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산방散方,散防,散枋
추녀의 뒷뿌리를 놓기 위한 사전작업이 "저울대받침"이라는 "외기"를 놓으면서 끝나지만, 추녀를 다듬어 거는 일은 그리 만만치 않습니다. 우선 나무가 길고(정방형의 대각선의 길이는 한 변의 한 배 반 정도가 됩니다. 정확하게는 1.414, 즉 2의 제곱근입니다), 처마의 서까래보다 훨씬 더 휘어져 위로 올라가야 되므로, 깎기 전의 원 나무 자체가 길고, 크고, 추녀의 높이만큼 휘어져 있어야 합니다.
이 나무를 "추녀春舌,춘혀,춘설", 또는 "추연推椽", 또는 '충연衝椽" 등으로 부릅니다.
집채의 귀에서 대각선 방향으로 튀어 나온 이 "귀서까래"를 따로 '추녀'라 부르고 '春舌"로 적었습니다. '춘혀'라는 말이 이 한자를 읽은 것인지, 본디 귀서까래를 춘혀(춘서까래?)로도 불렀기 때문에 春舌로 적었는지 아직 알지 못합니다. "봄혀", "봄서", "봄서까래" 따위로 읽히거나 불리지 않는 것을 보면, "春"이 훈차자는 아니라서, "추녀" 또는 "춘혀"로 불러도 될 것 같습니다.
(비슷한 경우가 "댱혀"에서도 있었는데, "댱혀"를 "장여"라고 표준말을 삼았지만 아직도 "장혀"라고 부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장혀"는 '긴長 서까래舌혀'라는 말로, 처마로 나오는 "처마서까래"를 가리키는데 주로 "들연野椽'이라 부릅니다만, 이 이상한 우리말과 한자의조합은 야野연이란 말 이외에도, 장長연, 첨木+詹연, 첨하下연, 하下연, 평平연, 등으로 불립니다. 들보를 이야기하면서 들보를 한자로 어떻게적겠냐고 수수께끼를 낸 적이 있었는데 여기서 그 답을 보네요. "推椽"은 추는 음차, 연은 뜻을 빌려 추녀를 적었거나, 衝椽과 같이 밖으로 튀어나와 놓인 추녀의 모습을 옮긴 우리가 만든 한자말이겠지요.)
이런 나무는 집채가 크면 클수록 네 귀에 똑같이 걸 수 있게 같이 휜 나무를 찾기 힘듭니다. 그래서 때로는 추녀의 끝을 들어 올리기 위해, 곧은 나무를 두 겹으로 귀기둥 위의 도리(귀기둥 위에 앉은 도리가 특히 "왕지도리"입니다)에 얹고, 밖으로 나온 두 끝을 단계별로 다듬어 추녀 끝이 치켜 올라가는 느낌이 나도록 했으며, 그래도 모자라면 세 겹으로 깔아 세 끝을 단계별로 치켜 올라가게 다듬었습니다. 이때 세 겹의 추녀를 위에서 그 끝이 긴 순서로 추녀春舌, 그 아래 중간 길이 것을 "가추녀加春舌"(이것을 "덧추녀"라고 불렀던 흔적은 없네요) 맨 아래 가장 짧게 나온 나무를 "난추녀卵春舌"(이것은 "알추녀"라고 우리말로 불렀네요)라고 적었습니다. 세 겹이 아닌 두 겹으로 충분할 경우 가추녀 대신 알추녀로 대치한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만 집채가 큰 전각은 대개 세 겹입니다.
이렇게 세 겹으로 놓고도 겹처마가 되어 처마가 더 깊어진 집에서는 추녀의 끝에도 부연을 얹어 겹처마를 만들 장치가 필요했습니다. 이번에는 추녀의 끝부분에만 부연처럼 추녀와 같은 크기이나 짧은 나무를 추녀 위에 얹었습니다. 이 나무는 윗면은 추녀와의 연속성을 갖추게 깎고 아랫 면은 "V"자 모양으로 비스듬히 다듬어 추녀의 윗면에 끼워 고정시켰는데, 이 나무를 우리말로 "사래"라고 부릅니다.
"사래"는 한자로 "沙乃"로 적은 것 이외에는, 모두 "사라"로 읽지 않고 "사래"로 읽는 까닭을 알 수 없는 한자들, 舍羅, 斜羅, 蛇羅, 등인데, 가장 "사래"에 가깝게 보이는 "沙乃"의 경우라도, "沙"는 주로 이두토로 쓰일 때만 "사"로 읽고, 나머지는 우리말 "새"의 차자라 '새"이며, "乃"는 이두토吏讀吐로는 "나"이고, 아니면 "내"의 차자라면 모를까 "래"의 차자일 수 없어, "사나", "새내"라고 읽는 것은 그런대로 무방하겠지만, "사래"는 좀 억지스러운데도, 이 모두를 "사래"라는 이유가 목수들이 옛날부터 그렇게 불러 왔기 때문인지 알 수 없네요. "山彌"라고 적힌 걸 "살미"라고 읽는 것이 신통하게 여겨졌던 만큼, 이 한자들을 보고 "사래"라고 읽는 것이 신통해 보입니다.
