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사라진 우리말

칸살間

병든소 2012. 4. 20. 21:26

2. "칸", "칸살" 그리고 "間"

 

이제 집에서 사라진 우리말들을 찾기 위해 "세 칸짜리 이엉집"을 우선 들여다 보겠습니다. 이야기가 나아가는 대로 집채가 큰 집에서나 쓰는 말들이 나오면, 그때마다 궐집이든 절집이든 큰 집채에서 사라진 우리말들도 찾겠습니다만, 우선은 작은 집에서부터 찾아갈까 합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세 칸짜리 집은 얼마나 작은 집이며, 그런 작은 집에 무슨 기능이 있으며, 그런 기능들이 어떻게 널려 있는 집일까요?  그리고 또 "칸"은 무슨 뜻이며, 구체적으로 얼마만한 크기인가요? 이것을 알고 나면 세 칸짜리 집이 앉은 집터며 주변 환경을 짐작할 수 있겠지요.

 

우선 "칸"은 '기둥과 기둥 사이'를 말합니다. 세 칸이란 말은 기둥이 네 개로 그 사이의 빈 곳이 셋으로 나누어져 있다는 말과 같습니다. 이 경우 "칸間"은 한자 "間"의 제일 많이 쓰는 뜻 "사이"라는 말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이 "사이"라는 뜻의 한자 "間"에는 정작 "기둥과 기둥의 사이,span,柱(心)間"를 말하는 "칸"의 뜻은 없습니다. 사람들이 옛날 집들을 설명하면서, 정면 몇 칸, 측면 몇 칸이라 하는 바로 그 "칸"입니다.다음 "칸"은 "칸살"의 준말로 쓰이는데, "칸살"은 집채에서 "기둥" "네 개"의 "안(내부內部, 안의 빈 곳空間)"을 가리킵니다. "기둥"이라는 조건이"높이"를 결정하고, 그 기둥이 "네 개"라는 조건은 기둥 넷이 놓인 '바닥' 즉 한 '평면'을 결정합니다.  막연히 "칸살"이란 말을 할 때는 기둥 넷의 안쪽을 가리키는 평면으로 2차원적인 개념이지만, 구체적인 어떤 집채의 칸살을 말할 때에는 기둥의 높이까지 포함한 크기를 가리키기 때문에 따라서 "칸살'은 "기둥 네 게의 안"이라는 3차원의 빈 곳 즉 공간이라는 입체적 개념을 가진 말이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 기둥머리에 올라 앉은 가로의 앞뒤 도리 둘과 세로의 양옆 들보 둘에 둘러싸인 작은 넓이面積를 가르킴과 동시에, 기둥뿌리서부터 기둥머리까지의 "높이"에 걸친 3차원적인 공간인 그 "안의 빈 곳"을 가르키는 것이 "칸살"이라는 것입니다.

 

이와 비슷한 말로 예를 들면, 우리가 도표를 그린다고 할 때, 가로로 여러 줄을 긋고 세로로도 여러 줄을 그어, 그 가운데 가까운 가로 두 줄과 세로 두 줄이 만나 만든 빈 곳인 "(한)칸", 즉 엑셀의 셀cell 하나가 가르키는 "(한)칸"이 있는데, 이것을 우리는 "칸"이라고 부르지만 이런 "칸"은 2차원적 평면을 나타낼 뿐, "칸살"처럼 3차원적 공간 즉 입체적이지는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때의 칸은 칸살의 준말이 아니고, 2차원적 평면을 말하는 "칸"이라 절대 "칸살"이라 말해선 안 됩니다. 다시 말해, 똑같이 "칸"이라 불러도 "칸살"이란 말은 집(입체적 공간)을 말할 때만 씁니다.

