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사라진 우리말

방房

병든소 2012. 4. 20. 21:58

3.  방房

 

세 칸짜리 이엉집이 얼마나 작은지 알아봐 놓고도, 좁지만 그래도 사람들이 옛날부터 오랫동안 그런 집에서 살아왔으니까, 모름지기 집이라면 꼭 있어야 하는 세 가지의 중요한 구성, 방은 몇 개나 있는지 부엌은 붙어 있는지 따로 떨어져서 있는지 뒷간이라는 변소는 정말 뒤에 있는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는데, 어차피 옛사람들이 살아왔던 그대로 남은 집이라야 '집에서 사라진 우리말'을 찾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에 그랬고, 겨우 세 칸짜리 집을 가지고 옛부터 그 많은 사람들이 몇 천 년에 걸쳐 살며, 얼마나 잘 정리해 두었겠나 싶기도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말이 나온 김에 우리가 들여다볼 세 칸짜리 이엉집을 옛날에 사람들이 나누어 살던 그대로 한번 나누어보겠습니다. 세 칸을 한 줄로 세운다고(ㅡ字집입니다) 정했기 때문에 그 세 칸을 앞에서 보았을 때(물론 그 앞前面이 앞南向이면 제일 좋습니다) 왼西쪽에서 첫 번째 칸에 부엌을 두고 거기서 오른東쪽으로 차례로 한 칸에 방 하나씩 두 칸에 방 두 칸이 있습니다. 사라진 우리말을 찾아보고자 하는 집이 고대광실의 99칸도 아니고 대궐집도 아니고 산중의 커다란 절집도 아닌 서민들의 아담한 세 칸짜리 이엉집이라 구성이 참 간단하고 쉽네요. 작은 것이 아름답다기보다 그 속을 들여다보기가 아주 쉽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해서 이번에는 부엌과 방의 배치도 모두 알아보았습니다. 이와는 달리 요즘 사람들은 집을 볼 때 식구들의 구성에 따라 방을 몇 개나 쓸 것이며, 그 방들이 어떻게 서로 불편하지 않게 놓여 있고, 방들이 어떻게 서로 연결되어 있나를 눈여겨 봅니다. 그리고 자연스레 누가 어떤 방을 쓸 것인가, 어떤 크기의 방을 어떤 용도로 쓸 것인가를 따져가며 집 전체를 파악합니다. 다시 말해, 이제 사람들은 칸수가 아니라 방의 크기나 갯수로 살 집의 크기를 어림잡아 봅니다. (사실 집을 이렇게 따지다 보면 살 집이 99칸에 가까워지기 때문에 그래서 쓸 수 있는 돈과 상의도 해야 하기 때문에 아주 골치 아파집니다.) 이렇게 옛날의 세 칸짜리 이엉집과 오늘날의 공동주택이나 단독주택을 비교하다 보면 요즘 사람들은 모두들 "칸"이란 말과 개념을 죄다 잊어버리고 "방"이란 말과 개념만 쓰고 있는 것 같습니다만, 사람들은 의외로 자주 "칸"을 "방"과 무심하게 붙여 씁니다. "칸"이란 말과 개념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부지불식 간에) 그냥 옛날부터 전해져 내려와 우리의 일상 용어로 그냥 입에 붙었기 때문이지요.

 