목수들이 어렵사리 공학적 해법을 찾아 이제 집채의 네 귀에 추녀를 걸었습니다. 지금부터 미학적 솜씨를 발휘할 차례입니다. (박공집의 경우, 집채의 양측면을 보완하고, 측면에 의장적인 장치들을 만드느라, 처마에는 그리 많은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집채의 윤곽을 드러내는 線들, 이를테면 지붕마루라든지, 내림마루라든지, 처마의 끝선이라든지, 등을 완만한 곡선으로 처리하여, 그런 부위나 집 전체가 부드러운 느낌이나 상승감 등을 받도록 하는데, 이렇게 굽은 것을 목수들은 "곡曲"이라 표현합니다. 즉, 박공집의 경우에 목수들은 "곡"을 많이 두지도 않고 전체적 으로 단아하지만 엄숙하고 강건한 느낌을 주는데 주력합니다. 우진각집도, 추녀를 담백하게 처리하기 때문에, 집채의 각 부분의 "곡"을 그렇게 뚜렸하게 주거나, 여러 방향으로 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팔작집의 경우는 "곡"이 집채의 각 부분에서, 좀 더 뚜렸하게 각 방향으로 나타납니다. 정면과 후면은 중도리에서 내려온 서까래의 끝 부분의 '위아래 곡"(앙곡,昻曲)이 추녀의 끝에서 제일 높고, 가운데 처마가 낮게 되도록, 아울러 서까래의 끝부분이 "안팎으로 곡"(안허리곡)을 주어, 추녀의 끝이 제일 많이 밖으로 나오고, 가운데 처마들이 안으로 들어가도록, 물론 양쪽 측면의 저울대받침에서 내려온 서까래의 끝 또한 같은 비율로 위아래와 안팎으로 쳐지게, 처마 부분에는 "구로平高臺"를, 추녀 부분에는 자연스런 곡선을 만들도록 알맞게 굽어진 "조로"를 걸어두고, 서까래를 고정시켜 나가면 팔작지붕틀이 완성됩니다.
이런 곡에 맞추어 자연스런 곡선이 나오도록 서까래를 깎고 다듬어 거는 일이 목수들이 가진 최고급 기술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 기술 중에서도 최고봉이 "선자扇子서까래" 걸기입니다. 서까래를 부채살처럼 펼쳐 까는 방법을 가리킵니다. 정면과 후면에는 합각을 이루는 가장자리에 놓인 서까래가 처마까지 내려오면 중도리에 걸린 서까래의 마지막이 되고, 양쪽 측면에서는 외기의 양쪽 끝에서 반듯이 처마로 뻗은 서까래가 마지막이 되어, 그 대각선으로 추녀가 놓이도록 됩니다. 추녀의 뒷뿌리가 이들 서까래의 교차점에 놓여 있는데, 이 점을 중심으로 서까래를 집채의 네 귀퉁이에 돌려 까는 기술입니다.
돌아가는 추녀들도 한 점에서 돌기엔 나무가 크고, 대각선에 놓인 추녀 역시 큰 나무라, 중심에서는 도는 서까래들이 모두 붙어 있고, 조로 쪽으로 나가야 조금씩 간격이 벌어져, 처마에 깔린 서까래와 방향과 높이만 조금씩 달라질 뿐, 겉으로 드러난 모습은 같아집니다. 지붕의 크기나 서까래의 간격에 따라 조금씩 추녀 쪽으로 길어지고,추녀의 폭이 추녀에 가까이 붙은 서까래와 겹치기 때문에, 대부분 추녀 옆으로는 단면이 반 쪽이거나 2/3짜리 서까래인 "초장初帳,一帳", 또는 "붙임혀", "붙임서까래"라는 나무가 붙습니다. 추녀의 부연은 사래와 초장부연 사이가 더 벌어져 새로 하나의 부연을 더할 필요가 생기기도 하는데, 이것을 "새발부연"이라 합니다.
"扇子선자shanzi"는 중국말, 우리말로는 "부채"인데, "부채살서까래" 대신에 선자연扇子椽, 선연扇椽이라 부르거나 "선자사까래"라고 부릅니다. 선자와 서까래라는 말을 적당히 섞어 만든 말 같은데, "선자"라는 말에 애착이 많은 모양입니다. "부채살서까래"라고 부르지 않는 것은 정말로 이상합니다. 부드럽고 튼튼하게 두 가지 곡에 맞추어 걸어야 하는 어려운 기술이라, 요즘 라틴말로 이름 짓듯이 한자말로 폼나게 지었을까요? 그런데 이 기술이 우리나라가 원천인지 모르겠으나, 중국에는 선자연이란 말도 없고, 이런 어려운 기술로 지은 건물이 별로 많지 않습니다.
서까래를 부채살처럼 까는 방식이 번잡하고 어렵고 나무도 많이 들기 때문에, 좀 더 쉽고 나무도 덜 드는 방법을 씁니다. 제일 손 쉬운 방법은 아예 중도리에서 직각으로 내려와 처마도리에 걸린 서까래들과 "나란하게" 추녀의 옆구리에 걸어서 처마도리에 같은 간격으로 앉히는 것인데 이것을 "평연平椽"이라 부릅니다. "나란히서까래"는 말은 맞는 말인데, 어쩐지 요즘 지은 이름 같아 좀 어색합니다.
이번에는 마족연馬足椽, 마제연馬蹄椽 또는 말(발)굽서까래라고 부르는 방식인데, 선자연의 중심축을 반대 편으로 옮겨 놓아 서까래를 추녀에 걸 때는 이미 서로 간의 간격이 벌어져 있어 별 어려움 없이 평연처럼 간단히 걸고, 처마도리에서는 선자연인 양 나와 있도록 해서, 추녀에서는 각도만 다를 뿐 평연과 같이 걸고, 처마도리에서는 마치 선자연인 것처럼 보이게 한 것입니다. "나란히서까래平椽"와 "말굽서까래馬足/蹄椽"에용기를 얻어, "선자서까래"를 "부채살서까래扇子椽"로 바꾸어 부르기로 혼자 정했습니다.
