태도를 보인 경우라면 '메논'의 아뉘토스 정도이다. '메논'에서 아뉘토스의 적대 감정이라는 것도 서로의 생각이 다른 것에서 연유했다기보다 소크라테스가 실패의 사례로 든 구체적 인물들의 경우에 대해, 아뉘토스의 아들을 들먹인 경우도 포함하여, 아뉘토스가 그도 같은 사람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에 대한 인신공격으로 받아들인 데 기인했던 때문으로 보인다. [본문으로]
  25. 플라톤,'소크라테스의 변론'21b-e 참조. 소크라테스가 신탁 확인 작업 차 만난 사람들로 정치가, 시인, 장인匠人들만 꼽은 까닭은, 고발인들, 즉 변론가를 대표한 뤼콘(그는 대중 정치 연설가였던 것으로 보인다.), 시인들을 대표한 멜레토스, 그리고 장인들을 대표한 아뉘토스(장인들과 정치가들를 대표했다고 하지만, 민정복고 이전의 아뉘토스는 테라메네스의 보좌관 정도여서 정치가로보다 피혁업자로 더 알려져 있었고, 그는 소크라테스가 말하는 현자는커녕 사람들에게 현명하다고 알려지지도 않았기 때문에, 21c에서 거론하는 이름을 대지 않는 정치가는 아뉘토스가 될 수 없음에도 독자들이 잽싸게 아뉘토스라고 오해하기 쉽도록 배치해 놓았다.), 이 셋을 염두에 두고 그들을 깎아 내림으로써, 다시 말해 재판관들에게(독자들에게) 고발인들의 무지함을 밝힘으로써, 은연 중에 고발의 불실함과 확인 과정에서 생긴 사적 감정으로 고발했을 것이란 점을 부각시키려 하는 것으로 보인다. [본문으로]
  26. 소크라테스는 재판정에서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가진 지혜에 대한 확인 작업에 나섰던 사실과, 그 확인 작업의 끝에 그들이 지혜롭지 못하는 사실을 알았다는 결과만 밝히고 있을 뿐, 다시 말해 그들이 소크라테스보다 더 무지하다는 것과, 확인 과정에서 그 사람들로부터 미움을 받게 되었다는 것과, 그렇지만 신의 뜻을 이해하고 신을 위한 봉사의 길이기에 계속해서 확인에 나서게 되었다는 것만 밝히고 있을 뿐(같은 책,23a-c.), 확인 과정에서 소크라테스는 무엇을 묻고 그들은 어떻게 대답했는지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다. 이름을 댈 필요가 없는 한 정치인을 여러 모로 지켜보다가, 대화도 해 보고,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자기가 더 낫다고 판단하고 다음 정치인을 만나러 갔다고 할 뿐, 지켜보니 어땠다거나 이런 주제로 대화를 했는데 이렇게 대답하더라 따위의 경과 보고는 아예 없는데도 불구하고, 확인 결과 그 정치인들이 별 볼 없는 사람들이란 걸 알았다는 식이고, 시인에 대해서는 조금 나은 편이어서, 소크라테스가 시인들의 고심의 흔적이 보이는 시구를 골라, 그 의미를 물었는데, 시이들이 소크라테스가 이해하고 있는 것조차도 설명을 하지 못해, 시인들이 지혜가 아니라(플라톤은 어떤 지혜가 시를 짓게 하는지도 말하지 않는다.), 겨우 소질과 영감으로 시를 짓는 주제에 시 이외의 것에도 가장 현명하다고 알고 있어, 이 점에서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더 뛰어나다고 판단하는 식이고, 장인들을 만나서는 그들이 기술에 있어서 뛰어나다는 이유로 다른 것에서도 뛰어나다고 생각하고 있어, 물론 이번에도 플라톤은 소크라테스가 장인들에게 다른 것에 대해 묻고, 그들의 대답을 듣는 장면은 보여 주지 않으면서, 소크라테스가 그들보다 뛰어나다고 판단하도록 이끄는 식이다. 소크라테스가 그런 확인 과정을 전부 보여 주었다면, 아마 오늘날의 독자들조차 소크라테스가 미움을 받았던 것은 당연했다고 여겼을지도 모르는데, 하물며 재판관들 앞에서 재연해 보일 수는 없었을 것이다. [본문으로]
  27. 섹스투스 엠피리쿠스,'학자들의 반박'IX.193('fpp'dk21b11). [본문으로]
  28. 클레멘스(알렉산드리아의),'학설집'V.109('fpp'dk21b14). [본문으로]
