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사라진 우리말

천장天障

병든소 2012. 4. 25. 14:32

13. 천장天障

 

요즘 집이 옛날 집과 다른 점이 둘 있는데, 하나는 전기라는 에너지를 집 전체에서 쓸 수있게 해야 한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집 안에서도 물을 쓰고, 또 버릴 수 있게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 다른 점은 집채의 마감을 바꾸어 놓는 변호를 가져왔습니다.  전기줄이나 파이프를 눈에 보이게 하느냐 감추느냐에 따라 다르고, 물이 튀거나 젖어도 좋게 하느냐 늘 말라 있게 하느냐에 따라 마감하는 재료가 달라졌습니다.

 

(전기를 뽑아 쓰는 "콘센트"가 벽에 달리는 것이 가장 큰 변화입니다.  그런데 그런 변화를 가져온 "콘센트"는 어디에서 귀화한 우리말입니까?) 영어로는 "소켙socket"이나, "리셉터클receptacle"을 주로 쓰는데요.  아마 일본이 "concentric plug"를 "konsento"라 하니까 따온 모양입니다.)

 

 

집 안팎에 벽의 마감을 회반죽으로 미장을 하면 따로 도배로 하느냐 마느냐로 고민을 할 일이 없습니다. 더군다나 외벽이라면 당연히 자연적인 재료 그 자체로 마감이 되는 것이 아니면, 비바람에 조금도 견딜 수 없지요. 도배는 생각지도 못할 일입니다.  그러나, 집 안의 마감이라면 어디든지 도배로 마감을 할 수 있습니다. 목욕탕에서조차 비닐벽지를 유성접착제로 바르면 얼마든지 도배로 마감할 수 있습니다. 도배는 벽을 파서 새로 전기줄을 넣고, 새로 파이프를 묻어 물을 쓸 수 있게 해도, 그 벽면을 감쪽같이 덮어 벽을 파내고 메운 얼룩 자국을 가릴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전선이나 파이프를 벽이나 지붕 속에 감추지 않고, 드러내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그 자체로 하나의 마감처럼 보이게 할 수도 있고 무엇보다 바꾸거나 고칠 때, 아주 용이하기 때문입니다.

 

집 안에 전기줄이나 파이프가 지나가지 않아도 옛날 사람들은 집채의 뼈대를 웬만하면 모두 집 안팎으로 드러내어 놓았습니다. 대표적인 것을 하나 들면, "집에서 사라진 우리말들(벽)"에서 설명했던 기둥 밖으로 튀어 나오게 쌓는 "화방벽"입니다. 이 화방벽은 쌓을 때, 기둥 자리에 오면 쌓기를 끊고 기둥을 따라 양쪽 마구리에 용지판을 대어 기둥을 그대로 드러냅니다. 아니, 불이 넘어오는 것을 막는다며 돌로 심벽에 덧붙여 또 쌓으면서 불에 잘타는 나무 기둥은 오히려 겉으로 드러내다니 이상한 일도 다 보겠습니다. 용지판이라며 널빤지로 불쏘시개도 붙여 놓고.

 

그러나, 옛날 사람들은 집채의 뼈대 나무는 그대로 눈에 띄기 쉽게 드러내어 놓았습니다. 물론 의장적인 배려도 중요한 요소였겠지만, 혹시나 나타나는 구조적 결함을 바로 보고 판단할 수 있도록, 그리고 그 구조적 결함을 그 부분만 최소한으로 뜯어 고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입니다.

 

취향이나 특별한 목적이 있어, 어떤 방 전체를 도배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설사 방 안을 도배할 때도, 기둥, 들보, 도리, 서까래, 문지방 따위의 나무들은 바르지 않고 그냥 두었습니다.  특히 지붕이 그리 높지 않은 보통 살림집에서는 서까래를 천장 삼아 집안의 공간을 키워 살았습니다. 이렇게 서까래가 드러난 지붕 밑을 "보꾹"이라 부릅니다. 서까래 사이를 사벽이나 회반죽으로 발라 곱게 단장하고, 그 보꾹을 천장 삼았습니다. "보꾹에 사벽질이나 회반죽을 바르는 일을 "치받이", "앙토仰土질"이라 하는데 이 일이 어려웠는지, "앙토장이仰土匠"라 따로 이름을 지었네요.

 

지붕에 알매흙을 개어 올리는 것으로 시작한 흙일은 외벽부터 맞벽을 쳐와서 내벽도 쳤고, 보꾹에다 "치받이"까지 끝났으니, 이제 젖은 흙일은 구들 놓고 방바닥 바르는 일만 남았습니다. 구들 놓는 일에 대한 것은 보꾹 아래에 달리는 천장에 대해 더 알아본 뒤에 시작하겠습니다.

