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퇴退
"퇴"라! 우선 우리말 "퇴"가 하나 있습니다. 행랑行廊 가리키는 옛말이라 합니다. 골마루라는 말이지요. 그 다음으로 "退"라는 한자로 꼬리가 잡힌 말이 여럿 있는데, 한자 "退"로 적는 말 "퇴"는 두 개의 표제어가 있습니다. 하나는, "물림"이라는 뜻과 "툇마루"의 준말 그리고 "툇간"의 준말인 "퇴退"이고, 다른 하나는, 그야말로 "한자 退퇴"의 뜻을 풀어 놓은 "퇴退"입니다.
첫 번째 "퇴"의 뜻인 "물림"은 "정한 날짜를 미루거나" "물건이나 약속 등을 물려 받거나 주는 것"을 말하고, 그리고 또 하나의 "물림"은 지금부터 말하고자 하는 "물림간"인데, "집채 원칸의 앞뒤나 좌우에 딸린 반 칸 폭의 칸살"을 가리키는 말이며, 나머지 "툇마루"는 "원칸살 밖에다 달아낸 마루"를 말하는데, 축담 위에 설치하여 왔다 갔다 하기 편하게 만든 마루를 가리키고, "툇간"이란 "집채의 원칸살 밖에다 딴 기둥을 세워서 만든 칸살"인데, 툇기둥, 툇보, 툇도리 같은 나무들이 툇간을 짓는 뼈대들입니다. 이야기 복잡한 것 같아 처음부터 다시 정리해 보면, 다같이 "퇴退"라고 불리는 집채에 딸린 말이 셋이 있는데, 첫 째는 "물림간間"으로 "집채의 원칸의 앞뒤나 좌우에 딸린 반 칸 폭의 칸살"이며 둘 째는 "툇간退間"으로 "집채의 원칸살 밖에 딴 기둥을 세워 만든 칸살"이고, 셋 째는 "툇退마루"는 "집채의 원칸살 밖에 달아낸 마루"입니다. (사실 골마루를 말하는 우리말 "퇴"까지 넣으면 "퇴"라고 불리는 집채에 딸린 말은 넷입니다.) (아울러 툇간의 間은 칸살이라는 말이므로 옳은 쓰기와 읽기로, 지금 사전에 실린 대로 "툇간退間"으로 적고, "퇴깐" 또는 "퉫깐"으로 읽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이미 표준말로 삼은 "칸"을 써서 "툇칸退間"으로 쓰고, "퇴칸" 또는 "퉫칸으로 읽도록 사전을 고쳐 놓아야 할 것입니다.)
("집에서 사라진 우리말들(칸살)"에서 한번 언급하였지만, 한자 間으로 적힌 툇간의 "간"은 "퇴"가 툇간이라는 공간의 사용 목적을 말하는 것이 아니어서 "깐"으로 읽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분명 툇간의 "間"이 "칸살"이라고 설명하면서도 "칸"을 "깐"으로 읽는 것은 잘못입니다.)
다음 한자말 "退퇴"는 국어사전, 한한漢韓사전, 중국어사전을 종합해 볼 때, 진퇴양난과 같이 "나아가다"의 반대말로서의 "물러서다", 또 그렇게 물러서게 만드는 것 즉 "물리치다", 그리고 어떤 지위나 장소, 위치에서 "물러나다", 또 감소나 하강이나 겸손을 나타내는 "사그러들다", "수그러들다", "부드러워지다", "옅어지다", 또 표나 돈이나 물건을 도로 돌려 주거나 받거나, 약속이나 이미 정한 것을 깨는 "물리다", 그리고는 마지막으로 위의 "退"와는 완전히 다른 단어인 "땅을 빌리고 주는 대가租/給"와, "농민들의 신神이 가진 토지"라는 뜻입니다. 이것으로 보아, 한자 "退퇴"가 가진 본디의 뜻 여러가지 중 어느 하나도, "집채의 원칸의 앞뒤나 좌우에 딸린 반 칸 폭의 칸살"이나, "툇마루"나, "툇칸"을 가리키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 말은 집채의 한 부분을 말하는 오늘의 화제 "퇴"가 결코 한자말이 아니라는 걸 말해 줍니다. 