 

"작가 황순원은 원고지 한 칸 한 칸 힘주어 메워 갔다", 또 "적당한 말로 아래 빈칸을 메우시오"에서 한"칸"이나 빈"칸"의 "칸"이나, "칸살"을 줄여 말하는 "칸"은 모두 한자어 "간間"에서 나온 말인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중국사람들은 앞의 경우, 빈칸空間을 '空格kongge'이나 '空欄konglan' 으로 쓰고 있습니다. 우리도 사실 空間이 빈 칸이나 빈 곳을 가리키는 말인데도 불구하고, 공간이란 말 대신 '공란空欄'이란 말을 주로 씁니다. 그렇지만, 중국과는 달리 우리는 '공격空格'이란 말은 거의 쓰지 않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이때의 "칸"은 한자말 "간間"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또 중국 사람들은 후자의 경우와 비슷하게 집을 말할 때, 넓이의 단위가 아니라 '房'이나 '室'의 개수를 나타내는 단위로도 자주 씁니다. 마치 우리가 "그 집은 부엌과 거실은 큰데, 방이 두 칸 밖에 없어"라고 말할 때, 이때 "칸"이 면적의 단위가 아니라 방의 개수를 헤아리는 단위로 쓰이는 것과 똑같습니다. 이 경우의 "칸"은 한자말 "간間"이 가진 뜻 가운데 하나이므로 한자말이라 해도 좋을 것입니다.

 

말이 나왔으니 이 참에 별수 없이, 우리말에 수없이 들어와 있는 한자 "間"에 대해 짚어 보고 가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습니다.  한자 "間jian"에는 사이, 틈, 나누다 등의 주된 뜻 이외에도, 위에서 말한 방을 세는 단위로 쓰이기도 하고, 드물게 "곳場所"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옛날 중국에 없던 말인 '세수간洗手間"의 경우를 보면 "측소厠所"의 부드러운 말로 요즈음 와서 중국이 만들어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곳"의 의미로 쓰이는 이 한자어 "간間"은 옛날부터 중국에서보다 오히려 우리나라에서 더 많이 쓰이고 있었고, 중국보다 우리나라에 그 용례가 더 많이 있습니다. 이런 용례는 크게 두 가지 경우로 나눌 수 있는데, 짧게 줄여 하나씩만 보여 드리자면, 첫 번째가 바로 마구간의 경우인데, 중국에는 '마구馬廐'란 말 자체가 말 키우는 곳이어서, 중국사람들은 구태여 "間"을 덧붙여 쓰지 않지만, 우리는 꼭 마구라는 한자말 뒤에 또 한자 접미어 "깐間"을 덧대어 '마구간'이라 부른다든지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두 번째로는, '방아간'과 같이 '방아틀을 놓고서, 방아를 찧는 곳'의 뜻으로 "깐"을 뒤에 붙여 쓰는 경우입니다. 그렇지만 첫 번째의 경우처럼 마구와 마구간은 그 용례가 아주 적고, 두 번째의 경우처럼 '방아간'으로 쓰이는 용례는 상대적으로 너무 많아서, 한참 전에 쓴 "우리말 찾기- 손자 손녀"의 경우에서 손자 손녀의 "손孫"이 아이를 가리키는 우리말 "아촌/아손"과 겹쳐져 둘 다 "孫"으로 적어 오는 동안 우리말 "아손"이 한자말 "손孫"에 가려 사라지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 것처럼,  이것도 '곳'을 나타내는 우리말 접미사 '깐"이 한자와 겹치는 바람에 소리 옮김으로 쓴 이두자 "間"이 한자 "間"과 겹치면서 우리말 "깐"이 한자말 간間에 가려 아직도 오로지 한자어로만 인식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의심하고 있습니다만, 한마디로 말해, 한자로 적혔든 한글로 적혔든 "간間"이 "-깐"으로 읽히면 무엇 무엇 하는 "곳"으로 알아보고, "-칸"이라고 읽히면 "칸"이나 "칸살"을 나타내는 말로 알아보시면 되겠습니다.