 

 

"보꾹"이란 말은, "칸살"이 그랬던 것처럼, 2차원적인 평면, 즉 서까래가 걸린 지붕의 안쪽 면과, 3차원적인 공간, 즉 들보 위에서부터 서까래가 걸린 지붕 안쪽 전체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집 안의 한 공간에서 따로 지붕 안쪽을 가린 구조물, 이를테면 "고미"나 "반자"가 없다면, 서까래가 걸린 지붕 안쪽 면을 가리키는 보꾹이 그 공간의 천장이 되겠고, 혹시 지붕의 안쪽을 가리는 다른 구조물이 있다면, 바로 그 구조물이(더 정확하게 말하면 그 구조물의 아랫면이) 천장이 됩니다. 다시 말해 "천장"은 한 공간의 지붕 안쪽에서 머리를 덮는 어떤 구조물의 아랫면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지붕 안쪽의 아랫면(서까래가 있는 면인 "보꾹"), "고미"나 "반자"의 아랫면 따위를 "천장"이라 합니다.

 

"고미"는 사실 천장을 만들기 위한 구조물은 아닙니다. 고미는 지붕 안쪽 공간인 보꾹을 다락으로 쓰려고 바닥을 깐 것입니다.  짐도 넣고, 때로 사람도 들어가야 하니 제법 굵은 나무로 멍에와 장선을 들보 사이에 걸고, 그 위에 산자를 깐 다음에, 흙으로 바닥을 친 것입니다. 자연히 "고미 다락"의 바닥 밑이 그 아래 공간에서 보면 천장이 되는 셈입니다. 이 고미바닥을 천장으로 마감하는 방법은 보꾹을 마감하는 방법과 같습니다.

 

반자는 보통 살림집에서는 잘 달지 않으나, 큰 살림집 또는 궐 안의 살림집에서 지붕 안쪽을 가려 방 안이 아늑한 기분이 들도록 달았던 구조물입니다. 반자가 바로 천장을 만드는 구조물이지요. 반자 아래쪽 겉면이 천장이 됩니다. 그리고 반자는 지붕의 밑이나, 윗층의 바닥 밑에서 편평하게 만든 틀을 매달아 치장한 구조물을 말합니다. 그래서 반자틀은 아래쪽 겉면을 여러가지로 치장을 할 수 있도록 짜여졌습니다.

 

 

"보꾹"이 우리말이라는 것은 척 보고 알겠는데, 옛사람들이 한자로 보꾹을 바로 못 적고 "양상梁上"이라 한자말을 만들었습니다. "들보 위"란 말이지만, 그렇다고 일본 닌자처럼 도둑이 보꾹에 붙어 있는 것은 아니니까 "양상군자梁上君子"의 梁上과 달리 취급해야지요. 그리고 이 "보꾹"은 지붕 안쪽의 열린 공간을 가리키는 말인데, 이 공간이 반자나 고미 같은 구조물로 그 아래가 갇히면, 특별히 그 갇힌 보꾹을 "더그매"라 합니다.고미다락의 공간이나 반자틀 위의 보꾹은 모두 "더그매"라 불러도 좋습니다.

 

"천장天障"이나 "반자班子,盤子"는 모두 한자로 적었는데, 천장의 "天障"은 첫 인상이 우리가 만든 한자말이고, 반자를 "班子"나 "盤子"라고 적은 것을 보면, "반자"는 한자말처럼 보이는 우리말입니다. 중국은 천장을 天障이라 부르지 않고, "天棚tianpeng천붕", 또는 "頂棚dingpeng정붕"이란 말을 쓰고, 일본은 "天井tengio천정"라 부릅니다. 우리는 "보꾹"이나 "반자"라는 이름을 따로 가지고 있었는데 "하늘 天"가 들어가는 이름이 좋아 보였는지, 그들을 통털어 이르는 "천장天障"이라는 한자말 이름을 또 붙였습니다. 그러나 정작 중국말 "棚peng"은 "보꾹"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보꾹을 유식한 말로 "연등천장椽燈天障"이라 하는데, 아마 누가 보꾹이 "서까래가 등줄기처럼 드러나 있는 것"이라고 하니까 서까래는 "椽"으로 훈차하고, 등줄기는 "脊背"로 쓰자니 너무 고지식한 것 같아 연등燃燈이란 말도 있으니 등줄기를 燈으로 음차하여 만든 말인 모양입니다.

 

 

보꾹의 서까래 등줄기에 산자를 엮어서 그 위에 흙을 바르거나 회를 발라 만든 천장을 "제고물"이라 하는데, 이것을 "제고물반자"라고도 부르는 이유는 산자를 또 다른 형태의 반자틀로 보고, 이 또한 반자라고 생각해서 그렇게 부르는 모양입니다. 이런 "제고물"에 영감을 얻었는지 서까래 등줄기에 바로 반자널을 붙이는데, 이런 반자를 "삿갓반자"라 부릅니다. 이 삿갓반자를 "소경반자"로 속되게 부르는데 장애인 인권 차원이 아니라도 그 이름은 잘못입니다.