  29. 같은 책,VII.22.1('fpp'dk21b16. [본문으로]
  30. 같은 책,V.109.3('fpp'dk21b15). [본문으로]
  31. 같은 책,V.109.1('fpp'dk21b23). [본문으로]
  32. 헤로디아노스,'두 박자 음에 관하여'296.9('fpp'dk21b36). [본문으로]
  33. 섹스투스 엠피리쿠스,'학자들에 대한 반박'VII49.110('fpp'dk21b34). [본문으로]
  34. 플루타르코스,'일곱 현인의 향연'IX.7.746b('fpp'dk21b35). [본문으로]
  35. 스토바이오스,'선집'1.8.2(fpp'dk21b18). [본문으로]
  36. 플라톤,'소크라테스의 변론'23a. [본문으로]
  37. 같은 책,23b. [본문으로]
  38. 플라톤,'소크라테스의 변론'26b-27e. 소크라테스는 재판정에서 그가 신을 믿는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기 위해(플라톤의 소크라테스는 크세노폰 식으로('회상'제1권1장) 도시가 믿는 신을 믿는다는 것은 증명해 보이지 않고, 그의 다이모니온이 일종의 신적 행위이므로, 그 신적 행위를 믿는 것이 바로 신을 믿는 것이라는 방법으로 그가 신을 믿는다고 증명해 보이고 있다.(27c-d.)), 멜레토스에게 몇 가지 질문을 퍼붓고, 그 질문들에 대한 멜레토스의 대답을 토대로, 멜레토스가, '소크라테스는 신들을 아니 믿되, 신들을 믿음으로써 죄를 지었다.(27a)'고 말장난이나 하면서, 농치고 있다고 비난했지만, 그의 이 말에 '도시가 믿는'이라는 말과 '그만의'이라는 말을 각각 '신들' 앞에 넣어, '소크라테스는 '도시가 믿는' 신들을 아니 믿되, '그만의' 신들을 믿음으로써 죄를 지었다'로 바꾸어 놓으면, 사실 멜레토스는 결코 농을 친 것이 아니고, 소크라테스의 신에 대한 인식 태도를 대단히 정확하게 밝혀내고 있었다는 사실을 잘 알 수 있게 된다. [본문으로]
  39. 소크라테스에서 출발한 절대적인 지혜의 신, 즉 하나의 신에 대한 믿음은 플라톤과 신플라톤주의자들을 거쳐, 헬라스의 초기 기독교 교리학자들, 아랍의 이슬람 교리학자들에게로 이어져 갔다. [본문으로]
  40. 플라톤,'고르기아스'515b-521a. 소크라테스는 아테나이의 전성기를 이룩한 대표적인 정치가들, 밀키아데스, 테미스토클레스, 퀴논, 그리고 페리클레스를 가리켜, 시민들을 그 전보다 더 거칠게 만들어 놓았다는 이유로 그들을 훌륭한 정치가로 여기지 않는다. 이런 소크라테스의 평가와는 달리, 밀티아데스와 테미스토클레스는 페르시아와 전쟁이라는 거친 시절에, 키몬과 페리클레스는 전후의 헬라스에 새로운 질서를 세워야 하는 거친 시절에, 거칠어진 시민들을 이끌고 아테나이를 헬라스 최고의 자유롭고 풍요한 도시로 만들었다. [본문으로]
  41. 플라톤,'소크라테스의 변명'23c-d. [본문으로]
  42. 소크라테스는 그날의 재판정에서도 자만에 넘쳐, '케묻지 않는 삶은 사람에게는 살 가치가 없는 것이다'고 단언하고 있었다.(플라톤,'소크라테스의 변명'38a.) [본문으로]
  43. 플라톤은 그의 대화편들에서 소크라테스를 정론자로 내세워, 젊은이들 앞에서 당대의 고수들, 특히 소피스테스나 정치가들, 이를테면, 프로타고라스, 고르기아스,(칼리클레스), 아뉘토스, 등과 논쟁을 벌이게 함으로써 그들 모두가 그 방면의 대가가 아니라 사론자라는 사실이, 최대한으로 양보하고 보아도 그들이 불실하고 미성숙한 논리를 가졌으면서도 대중에게는 대가로 알려져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나게 만들거나, 그렇지 않은 경우는 모두 소크라테스와 우호적인 사람들과 논쟁보다는 담론의 장에서, 정론자 소크라테스가 화제를 이끌며 우호적인 상대자들을 계몽 내지는 감화시켜 가는 장면을 연출해 보인다. 그런데 소크라테스가 정론자로 나서 사론자들과 벌이는 논쟁의 내용이나 수준은, 결코 플라톤이 입회시킨 젊은이들, 이를테면 힙포크라테스나, 폴로스나, 메논이, 그들의 지적 수준에서 그 논변의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다만 그들 수준에서 예외 없이 소크라테스가 그 대가들을 깔아뭉갰다는 논쟁의 결과 하나는 확실하게 느낄 수 있을 뿐인데, 플라톤이 왜 그들을 한사코 그의 대화편에서 증인으로 입회시킨 것인지 의문스럽다. [본문으로]