억지로 훈차자라 우겨도 한자 退의 뜻을 직접 쓴 訓讀이 아니라, "집채 원칸의 앞뒤나 좌우에 딸린 반 칸 폭의 칸살"을 뜻하는 "물림칸"과 같은 소리의 "물림"인 한자 退의 뜻 가운데, 정한 날짜를 뒤로 미루는 "물림", 물건 등을 도로 돌려 주거나 받는 "물림"이나, 아니면 약속 등을 없었던 것으로 돌리는 "물림" 따위의 한자 退의 뜻을 빌려 적은 훈가차訓假借일 뿐이라고 말해야 하는데, 그렇게 어렵게 차자를 쓸 까닭이 없거든요. 사실 이런 말 이전에 이미 "집채 원칸의 앞뒤나 좌우에 딸린 반 칸 폭의 칸살"이라는 우리말 "물림칸"의 "물림"이 어떤 뜻이고 또 어디서 따온 말인지를 알아야, 처음 "물림"을 "退"라고 적을 때, 왜 그 많은 한자 중에 "물림칸"의 "물림"이 가진 뜻을 직접적으로 옮겨 적을 수 있는 한자를, 왜 직접 훈독자를 찾아 적지 않고, 한자 "退"의 주된 뜻도 아닌 "물림"이란 뜻을 찾아, 기어이 그 뜻의 소리訓音를 빌려야만 했는지, 당시의 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해야 과연 한자 '退"가 정녕 위의 가정처럼 "물림"의 훈음차자인지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선 우리말 "물림"을 "退"라고 적었다고 가정해서 알아보고, 다음은 "退"라고 적힌 것을 "물림"이라고 읽었을 경우도 알아보겠습니다. 부연婦椽과 며느리서까래, 며느리서까래와 婦연, 종량宗樑과 마루보, 마루보와 종宗량의 전후 관계가 이런 조심성을 가지게 합니다.)
우리말에서 어떤 동사("물리다")의 어간에 "ㅁ"을 붙여 명사("물림")의 형태로 만들어 쓴 것이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퇴"라고 불리는 "물림"의 뜻이 미루는 것, 툇자를 놓는 것, (약속을)깨트리는 것을 가리키는 말 "물리다"의 어간에 "ㅁ"을 붙여 만든 명사임에 틀림없어 보입니다. "물리다"란 말에 退가 가진 세 가지의 뜻 말고도, 비록 어려운(?) 한자로 적는 말일지라도 "반 칸 칸살을 만들다"라는 뜻이 있는 한, "물림"이란 말이 "반 칸 칸살"이며, 退는 훈음차자라고 할 수 있고, 직접적으로 "반 칸 칸살을 만들다"라는 뜻은 없지만, 退 이외의 "물리다"라는 말 가운데 "반칸 칸살을 만드는 것"과 연관이 있는 말이 있다면, 退가 그 "물리다"의 "물림"을 훈음가차訓音假借한 글자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리다"라는 동사 전체의 뜻에도 "반 칸 칸살을 만드는 것"과 연관되는 말이 하나도 없다면, 이 "물림"은 어떤 뜻의 동사 "물리다"의 명사형이 아니라, 기둥이 집채를 받치는 나무이듯이, "물림" 그 자체가 "집채 원칸의 앞뒤나 좌우에 딸린 반 칸 폭의 칸살"을 가리키는 고유의 단어로 인식하고, 새로이 "물리다"라는 동사에 "반 칸 칸살을 만들다"라는 뜻을 한 더 추가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 경우에 우리는, "집채 원칸의 앞뒤나 좌우에 딸린 반 칸 폭의 칸살을 만들다"라는 구체적인 행위를 나타내는 희한한 동사를 하나를 사상 유례 없는 억지로 만드는 것입니다. 이런 억지를 부리기 전에, "퇴"와 "물림(칸)"을 그냥 있는 그대로 보고, 가급적 "退"를 "퇴"와 "물림"의 매개물로 생각하지 말고, 어느 "물리다"란 동사가 "반 칸 칸살을 만들다"이거나, "반 칸 칸살을 만드는 것"에 연관이 있는 말인지 살펴봐야 겠습니다.