 

한자 '間'은 본디 '閒'으로 적었는데 비슷한 뜻으로 쓰던 '閑'과 혼동을 일으키자, 문 사이에 '달月' 대신 '해日'를 넣어 쓰기 시작한 글자입니다. 밤에 문틈으로 들어오는 달빛이 낮에 문틈으로 들어오는 햇빛보다 문에 틈새가 있는지 없는지 알기 쉬웠을 것입니다. 그래서 아직 한자 '閒'을 틈, 사이, 뜻으로 쓰고 있을 때, 우리가 한자에는 없던 間을 곳, 장소 또는 칸살(오늘날의 방의 의미)을 나타내는 이두자로 썼을지도 모르지요. 앞으로 이런 비슷한 용례, 즉 새로 한자처럼 생긴 글자를 만든다거나, 한자를 그대로 가져 오지만 한자와는 전혀 다른 뜻의 우리말을 나타내는 이두자들을 "우리말 찾기-집에서 사라진 우리말들"에서 많이 보시게 됩니다. 문제는 그 이두자를 어떻게 읽느냐 하는 것입니다. 바로 앞에서의 '칸'과 '깐'으로 읽는 경우가 하나는 한자로 읽고 하나는 이두자로 읽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정리해 두고 나니 "작은 오막살이 집"이란 뜻의 "삼간초가三間草家"라는 말의 "間"이 무슨 뜻인지 확실해집니다.  "草家三間"은 우리말인 "세 칸 이엉집"을 '三', '草', '家'는 뜻을 빌리고訓借字,  '間'은 우리말 '칸'의 소리를 옮겨 적은音借字 것이었네요.  그래서 이 말 속에 든 '間'이 '칸'을 뜻하지 '-깐'을 뜻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덤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이 세 칸의 공간을 그 기능에 따라 따로 따로 부를 때에는 부엌間(깐), 아랫間(깐), 윗間(깐)이라 부르기 때문에 헷갈릴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원고지 한 칸이나, 옆으로 길게 난 네모 빈 칸이나, 엑셀에서 한칸의 크기는 우리가 임의로 필요에 따라 정하면 되지만 집채에서 이야기 하거나 세 칸짜리 집이라고 말할 때의 한 칸은 도대체 그 크기가 얼마나 되는가요? 위에서 '칸'은 평면적인 것, '칸(살)'은 입체적인 것이라 했는데,  비록 차원의 차수는 하나 줄긴 하지만 크기에서도 비슷한 이치가 적용됩니다. 기둥과 기둥 사이의 길이로 한 칸은 한 발이나 한 길 즉 6자 1,8m입니다. 바꾸어 말해, 한 칸의 크기는 1차원적인 길이를 나타냅니다. 그러므로 네 개의 기둥으로 둘러싸인 한 칸(살)은 2차원적인 평면의 크기, 즉 넓이를 나타내기에 사방 여섯 자尺인 한 평坪을 가르키겠지요. 그런데 불행하게도, 어느 도량형표를 보아도 한 칸살의 넓이는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왠 일입니까? 골치 아프네요.

 

 옛날에 지은 집들을 이야기 할 때, 옛 도량형에 대해 아주 잘 아는 사람들끼리라서 그런지 사람들은 정면 몇 칸 측면 몇 칸 하는 식으로 그 집의 크기를 말하면서, 꼭 그래야 스스로 뭐가 있는 것처럼 자신이 생기는지 시침을 뚝 떼고 더 이상 구체적으로 그 칸들의 길이를 말하지 않습니다. 얼마나 대단한 비밀인지 모르나, 그런 집의 정면 한 칸이 몇 자인지 측면 한 칸이 몇 자인지 가르쳐 주는 데 정말 너무 인색합니다. 민간이 지은 큰 집 소위 아흔아홉 칸짜리 집이라면 조금 골치 아파 여러 말 하는 것이 귀찮을 수도 있겠지만, 절집이나 근정전 같은 궐집은 평면도 단순하고 거의 대칭으로 놓였기 때문에 말하기도 쉬울 텐데, 그래도 끝까지 구체적인 숫자를 말하지 않더라고요. 말이 났으니 경복궁의 근정전을 한번 보겠습니다. 물론 지금 복원되어 있는 근정전입니다. 정면 5칸 측면 5칸 모두 25칸짜리 집입니다. 보통의 많은 자료는 여기까지만 설명합니다. 그런데 제법 전문적인 책을 보고 알아낸 것이 정면 5칸의 길이는 100자 정도 되고, 측면 5칸은 70자 정도 라는 것입니다. (전체 길이만 표시 했는데, 그나마 표시된 단위가 미터법이어서 그냥 30으로 나누었는데 약간의 차이는 나겠지요?) 쉬운 대로, 앞옆의 칸들이 똑같이 나누어졌다고 보면, 정면 한 칸은 20자 정도이고, 측면 한 칸은 14자 정도로 한칸살이 280제곱자, 7.78평 쯤 되며, 그래서 전체 25칸은 7,000제곱자 194.4평 정도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한 칸살이 한 평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나 넓다니 놀라운 일입니다.