"애들 공부방 한 칸은 크기가 얼마면 좋을까?"라 했을 때, "공부방 한 칸"의 "한 칸"은 "한 칸짜리 방"이 아니라, "방 하나"의 의미로 쓴 것입니다. 쓸데없이 여러 칸 나누지 말고 큰 방 하나로 해"라고 통 크게 나오시는 갑부의 자신감 속에 든 "여러 칸 나누지 말고"는 그 칸수를 구체적으로 떠올리며 한 말이 아니고, "칸"을 작은 방으로 보고 "작은 방 여럿으로 나누지 말고"의 뜻으로 말한 것입니다. "지상에서의 방 한 칸"이란 말에서 "방 한 칸"은 "한 칸짜리 방"이라기보다 "작은 방 하나"를 뜻합니다.  "결혼한다 해도 당장은 단칸방에 세들어 살 수밖에 없어"라고 한숨 짓는 결혼을 앞 둔 한 젊은이의 신세 한탄 속에 담긴 "단칸방"이란 말도 그 넓이(8자x8자, 2.4mx2.4m)를 구체적으로 떠올리며 한 말이 아니고, 단지 "부엌도 딸리지 않은 작은 방 달랑 하나"를 가슴 아파하며 하는 말입니다. 물론 그 옛날에도 이렇게 "칸"이란 말이 "방"과 같이 따라다니는 말이긴 했어도 요즘처럼 "칸"을 "작은 방"이라는 뜻으로 쓴 것 같지는 않습니다. "방 한 칸"이나 "단칸방"처럼 "한 칸"이 "방 하나"이고 "방 하나"가 "한 칸"이던 시절에는 또 그런 집에 살던 사람들에게는 "한 칸"이나 "방 하나"나 서로 다를 것 없었을 것이고, 너나 나나 그런 "한 칸 방"에 살았었기 때문에 "한 칸 방"이 "크다" "작다"라는 비교의 대상이 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기와집에 살던 사람들도 그 속에서 살다 보면 비록 칸살이 좀 크다 해도 좁다는 느낌은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즘 사람들이 방을 이야기 할 때 붙여 쓰는 "칸"이란 말은, 부지불식 간에 "방"이란 뜻으로 "방"을 강조해서 하는 말이기보다는 그 말을 쓴 뒤의 앞뒤 문맥으로 보아 "아주 작은 방"이라는 또는 "아주 작다"라는 새로운 뜻으로, 거기다가 그런 뜻으로 쓰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무심코 쓰는 것처럼 보입니다. 결국 "칸(살)"의 본디의 뜻은 완전히 사그라들고, "칸(살)" 대신 막힌 공간이라는 개념만 있는 "방房"이 차지했습니다.

 

이렇게 칸을 누르고 그 자리를 차지한 방房은 어떤 뜻의 말일까요?

방은 첫 째, 작은 살림집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방房은 주로 房子fangzi 또는 房屋fangwu 등으로 房에 子나 屋을 덧붙여 쓰는데, 이 말은 중국의 보통 살림집을 이르는 말입니다. 그래서 훈몽자회에는 여러가지 집들의 종류를 한자로 어떻게 달리 부르는가를 가르치면서, 房을 그 한 가지로 소개하여 "집 房방"이라고 적었습니다.  방은 둘 째, 집채房子 안에 있는 칸막이로 가둔 작은 공간을 가리키는데, 보통 방칸房間fangjian, 줄여서 그냥 "방"이라 부릅니다. 그래서 신증유합에는 방을 집 안의 여러 공간들을 가르치면서 그 한 가지로 소개하여, 房을 "방 房"자라고 적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에는 훈몽자회에 적은 대로 '방'을 '집'의 뜻으로는 거의 쓰지 않고, 주로 신증유합의 '칸막이로 된 작은 공간'의 뜻으로 씁니다. 중국에서는 본디 자기 말이니까 그런지 주로 '집'이란 뜻으로 많이 쓰고, 후자의 뜻으로는 '실室shi'을 더 많이 씁니다. 그리고 일본에서는 집을 가리키며 '房'이란 말은 거의 쓰지 않고, '房heya'는 주로 집 안의 작은 공간을 나타내는 말로 방을 間ma와 室sitsu란 말과 함께 쓰고 있습니다.

 