  44.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그리스 철학자 열전'제2권5(36). 그 밖에도 소크라테스가 주위 인물들의 못마땅한 행실에 대해 타박을 주거나, 고치도록 했다는 일화는 너무나 많아, 여기서 일일이 꼽을 필요가 없을 정도이다. [본문으로]
  45. 플라톤,'프로타고라스'327e. '소크라테스! 모두가 저마다 할 수 있는 만큼은 훌륭함의 선생들인데도, 그대에게는 아무도 그리 보이지 않으니 말이오.' [본문으로]
  46. 플라톤,'소크라테스의 변명'24c-25b. [본문으로]
  47. 같은 책,20a-c. [본문으로]
  48. 크세노폰,'회상'제4권4장6, 플라톤,'히피아스'482a,509a. '소크라테스는 언제나 같은 것들을 말할 뿐만 아니라, 언제나 같은 것들에 관해서 말하지요' [본문으로]
  49. 소크라테스는, 크리티아스와 칼리클레스에게 불려가 젊은들과의 접촉을 금지당했을 때, 그 금지 내용에 대해서는 따지고 들었지만, 금지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호통치지는 않았다. [본문으로]
  50. 같은 책,25c-26a. [본문으로]
  51. 소크라테스는 자기가 언제나 같은 말을 하며, 같은 것에 대해 말한다고 했는데(플라톤,'파이돈'b), 훌륭한 젊은이를 누가 만드는가에 대해서는 아직 겉으로 말을 바꾸어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이미 생각은 바꾸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본문으로]
  52. 플라톤,'메논'89e-94e. 경고를 남기고 아뉘토스가 자리를 뜨고 난 다음, 소크라테스는 메논을 상대로 또 한번 아뉘토스를 깔아뭉개는데, 이때의 소크라테스야말로 플라톤이 그린 소크라테스 가운데 가장 소크라테스답다. 메논이 있는 데서 아뉘토스의 경고를 받아 좀 머석해진 소크라테스는 그 젊은이를 상대로 아뉘토스가 화가 났지만 개의치 않는다고 말하면서, 화가 난 이유를 그가 아테나이의 유명한 정치가들을 비방했다고 아뉘토스가 생각했기 때문이며, 게다가 아뉘토스 역시 그런 유명한 정치가에 속하기 때문에 그가 자기에 대한 비방도 에둘러 한 것이라고 받아들였기 때문이라고 친절하게 설명까지 해 주고, 아뉘토스는 도대체 나쁘게 말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모르기 때문에 지금은 화를 내지만, 다시 말해 그는 나쁘게 말한 것이 아니라, 그 유명한 정치가들도 그들은 잘나갔지만 한결같이 자식농사는 망쳤지 않았느냐고 사실을 사실 그대로 말한 것일 뿐이니까, 나중 사실을 사실 그대로 말하는 것은 나쁘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나면, 화를 내지 않을 것이라며, 최고로 점잖고 의젓한 태도로 아뉘토스가 없는 자리에서 한 젊은이 메논을 상대로 아뉘토스를 한껏 깔아뭉개고 있었는데(95a), 얼마 있지 않아 퀴로스 군대에 용병으로 나가 용병 대장이 될 메논이 최고로 훌륭한 태도로 최대한으로 아뉘토스를 깔아뭉개는 소크라테스의 태도를 감지하지 못할 정도로 어리숙하지는 않아서, 메논이 그 광경을 어떻게 누구에게 전할지는 소크라테스로서도 불문가지였다. [본문으로]