(그런데 이런 간단한 자료가 왜 건물마다 붙어 있지 않나요? 설마하니 지금 국가 유물 일급비밀을 누설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요?)

(경복궁 근정전은 25칸이기는 한데, 위에서 대충 그러려니 했던 것과는 달리 칸이 모두 같지는 않았습니다. 정면 도리통道里通 5칸은 왼西쪽에서부터 서퇴西退 17자, 왼쪽 협칸左挾間 21자, 임금칸御間 22자, 오른쪽 협칸 21자, 동퇴 17자, 총 98자이고 측면 양통樑通 5칸은 앞에서부터 앞퇴前退 17자, 앞칸前間 11자, 임금칸御間 11자, 뒷칸後間 11자, 뒷퇴後退 17자로 합이 67자입니다.)

(양통樑通, 도리통道里通에서 梁,樑은 한자, 도리는 차자이니 그대로 읽으면 되고, 퇴退에 대해서는 따로 설명해야 할 정도로 집채의 중요한 부분이라 뒤에 따로 한 편으로 묶어 더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조선의 왕이 국가 주요 행사를 주재하는 전각의 바닥이 겨우 200평도 되지 않다니!

그런데도 불구하고, 기단을 쌓고 그 위에 올려 지은 중층의 전각을 한번 보시라! 

중층으로 하늘로 뻗되 하늘을 찌르지 않고, 부연까지 얹은 긴 처마와 추녀로 땅을 덮되 땅을 누르지 않는,

위엄 있으나 온화한 그리고 무엇보다 활짝 열리고 툭 트인 경복궁의 근정전을 한번 보시라!

부여온조가 보았다면 정말 '검이불루儉以不陋검소하나 누추하지 않고 화이불치華以不侈화려하나 사치스럽지 않다'고 할 것입니다.)

 

 

전에 한번 어떤 가수가 100평이나 되는 집에서 산다고 들었습니다. 그 집이 바깥으로부터 갖혀 있는 것은 그가 원하는 바이겠지만, 그 안에 또 얼마나 많은 칸막이가 있어 그 안에서 또 어떻게 갖혀 지내는지는 알지 못합니다. 그 안에서 어떤 사치를부리는지도 모르지요. 요즘은 절집도, 교회당도, 성당도, 또 무슨 신흥종교의 성전들도 그 크기로 위세를 떨칩니다. 갑부들은 갑부들대로 앞다투어 높은 집 짓느라 야단인 것은 바로 집의 크기가 집주인의 위세를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이런 "거대 건물 병"을 'Edifice Complex'라고 부릅니다. 옛날에도 사람들은 집의 크기로 위세를 떨었나 봅니다.  조선이 개국한 뒤, 한양으로 천도하고 경복궁을 지어 위엄를 떨쳤습니다. 왕이 집으로 위엄을 부리자, 이번에는 새로운 왕조에 공을 세운 사람들이 경쟁적으로 그들이 사는 집의 크기로 위세를 부리기 시작했습니다. 왕의 종친들은 물론이고, 고관대작 신흥갑부들이 임금의 집을 기준으로 그것보다는 작게 그리고는 되도록 크게 살림집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집 경쟁이 불붙자, 세종이 신분과 계급에 따라 살림집의 "칸수"를 구분 지어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옛날에도 머리 좋은 사람들이 많이 있었는지 "칸수"는 그대로 지키면서 그 대신 한칸을 넓게 잡아 집을 키웠습니다. 그때도 지금처럼 한칸이 얼마만한 넓이인지 정해져 있지 않았나 봅니다. 할 수 없는 세종이 이번에는 살림집 한칸의 넓이를 사방 8자, 64평방자, 1.78평 정도로 정해 주었습니다.  집을 더 늘일 수 없게 되자, 이번에는 그 사람들이 치장으로 무슨 사치를 부렸는지 일일이 말하지 않겠습니다. 그래봤자, 온갖 사치 부린 끝에 왜란으로 다 태워 먹었기 때문입니다.