"물리다"의 뜻을 나열해 볼까요? (편의상 뜻풀이보다는 예문으로 구별하고, 지금의 논의가 한자 退로 적힌 퇴에서 나온 만큼 말 뜻의 분류는 한자로 하겠습니다.) 1. 퇴退: 약속한 날짜를 이틀 뒤로 물리다/ 새로 구입한 책들을 모두 물리다/ 그 자는 나를 뒷전으로 물렸다/ 우선 숨기 위해 몸을 물렸다/서로 혼인 말은 물리고 없었던 일로 합시다/굿을 하여 귀신을 물리다/ 바둑 한 수를 물리다/ 저녁상을 물리고 술상을 들이다/ 2. 부賦: 세금을 물리다/ 치료비를 물리다/ 위자료를 물리다/ 3. 양讓: 왕위를 물리다/ 재산을 물리다/ 이 칼은 쇠가 좋아 대를 물려 쓸 수 있어/ 4. 감柑: 재갈을 물리다/ 사개 물린 궤짝의 모퉁이가 바그라졌다/ 선반에 파이프를 물리고 깎다/ 5. 채彩: 세모시 옥색 치마 금박 물린 저 댕기가/ 단청 물린 주칠 기둥에/ 당초문으로 곱게 물려/ 푸른 상모에 금전지를 물린 홍보/ 6. 염厭: 국수는 이제 물린 것 같아 더 못 먹겠어/ 그 사람 태도는 이제 물려 다시는 보기도 싫어/ 7. 연軟:(무르다의 사동사로) 가지나물은 생가지를 물린 다음 양념을 한다/ 7. 함含:(살짝 물다의 사동사로) 아이에게 젖을 물리다/ 흥분하길래 담배를 한 대 물려 진정시켰다/ 머리를 땋고 댕기를 물려 치장한다/ 8. 교咬:(세게 물다의 피동사로) 그놈들에게 잘못 물렸다간 큰일 난다/ 범한테 물려도 정신만 차리면 된다/
여기에서 "물리다"는 열 다섯 남짓 서로 조금씩 쓰는 데가 다른 말 뜻을 가지고 있지만, 서로서로가 "물리다"에서 과히 벗어난 용례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이 가운데서 "원칸살 밖으로 툇간을 만들다"라는 뜻이나, "집채 원칸살의 앞뒤와 좌우에 딴 기둥을 세워 반 칸 폭의 칸살을 붙이다"의 뜻이거나 그것과 연관이 있는 "물리다"는 아직 찾을 수 없는데, 그것은 집채에서 "물림칸"의 구성, 성질 등을 알고서나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지금까지 앞에서 해 온 대로 "퇴"와, "물림간"과, "툇간"에 대해 이들이 무엇인지, 무슨 일을 하는지, 어떻게 만들어 지는 지, 알아보는 것이 상수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공간들은 "원칸살에서 딴 기둥을 세워" 만든 공간이므로, 이 딴 기둥이 원래 기둥과 어떤 관계인지도 알아보는 것이 차례일 것 같습니다. 기둥을 잠시 공부하고 가겠습니다.
"기둥"이 무슨 말이냐, 어떻게 생겼느냐, 하는 일이 뭐냐에 대해서는 긴 말 줄이겠습니다. "기둥"이란 말을 基仝이나 起同이나 또 다른 한자로 적은 것을 아직 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인지 기둥을 적을 때 모두 한자 "柱"로 적습니다. 따라서 기둥의 위치나 생김새를 구별하여 붙인 이름도 모두 한자말입니다. 한 집채에 높이가 같은 처마 높이의 기준이 되는 기둥을 평주平柱라하고 주로 집채의 외벽을 이루며, 이 보다 키가 큰 기둥을 고주高柱라고 부르는데 주로 집채의 안쪽에 세워 지붕의 물매를 결정합니다. (평주와 고주를 목수들은 낮은기둥, 높은기둥보다는 바깥기둥, 안기둥이라 불렀을 것 같습니다. 평주, 고주가 기둥 자리 때문에 생겼으니까요)
집을 평주로만 짓는다면, 이는 틀림없이 측면, 양통樑通이 한 칸으로 기둥 두 개의 집일 것입니다. 소위 "이평주삼량가二平柱三樑架" 집입니다. 이제 집을 넓혀 기둥을 하나 더 두면, 측면 두 칸이 되는데, 실제 두 칸이거나, 반 칸의 툇칸(물림칸)을 물린 실제로는 한 칸 반인 집이 됩니다. 양통으로 기둥을 어떻게 놓든, 가운데 기둥은 나머지 두 기둥보다 키가 클 수 밖에 없습니다. 지붕의 물매 때문입니다. (물론 셋 다 같은 평주로 한다 해도 안 될 일은 없겠지만, 지붕 물매를 만들기 위해 따로 나무를 써야 하는 번거로움을 피할 수 없지요. 이런 용례를 수덕사의 대웅전에서 볼 수 있다는데, 겉에만 있고, 내부에는 이런 기둥이 없으면 정칸을 나눈 평주라 보기 어렵습니다.)