부채살서까래는, 끝이 들려 있고, 춤이 높은 추녀(세 겹의 추녀도 있슴)를 따라 가서 추녀의 윗면과 높이를 맞추어 놓여야 하기 때문에, 추녀에 가깝게 깔리는 초장부터 차례로 도리 위에 못 앉고, 도리로부터 멀리 떨어져서 도리에서 높게 들려 있게 됩니다. 그 빈 공간은 마치 고깔모자를 눕혀 놓은 것처럼 추녀 쪽으로 갈수록 높아집니다. 그 빈 공간을 채울 나무를 하나 놓고, 그 나무 위에 서로 놓이는 각도와 높이가 다른 부채살 서까래의 아래 쪽이 맞도록, 일일이 그랭이로 떠서 깎아 낸 다음, 도리 위에 놓고 고정시킵니다. 이 나무가 바로 "(갈모)산방散方,散防"입니다. 고깔(옛말은 "곳갈"입니다) 같이 생겼다고 "(곳)갈모(자)산방"이라고도 부릅니다.
갈모산방도 인방이나 창방이나 평방과 같이 이두자 "방枋'을 써서 '散枋"이라고 적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산방을 가만히 보면 도리 위에 놓여 부채살서까래로 내려오는 지붕 무게를 받아 아래로 전달한다는 점에서는 평방과도 같고, 그레질로 판 홈으로 부채살서까래들에게 생길 무게에 의한 변형이나 뒤틀림 등을 꼭 잡는 역활을 한다는 점에서는 창방과 같아 보입니다. 그렇지만 궁극적으로는 서까래와 도리 사이에 공간이 생겨 그 간극을 메우는 일종의 "도리 위에 놓인 도리", 즉 "뜬도리"일 뿐입니다. 이 생각이 자연스레 산방, 평방, 창방, 셋이 모두 도리와 같이 있거나, 그런 역활을 한다는데 주목하게 만듭니다.
하늘을 날듯이 길게 뽑은 추녀는 그 끝에 실리는 무게 때문에 왕왕이 그 끝이 쳐지거나 주저앉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끼치게 만듭니다. 그래서 추녀의 뒷뿌리에 온갖 형태의 누리개를 두고 싶지만, 외기는 천장으로 불거져 나온 얼개라, 그 미관에 신경 쓸 수 밖에 없습니다. 결국, 누리개 대신 뒷뿌리를 외기에 비녀장으로 꽂아 묶어 두기도 하는데, 이 비녀장의 역활을 하는 나무를 강다리(강달)라고 부릅니다. 때로는 띠쇠鐵帶로 뒷뿌리와 외기를 감싸서 묶어 두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쳐지면 마지막 방법으로 활주를 세워 괴어 둡니다.
목수들이 추녀를 더 길게 뽑기 위해 이런 복잡한 공학적 수고를 아끼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집을 보호하기 위함입니다. 나무라는 재료에 대해서는 집에서 사라진 우리말들의 마지막 편으로 따로 공부해 보겠습니다만, 가장 쉽게 쓸 수 있다는 장점과 또 가장 쉽게 상한다는 단점을 가진 재료이기 때문에, 집을 지을 때부터 이런 단점을 보완할 수단을 마련해 두어야 합니다. 불은 나무를 단숨에 상하게 하지만, 물은 나무를 천천히 그러나 생각보다는 빠르게 상하게 하기 때문에, 지붕이 집 안에 비가 새지 않도록 하는 역활 뿐만 아니라, 집채 아랫도리에도 빗물이 닿지 않게 막는 역활도 맡아야 되는 것입니다. 박공지붕과는 달리 우진각지붕이나 모지붕이나 팔작지붕은 모두 집채의 사방으로 처마를 낼 수 있어 집채의 아랫도리를 지키는데 유리합니다. 집채의 아랫도리를 주로 벽돌을 쌓아 막는 중국 집과는 달리, 뼈대 나무를 그대로 드러내는 우리나라나 일본의 경우에는 지붕으로 빗물을 막는 것이 매우 중요한 공학적 요구사항이 됩니다. 처마의 깊이를 정하는 문제에서 지붕의 물매와 채광 사이의 조화는 이미 박공지붕에서 모두 거론했기 때문에, 팔작지붕의 추녀가 길면서도 높이 뻗어져 나가는 것이 좋은 공학적 이유는 생략하겠습니다.
목수들은 집채의 지붕이 실제로 얼마나 큰지 그리고 여러가지 공학적 이유로 그 큰 지붕을 가질 수 밖에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지붕을 보는 시각을 조정하는 장치들로 착시를 일으켜, 지붕의 크기가 주는 압박감이나 가분수적 형태가 주는 불안정감 등을 완화하고, 더 나아가서는 때로 지붕이 날렵하게 보이도록 하고, 때로는 우아하게 보이도록 하며, 때로는 처마나 추녀가 화려하게 보이도록 강조하여 마치 지붕이 하늘을 나는 듯한, 지붕이 주위를 감싸드는 듯한, 또한 집 전체가 밝고 화사한 느낌을 창출하려고 합니다. 이러한 목수들의 미학적 완성이 바로 집채의 네 귀에 걸린 추녀와 그 추녀들을 잇는 처마가 가진 "곡曲"입니다. 이 '곡"으로 인해 집채의 네 귀퉁이가 우진각지붕처럼 귀서까래 끝에서 그저 단순한 직각으로 모인 것이 아니라, 하늘을 날듯이 길게 뽑아 높게 치켜든 추녀의 끝에서 날렵하고 우아하고 화려하게조차 보이는 여덟 "八"자로 모이게 되었습니다. 지붕이 하늘과 맞닿은 지붕마루 끝에서 이룬 합각을 가리켜 합각지붕이라 하고, 하늘 속으로 묻히려는 처마와 처마가 추녀에 끝에 와서 여덟 팔자로 모인 것을 보고 팔작지붕이라 합니다.