 

달대와 반자틀이 없는 반자널만 붙인 이런 반자는 공포로 지붕을 들어 올린 집에서, 외부로 나온 첨차 간의 공간을 메우는 데도 썼는데, 공포와 공포 사이의 첨차에 붙여 반자의 역활을 하는 이 널빤지를 "순각(巡閣,順角,崇閣,純角,순木+盾각木+角)"이라 하고, 널빤지를 대었으니 "순각판"(巡閣板), 반자 역활을 하니까 "순각반자", 그리고 공포에 붙었으니까 "포包반자" 등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삿갓반자나 순각반자 같이 널빤지로 반자를 만든 것을 "판板반자"로 부릅니다. "장長반자"도 반자틀 없이 널빤지로만 된 반자입니다.

 

살림집이라도 제법 큰 기와집의 경우, 대청마루 천장은 시원한 맛을 살려 보꾹으로 했지만, 방은 반자를 달았습니다.  반자라는 말의 본뜻대로 편평한 반자틀을 들보 아래에 오리목으로 가로 세로 '우물 井'자로 짜서, 달대로 달았습니다. 반자틀에 종이(天障紙, 무늬가 있는 것도 있슴)를 발랐는데, 겉이 편평하다고 "평平반자", 종이를 발랐다고 "종이(지紙)반자"라 부릅니다.

 

반면에 반자틀이 겉으로 드러나게 짠 반자를 "우물반자"라고 부르는데, 반자틀이 가로 세로 모여 "우물 井"자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우물 井"이 여럿 모여 격자格子를 이루므로 "격자천장"이라고도 합니다.  이때, 방을 가로 세로 건너질러 '우물 井'자를 만드는 반자틀 오리목을 "귀틀"이라 하는데, 이를 "대란大欄", "다란多欄", "다안多案" 등으로 부르고, 방의 긴 쪽으로 놓인 귀틀은 "장長"을 앞에 붙여 "장대란", 짧은 쪽은 "동童,同", 또는 "단短"을 앞에 붙여 "동대란", "단대란" 등으로 부릅니다.

 

이 '우물 井자' 사이의 공란(空'欄', 대란이나 다란의 '欄'과 얼마나 다른지 보이려고, 빈 칸이란 말 대신 일부러 '공란'이라 했습니다)을 메우는 널조각을 반자, 반자판, 판반자, 반자청판, 등으로 부르고, 특히 널조각에 새기거나 그린 그림에 따라 용, 봉, 꽃이름, 해초나 말藻 따위의 말을 그 앞뒤에 붙여 부릅니다만, 전부가 한자말이라 일일이 챙길 것은 없고, 모두 통털어서 우리말로는 "반자널"이라 한다는 것만 알면 되겠습니다. 널조각으로 반자를 만들었다고 "목木반자"(앞의 "지紙반자"나, 나중에 이야기할 "토土반자"와 대비해서 붙인 이름이겠지요)라고도 합니다.

 

이 "반자널"은 "란"이라 부르는 "귀틀"에 끼우는 것이 아니라, '우물 井'자 안쪽으로 졸대("엇평"입니다)를 대고, 그 위에 얹어 둡니다. 이 졸대를 "소란小欄"이라고 부르고, 소란이 반자널을 받친다고 이런 반자를 "소란반자"라고 합니다. 이런 여러 이름들 중에 재미난 것은 중국에서는 쓰지 않는, 우리가 만든 한자 이름 "현란懸欄"입니다. 란欄을 한자말로 인식한 것이지요. 이런 반자를 서까래나 들보에 매다는 "달대"를 한자로 "현목懸木"이라 적는데, 현란은 "달린 란"을 한자로 적은 것입니다. "달린 란"이 "달란", "달란"이 "다란多欄", "다안多案"으로 말이 바뀌어 왔네요.

 

우물반자의 귀틀을 부르는 이름으로 쓰는 '란欄'이란 말이 한자말인지 우리말인지는, 중국도 우물반자를 "天花板천화판"이라 부르기 때문에 그 천화판을 받는 귀틀을 "欄lan"이라 부르는지 알아본 다음 말해야 되겠지만, 우선 중국 사람들이 '欄'을 어떤 뜻으로 쓰는지 알아보면, 欄杆난간, 養家畜的圈가축우리, 廣告欄, 書評欄 같은 부분, 表格中區分項目的大格 즉 '표의 빈 칸' 등인데, 천화판의 귀틀이란 뜻은 없네요.

 

이보다도 따로 생각나는 것은 이두자로 적은 "란삼欄杉", "대란치마", "스란치마" 등의 "란"입니다. 이들은 모두 치마라는 옷을 가리킵니다. 앞서 "집에서 사라진 우리말들(벽)"에서 벽선을 말하면서, 같은 "가장자리 테"를 가리키지만 벽선의 선과 "가선"의 선을 적는 이두자가 "木변의 宣"과 "絲변의 宣"으로 구별해서 썼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만, 여기서도 같은 구별의 이두자를 보게 됩니다.

 

"난삼(欄杉,'巾+가로막을난'衫)"을 중국 사람들은 "lanshan('衣+가로막을란'衫)"이라 하는데, 생원시 진사시의 합격자가 입는 예복을 말합니다. 옷의 모양이 거의 비슷한 것이 둘 다 옷의 모든 가장자리에 "테"를 둘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미 이런 옷을 가리키는 한자 "난(옷의변에 가로막을난)"이 있는데도, 굳이 "欄"이라는 이두자를 썼느냐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바로 이 옷의 "가장자리의 테", 가선을 강조하고 싶었기 때문에, "도드라진 가장자리 테"를 뜻하는 우리말 "란"을 썼던 것입니다. 그래서 한자 衫까지 이두자 "杉"으로 바꿔 적었고요.