고주를 양통 복판에 놓아 고주의 기둥머리에 바로 마룻대를 올리면 제일 간단한 양통이 "정칸正間" 두 칸인 "(이평주)일고주삼량가" 집이 되고, 특히 이런 고주를 "어미기둥"이라 부르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이렇게 지은 집을 본 적이 없습니다. 아마 맞보를 거는 얼개가 야물지 못해, 도리통으로 창방과 같은 나무를 두어야 했고, 이것이 집 안의 칸막는 것에 불편하며, 보기에도 안 좋고, 창방 같은 나무가 더 들어 가는 비용도 많아 사라진 것 같습니다. 봉정사 극락전의 양측면에 이런 어미기둥을 두었으나, 안에는 어미기둥이 없어 정칸을 나눈 고주라 보기 힘듭니다. 다만 일본 나라의 동대사나, 중국의 고대 골조 양식으로 천두식 골조로 지은 집들이 이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이런 중국의 천두식 두 칸짜리 집이 없다 보니, 우리나라는 측면 정칸 두 칸안 집은 볼 수가 없고, 대신 정칸 하나에 전면 퇴칸(물림칸) 하나의 보통 살림집인 실제 한 칸 반짜리 "(이평주)일고주삼량가"거나, 그 정칸을 한 칸 반 가까이 넓히고, 도리를 다섯 두어 실제 정칸 두 칸의 효과를 보는 "(이평주)일고주오량가"거나, 측면 정칸 한 칸에 전후면에 좀 넓은 툇칸(물림칸)을 둔, 실제 두 칸 반의 "(이평주)이고주오량가"였습니다. 이때 툇칸을 만드는 평주를 툇기둥, 즉 퇴주退柱라고 부르는데, 보통 일부러 툇기둥이라고 구별해야 할 경우가 아니면 그냥 평주라 부릅니다.
이런 식으로 집을 넓혀 가서 지붕에 추녀라도 만들면, 측면과 정면이 만나는 귀퉁이 기둥은 더 무거운 짐을 받쳐야 되어, 약간 더 굵고, 높이도 고주보다는 아니지만 추녀를 들 정도는 높아야 해서, 이 기둥을 귀기둥(이주耳柱라고도 합니다), 우주隅柱(모가 난 기둥을 모기둥이라 부르기 때문에 구석에 있는 기둥이란 뜻의 우주를 모기둥이라 하면 잘못입니다.)라고 합니다. 귀퉁이로 가면서 기둥을 조금씩 높혀 가며 처마를 들어 올리면서 귀기둥에서 가장 높혀 상승감을 준 것을 "귀솟음", 조금씩 복판으로 오그리고 쏠리게 해 귓기둥에서 가장 많이 쏠리게 해 안정감을 낸 것을 "오금", "안쏠림"이라 했습니다. 추녀가 너무 높고 길어, 불안감을 준다 싶으면 귀기둥 밖에 가늘고 긴 활주活柱를 세워 추녀를 받칩니다. "귀솟음"이나 "안쏠림" 같이 기둥의 길이나 세운 각으로 집의 느낌을 바꾸었다면, 기둥 몸통의 생김새를 다듬어 또 다른 느낌이 나도록 했는데, 이것이 바로 기둥 "흘림"입니다. 이 흘림은 주로 두 가지로 쓰는데, 원기둥圓柱은 기둥의 배를 불려 시각적 안정감과 상승감을 주는 "배흘림"을 주로 하고, 모기둥方柱은 기둥머리부터 조금씩 같은 비율로 기둥뿌리까지 굵기를 키워 "배흘림'과 같은 효과를 거두는 "민흘림"을 주로 합니다.
기둥 뿐만 아니라 집채의 겉으로 드러나는 나무部材를 생긴 그대로 집 짓는 데 쓴 유행이 있었는데, 이때 쓴 나무들 가운데 기둥만 따로 유난히 도랑주라고 불렀습니다. 자연적으로 생긴 인방이나 들보를 도랑들보나 도랑인방으로 불렀던 것 같지는 않습니다. 처음 기둥 柱자에 붙인 말은 모두 한자말이라 했는데, 활주에서 活로 적었지만 "활弓"이 아닐까 잠시 흔들렸고, 도랑주의 도랑을 보고는 그만 자신이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아무리 봐도 도랑이 한자말 같지는 않은데, 왜 도랑기둥이라 하지 않고 도랑주라 했을까요? (표준말이 아닌지 사전에서도 찾을 수가 없어요.)