언제나 공학적 해법에만 만족하지 않고, 미학적 완성을 위해 수고를 아끼지 않는 목수들이 "부채살서까래"가 걸린 "여덟 팔자의 추녀"를 끝으로 이제 기와장이들에게 용의 눈에 점을 찍는 마무리를 맡깁니다.
"우리말 찾기-집에서 사라진 우리말들(초가)"에서 한번 이야기 나왔습니다만, 기와라는 말은 많은 사람들이 아무래도 우리말 같지 않다고 느끼는데, 그 이유가 기와를 뜻하는 한자 "瓦와"자 때문인 것 같습니다. 설사 기와가 우리말이라 해도, 그 어원이 아무래도 중국말 "瓦wa"일 것 같은 생각을 지울 수 없는데, 이 '지붕을 이는 널조각'을 가리키는 공통적인 우리말이 따로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새"입니다. 이 "새"란 말은 기와가 들어가는 말 모두에 대치해서 쓸 수 있는 말입니다. 돌기와나 나무기와를 모두 너새라 부르고 기와가 그렇듯이 암수의 디새와 암수의 막새라는 이름을 가진 것을 보아도 일 수 있습니다.
기와는 이엉이나 돌조각이나 나무조각과는 달리 흙으로 만들기 때문에 구어야 형태를 유지할 수 있을 만큼 단단해집니다. 굽지 않은 날기와로 지붕을 이기도 했습니다만, 모래가 어느 정도 섞여도 개이치 않고 논의 질퍽한 진흙을 퍼다가, 풀이나 굵은 돌이나 모래를 골라낸 다음, 차지게 반죽을 하고, 넓적한 흙판을 만들고, 둥근 통에 감아 쓰임새에 따라 여러가지 모양을 만들어 낸 뒤, 우선 햇볕에 말리고, 가마에 넣어 굽습니다. 다 구어지면 생솔로 억지로 검은 연기를 만들어 가마 안을 채우고, 연기가 기와에 스며들어 검은 색이 나기를 기다립니다. 이렇게 꺼멓게 색을 내며굽는 방법을 "꺼먹이"라고 부르는데, 옛날 토기들이 겉에 유약을 바른 것 같지는 않은데도 색이 검은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입니다. 때로 기와에도 유약을 올려 굽기도 하는데, 아무래도 그릇 굽는 것 정도는 아니겠지만, 아주 비싸게 먹히기 때문에 특별한 집에만 썼습니다. 주로 푸른 색을 내는 청기와靑瓦와 누른 색을 내는 황기와黃瓦를 만들어 썼는데, 검은 기와도 약간의 윤기를 내어 굽기도 했습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기와장의 크기에 대한 표준이 없어, 대충 보통 집에서 쓰는 크기의 기왓장을 상와常瓦(소小와로 불러도 좋지만 일반적으로 "보통기와"라 부릅니다), 궁궐의 정전에 쓰는 아주 큰 기왓장은 대大와, 그 중간 크기는 중中와라고 나누어 불렀습니다
사정이 이러니, 기와의 이름이 너무 많아 골치 아플 것 같지만, 기와장이가 기와 이는 순서를 따라가면 그다지 복잡하지 않습니다. 지붕을 이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빗물이 한쪽 방향으로 흐르는 "지붕면"과 이런 지붕면들이 서로 만나 솟아 오른 "마루"와, 이와 반대로 두 지붕면이 만나 골을 이룬 "지붕골"(처마와 처마가 만나 이룬 골, 즉 회첨會木+詹골이라고도 합니다.)입니다.
첫 번째인 지붕면에 기와를 이겠습니다.
지붕을 이는 순서는 비가 흘러내리는 지붕면의 아래 끝에서부터 지붕마루로 올라가는데, "알매흙"을 져 올리고, 그 흙을 산자나 적심이나 개판 위에 채우고補土 발라, 기와를 이기 전에 먼저 지붕 물매의 변화와 지붕의 욱은 정도를 결정합니다. 암기와에 와당瓦當이라 부르는 문양이 든 반달 모양의 혀를 달아, 빗물이 떨어지게 한 "내림새'(암막새,女防草)라는 "막새防草기와'로, 깎아 둔 여암 홈에 맞춰, 알매 위에 깐 "새우"를 눌러서, 기왓장과 알매 사이의 빈 자리도 채우고, 앉은 모양도 잡으면서, 맨 처음으로 놓고, 내림새 옆의 이음매 위, 둥근 원 모양에 문양을 넣은 와당이 달린 "막새"(드림새,수막새,夫莫斯,夫防草,莫沙,) 속에, 홍두깨 모양으로 뭉친 흙("홍두깨흙")을
채워 누르면서 빈자리도 채우고 막새도 붙인 다음에, 못을 박아 막새가 빠지지 않도록 고정시키고, 그 못대가리는 "방초막이"라는 연꽃 봉오리 모양의 도기를 물이 새지 않도록 끼웁니다. 사실 꼭 내림새나 막새를 써야 하는 것은 아니어서, 그냥 보통의 암기와나 숫기와로 시작해도 됩니다만, 이럴 경우 숫기와의 끝의 홍두깨흙이 보이므로 백토에 강회를 섞은 "아귀토瓦口土"를 둥글게 암기와의 끝까지 발라 마감하기도 합니다. 결국 막새의 와당을 떼어 내고 그 자리에 아귀토로 발랐다는 말인데, 여기서 재미나는 사실 하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서까래 끝이나, 집의 뼈대나무 끝이 밖으로 나와 비바람에 상할 우려가 있으면, 와당처럼 문양을 넣어 여러 모양으로 구어, 못으로 박아 가렸는데, 바로 "초가리"입니다. 이 초가리가 막새에서 나왔는지 아니면 막새로 가서 와당이란 이름을 얻었는지 간에, "瓦當"이라는 이상한 한자 이름보다는 "초가리'라는 우리 말이, 이 초가리가 하는 일에 더 잘 어울려 보입니다.