 

세종이 정한 칸수와 한 칸의 넓이로 셈을 해보니 제일 위의 자리에 있는 임금의 적자들 소위 대군이라는 수양이나 안평이나 금성은 최고 60칸, 즉 건평이 3840평방자, 106평 남짓이고, 제일 아래 자리에 있는 일반 서민인 장삼이사는 최고로 10칸, 즉 건평 640평방자, 17.8평 정도입니다. 세종이 정한 살림집 크기는 조금씩 변하기는 했어도 큰 줄기는 그대로여서 '세 칸짜리 집'의 크기는 3칸, 즉 192평방자, 5.3평짜리 집입니다. 그러고 보니 고관대작이 지었다는 99칸짜리 집은 세종이 정한 법에서, 대군 60칸, 왕자 50칸, 고관 40칸, 하관 30칸, 서민 10칸을 최대로 보면, 무허가에 불법 건축물이었습니다. 높이 되고 잘만 살면 윤보선의 집처럼 불법 무허가 건축물도 유물이 됩니다. 최고 넓게 지어도 마흔 칸 밖에 지을 수 없는 고관들이 아흔아홉 칸을 지을 수 있었던 까닭은 건축법에 예외조항이 있었기 때문이나, 마흔 칸에서 아흔아홉 칸으로 늘린 것은 그런 예외조항을 오용한 것이라, 치도곤 가운데서 제일 큰 5자 7치에서 칸수 늘인 비율로 늘인 치도곤을 먹여야 될 중죄임에 틀림없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돈 있거나 벼슬이 높으면 법을 어겨도 감옥 안 가도 되고, 장관도 되고, 검찰총장도 되지만, 돈 없는 백두는 시키는 대로 알아서 기는 게 좋습니다. 툴툴거리지 말고 그냥 정해진 대로 다섯평 남짓의 세 칸짜리 집으로 만족한 줄 알아야 행복하게 잘 살 수 있습니다. 다섯 평 남짓의 세 칸짜리 이엉집에도 우리의 목적인 집에서 사라진 우리말들의 흔적이 많아 그들을 찾는 데는 아무 불편이 없을 것이니까요.

 