흔치는 않지만, 절집의 목탑에는 한복판에 기둥을 두어 탑의 최고 높은 지붕이나 장식을 떠받치게 하는데, 이것을 "심주心柱"라 합니다. 그리고 일반 건물에는 잘 없지만 문루, 이를테면 숭례문, 흥인지문, 장안문, 팔달문에는 중앙에 고주 하나를 세웠는데, 이것을 심고주心高柱라 합니다. 아마 평면 사용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문루의 견고성이 더 중요해서 불편해도 문루의 복판에 기둥을 하나 세운 모양입니다. 심주나 심고주의 심心은 양초의 심지와 같은 심이겠지요. 기둥 이야기에 심주는 그리 중요한 기둥이 아닌데, 심주를 끄집어낸 것은 가는 길에심지라는 말이 우리말인지 궁금해서요. 심주를 心柱라 쓴 것을 보면 심지도 心지일 것 같은데 지는 떠오르는 한자가 없거든요. 그밖에 기둥들은 동자주를 위시해서 이미 그때 그때 이야기 나왔을 때 짚고 넘어 갔으므로 여기서는 생략하겠습니다. 지금 여기서 언급이 되지 않은 기둥은, 예를 들어 굴립주掘立柱처럼 한자말을 풀어 보면 땅을 파서(팔 掘) 바로 세운(설 立) 기둥이라 바로 알 수 있으므로, 구태여 지금 여기서 나열하고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앞으로 설명이 필요한 기둥들의 이름이 나오면 그때 그때 짚고 가겠습니다.
기둥 넷이 하나의 공간을 만듭니다. 기둥 사이span를 칸이라 하고, 그 바닥area과 공간space을 칸살(칸)이라 합니다. 두 칸이면 기둥이 여섯, 세 칸이면 여덟 개의 기둥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네 칸 이상이 되면 칸을 늘어 놓는 모양에 따라 필요한 기둥의 갯수가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사방 두 칸의 밭 전田자 칸살은 기둥이 아홉이면 되지만, 나머지는 네 칸을 어떻게 놓든 기둥 열 개가 있어야 됩니다. 물론 적은 기둥으로 최대한의 면적을 만들어 내려면 가급적 단위 칸살을 모두 정칸으로 하는 것이 좋습니다만, 앞에서 지적한 대로 정칸으로만 짓는 것이 내부의 공간 활용에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닙니다. 특히 기둥 칸이 커지고 칸수도 늘어나면, 지붕도 커져서 무거워지는데, 나무를 한정없이 쓸 수도 없고, 설사 쓸 수 있다 해도, 그만한 면적이나 공간을 얻는데 어느 방법이 가장 효율적이고, 경제적인가도 생각해야 합니다. 물론 이런 효율성이나 경제성을 따지는 가운데서도 언제나 가장 중요한 것은 구조적인 안정성, 구조적인 견고성입니다.
목수들은 이 두 가지, 공간의 효율성과 경제성, 그리고 구조의 안정성과 견고성 사이에서 가장 합리적인 해법을 찾았을 것입니다. 그 해답으로 목수들은 공간을 모두 정칸으로 만드는 방법으로 기둥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정칸과 반 칸을 섞어 만드는 방법으로 기둥을 세우는 것이 훨씬 더 공간을 효율적으로, 그리고 경제적으로 쓸 수 있고, 구조적으로도 안정적이며, 견고하다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정면으로 반 칸의 툇칸을 내면서 여덟 자 측면 정칸을 열 자로 늘리면, 툇간이 다섯 자가 되어, 양통의 길이가 열다섯 자가 되는데, 툇칸이 생기면서 기둥이 하나 늘었기 때문에 마음 놓고 측면 정칸을 두 자나 늘인 것입니다. 측면의 기둥이 둘인 정칸이라면 여덟 자로 했을 텐데, 측면에 기둥이 하나 늘자 정칸을 열 자로 늘였고, 그 기둥은 정면으로 반 칸 즉 다섯 자만 내어 세워, 전체 열다섯자의 측면이 된 것입니다. 물론 새로 세우는 기둥을 정칸 두 칸이 되도록 세우면 측면이 열여섯 자가 되어 한 칸 더 커지지만 목수들은 이런 집을 짓지 않지요. 이런 집은 구조적인 안정이나 견고성을 갖추기 위해 나무가 더 들기 때문에 비효율적이라 우리나라에는 이렇게 지은 집이 없다고 앞서 말씀드렸습니다. 측면이 꼭 열여섯 자라야 한다면, 목수들은 들보를 조금 키우더라도 열 자 반 정칸과 다섯 자 반 툇간의 열여섯 자로 지을 것입니다. 왜요? (이 물음에 대한 해답을 위해 잠시 경복궁의 근정전으로 가겠습니다.)