이제부터 지붕면은 크고 넓은 판에 복판이 오목하게 구부려 지붕의 고랑이 되도록 만든 "암기와"("암키와"가 표준말, '암디새', '평平기와', '반 또는 '판', '바닥기와', '앙와仰瓦', '빈牝와', '여女와')를 이는데, 두 암기와장張이 위아래로 물매를 지어 만나는 이음매는 겹쳐서 놓고, 옆으로 만나는 이음매는 그 위를 큰 대나무를 반으로 쪼갠 것과 같은 모양을 한 "숫기와"("수키와"가 표준말, '숫디새"는 "수티새"가 표준말, '동童와', '모牡와', '부夫와')로 덮는데, 이 숫기와의 윗쪽에 "언강"이라 부르는 턱를 두어, 나무의 반턱이음과 같은 방법으로 위아래 숫기와장을 잇도록 했는데, 이 "언강"이라는 턱이 달린 끝을 "미구"라고 부릅니다. 여암에 올려 놓은 암막새(또는 암기와)와 막새로 시작한 지붕면의 기와 이기는 이렇게 알매 위에 새우를 놓고 그 위를 암기와로 눌러 빈자리를 채우며 자리를 잡고, 그 이음매 위에다 홍두께흙을 놓고 숫기와를 붙여, 암기와의 움푹한 바닥이 만든 "기왓골"('기와고랑', 瓦溝)과, 숫기와가 엎어져 만든 "기왓등"으로 이루어져 완성됩니다.
두 번째로 지붕면과 지붕면이 만나 솟아 오른 지붕 위에 있는 마루들을 이겠습니다.
박공지붕이나 합각지붕 정후면의 양쪽 측면은 박공처마나 합각처마의 기왓골과 기와등과 직각으로 만나기 때문에, 정후면의 양쪽 끝 기와등 위에서 박공마루나 합각마루(당堂마루, 너새)의 "적새"(마루의 키를 높이기 위해 쌓는 암디새)를 놓지만, 박공처마거나 합각처마의 기왓골과 기왓등과는 직각으로 만나게 되므로 시작하는 방법이 지붕마루를 올리는 방법과 같습니다. 때로는 박공처마에 "감새"라는 혀가 나온 암기와로 박공널 윗부분을 감싸게 마감하는데, 이렇게 감새로 박공마루를 마감한 것을 "감새마루"라 부릅니다. 물론 이것은 박공처마가 감새라는 암기와와 막새로 기왓골과 기왓등을 이루어졌다는 말입니다. 박공마루끼리 만나는 솟을각에서나, 아니면 처마마루가 끝나는 부분에서 마지막 물흘림을 위한 기왓장을 세모꼴로 깎아서 두 방향의 지붕면이 만나는 것을 부드럽게 이어 주는데, 이렇게 깎은 기왓장이 세모꼴인 보습을 닮았다고 생각해서인지 "보습장"이라 부르고, 귀기둥에 걸린 도리가 왕지도리이듯이, 이 보습장이 추녀귀에 걸려서인지 "왕지(기와)"라고도 부릅니다.
지붕을 이면서 생기는 작은 부위 부위에도 그 곳에 알맞는 기와를 만들거나, 짤라서 쓴 것은, 비가 새는 것을 막는 것도 있지만, 겉으로 드러난 기왓골과 기왓등의 모습이 서로 다른 지붕면과 연결되는 곳에서 서로 원만하고 부드럽게 돌아가게 하기 위함입니다.
지붕마루는 지붕 꼭대기에서 정후면의 지붕면이 만나서 생긴 마루입니다. 물론, 기와골과 기와등 위에 걸쳐서 적새를 쌓아 마루턱을 만듭니다. 맨 아래 적새는 두 기왓등 위에 올라 앉기 때문에, 기왓골과 두 기왓등과 적새로 갇힌 구멍이 생기지요. 바로 이 "차꼬着錮 "모양의 구멍을 막는 숫기와장을 "차꼬막이"라 부릅니다. 본디 이 반 토막의 기왓장을 "단골"이라 불렀는데, 사람들이 차꼬막이라는 이름을 새로 만들어 쓰자, "단골막이"라고도 불렀습니다. 차꼬막이는 이음매를 기왓등 위에 두고, 기왓등 숫기와의 곡선 흐름에 따라 양끝을 오목하게 따낸 기와 동강입니다. 이제 적새를 적당한 높이로 쌓아 올리면서, 차꼬막이 위에다 또 한장의 숫기와를 적새 바깥에 두르면 지붕마루가 높아져도 모양이 어울리는데, 이 숫기와장을 "부고付高"라 부르고, 이렇게 부고를 댄 마루를 "부고마루"라 부릅니다. 뿌리를 돋운 흙이나 돈대처럼 올려서 세운 것을 "북"이라 하는데, 이 부고가 그야말로 덧대어 높인다를 한자로 쓴 "북"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이렇게 부고 위로 계속 적새를 쌓아 원하는 높이에 이르면, 지붕마루의 양끝을 살짝 들어올려 "지붕마루곡"을 준 뒤에, 지붕마루 전체를 "숫마루장'으로 덮고, 양쪽 끝에 용머리 놓기도 합니다.
이 지붕마루는 바야흐로 "용마루'가 됩니다만, 매의 머리를 얹었다고 매마루가 되는 것은 아니니, 오해 없으시길. 이때의 "용"은 우리말로 높은 곳에서 또 한번 치솟아 오른 모습을 가리킵니다. "미르"라는 상상 속의 동물을 중국 사람들은 '龍long'이라 부르는데, 그런 용을 얹은 마루라는 뜻의 용마루가 아닙니다.