  53. 크세노폰은 재판이 끝난 후 소크라테스가 지나가는 아뉘토스의 모습을 보았을 때 했던 말을 전하고 있는데('변명'29,'나를 죽이는 위대하고 고상한 목적을 완수했다는 생각으로 자만에 가득찬 사람이 저기 지나가는군. 도시가 그에게 최고의 명예로운 관직을 주는 걸 보고, 내가 그에게 그의 자식을 가죽일이나 하도록 교육시키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었거든.'), 그 말은 소크라테스가 아뉘토스의 경고에 대한 소문에 굉장히 신경을 쓰고 있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반응은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가 전하는 평소 소크라테스의 적대자들에게 보였던 대범한 태도들과('그리스 철학자 열전'제2권5(21),(36);강렬한 논의 끝에 주먹세례나 머리끄댕이를 잡히거나 발길질을 당해도 참고 지냈는데, 누가 무어라 하면 '당나귀가 나를 발길로 찼다고 당나귀를 고발할 거냐'고 응수하는 태도와(21), 자기를 누가 중상하지 않더냐고 물으면 그런 기억이 없다고 답하고, 희극작가에게는 내가 먼저 나서 화제로 삼게 해야 하는데, 결점을 화제로 삼으면 덕분에 고칠 수 있고, 아니면 상관하지 않으면 된다는 태도이다(36). 그러나 라에르티오스는 소크라테스가 자기를 우롱하는 사람들을 경멸할 수 있는- 발길질한 사람을 당나귀로 비유하고 있음을 보라-사람이라고도 전하고 있다(27)), 플라톤이 '메논'에서 아뉘토스의 경고에 대해 메논에게 지금은 화를 내지만 내가 사실대로 말했다는 것을 알고 나면 괜찮을 것이라며, 메논 앞에서 제법 의젓한 태도를 보이는 것을 의심하게 만들고, 크세노폰이 전하는 자기에 대한 공격에는 거칠어져서 짜증스런 반응을 보이는 태도와('회상'제1권2장, 젊은이들과의 대화를 금지하는 크리티아스의 명령을 전달하는 칼리클레스에게 구차스럽게 꼬치꼬치 물으며 대어드는 태도), 자기가 만일 책을 낸다면, 누가 그 책을 읽고 비판할 때 반박할 수가 없기 때문에 책을 쓰지 않을 정도로 자신에 대한 공격을 견디지 못하는 태도가 본디 소크라테스의 모습이 아닌가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후자인 소크라테스를 생각하면, 그는 아뉘토스의 집에서 아뉘토스가 화를 내고 나간 뒤 메논을 상대로 한 차례 시도했던 변명을 틀림없이 재판정에서도 배심원들을 상대로 또 다시 시도할 기회를 찾고 있었을 것이다. [본문으로]
  54. 소크라테스가 고발을 당한 후 맨 처음 드러낸 반응은 고발 내용을 알아보러 바실레오스 스토아(재판을 관장하는 아르콘의 사무실)에 갔다가, 거기서 만난 에우튀프론와의 대화 중에 털어 놓은 멜레토스에 대한 감정인데(플로톤,'에우튀프론'2b-3e,12e,15e-16a), 멜레토스를 거칠게 낮추어 보고 비아냥거릴 뿐만 아니라, 갖다 걸 말꼬리만 있으면 잡아서 멜레토스에게 걸고 있는데, 재판 중 멜레토스를 깔아뭉개어 배심원들에게 그의 고발 역시 깔아뭉개어졌다는 걸 보여 주려 했으나, 멜레토스의 시치미 떼기에 걸려, 오히려 자기만 혼자 젊은이들을 타락시키는 사람이냐고 묻게 되는 처지에 빠졌을 때, 그리고 자기가 그 어느 신도 있는 것으로 믿지 않는다는 말이냐는 힐문을 멜레토스에게 던졌을 때 그가 어떤 식으로도 전혀 믿지 않는다고 대답하자, 소크라테스는 다시 멜레토스에 대한 인신공격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플라톤,'소크라테스의 변명'25c-d,26e). [본문으로]
  55. 이 당시 멜레토스가 서른을 갓 넘긴 젊은이였다고 해도, 누구나 자기의 성장기에 느꼈었을 각자 나름의 교육에 대한 문제 의식을 그도 가지고 있었을 것이고, 그런 문제 의식은 자연스레 자신의 아이들에 대한 교육에 대해서도 얼마든지 미리 나는 아이를 이렇게 키우겠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것인데도, 소크라테스는 멜레토스의 경우를 아무 근거 없이 그저 무시해 버리고 있다. [본문으로]
  56. 크세노폰,'회상'제1권2장. 칼리아스는 소크라테스가 몇 살까지를 젊은이로 보는지 한계를 정해 달라고 하자, 공직을 맡을 수 있는 나이를 말한다며, 아직 지혜가 여물지 못해 공직(심의관)을 맡아 볼 자격이 없는 '서른 살 이하의 사람'을 젊은이로 한정하고 있다. [본문으로]