 

또 하나는 잘 차릴 때 입는 "스란치마"입니다. "스란"은 치마의 아랫단에 두른 "장식 테"를 말합니다. "스란"을 두른 치마를 "스란치마"라 합니다. "스란"은 한자말 냄세를 전혀 풍기지 않는 우리말 같은데, 이 스란을 둘 달면 "대란치마"가 되고, 이때 대란은 "大란(옷의변에 가로막을란)"으로 적어 한자말처럼 보이게 합니다. 대란이 한자말이라면 스란도 한자말이어야 될 텐데 그럼 스란은 어떻게 적지요? "소란"인가요?

 

중국 사람들이 "치마에 두른 장식 테"를 "란(옷의변에 가로막을란)"이라 부른 흔적은 하나도 찾지 못했습니다. 즉 이때 쓴 "란"도 우리말입니다. 옛사람들은 "가장자리를 보호하기 위해 댄 가장자리 테"를 "선"이라 불러, "벽선", "가선"과 같은 말을 썼고, "경계를 분명히 하기 위해서나, 그런 경계의 장식을 위해 도드라지게 드러낸 테"를 "란"이라 불러, "다란", "스란"과 같은 말을 쓴 것입니다. 그러므로, 소란반자는 스란반자입니다.

 

반자틀을 격자 모양으로 짰다고, 스란반자를 격자천장(격자반자라고는 부르지 않습니다)이라고도 부릅니다. 그런데, 이런 반자틀을 격자 모양으로 짜서 우물 井자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방의 네 귀를 가로 세로 반으로 접고, 그것을 또 반으로 접어, 마지막에는 방의 복판에서 마름모꼴 널조각으로 덮도록 하는 반자틀도 짜는데, 이것을 "귀접이반자" 또는 "꺽은반자'라고 부릅니다.

 

스란반자나 귀접이반자는 천장을 두기 위해 일부러 한 공간의 머리에 반자틀을 달고 온갖 모양으로 치장한 반자입니다만, 따로 장식을 강조한 반자와는 달리, 실용적으로 보꾹에 다락을 두려고 다락 바닥을 만들다 보니 투박하게 짠 반자틀도 있는데, 바로 "고미", 또는 "고미반자"입니다. 들보와 들보 사이에 도리 방향으로 "고미받이" (멍에)를 셋 얹고, 고미받이 위에 마치 서까래를 놓듯이 약간의 물매를 주어, "고미가래"(장선)를 놓은 다음, 지붕처럼 산자를 엮어 고미가래 위에 깔고, 그 위에 흙을 발라 고미의 바닥을 만드는데, 이 "고미바닥"의 밑을 보꾹처럼 마감한 것을 "고미반자"라고 부릅니다.  흙으로 발랐다고 "토반자"라고도 부르는데, 비단 고미반자 뿐만 아니라, 흙으로 마감한 모든 반자가 "토반자"입니다. 이렇게 "고미"를 놓아, 보꾹 아래 고미 위에 생긴 공간을 "고미다락" 또는 "만장"이라 부릅니다. 창을 내면 "만장창"이라는 "지붕창"이 생기지요.

 

이렇게 종류별로 다 나열하다 보면 언제 끝날 줄 몰라, 우산처럼 머리 위를 가린 것을 "보개寶蓋천장", 지붕틀 밖으로 튀어 나온 외기를 장식한 "눈썹천장", 우물반자를 들보가 아닌 종보에 붙여 달면, 종보와 들보 사이에는 비스듬한 서까래가 노출되는데 이를 막아서, 반자틀을 비스듬히 달아 반자를 만드는 것은 "빗반자"라 한다는 것까지만 이야기하고, 마지막으로 주로 석축물에 나타나는 천장 두 가지만 더 보태겠습니다.

 

돌로 짓는 구조물을 덮는 방법은 크게 나누어 세 가지입니다. 카르낙 신전이나 수표교처럼, 가구식架構式으로 기둥이나 벽 위에, 돌을 들보나 도리를 멍에나 장선처럼 바로 걸고 그 위를 넓적한 돌로 덮어 지붕을 만드는 방법이 하나고, 피라미드 속의 통로나 앙코르 와트 사원의 탑처럼 평사식平斜式으로, 기둥이나 벽을 안으로 조금씩 내밀어 올라가서 서로 맞닿게 하는 방법이 또 하나고,  광화문의 대문 출입구 자리나, 로마의 수로水路 다리처럼, 홍예식虹霓式으로 기둥이나 벽을 무지개 모양으로 둥글게 쌓아가는 방법입니다.