그래도 너무 너무 좁다고요? 걱정 마세요. 생활의 지혜라는 것이 있습니다. 세종의 증손자가 왕위에 올랐을 때 이미 법에 융통성이 생겨났는데 정면 8자를 7자로 줄이고 측면 8자를 9자로 늘인 63평방자 한 칸이 등장합니다. 세종은 한 칸을 방 하나로 생각하고 사방 여덟 자를 주었지만, 큰 것 좋아하는 사람들이 볼 때, 두 칸이나 세 칸을 방 하나로 쓸 경우 '8자x16자' 두 칸짜리 방보다 9자x14자 두 칸짜리 방이 훨씬 효율적이지 않았겠습니까? 세종이 정한 64평자보다 오히려 1평방자나 작아 법을 어기지 않고도 공간을 더 효율적으로 쓸 수 있어 자연스레 바뀐 겁니다. 그리고 또 세월이 흘러, 요사이 아파트 베란다가 건축면적에는 들어가지 않지만, 집안으로 끌어들여 방으로 넓혀도 좋다고 허락되었듯이, 처마 아래 앞뒤에 석 자 반이나 넉 자를 소위 툇마루라며 달아내어 사용해도 좋도록 되었기 때문에 한칸이 생각보다는 넓어졌습니다. 기와집 대청을 세 칸짜리로 만들 경우, 세종 당시 법으로 하면 24자에 8자 마루라 너무 옆으로만 길지 않습니까? 성종 무렵 쯤에는 21자나 18자에 9자로 지을 수 있었고, 왜란 후에 불에 탄 집들을 다시 지을 무렵에는 앞뒤로 적어도 4자씩 툇칸을 늘릴 수 있어 24자에 16자나 되는 마루가 가능했지요. 물론 이런 이야기는 세종이 정한 칸살 사방 8자를 기본으로 해서 나온 것이고, 실제로 살림집을 지을 때는 공간의 용도에 따라 칸살의 크기를 늘이기도 줄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세종이 정한 전체 칸수를 넘기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앞뒤 양옆으로 넉 자씩 여덟 자가 늘면 세종이 정한 법보다 두 배 넘게 지을 수 있다는 얘긴데, 그래서 99칸 이야기가 나온 것일까요? 집을 여러 채로 나누어 지으면 양옆으로도 붙으니 간단히 99칸 채우겠네요. 그냥 베란다 쯤 되나 보다 했는데, "퇴"가 아주 요상한 공간이네요. 이름이 퇴라 어느 구석에 달아 내는 줄 알았는데 집을 삥 두를 수 있다니. 더구나 근정전에도 집의 바닥을 삥삥 둘러 쳐져 있으니 도대체 퇴는 무슨 농간이며 퇴칸은 무엇입니까? 우리말인가요? 아니면 한자말인가요?  그렇다면, 한자를 아는 중국 이나 일본 사람도 알아 듣는 말입니까? 어쨌든 바로 앞에서 말한 살람집의 넉 자짜리 툇마루와 같은 말이겠지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이야기가 제법 진행되어 집 짓는 데 들어가는 나무 공부도 좀하고, 집의 뼈대가 어떻게 세워지는지 등을 어느 정도 알고 나서, 즉 퇴가 집의 뼈대나 공간 배치에서 어떤 일을 맡아 보는지를 충분히 알고 나서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또 그 말이 우리말인지 한자말인지 따져 보도록 하겠습니다. 차후 이야기 중 우리말 찾기-집에서 사라진 우리말들(퇴)에서 자연스레 대답이 나올 것입니다.)

 

이제 한 칸살의 크기가 얼마인지 알았으니, 이 작은 세 칸을 늘어 놓아 보아야 하는데, 엎어치나 메치나 세 칸 가지고 무슨 놀음을 하겠습니까? 방법은 한 줄로 늘어 놓거나 혹은 기역자로 늘어 놓는 수 밖에 없는 게 뻔히 보이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한 줄로 놓는 것이 가장 효율적입니다. 그 이유는 여러분이 한번 살펴 주십시요. (기역자일 때 지붕이 어떤 모양일지 상상해 보세요. 복잡한 거 이거 돈 많이 들고 성가십니다.)

 

제법 장황하게 칸과 칸살에 대해 알아보는 동안, 이제 세 칸짜리 이엉집은 사방 8자, 세 칸 192평방자, 툇마루 끼워 6평 남짓한 일자一字집으로 자연스레 정해졌습니다. 지금부터는 이 집을, 즉 이 세 칸을 어떻게 쓸 것인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좁은 공간을 넓게 쓰기 위해서는 어느 구석이든 그 자리를 다목적용으로 쓰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염두에 두면서요.

 

 

다음, "우리말 찾기-집에서 사라진 우리말들(방)"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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