근정전은 중층의 정면 다섯 칸, 측면 다섯 칸, 스무 다섯 칸 모두 쉰 칸의 다포 팔작지붕 집입니다. 정면 도리통은 중앙에 어칸御間을 두고 바로 옆으로 좌우협칸左右挾間, 그리고 그 옆으로 양쪽 끝인 동서퇴東西退를 두었으며, 측면 양통은 중안에 어칸을 두고 바로 앞뒤로 전후칸前後間, 그리고 그 앞뒤로 양쪽 끝인 전후퇴前後退를 두어 중층의 평면을 짰습니다. 기둥은 상하층을 둘로 나눈 "밭둘렛기둥(外陣柱,변두리기둥邊柱)"과 상하층을 통한 통주通柱인 "안둘렛기둥(內陣柱,안두리기둥內邊柱)을 안팎 겹으로 세워, 사방 동전후퇴로 둘러쌌고, 안둘레칸에는 따로 어칸이나 전후칸이나 좌우협칸을 나누기 위한 기둥은 두지 않아, 전체로 하나의 공간이 중층 위 지붕까지 뚫렸습니다. 사방의 퇴가 마치 중정中庭을 도는 회랑回廊(廊은 우리말로 "퇴"입니다)처럼 뻥 뚫린 "안둘레칸'(한복판의 어칸을 둘러싼 전후칸과 좌우협칸을 합친 넓이)을 둘러싸서, 이 기둥들이 하층의 처마와 상층의 지붕을 들어올리는, 전형적 가구架構 이평주(하층 평주인 외진주 둘, 상층 평주 둘) 이고주(양쪽 안의 중층 통고주인 내진주 둘), 그리고 십일량(하층의 처마에 넷, 상층의 지붕은 도리 열 하나)으로 엮인架 집을 지은 것입니다.
근정전의 경우, 측면 정칸을 어칸 11자 전후칸 각 11자 도합 33자인 한 칸과, 전후퇴 17자(정칸의 반은 16자 반)의 반 칸 퇴 둘 도합 34자로 된 평주 둘, 고주 둘, 기둥 네 개의 측면 두 칸인 전형적인 가구架構로, 다만, 기둥 칸(정칸은 사실 세 칸의 작은 칸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이 좀 크다는 것, 따라서 나무들도 크다는 것, 중층이어서 상하 두 지붕틀을 이루는 뼈대와 내외장식이 화려하고 복잡한 것, 그리고 대좌를 꾸며 앉힌 부분에 닷집을 얹었다는 것이 근정전을 일반집과 다르게 보도록 할 뿐입니다. 동서전후의 퇴退를 제외하고는 모두 칸間이란 말을 넣은 칸살의 이름을 붙여 겉보기로는 정면 측면 5칸씩으로 보이지만, 실은 위에서 보여준 측면처럼 정면도 어칸과 좌우협칸을 더해 64자의 정칸 두 칸(한 칸이 32자) 옆에 각 17자 폭의 동서퇴가 붙은 것이라, 결국, 근정전은 정면 32자의 정칸 두 칸, 측면 33자의 정칸 한 칸, 중층 높이의 안둘레칸에 폭 17자 반 칸살의 퇴에 삥 둘러싸인 집일 뿐입니다.