 

이 세 가지로 방법으로 생긴 지붕의 이랫면이 자연스럽게 천장을 이루는데, 이들의 보꾹을 적절히 처리하거나, 반자를 다는 것은 이미 다 나온 이야기입니다. 이들 천장에도 따로 붙인 이름이 있는데, 평사식으로 지은 지붕의 천장을 "평사平斜천장" 또는 "꺾임천장"이라부르고, 홍예식의 것은 "반원半圓천장"이라 부릅니다.

 

 

이제 머리 위 보꾹의 치받이 일이 끝나면, 구들을 놓습니다. "구들'을 놓는다는 것은 나무를 때서 방을 덥힌다는 말입니다. 더운 것은 가벼워서 위로 올라가기 때문에 불을 피우는 곳은 낮을수록 불기운을 위로 또 넓게 퍼트릴수 있습니다. 낮은 데서 불을 때는 곳이 "아궁이"고, 높은 데서 불기운이 밖으로 빠져나가는 곳은 "굴뚝"입니다. 그 아궁이와 굴뚝 사이에 방이 있는데, 그 방의 바닥 아래에 불기운을 골고루 퍼지게 하고, 또 그 불기운을  오래 잡아 두어, 방을 덥히는 것이 "구들"입니다. 그 불기운을 골고루 퍼지게 하고 불기운을 오래 잡아 두기 위해 "고래"를 켭니다. "고래"는 "고래바닥'과 '고래둑' 그리고 "구들장'으로 막아 만든 네모난 불길 통로입니다. 이 고래를 어떻게 켜 놓느냐가 구들 놓는 기술이지요.

 

원칙은 간단합니다.  아궁이쪽은 낮고 굴뚝쪽은 높게 고래바닥을 고르고, 불길이나 불기운이 지나가는 고래를 고래둑을 쌓아 만듭니다. 아궁이 바닥과 고래바닥이 만나는 비탈진 언덕마루에 얕은 둔덕을 덧대어 "부넘기"를 두어, 불길이 여러 갈래의 고래로 골고루 퍼지게 하고, 굴뚝 쪽의 고래바닥은 옆으로 파낸 개자리를 두어, 불기운이 고래와 개자리에 머물면서 바로 굴뚝으로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합니다.

 

굴뚝이 처마 바깥으로 나가자면 뿌리도 개자리에서 떨어져야 되는데, 이 둘을 잇는 작은 굴을 "연도煙道"라 합니다.  굴뚝으로 바람이 들이치는 것도 막고, 불기운도 붙잡을 겸, 개자리쪽 고래의 끝에 작은 삼각형의 둔덕을 만들어, 고래를 조금 막아 두는데, 이것을 "바람막이"라 부릅니다. 말은 쉽지만, 얼마나 낮고 높아야 하는지, 얼마나 작아야 하는지를 정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기본적으로 고래의 높낮이와 턱, 웅덩이 등이 구들의 성능을 좌우하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결국 고래의 크기와 방향입니다,

 

고래를 놓는 일을 "고래켜기"라 하는데, "고래켜기"는 결국 '고래를 이루는 둑', 즉 "고래둑"의 크기와 방향을 결정하는 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아궁이와 굴뚝의 위치에 따라서 고래의 크기와 방향이 달라집니다. 고래둑은 구들장을 받치기 때문에 흙과 돌로 단단히 쌓아 두어야 됩니다. 때로는 "돌石고래"라고 돌로만 쌓기도 합니다. 고래둑은 담처럼 쌓는 것이 기본인데 이렇게 켜면 불기운이 고래 길을 따라서 움직이고, 기둥처럼 쌓아 고래둑을 섬처럼 켜면 "허튼 고래"라고 해서 고래의 이쪽 저쪽으로 불기운이 자유롭게 넘나들며 움직입니다.

 

고래둑을 몇 줄로 나란히 쌓으면 "나란히 고래", 부채꼴로 펼쳐 쌓으면 "선자扇子고래", 말발굽 모양으로 쌓으면 "편자고래", 연기가 고래 바닥으로 돌아 나오게 쌓으면 "돌廻고래"라고 부릅니다. "고래켜기"는 가지가지가 다 있고, 그런 방법에 따라 이런 저런 이름을 붙여 부릅니다.

 

구들둑 위에 구들장을 얹는데, 아궁이의 불길이 맞닿는 부분은 두꺼운 돌로 구둘장을 쓰고, 아궁이에서 멀수록 조금씩 얇고 넓적한 돌로 덮어, 구들장이 움직이지 않도록 잘 고정시킨 뒤, 흙으로 구멍이 생기지 않게 잘 메웁니다. 물론, 이 과정에 불도 넣어 보고, 연기가 어떻게 움직이나 보면서, 뜯고 고치기도 합니다. 고래가 잘 놓아지고, 불도 잘 들고, 방바닥도 골고루 덥혀진다 싶으면, 새벽질하고, 정벌로 마감한 뒤, 잘 말려, 마지막으로 장판壯版을 놓습니다.