이야기가 길어졌습니다만 하여튼 간에, 앞에서 칸살에 대해 이야기 할 때, 그 칸살의 개념 속에는 방이라는 개념이 조금도 따로 놀지 않았다는 것을 기억하시는지요? 왜냐하면 옛사람들에게 "방房"이라는 개념은 단지 "칸"을 질러 막은("칸막이") 공간일 뿐이고, 그런 "칸살"이 곧 방이었기 때문입니다. 방은 집채의 칸을 한칸으로 막아 쓸지 두 칸으로 세 칸으로 막아 쓸지 용도에 따라 정하고 칸을 막으면 될 일이었을 뿐이었습니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해 옛날 "방의 크기"는 일부러 말할 필요가 없을 만큼 용도에 따라 칸수가 일반화 되어 있었고, 이 때문에 일부러 "칸살"을 이야기하면서 따로 또 방을 꺼집어 내어 이야기 할 까닭이 없었습니다. 옛날 사람들은 구태여 방을 말할 것 없이 칸(살)로 방을 생각하며  방을 칸(살)로 이야기했는데, 지금 사람들은 아얘 칸을 말하지도 생각하지도 않고, 바로 방을 말하며 용도를 정하고, 그것에 따라 크기를 정합니다.

 

 

왜 이렇게 천지개벽한 것 같은 사고의 전환이 나타났을까요?  여러가지 이유 가운데 제일 먼저 꼽을 수 있는 것은 집을 짓는 재료의 차이 때문으로 보여집니다. 그 다음은 방이라는 공간을 사용하는 방법, 이를테면 방에 들여놓는 가구의 차이 때문이라고 보여집니다. 긴 말 하지 않아도 아시다시피  옛날에는 대부분 집의 뼈대는 나무로 세웠습니다. 그래서 균질한 재료의 공급과 선택이 자유롭지 못했고, 설사 자유롭게 선택해도 새로운 재료나 치수에 대한 공학의 뒷받침을 경험도 없이 만들어 적용하기 힘들었기 때문에, 새 재료나 치수에 따라 부재의 크기를 정하거나, 나무를 끼워 세우는(結構) 새로운 기술을 적용할 엄두를 내지 못하였습니다.

(앞의 글에서 절집이나 궁궐 같은 집을 말할 때, 정면 몇 칸, 측면 몇 칸이라며 한칸의 크기를 말하는 데 인색하다고 꼬집었는데,  그런 이유가 도목수들의 기술이라는 것이 누가 해 본 것을 비밀스럽게 간직하고 전하는 수준이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그 한 예로, 명조明朝에 지금 북경 자금성 복판 자리에 우리의 경복궁의 근정전이나 창덕궁의 인정전에 해당하는 정전正殿인 태화전을 지었는데, 지은지 얼마되지 않아 불에 타 버렸지요. 그런데 그 태화전을 한 세대가 지나고, 거의 두 세대에 이르러 새로운 재주 있는 도목수가 나타나 옛날의 모든 기술을 다시 모으고, 그 기술들을 다시 습득할 때까지 중건할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불이 난 다음에는 처음 태화전을 지었던 도목수가 죽고 없었거든요.)

 