근정전을 삥 둘러싼 동서전후퇴 모두가 "집채 원칸살의 앞뒤와 좌우에 딸린 반 칸 폭의 칸살"이라는 "물림칸"이 되는 셈인데도, 정면과 측면의 정칸에 나누어 선 기둥들 때문에, 그리고 그 칸살들에 붙인 이름들 때문에, "원칸 밖에 딴 기둥을 세워 만든 칸살"로 인식되어, 동서남북"퇴"의 "퇴"가 "반 칸 폭의 칸살"을 말하는 "물림칸"이 아니라, 주위의 칸살과 어금지금하게 "원칸의 밖에 딴 기둥을 세워 만든 칸살", 즉 "툇칸"이라고 생각하였는데, 근정전의 퇴를 살펴본 결과를 놓고 보니, 이제 "툇칸"과 "물림칸"은 서로 같은 것을 가리키는 칸살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툇칸과 물림칸은 "집채의 원칸살 밖으로 반 칸의 폭이 되도록 딴 기둥을 세워 만든 칸살"인데, 서로의 성격에 따라 툇칸과 물림칸 또는 물림퇴(어쩐지 이 말은 툇칸의 성격과 물림칸의 성격을 합쳐서 말한 것 같지 않습니까?)로 때때로 편의에 따라 불렀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툇칸이라는 말이 나온 퇴의 성격과 물림칸이란 말이 나온 물림의 성격이 무엇인지 알아보겠습니다.
기둥을 겹으로 붙여 쓴다는 개념은 동서양의 여러 재료로 지은 집들에서 공통으로 나타나는 공학적 해결책입니다. 기둥이 집의 뼈대로서 하는 일은 물론 위에서 내려오는 무게를 받아 밑받침을 통해 건네면 땅이 받아들이도록 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기둥머리에 전해지는 무게는 반드시 기둥의 축에 맞게 내려오는 중력만은 아닙니다. 지붕이 비스듬히 쏟는 무게는 기둥머리에서 기둥머리를 밖으로 밀어내는 힘으로 작용합니다. 바람이 불어와 바람의 힘을 받은 지붕과 벽은 기둥머리를 안쪽으로 밀어 넣으려하기도 옆으로 흔들기도 합니다. 최악은 지진으로 기둥뿌리가 흔들리어, 지붕틀과 집의 아랫도리 전체가 흔들리는 것입니다. 이런 힘들을 모두 횡력이라 합니다만, 이런 횡력을 이기는 유일한 길은 횡력을 받는 나무部材 수를 늘여, 그 힘을 쪼개는 것입니다. 횡력을 받는 부재들끼리 서로 받쳐, 횡력을 조금씩 나누어 받아서, 이겨 내는 것입니다. 나무나 돌로 짓는 가구架構식 구조나 돌로 짓는 홍예arch,vault식 구조가 모두 횡력에 취약한 구조입니다. 카르낙 신전의 기둥이 크고 높지만, 다닥다닥 붙은 이유는 물매 없는 평지붕을 돌로 올려 놓기 위해서 입니다. 최소한 지붕 무게로 인한 횡력은 없습니다. 홍예로 지붕을 인 돌로 지은 집은 홍예를 받치는 기둥에 같은 높이거나 그보다 낮은 홍예를 그 옆에 이어서 달아 내는 것도, 노트르 담의 측벽이 모두 부벽扶壁들과 플라잉 바트레스flying buttress로 받쳐져 있는 것도, 횡력에 취약한 구조를 보강하기 위함입니다. 나무 집도 기둥을 겹쳐 놓고 서로 단단히 "물려" 놓아 이런 횡력에 대항합니다. 겹으로 세운 기둥이 너무 멀면 효과 적으로 횡력을 나눌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각자 받치는 지붕의 면적이 넓어져서, 도로 혼자 버티기도 어려운 지경에 빠지게 됩니다. 너무 가까우면 나누기는 좋지만, 자칫 낭비가 될 수도 있습니다. 목수들이 찾아낸 효과적인 거리가 정상적인 기둥거리span의 반이라는 것입니다. 조금씩 가감해도 좋겠지만요.