 

 

아궁이는 바닥이 고래바닥보다 낮습니다. 아궁이 바닥은 거의 부엌 바닥과 같거나 재를 모을 수 있을 만큼 낮게 둡니다. 부엌 바닥은 비가 많이 와서 마당에 물이 차는 높이보다는 더 높아야 합니다. 물론 마당에 물이 차지 않는 집터를 골라 배수에 신경 쓰야지요. 결국, 부엌 바닥 높이가 방바닥 높이를 결정하고, 방바닥 높이가 축담의 높이를 결정하는 것이지요. 다시 말해, 아궁이 바닥이 방바닥의 높이를 결정한다는 말입니다.

 

밥하고 요리하는 불로 방을 덥히는 데도 이용하기 위해 아궁이 위에 솥을 겁니다. 이것이 아궁이와 고래 사이에 "부넘기"가 놓아진 이유입니다. 솥을 걸면 불 끝이 솥에 닿도록 아궁이 바닥이 낮아 질 수 밖에 없어, 고래바닥과의 차이를 넘어 불길이 고래로 들도록 부넘기를 두지요. 

 

솥을 두 개 정도 걸고, 솥 주위를 축담처럼 쌓아 조리대로 쓴 것이 "부뚜막"입니다. 이렇게 조리할 때가 불을 때는 주목적이 되고, 구들 데우기 모자란다 싶으면, 때때로 빈 솥에 물을 붓고 "군불"를 때었습니다. 그러나 때로 윗 칸이나 별채 같은 곳에는 솥을 걸지 않고, 방을 덥히기 위해 방구들 아래에 바로 불을 때는 아궁이를 둡니다. 이것을 함실, 또는 함실아궁이라 합니다. 솥을 거니까 아궁이 바닥이 고래바닥보다 낮아져서 불길을 고래로 보내는 부넘기가 필요했는데, 함실에는 부넘기가 필요없지요. 불을 바로 고래로 넣으면 되니까요. 그 대신 부넘기 위의 불목에 까는 구들장인 "불목장"보다 더 두꺼운 "함실장"(함실아궁이 바로 위의 구들장을 가리킵니다)을 아랫목에 깔아 둡니다.

 

 

굴뚝은 모양이 달라도 하는 일은 같습니다. "연도煙道"에 물이 새서 막히지 않는다면, 어느 정도 길어도 괜찮아  굴뚝 위치 잡기도 수월합니다. 예를 들면, 경복궁의 자경전 뒤 십장생 굴뚝이나 아미산의 벽돌로 쌓은 육각형 굴뚝부터, 기와장으로 쌓은 것, 흙과 돌로 쌓은 것, 원통 오지와 구새통으로 만든 굴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모양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아궁이 불을 좌우하는 '굴뚝의 높이'가 중요할 뿐입니다. 굴뚝을 높게 해서 아궁이 불을 세게 뽑아낼 필요가 없는 곳에서는 그냥 축담에 구멍을 내고 연기를 바로 뽑기도 합니다.

 

구들을 놓고, 굴뚝을 세우는 동안, 여러가지 생소한 우리말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구들이야 우리가 주로 사용하는 난방법이니, 그 안에 쓰는 말들이 기본적으로 우리말일 수 밖에 없겠지요. 이런 판에 끼어든 한자말이 있는데 바로 연도煙道입니다. 연도는 개자리에 머물던 연기가 떨어져 있는 굴뚝으로 빠져나가는 굴입니다. 연기의 우리말은 "내"입니다. "내"는 냄세라는 뜻도 있어, "슻내", "연탄내"라면 숯과 연탄이 타는 연기인지 냄세인지 잘 모릅니다.  "뭐가 타는 '내'가 나는데"라는 말 속의 "내"는 연기, 또는 연기가 나는 기척을 가리키는 말이고, "그 사람은 '암내'가 나"라는 말 속의 "내"는 분명히 냄세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내"는 집에서 뿐만 아니라, 우리들의 일상생활에서도 사라진 말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내"가 살아 있고, 연도를 가리키는 우리말이 살아 있다면 틀림없이 "내굴"이 아니겠나 싶네요. (북한 사람들은 연도를 "내굴길"이라 한답니다.)

 

이와는 반대로 꼭 한자말 같은데 우리말인 것이 바로 "함실"입니다. 사실 함실은 바닥이 고래바닥보다 더 낮게 자리 잡기 때문에 움푹 들어가서 자리 잡고 있지요. 누가 "陷室"이라고 한자로 적어도 모두 그런가 보다 할 정도인데, 다행히 그런 한자로 적은 것이 없어 오해를 피했습니다.

 

 

구들을 놓고 방바닥을 바르고나면, 미장이들은 마지막으로 내벽의 회를 바르는 것으로 젖은 흙일을 집채의 안에서 모두 끝냅니다. 불을 때면서 젖은 부분을 천천히 말리는 동안, 목수들이 다시 집 안으로 들어옵니다. 문과 창을 다는 것이 먼저지만, 여기저기 얼룩이 묻었거나 상한 나무가 있으면 다듬고, "굽도리" 같은 마지막에 붙이는 마감 나무가 있으면, 깨끗하게 마무리 합니다.