  57. 플라톤,'에우튀프론'2c-3a. 소크라테스는 멜레토스가 자기 또래의 젊은이들의 타락을 보고 자기를 고발한 모양이라고 비아냥거리고 있는데, 멜레토스는 서른을 갓 넘겨 공무를 맡아 볼 수 있는 나이였던 것으로 보인다. [본문으로]
  58.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그리스 철학자 열전'제3권1(5),(6). [본문으로]
  59. 플라톤의 외삼촌이자 같이 참주정을 이끌었던 크리티아스와는 사촌 간인 카르미데스는, 30인 참주정 당시 페이라이에우스 행정책임자 중의 한 명이었는데, 무니키아의 아르테미스 신전과 벤데이온으로 가는 언덕길을 두고 벌어진 시가전에서 크리티아스, 히포마코스, 등 70여명의 참주정 군사들과 함께 전사하였다. [본문으로]
  60. BC399 새봄에(그가 아테나이를 떠난 때가 BC401 새봄인 3월쯤이었는데, 이때도 3월이었을 것이다.) 트라케의 세우테스의 중재로 크세노폰이 페르가몬으로 가서 티브론의 막료로 스파르테 군대에 들어가자, 아테나이 민회가 크세노폰을 궐석 재판으로 추방을 결의했을 때는 대사면의 영향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는지, 그가 아테나이에 남긴 재산이나 가족들에 대한 제제는 없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BC394 늦여름에 재차 영구추방령을 받았을 때는 재산의 몰수와 가족에 대한 제제도 함께 가해졌던 것으로 보인다. 이 무렵부터 그와 그의 가족은 아게실라오스의 배려로 엘리스의 올림퓌아 근처에 농장을 얻어 군대 생활을 청산하고 집필 생활에 몰두했던 것으로 보인다. 크세노폰은 BC369 아테나이와 스파르테 간의 화해로 아테나이로부터 사면을 받았지만 아테나이로 돌아가지 않고 펠레폰네소스에 머물렀는데, 다만 그의 아들들은 아테나이의 기병으로 복무케 하였다. BC362 보이오티아의 에파미논다스가 전사한 만티네이아 전투에서 한 아들이 전사하는 일도 있었다.(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그리스 철학자 열전'제2권6(54).) 크세노폰이 언제 죽었는지는 전해지지 않는데, '헬레니카'의 기사가 BC359까지 이므로 그 이후였을 것이다. [본문으로]
  61. 플라톤,'향연'217b-219e. [본문으로]
  62.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그리스 철학자 열전'제2권6(48), [본문으로]
  63.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그리스 철학자 열전'제2권5(29), 크세노폰,'회상'제2권2장. [본문으로]
  64. 같은 책,제2권1장. [본문으로]
  65. 같은 책,제3권12장. [본문으로]
  66.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그리스 철학자 열전'제2권5(32),(33). [본문으로]
  67. 친구와의 교유에 대한 자세한 분석은 플라톤의 대화편 '뤼시스'를 참조하라. [본문으로]
  68.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그리스 철학자 열전'제2권5(30), 크세노폰,'회상'제2권4,5장. [본문으로]
  69. 크세노폰,'회상'제2권5장. [본문으로]
  70. 같은 책,제2권6장. [본문으로]
  71. 플라톤,'소크라테스의 변론'20c-23c. [본문으로]
  72. 플라톤,'알키비아데스'125d-127c, '크리티아스'109a-112e,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그리스 철학자 열전'제2권5(29), 크세노폰,'회상'제1권2장,제3권6장,7장. [본문으로]
  73. 플라톤,'소크라테스의 변론'33d-34b. [본문으로]