추녀마루는 이런 지붕마루가 기왓골과 기왓등과 직각이 아니라 대각선으로 만나게 되기 때문에 차꼬막이의 길이가 조금 더 길어질 뿐, 마루를 만드는 방법은 다르지 않습니다. 단골(차꼬막이)를 대고 적새를 쌓아 어느 정도 높이에 이르면 숫마루장으로 덮습니다. 추녀마루를 다른 말로 "활개장마루"라고 부르는데, 집채의 어디에도 "활개"나 "활개장"이란 말이 없어 왜 그런 이름을 가졌는지 알 수 없네요, 혹시 옛날에 추녀마루를 덮는 숫마루장을 활개장이라 불렀는지 좀 더 공부해 볼 요량입니다.
지붕마루의 양쪽 끝, 박공마루나 합각마루의 끝, 처마마루의 끝은 "망와望瓦"라는 와당이 달린 적새(암기와)로 막았습니다. 내림새나 드림새가 아래로 쳐진 와당을 가졌다면 망와는 와당이 위로 들려 붙어 하늘을 지키고 있습니다. 망와를 누가 "바래기기와"라고 하더군요. 매우 어색합니다.그렇다면, 지금 막새라고 부르는 처마 끝의 기와가 사실 막새가 아니라 내림새와 드림새이고, 정작 막새는 망와가 아닌가 여겨집니다. "망와"는 주로 "나쁜 기운을 막는(破邪)" 뜻으로 세운 "막새"거든요.
차꼬막이와 부고 때문에, 높이를 맞추기 위하여 망와의 아래쪽에도 같은 높이로 숫기와를 쌓는데, 이 숫기와장을 "미거불"이라 부릅니다. 흔히 와당에 새긴 문양으로 시대를 분간할 정도로 와당에 새긴 문양이 다양하고 정교했습니다만, 후대로 오면서 조잡해지기도 합니다. 이 마거불도 옛날에는 따로 도깨비 얼굴 문양이나 다른 문양을 넣고 따로 만들어 막았는데, 요새는 숫기와 한 장 또는 두 장으로 가리니 성의가 없지요.
기와에 붙은 와당 장식 이외에도, 지붕에는 따로 만든 각종 장식물이 올라갑니다.
'용두龍頭', '취두鷲頭', '귀두鬼頭'나 잡상雜像'(이 잡상에는 또 여러가지 이름을 붙인 장식물이 포함됩니다.)과 같이 짐승이나 짐승의 대가리獸頭 모양을 본떠 만든 것을(이 모두를 우리말로는 "줏개"라고 부릅니다.), 지붕마루나 처마마루의 끝에 놓는 것과, "토수土首,土手,吐手,吐首,土袖"처럼 우리말 "토시"를 한자로 읽어, "토수"라 부르는, 사래나 추녀의 끝 마구리에 덮어 끼운 것이 있습니다. (초가리라고 서까래나 다른 나무의 마구리를 보호하기 위해 붙인다고한 기왓장이 생각나시는지요? 토시가 그와 같은 역활을 하네요.)
지붕마루 중에 특이한 것은 궁궐집들 가운데 왕비의 침전으로 지붕마루가 없는 집채입니다. 지붕마루를 만들지 않고, 정후면의 지붕면을 연결시켰다고 그런지 무량無樑갓(삿갓)이란 이름을 붙여, 지붕마루 꼭대기를 말안장 모양을 한 암기와曲蓋女瓦,女宮瓦로 덮어 기왓골이 마루 너머 이어가게 했고, 숫기와曲瓦,夫宮瓦도 구부러지게 만들어 기왓등이 마루를 너머 이어지도록 했습니다. 이 기왓장을 궁와宮瓦 또는 곡와曲瓦라 부릅니다만 아주 특별한 집 짓는 데에서만 따로 썼습니다.
이 밖에, 바람이 아주 센 지역이나, 집이 크고 용마루의 턱이 높으면 전채 마루들의 적새의 마구리 부분을 모두 '회'를 발라 튼튼하게 했습니다. 백토에 부드러운 모래를 섞고 강회를 넣고 풀물에 종이도 풀어 발랐습니다. 마르고 나면 기름칠을 해서 반짝거리게 만들었지요. 이러한 마감을 "양성兩城"이라 부르는데, 지붕마루에 회를 발랐다는 뜻으로 "양상도회樑上塗灰"라고 제법 무엇처럼 말합니다만, 그냥 "회바름"이면 되지요.
이제 마지막으로 지붕면과 지붕면이 만나 골을 이루는 지붕골의 기와입니다.
이런 지붕골은 기역자나 디귿자나 미음자 집들에 지붕면과 지붕면이 대각선 방향으로 만나면서 나타나는 골입니다. 지붕골을 만드는 얼개는 두 가지 입니다. 추녀처럼 골서까래를 두고 마룻대나 중도리에서 골서까래에 서까래를 거는 방법과, 골서까래 없이 바로 이웃하는 지붕틀의 서까래 끝을 서로 잡아 매는 방법입니다. 지붕골의 골서까래는 귀기둥 위의 귀서까래와는 달리 큰 나무를 쓰지 못하는데, 지붕골의 물매가 빠르지 않아 물이 집안으로 샐 염려가 있고, 그래서 골서까래를 빼면 평연平椽이 되어 처마도리에 얹히는 다른 도리들과 나란하게 나오지만 처마도리도 없고, 골서까래도 없어, 허공에 뜬 형태가 되어 튼튼하지가 못합니다. 처마와 처마가 만나는 끝에는 서까래가 없어 "고삽"이라는 세모꼴의 널빤지를 댑니다. 물매가 빠르지 못한 귀서까래 위나, 튼튼하지 못한 나란히서까래 끝끼리 묶은 지붕골에는 물을 받아서 내릴 수 있는 수채를 만들어야 합니다. 자연히 이 지붕 수채를 서까래 위에 놓아야 하기 때문에 그리 깊게 만들지 못하므로 고삽의 폭만큼 폭을 넓게 할 수 밖에 없습니다.