 

그래서 문과 창을 달고, 구들에 불도 몇 번 넣어, 집이 어느 정도 말라야 시작하는 도배에 대한 이야기를, 도배에서 사라진 우리말을 찾는 일을, 차례를 바꾸어, 문과 창을 다는 창호 일에 앞서 지금 미리 할까 합니다.  무엇보다, "집에서 사라진 우리말들" 가운데 창호에서 찾아볼 우리말이 가장 많고 어렵기 때문이고, 그래서 창호를 따로 떼어 이야기해야 하는 사정이기도 하지만, 천장이나, 구들장, 장판, 따위의 말들에 든 "장"이란 말이 "종이"와 연관이 있어 보이고, 천장이나 방바닥, 그리고 벽을 바르는 재료인 "종이"가, 결국 창호의 성격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보기 때문이고, 아울러 "종이" 이야기로 "집에서 사라진 우리말들(천장)"을 끝낼 수 있다면, 창호 이야기도 종이로부터 시작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도배塗褙는 말 그대로 칠하고塗tu, 여러 겹으로 붙이는褙bei 일입니다. 여러 겹으로 붙이니褙接, 붙이는 재료는 아주 얇습니다. 당연히 그 얇은 재료를 겹으로 붙이려니 풀을 칠해야 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주로 실내의 천장, 벽, 방바닥에 도배합니다. 바탕 면의 성질이나 모양이 다양해도 풀을 칠하고, 얇은 재료를 붙이는 일은 어렵지 않습니다. 오히려 풀 때문에 늘어졌던 재료가 풀이 마르면서 팽팽해져, 도배로 마감한 면은 더욱 매끈해지기조차 합니다. 도배 재료도 처음에는 "베"나 "깁"을 쓰다가 점차 "종이"로 바꾸어 갔을 것입니다.

 

종이를 만드는 기술이 늘어 종이는 두께가 얇아지고, 심지어 투명해 보이는 정도가 되는데도 질깁니다. 값이 깁은 말할 것도 없고, 베보다 쌉니다. 종이의 종류도 그만큼 다양해졌습니다. 종이의 두께, 쓰임새, 제조 방법, 가공 방법, 등에 따라 붙인 수많은 이름을 여기에서 죄다 말할 필요가 없으니 그만둡니다만, 오늘날에 종이를 자른 크기 하나만으로도 얼마나 많은 이름으로 부르는지 생각하면 고개가 끄덕여질 것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도배할 때 쓰는 종이는 "도배지紙"라 하여 따로 만들고 따로 가공합니다. 가공은 크게 두 가지로 하는데 마감 재료로서의 기능을 갖도록 하는 것과, 꾸밈을 위해 합니다. 기름을 먹여(기름종이, 유지油紙, 특히 두꺼운 기름종이는 유둔油芚), 잘 닳지 않게 하고, 물에 잘 젖지 않도록 하고, 때나 얼룩이 잘 묻지 않도록 하는 등, 마감 재료로서의 기능을 갖추게 하면서, 기름이 배어들어 나오는 자연스러운 색갈과 윤기로 방을 꾸밉니다. "흰종이白紙" 그대로도 깨끗해서 마감으로 쓰기 좋습니다만, 종이에 물을 들이고, 또 무늬를 입혀 도배하는 데 쓰기도 합니다.

 

도배가 여러 겹으로 붙이는 일이라 가장 뒤에 붙여 마감이 되는 재료에만 신경을 쓴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습니다.  처음으로 바탕면에 바르는(이 일을 초도初塗라 하지 않고 "초배初褙"라 합니다) 종이, 즉 초배지初褙紙도 매우 중요합니다. 이 종이가 바탕면에 붙어 있는 힘의 원천이기 때문입니다.  그레서 초배지로는 바탕면과의 접착력을 되도록 많이 얻는 얇지만 질긴 종이가 알맞습니다. 닥나무종이楮白紙가 가장 좋습니다.

 

초배지가 말라 접착이 충분하다 싶으면, 그 위에 다시 종이(재배지再褙紙)를 바르는데再褙, 재배는 마지막 마감의 바탕이 되기 때문에 보통 글 쓰는 종이, 즉 주지奏紙,注紙를 많이 씁니다.  필요에 따라 재배는 종이의 질을 바꾸어 가며 한두 번 더 바르기도 하지만, 그래서 칠하고 붙이는 일(풀칠하여 붙이는 것을 "바른다"라 합니다)을 도배라 하지만 바르는 겹이 너무 많으면, 바른 종이들이 너무 무거워지고, 또 바탕면과 그 바깥 공간의 온도나 습도의 차이로 생기는 종이가 늘어나는 차이 때문에 바른 종이가 들떠서, 초배의 접착력으로는 견디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마무리로 바르는(정배正褙) 종이(정배지正褙紙)는 취향에 따라 요즈음 벽지를 고르듯 골라 바르면 됩니다.  종이의 무늬나 색갈은 취향에 따라 골라 쓰지만, 종이의 두께나 크기는 바르는 곳에 따라 알맞게 골라야 합니다. 사람들이 늘 디디고 서고, 때로 물을 쏟는 등, 온갖 일이 벌어지는 방바닥에 바르는 종이를 천장이나 벽에 바르는 종이처럼 얇은 것을 쓸 수는 없겠지요.