지금은 균질의 철근과 콘크리트가 공학적 뒷받침을 받아 얼마든지 자유롭게 선택되고 공급된다는 것을 모두가 다 압니다. 긴 말을 하지 않아도 그 다음 가구家具라는 이유에 대해서는 요즘 방에 들여 놓은 침대, 소파며 식탁 책상 등등을 생각해 보시면 아실 것입니다. 가구의 취향에 따라 방 크기를 원하는 대로 정하기만 하면, 공사하는 사람들이 아무 어려움 없이(드는 돈이 약간 다르긴 합니다만) 얼마든지 원하시는 방을 만들어 드립니다. 집을 지을 때 나무의 길이에 의존했던, 한칸이니 두 칸이니 정면 8자니 7자니 측면 8자니 9자 따위는 아무런 의미가 없어졌습니다. 그래서 곧 "방"은 "칸"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졌습니다. "칸"이 "방"의 크기를 제약하던 시절이 끝난 것입니다. 사람들은 우리말 "칸"이 한자어 "방"의 뜻으로 쓰인 사실도 자유롭게 털어냈습니다. 이리하여 "칸(살)"이란 말은 "방房"에게 맡기고, 집에서 사라진 우리말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칸"과는 달리 정해진 크기의 개념이 없는 "방"은 요즘 사람들에게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의 공간일까요?  요즘 사람들에게 방은 제일 먼저 독립을 의미한다고 여겨집니다. 부부는 그들만의 안방(내실, 부부침실이라고 부르더군요)을,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그들만의 방을 공부를 핑계로 원합니다. 독립된 공간을 확보하면 그 공간 안에서는 자유롭습니다. 간섭 받지 않고 감시를 벗어나 자기 마음대로 지낼 수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런 독립과 자유를 얻으면, 보나 마나 좋은 말로, 부부는 편안한 휴식을 취할 것이고, 아이들은 집중도를 높여 공부할 것입니다. 방이 이런 독립과 자유를 보장합니다. 왜냐고요? 간단한 이유 때문입니다. 닫혀서 가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독립과 자유의 속성은 닫는 것이고 가리는 것입니다. (열리고 걷혀 발가벗은 독립과 자유의 최고 수준을 전제군주에게서나 히틀러에게서 많이 봅니다)  그렇습니다. 방은 밀폐된 공간을 말합니다. 바닥은 대자리나 장판壯版이 막았고, 사방은 칸막이나 벽壁으로 둘렀으며, 보꾹이나 반자나 천장天障이 머리 위를 덮었지요. 바깥과는 문門과 창窓으로 통합니다만, 밖으로 통하는 그 문과 창도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갇힌 공간 안에서 열고 닫는 것을 결정하도록 되어 있어, 바깥에 있는 사람이 방으로 들어가고 싶으면 신호를 보내어 열어도 좋은지 들어갈 수 있겠는지를 안에 있는 사람에게 물어야 합니다. 방이라는 밀폐된 공간이 자기만의 세상을 만들어 주고, 이것이 사람들이 칸을 버리고 방을 찾은 이유이고, 이것이 방이란 공간의 의미입니다.

 

 

옛날 사람이라고 해서 왜 이런 공간이 필요하지 않았겠습니까? 왜 좋아하지 않았겠습니까? 단칸의 움집에서 99칸의 고래등 같은 기와집으로 옮겨간 역사가 바로 방에서 얻는 독립과 자유의 역사입니다. 단칸의 움집은 그 작은 공간에서 온 가족이 같이 밥하고 먹고 자고 쉽니다. "칸"은 열린 공간의 유물입니다. 앞의 글 "우리말 찾기-집에서 사라진 우리말들(칸살)"에서 "네 기둥의 안"이라 말씀드릴 때, 이미 그 공간은 열려 있었습니다. 단칸의 움막이 세 칸으로 늘어나자 가족 사이임에도 각각 칸을 막아 그 열린 공간을 닫기 시작합니다. 독립과 자유를 위하여.

(그런데 독립獨立이나 자유自由라는 한자말의 우리말은 무엇입니까? 한자말을 푼 '홀로서기'가 '독립'이면 자유는 어떻게 풀어야 하나요?) 

(여진이나 함경도에서 집을 효율적으로 덥히기 위해 정주깐(부엌)과 이어진 방을 막지 않고 두 공간으로 나누어 쓴 예가 있기도 합니다만, 사람들은 이제 칸막이로 나누어진 이 세 칸의 공간을 부엌깐間(아궁이), 아랫깐間(아궁이쪽, 아랫목), 윗깐間(굴뚝쪽, 윗목)으로 불렀습니다. 그리고 말이 진화하여 열린 공간은 '무슨 깐'(부엌깐..)으로 그냥 남고, 닫힌 공간은 '방'(아랫방이나 윗방 ..)이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칸'은 표준말이 되었고, '깐'은 아직 표준말이 아닙니다만, 깐으로 읽힐 때는 방이란 뜻을 강조하기 위해 씁니다)

 

'방'이라는 한자말이 독립과 자유를 방안으로 들여오자, 방에 딸린 한자말들이 같이 따라옵니다. 장판과 벽과 천장과 문과 창이 그것들입니다. 이들은 마음대로 넣었다 뺐다 하는 가구가 아니라, 집을 지을 때 집채의 뼈대와 같이 짓는 집을 이루는 중요한 부분들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마치 방이란 한자말이 들어오기 전의 옛날 집에는 장판도 벽도 천장도 문도 창도 없었다는 듯이 이것들을 우리말 대신 한자말로 채웠습니다.