디귿자 모양의 긴 암기와나 철판 등으로 "지붕골수채(곬수채)"를 만들고 나면, 지붕면을 따라 놓인 기왓골과 기와등이 수채 위에 놓이는 끝에,회첨장(지붕골기와, 마구리가 지붕골의 각에 맞춘 대각선으로 된 막새기와의 일종)이라 부르는 암기와와 숫기와로 마무리하여, 기왓골로 타고 내려온 물이 수채 안에 떨어져 모이게하고, 모인 물은 수채를 따라 처마끼리 만나는 회첨 말단에서 마당으로 떨어집니다. 물론, 수채에서 떨어지는 물을 받는 물받이가 준비되어 있어야 마당이 패이지 않지요. 마당이 패이지 않게 하는 일이나, 집에 물이 들어차지 않게 하는 일이나, 마당을 만드는 일이나, 담을 치는 일이나, 마당에서 집 안으로 오르는 일은 모두 따로 한꺼번에 집에 대문을 달 때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런 일들에서도 알게 모르게 사라진 우리말들이 많아서, "우리말찾기-집에서 사라진 우리말들(신방)" 편을 나중에 따로 냅니다.
이로써, 팔작지붕 위에 팔작이 어디서 생기는 것인가를 공부하다가 어느새 기와 공부까지 마쳤습니다만, "이엉집"의 지붕에 대해서는 이야기가 빠진 것 같아, 마지막으로 이엉집의 지붕에 대해 자세히 공부하고 가겠습니다. "우리말 찾기- 집에서 사라진 우리말들(초가)"에서는 "초가"라는 집을 가리키는 말을 어떻게 부르는가만 따지느라 정작 이엉지붕에 대해서는 공부를 하지 못했습니다.
한 일자로 놓인 "세 칸짜리 이엉집"은 측면에 정칸 여덟 자에 퇴칸 넉 자 모두 열두 자에 정면으로 정칸 여덟 자짜리 세 칸이 늘어선 스무넉 자, 그래서 바닥이 삼백 평방자도 채 되지 않는 여덟 평짜리 집입니다. 집채와는 떨어져 헛간과 뒷간이 따로 있으니 요즘 짓는 아파트로 따진다면, 열다섯 평짜리 아파트 집과 같은 면적을 쓰는 건데, 그래도 꽉 막힌 아파트보다는 모든 면에서 생활하기에 넓게 쓸 수 있습니다. 방 안에 두는가구도 크지 않고 웬만하면 방바닥에 앉아서 생활하도록 갖추어져 있기 때문에 서서 움직이지 않는 한, 생각보다는 넓습니다.
세 칸짜리 집이라고 해서 지붕이 꼭 우진각지붕으로만 하지는 않습니다. 어떤 때는 귀서까래 사이에 창 구멍을 내어 바람이 들락거리게 하는데 사람들은 "까치구멍"이라 부르지만, 자세히 보면 작은 합각지붕의 합각에 창을 낸 것과 다름 없어 보입니다. 지붕틀이 달라, 합각지붕이라 부를 수는 없지만, 영판 작은 합각지붕의 모습입니다. 헛간이나 방아간은 박공지붕으로 많이 합니다. 박공지붕의 측면 흙벽을 빗물로부터 보호하기위해 이엉을 치마처럼 상인방이나 중인방에서부터 축담까지 둘러 놓기도 하지요. 원두막은 모지붕인데, 이엉으로 맵시나게 이어 놓습니다.
그렇지만 역시 세 칸짜리 이엉집의 최고봉은 우진각지붕입니다. 지붕이 너새나 디새보다 가벼워 간단하게 짤 수 있는 지붕틀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집채의 사방을 처마로 삥 둘러 비가 들이쳐 흙벽을 상하게 하는 것을 막고, 축담과 처마 아래의 공간을 물건을 보관하는 데로 쓸 수가 있기 때문이지요. 더구나 지붕의 단열도 할 겸, "발비"나 "군새"를 많이 넣고 이엉을 몇 겹 더 깔면 지붕 전체가 동그란 곡선을 만들면서 부드럽고 이늑한 '부른지붕"이 됩니다. 앞에서 말한 기와집 "욱은지붕"의 "지붕곡"이란 말을 이엉집에서도 쓸 수 있지 않습니까?
귀서까래를 걸고 나머지 서까래를 깔면 우진각지붕틀이 완성됩니다. 이제 남은 일은 '이엉장이蓋草匠'들의 몫입니다. 물론 알매를 이기고 져서 나르는 뒷일꾼이 필요하지만, 그렇다고 흙장이泥匠를 부르지는 않습니다. 기와의 경우에 "기와장이瓦'비人+卑'"라 불러도, 사실 기와를 만들고 굽는 '와공瓦工'과 기와를 이는 '와장瓦匠' 또는 '개와장蓋瓦匠'이 따로 있습니다만, 이엉 일은 이엉의 재료를 갖추는 일이나, 이엉을 짜는 일은 모두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어서, 흙일부터 이엉을 이는 일에까지 "이엉장이"가 몇 사람의 뒷일꾼들을 데리고 해냅니다.