 

 

그래서 사람들은 따로 "장판지"를 만들었습니다. 장판지를 방바닥에 바르지 못하는 집에서는 그 대신에 거적, 멍석, 또는 돗자리를 깔았습니다. 한마디로 방바닥은 두껍고 또 질긴 재료로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바로 "장판지壯版紙"가 그렇습니다. "장판지"라는 이름을 얻기 이전에 구들방 바닥을 바르던 종이들이 있었는데, 처음에는 "각장各張", 다음에는 "장지狀紙,壯紙"., 나중에는 "각장지角壯紙", 따위의 이름들로 불리던 종이들 이었습니다. 이 종이들은 한결같이 닥나무로 두껍게 떠서, 사람 손이 많이 타는 책의 표지나, 중요한 문서들을 기록하는 데 쓰던 것이었습니다.

 

장판 또는 장판지로 구들방 바닥을 바르면서 장판을 바른 구들방 바닥도 장판이라 부르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장판壯板"의 "장"은 위에서 말한 "각장", "장지", "각장지", 따위의 말에 든 "장"과 같은 뜻으로 쓴 우리말 같아 보입니다. "各張"이라 적었다고 "각장"이 종이의 "낱장"이라 우기지않겠지요. 여러가지 한자로 "장"을 적었지만, 그냥 척 보아도 그런 한자들이 "어떤 것을 가리키는 우리말" "장"의 소리를 빌려 적은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각"은 또 어떻습니까? 우리말 "낱"이나 "모" 또는 "귀"를 옮겨 적은 것일까요? 두꺼운 종이를 가리키는 말에 쓰인 "각"을 적은 "各,角" 이나, "장"을 적은 "張,狀,壯"의 뜻으로 두꺼운 종이와의 관계를 찾아볼 꺼리가 하나도 없어 보입니다. 그렇다면 두꺼운 종이에 쓰인 우리말 "각"과 "장"은 무슨 뜻이며 어떤 것을 가리키는 말일까요?

 

"얇고 넓적한 조각"을 뜻하는 접미사로 쓰는 "장"이 우선 떠오릅니다. 지붕에서 본 기와"장張"이나, 널문짝의 문판"장"門板張의 "장"은 비록 한자 "張"으로 적었지만, 구들에서 본 구들"장"이나, 함실"장"의 "장"과 같은 말입니다. 모두 '얇고 넓적한 조각'들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넓적하면서 펀펀한 면을 가리키는 "장"도 있는데, 얼음"장"에 성엣"장", 넓게 퍼진 두꺼운 구름을 말하는 구름"장", 윗부분이 넓적하고 펀펀한 바윗"장", 등에 있는 "장"이고, 또 이런 가운데 눈에 띄는 것이 큰 마루를 뜻하는 "마룻장"과, 나무배木船의 배 안의 바닥을 가리키는 "뱃장"의 "장"입니다.  특이하게 누에의 씨를 받는 종이를 가리키는 "누엣장"이란 말도 관심을 끄는 말이고, 삼노로 짠 보자기를 가리키는 '농삼장" 같은 말도 그렇습니다. 이런 모든 "장"이란 말이 두꺼운 종이를 가리키는 말에 든, 즉 장판의 "장"과 직접 연관을 가진 말이라고 생각됩니다.

 

그 밖에 띳장, 가랫장 같은 나무 토막을 가리키는 장, 비녀장, 주먹장 같이 장부를 가리키는 장, 덕장처럼 펼쳐진 대臺를 가리키는 장, 장잎이나 풋장처럼 잎이나 나무 가지를 가리키는 장, "일련의 연속된 것들의 앞뒤의 끝"을 말하는 접미어로 앞장, 뒷장, 끝장 등도 있고, 달장처럼 기간을 나타내는 장도 있지만, 이런 "장"들은 장판의 "장"과는 상관이 없는 말들이라 더 이상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장판에 쓴 우리말 "장"은 넓적하고 펀펀한 면, 또는 넓적하고 펀펀한 면을 가진 물건을 가리키는 말로, 한자말로는 판板,版입니다. 다시 말하면, "장판"은 넓고 펀펀한 면을 가진 물건을 가리키는 우리말 "장"과 한자말 板,版을 겹쳐 사용한 말이 되겠습니다. "천장天障"의 "장"도 같은 의미의 우리말 "장"을 붙인 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 경우, 각장의 "각"과 천장의 "천"에 대해서는 따로 더 알아 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말 찾기-집에서 사라진 우리말들"은 이제 종이를 지렛대 삼아, 종이가 집채에서 창과 문을 어떻게 바꾸어 놓는지, 이 종이의 값을 제대로 매겨 보려 합니다. 그리고 또 "창호窓戶"라고도 쓰고 "창문窓門"과 "문門"이라고도 쓰는 이 한자말의 우리말은 무엇일까 찾아 나섭니다.

 

다음, "우리말 찾기-집에서 사라진 우리말들(창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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