  74. 안티스테네스, 아이스키네스, 크리톤, 그라우콘, 시몬(구두장이), 크세노폰, 플라톤, 등은 아테나이 사람들이었고, 아이스팁포스는 퀴레레에서, 에우클레이데스는 이스트모스 쪽 메가라에서, 심미아스와 케베스는 테바이에서, 파이돈은 엘리스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본문으로]
  75. 'theia moira'는 '신의 섭리' 또는 '신의 돌봄'을 나타내는 말로 해석할 수 있는데, 신의 섭리나 돌봄이라고 했을 때의 섭리라는 한자말이나 돌봄이라는 우리말에는 그런 행위에 그것을 주관하는 신의 의지가 개입되어 있는 인과를 가리키는 뜻이들어 있어, 어떤 인과의 발현의 부작위성, 다시 말해 원리나 법칙에 따른 발현이 아님을 나타내는 말로는 부적합하다고 보여, '신적 작용', 특히 '부작위적'인 '신적 작용'이라 불렀다. [본문으로]
  76.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처신을 다소 우습기까지 한 표현이라며, 말에 붙은 등에 같은 존재로 비유하면서, 신이 아테나이라는 도시에 붙은 등에 같은 존재로 자신을 선물한 것이라며, 온종일 어디에고 개개인에게 달라붙어, 그 사람들을 일깨우고 설득하고 나무라는 행위를 신의 선물이라고 말하고 있는데(플라톤,'소크라테스의 변론'30d-31b), 여기서는 사람을 훌륭하게 만드는 원천으로써의 부작위적인 신의 작용을 나타내는 말로 쓰고 있다. [본문으로]
  77. 크세노파네스는 지혜란 신들이 온전히 밝혀주지 않았지만, 인간들이 시간을 두고 탐구하여 더 나은 것을 찾는 것이라 말했고(스토바이오스,'선집'I.8.2/dk21b18), 헤라클레이토스는 생각하고 자신을 아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자 가장 큰 덕이니, 진실을 말하는 것과 본성에 귀기울여 행동하는 것이 지혜라고 했으며(스토바이오스,'선집'V.6/dk22b116,I.178/dk22b112), 아울러 지혜가 하나이며, 모든 것을 통해 모든 것을 조종하는 것이어서, 경솔하게 추측하지 말고(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그리스 철학자 열전'제9권1,73), 실로 많은 것을 탐구해서 숙지해야 하는 것이라고 했는데(클레멘스,'학설집'V.114/dk22b35), 소크라테스는 인간적인 지혜를 절대적이고 하나인 신적인 지혜에서(플라톤,'소크라테스의 변론'23a,'파이드로스278d,'향연'204a) 떼어 내어, 그 인간적인 지혜가 신적인 지혜를 사랑하여 더욱 지혜로워지기 위해 노력하는, 지혜에 관련해서 자신이 진실로 전혀 보잘 것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바로 인간적 지혜를 가지는 시발점이 된다고 말하고 있다('소크라테스의 변론'23b). [본문으로]
  78. 플라톤,'소크라테스의 변론'19a,37a. 비록 소크라테스가 재판이 하루에 다 이루어지는 것에 대한 아쉬움을 나타내긴 했지만, 플라톤이 전하는 소크라테스가 행한 변론의 내용을 보면, 우선 그가 '소크라테스의 변론'에서 한 말의 분량이 반나절이면 다할 정도에 지나지 않아, 플라톤은 그 책에서 소크라테스가 행한 자기 변론의 요지만을 전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한데, 이 중요한 요지의 내용이 아테나이 시민에 대한 진지한 설득의 노력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시간이 충분했으면 설득할 수 있었으리라고 말하는 소크라테스의 말은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본문으로]
  79. 같은 책,28a. [본문으로]
  80. 같은 책,28b-30b. [본문으로]
  81. 같은 책,30b-32e.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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