기와집에는 산자개판을 깔아 흙 올리고 깔기도 좋지만, 이엉집은 산자를 나무 가지나 나무 피죽으로 깔기 때문에 조심해야 합니다. 산자를 깐 뒤에는 일단 산자에 알매를 고루 펴서 발라 산자가 야물게 지붕을 덮도록 하고, 또 나중에 보꾹에서 흙이나 회를 바를 때, 서로 엉켜 한 덩이가 되어 떨어지지 않게 합니다. 알매 위에 다시 흙이나 발비를 깔아 지붕을 따뜻하게 하고 군새를 넣어서 지붕의 모양을 잡아 갑니다. 요즈음은 새끼를 꼬는 것도, 가마니 짜는 것도, 이엉을 짜는 것도 모두 기계가 하고 심지어는 이엉을 비닐로 만든 짚으로 짭니다. 볏짚으로 짠 것이라 해도 짚을 골고루 잘 펴서 짰기 때문에, 이엉의 두께가 한 치 정도로 아주 얇지만, 부풀려 있지 않아 모양 잡는 그대로 달라 붙어 있어 좋은 점도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볏짚보다는 오래 가는 비닐 볏짚으로 군새를 넣는다면, 지붕 모양이 더 오래 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엉지붕에 올라가는 것들 가운데는 알매흙처럼 거섶으로 또 산자에 엉켜 스스로 무게를 지니고 눌러앉은 것이 있는가 하면, 발비나 군새처럼 묶거나 눌러 주지 않으면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수 없는 재료들도 있습니다. 이런 재료들을 누르거나 묶어 두는 일은 주로 새끼가 맡아 합니다. 이엉지붕을 일 때 쓰는 새끼를 부르는 이름도 가지가지입니다. 물건을 움직이지 못하도록 동여매는 끈이나 줄을 일컫는 말인 "매", 어떤 물건이 버티고 있도록 이리저리도 얽어 매는 줄을 가리키는 말인 "벌이줄" 따위가 그것들입니다. 이엉지붕을 이는 끈이나 줄은 거의 새끼를 꼬아 쓰는데, 제일 먼저 자리를 잡는 벌이줄을 "고사새끼"라 부릅니다. 이 말은 "고삿새끼"의 잘못이 아닌가 여겨지는 것이 이엉을 동여매거나 얽어매는 새끼줄을 "고삿"이라 부르기 때문입니다. 이엉을 일 때, 제일 마지막에 얽어매는 줄로 겉에 드러나서 이엉지붕의 멋을 더하는 고삿이 "겉고삿", 고사새끼처럼 제일 바닥에 깔리거나 아니면 발비나 군새 같이 다른 지붕의 속 재료가 놓일 때, 지붕 속에서 이들을 동여매거나 얽어매는 고삿을 "속고삿"이라 부릅니다. 이런 고삿도 또 따로 이름이 있는데, 가로로 동여매는 줄은 "동매 (또는 장長매)", 세로로 동여매는 줄은 "가르매(세로줄)"라 부릅니다.
고삿들을 바싹 당겨 이엉을 얽어서 동여매고 나면, 대나무 장대(누리개, 누름대)로 이엉을 눌러 주는데, 용마름 쪽에서는 고사새끼나 속고삿에 묶어 누르고, 기스락 쪽은 처마 밑에 받친 대나무 장대("연죽椽竹")에 묶어 야무지게 누릅니다. 기스락에는 따로 특별히 갈대나 띠로 속을 단단하게 채워 연죽과 누르개로 눌러 바람에, 또는 참새들이 깃들어, 처마 끝단(기스락)나 추녀 끝단(귀기스락)이 흐트러지지 않고, 겨울에도 해가 잘 드는 각도를 잘 유지하도록 해 둡니다. 겉고삿이 "동매"로만 엮었으면, "일자엮기" 또는 "가로엮기"라 하는데, 바람이 심한 곳은 세로줄인 가르매와 함께 좀 더 촘촘히 엮어 바둑판처럼 보이게 하는데, 이것은 "격자엮기"라고 합니다. 때에 따라서 어떤 곳에서는 네모가 아니라, (장방형이나 정방형이 아닌) 마름모꼴(능형菱形)로 엮기도 하는데, 이것은 "마름모엮기"가 됩니다.
이엉을 짜는 방법도 보통 이엉지붕에 쓰는 "사슬이엉"으로 짜서, 멍석처럼 펼쳐 이는 방법도 있고, '볏짚의 뿌리'(수냉이)쪽 한 뼘 아래를 묶어, 물고기 비늘처럼 "비늘이엉"을 만들어 이는 방법도 있다고 합니다만 실물을 보기 어렵습니다. 이 "비늘이엉" 지붕은 볏짚도 사슬이엉보다 두 배 넘게 들어 지붕이 훨씬 두텁고 따뜻하다고 합니다. 이 밖에도 이엉을 이는 방법은 지붕의 모양에 따라 얼마든지 달리 할 수 있습니다.
지붕 꼭대기도 용마름만 까는 것이 아니라 통나무를 빗겨 꼽아, 짚으로 상투 틀듯 장식한 "유지기 꽂기"도 있지요. 지붕자체를 똬리처럼 틀어서 인 지붕도 있습니다. 이엉집 지붕 이는 방법도 기와집 정도로 많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리고 기와집이 암수기와 암수막새, 흙을 기본으로 모든 기와지붕을 이듯이, 이엉집도 이엉과 용마름, 고삿을 기본으로 모든 이엉지붕을 이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집채의 뼈대와 윗도리를 훑어 보았습니다. 이제부터는 집채의 아랫도리에 대해 공부하고 거기서 사라진 우리말들을 찾아갑니다.
다음, "우리말 찾기-집에서 사라진 우리말들(벽)"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