반 칸 폭으로 기둥 둘이 서서 지붕을 받치면 기둥 물매에 따라 자연히 집 안쪽의 기둥이 높아지고, 낮은 쪽 기둥의 머리에 맞춰 큰 기둥이 짧은 들보로 "물려" 있게 됩니다. 즉 바깥 쪽의 낮은 기둥은 짧은 들보로 키 큰 기둥에 "물려" 있는 "물림' 기둥이 되는 것입니다. 이 두 기둥의 머리에 있는 도리를 통해 서까래가 두 기둥을 묶으면 작은 삼각형 하나가 생기는데 이 작은 삼각형이 두 기둥을 미는 힘에 대해 밀리지 않고 버티도록 하는 기본적인 지붕틀의 결구truss가 됩니다. 이 삼각형이 커진 경우가 바로 목수들이 피하는 천두식 구조입니다. 너무 작아도 별로입니다. 서까래와 들보와 쪼구미가 만들어 내는 큰 지붕틀truss의 작은 지붕틀truss이 되어 전체 지붕의 안정을 지켜줍니다. 왜냐하면 트라스는 횡력을 트라스 내에서 트라스를 이루는 나무들끼리 압축력이나 인장력으로 바꾸어 기둥머리에 직접적으로 횡력을 전하는 것을 효율적으로 분산시켜주기 때문입니다. 이 반 칸 크기의 작은 트라스가 기초가 되어 전체 지붕 트라스를 안정시켜 줍니다.
목수들이 반 칸 폭의 툇칸을 내면서 여덟 자의 정칸을 열 자로 늘이고, 정칸 두 칸의 열여섯 자보다 한 칸 반의 열다섯 자를 택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입니다. 공학적인 이론 설명이나 구조해석 없이도, 도끼 목수에 이르기까지 경험의 지식이 흘러 온 것입니다.
이제 반 칸 폭의 기둥 둘이 맞물려서 이룬 업적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서로 "물린" 이 두 기둥을 물려 놓는 들보와 도리도 모두 물림보, 물림도리라 불러도 좋을 것입니다. 예전부터 툇기둥, 툇보, 툇도리라 부르던 것을 이제 툇칸이나 물림칸이 같은 것임을 알았는데 그리 못 부를 이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따라서 "두 기둥이 물려 생긴 반 칸 폭의 칸살"을 "물림칸"이라 부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이런 물림칸을 세 칸짜리 이엉집 같은 작은 집에서는 주로 전면에 놓습니다. 집을 조금 더 키우면 후면에도 물림칸을 두지요. 이렇게 반 칸살의 물림칸은 그 폭이 좁고 길어 꼭 "골마루" 같은 인상을 줍니다. 제법 큰 집이 되면 이 골마루가 "행랑行廊'이나 "회랑回廊"과 같은 느낌을 줍니다. '골마루", "행랑", "회랑" 모두 우리말로 "퇴"라 합니다. "골마루 같은 반 칸 폭의 칸살"을 "퇴칸"이라 부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해 보입니다.
요즘은 "골마루"라는 우리말이 거의 사라졌습니다. 학교 다닐 때. 청소 당번이 구역을 나누면 주로 변소와 교실과 "골마루"였는데, "골마루"라는 말 대신에 지금은 모두 복도複道라는 말을 씁니다. 골마루를 가리키는 "퇴"라는 우리말은 "툇칸"이라는 말에 쓰이면서, 한자로 "廊"으로 쓴 낭칸廊間이 아니라, 退라고 적은 툇칸退間이 되면서 골마루라는 말보다 먼저 집에서 사라졌습니다. 아마 廊은 이미 사랑채나 행랑채 등의 이름으로 집채에 들어와 있었기 때문에, 廊이란 말을 집채가 아닌 집채의 작은 부분에 또 쓰면, 혼란을 준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겠습니다. 덕분에 "물림퇴"란 말도 자연스럽게 그 말 뜻이 무엇인지 왜 그런 말이 생겼는지 알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집에서 사라진 우리말 "퇴"를 다시 찾았습니다.
"물림칸", "툇칸", "물림퇴", 모두 집채의 원칸살 밖에 딴 기둥을 세워 만든 반 칸 폭의 칸살을 가리키는데, "물림칸"이란 말은 두 기둥이 집채의 부분으로 하는 일 때문에 어떻게 맞물려 반 칸 폭의 칸살을 만들었나 하는 구조적 성질을 나타낸 말이고, "툇칸"이란 말은 두 기둥이 맞물려 만든 반 칸 폭의 칸살이 퇴, 골마루와 같아서 붙인 이름이라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인방"에서 "퇴"까지 오면서, 집의 아랫도리를 이루는 중요한 뼈대 나무들인 기둥과 들보와 도리를 모두 공부하였습니다.
이제부터는 서까래 얹어 지붕틀 엮는 일에서 사라진 우리말을 찾아 나서야 되겠습니다.
다음 "우리말 찾기-집에서 사라진 우리말들(산자)"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