(기대해 주세요. "우리말 찾기-집에서 사라진 우리말들"이 이들이 우리말인지, 한자말이라면 사라진 우리말이 무엇인지 계속 따져 갑니다.)

 

우리말을 적을 우리 글자가 없었다는 이유로 우리 문화가 없었다거나, 그 문화의 발전이 없었다고 부정하지는 못합니다. 마찬가지로 적을 글이 없어 적혀 있지 않은 문화나, 그 문화의 발전을 있었다고 증명하기도 거의 무망해 보입니다. 우리의 문자가 없는 어려운 가운데 한자를 꾸어다  우리의 말과 이야기를 적어 보려고 애쓴 일은 그나마 고마운 일이었고 정말로 좋은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처음 한자를 빌려 쓸 때만 해도 우리말 그대로를 한자로 바꾸어 적으려 노력했지만(문화가 그 말 안에 있으니까), 그래서 빌린 한자의 글자도 획수가 작고, 많은 사람이 쓰는 빈도수가 높은 것으로 골라서 적었지만, 한자를 해득하는 사람들이 늘고, 소리를 옮겨 적어도 읽는 것이 우리말과 똑같지도 않아(이미 한자 문화가 대세였으니까), 점점 뜻을 빌려 적거나 아예 한자어로 바로 바꾸어 쓰면서부터, 문화의 발전에 따라 생기는 새로운 사물이나 개념에 대한 새로운 우리말을 만들 기회도 놓치고, 쓰던 말도 죽어 갔습니다. 반드시 글로 적지 않았어도 사람들이 우리 나름의 문화를 만들고 가꾸어 갈 수 있었다는 것은 우리가 쓰는 말의 낱말들을 보면 알 수가 있는데, 우리 문화가 어떻게 발전했는가를 증명할 수 있는 유력한 증거인 말이 문화의 발전과 함께 새로이 생겨난 사물이나 개념들이 늘어난 만큼 점점 더 늘어야 했는데도, 중국 글을 빌려 쓰는 동안 그 글을 쓰는 사람들의 말을 그대로 옮겨 쓰고 적음으로써 우리말이 늘어나기는 커녕 쓰고 있던 말조차 한자말로 바꾸어 쓰자, 우리말은 오히려 잊혀지거나 사라져갔습니다. 한자말이 우리말로 자리잡기 시작한 것입니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서, 그것이 "-칸"이든 "-깐"이든 간에 우리말 소리대로 적은 한자 "間"의 경우에는 그것을 무슨 뜻으로 적었는지 시비라도 걸어 볼 수 있겠는데, "칸"이나 "깐" 대신 "房"이란 한자를 쓰면서는 이전에 우리나라 집에는 "방"이 없었던 것으로 판단될 뿐만 아니라, "방"에서밀려난 "칸살"이나 "-깐"이 제각기 그 뜻이 방의 크기나 재는 말로, 아니면 마치 "방"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말인 것처럼 집채의 바깥으로 나서 뒷간이나 부엌간에 붙어 연명하고, 더 밖으로 나가서 대장간, 방아간 등으로 아예 집 밖에 나간 "깐"들만 여태 살아 남게 되었습니다. "방"과 "칸" 또는 "깐"의 이별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제는 "칸"이나 "깐"에게 너도 왕년에는 "방"과 같은 말이었다며 "방"을 뜻하는 "칸", "깐"으로 다시 불러 오기 힘들게 되고 만 것이지요.

 

이상으로 집채의 공간 구성에 대한 공부가 끝났으니 다음 차례는 집채의 얼개 구조인 뼈대를 가리키는 말들에 대해 공부하려 합니다. "집에서 사라진 우리말찾기"에서 '들어가는 말'이나 '머릿말'로서는 집의 종류를 말한 "초가", 집의 크기를 말한 "칸살", 집채에서 공간의 사용을 말하는 "방", 이 셋으로 충분합니다. "초가"로 집 이야기, "칸살"로 집을 나눈 이야기, "방"으로 집의 최종 목표를 말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음, "우리말 찾기-집에서 사라진 우리말들(주춧돌)"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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