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사라진 우리말

초가草家

병든소 2012. 4. 20. 19:41

1. 초가草家 - 이엉집

 

요즈음은 벌이도 많고 살기가 좋아져서 그런지 새로 옛날식의 기와집瓦家,瓦屋을 짓고 사는 사람들이 제법 많이 생겼습니다. 그 옛날에도 기와집을 짓고 사는 데는 돈이 많이 들어, 큰 벌을 낀 마을이라 해도 기와집은 겨우 한두 채 정도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농사가 수백 석 이상 되는 사람이 아니라면 기와집을 짓고 들어가 살 수 없었지요. 그 옛날보다 훨씬 잘살게 되었다는 요즈음에도 사실 기와집은 짓는 비용이 아주 많이 드는 집 중에 하나입니다. 벽돌이나 콘크리트나 시멘트를 사용해서 짓는 집은 나무를 사용해서 짓는 집보다 돈이 반도 들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굳이 비용이 많이 드는 기와집을 짓고 살겠다는 까닭은 늘어난 옛날 우리 것들에 대한 선호가 생활에 여유가 생긴 사람들을 중심으로 조금씩 그 영역을 넓혀 오다가 기와집에까지 이른 것이 아닌가 여겨집니다. 그래서 그런지 "한옥韓屋"이라는 한자말을 붙여 놓고 그런 "한옥"을 "스스로 짓는 법(DIY)"을 가르치는 "한옥 학교"라는 것도 생겼습니다. 스스로 지으면 비싸지 않게 한옥을 지어 살 수 있다고 선전하더군요. 그래도 기와집을 짓는 데는 돈도 시간도 많이 들어 대단히 비쌉니다. 그러다 보니 나무를 싼 것으로 써서 온 집이 옹이 자국으로 신경 거슬리게 하는 집도 생겼습니다. 모르지요 집주인은 그것이 장식이라고 보는지도. 어쨌든 이렇게 싼 나무를 써서 지은 집도 벽돌집이나 콘크리트집보다 비용이 더 들어갑니다. 물론 이 말은 어떤 집을 짓고, 그 집의 공간을 꾸미고 채우는 데 드는 돈은 빼고 드리는 말씀입니다. 집을 꾸미고 채우는 데 드는 돈은 그 집에 들어가 사는 사람의 취향에 따라서 천태만상이라 서로 비교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옛날식 기와집을 짓는 사람들이 늘면서 생긴 새로운 현상 하나가 그런 '기와집'을 '한옥'이라 부르는 것입니다. 한옥韓屋이란 말은 한국 사람들이 사는 집을 가리키는 말일 테고, 다른 나라의 집들과 다른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 집을 가리키는 말일 것이니, 적어도 서양이나 중국이나 일본이나 아니면 또 다른 나라 사람들은 우리와 다른 형태의 집에서 산다는 사실을 알고 난 다음에야 생긴 말이겠지요. 실제로, "양옥洋屋"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재료나 모양으로 짓는 집이 나타나기 전에도 사람들은 중국이나 일본에서 우리와는 다른 재료나 모양으로 집을 짓고 산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구태여 우리들이 사는 집을 "한옥"이라고 이름 붙이지는 않았습니다. 물론 중국 사람들이 짓고 사는 집, 일본 사람들이 짓고 사는 집도 따로 이름을 붙여 부르지 않았고요. 그저 기와집, 초가집, 너와집, 움집, 띠집, 흙집, 돌집, 흙돌집,.... 등으로 일일이 집의 생김새나 재료에 따라 붙인 집 이름으로 불렀을 뿐입니다. 서양 사람들이 입는 옷을 '양복'이라 부르자 상대적으로 우리가 입던 치마, 바지, 저고리, 마고자, 두루마기, 따위를 통털어 한복이라 부른 사정을 생각하면, "양옥"이란 이름의 집을 짓고 살게 되자 상대적으로 옛부터 전통적으로 짓고 살던 집을 "한옥"이라 부르는 저간의 사정은 이해가 갑니다만 요즘은 이 "한옥"이란 말이 우리 조상들이 여러 재료를 가지고 여러 형태로 짓고 살던 집들을 통털어 이르는 말이 아니라, 단지 "옛날의 전통 기와집"을 가리키는 말로 변질되고 있는 점에 특별히 유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음악은 좀 다릅니다. 서양음악을 양악이라고 부르는 것까지는 같은데, 우리의 전통 음악은 한악이 아니라 국악이라고 부릅니다.)

 

 

어릴 때만 해도 부잣집을 나타내던 말이 "이층 양옥"이었던 걸 생각하면, 궐집도 아니고 절집도 아닌 살림집인데 이층에 큰 유리창이 달린 집을 보고 많이 신기해 했을 것 같습니다. 이런 "이층 양옥"이란 이름의 집은 그 재료나 모양이 우리가 평소 보던 집들과 너무나 달라, 사람들이 절대 양기와洋瓦를 올렸다고 '양洋기와집', 콘크리트 슬라브의 평지붕이라고 '슬라브지붕집' 따위로 일부러 따로 구분해 부를 필요도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중국 사람들이나 일본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자기가 살던 곳의 집을 그대로 본 따 짓고 산 것 같지도 않은 것이, 지금까지 한옥과 구별하여 붙인 "무슨옥', 즉 중국을 가리키던 中, 華, 胡, 일본을 가리키던 倭, 和 등을 넣은 말이 없는 걸 보아 알 수 있지요. "중옥重옥', '왜옥矮屋'이란 말은 '이층집', '낮고 작은 집'으로 집의 모양을 나타낸 한자말일 뿐이고 나라의 이름을 따서 붙인 집채 이름은 "한옥" 뿐이네요. 결국, "한옥"이란 말은 우리나라에 서양식 집이 새로 지어져서 사람들이 그 집을 "양옥"이라고 부르기 시작한 이후에 양옥에 대응하여 만들어진 말이기는 한데, 그렇다고 처음부터 한옥이라 그랬던 것은 아니고, 처음 집의 재료와 모양이 우리나라에 있던 집들과 다른 집들이 지어지자 그런 집들에 대해서는 비록 "양옥"이라 이름 붙여 부르긴 했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이 살던 집에 대해서는 따로 한옥이라 따로 이름 짓지 않고 그냥 부르던 대로 '기와집'이니 '초가집'이니 부르고 지냈는데, 어느 틈에 그런 기와집들과 초가집들이 사라지고, 다시 말해 전란 통에 새로 지은 집들 거의 모두가 양옥이었고, 그나마 살아 남았던 집들은 새마을 운동하면서 그 모습을 양옥 비슷하게 바꾸어 가다가, 드디어 아파트가 들어서고 나서는 아예 양옥이란 말도 없어졌고, 그러다가 사람들이 살기가 나아져서 절집이나 궐집들을 복원하기 시작하고, 그래서 사람들이 새롭게 옛날의 전통 기와집을 선호하는 바람이 불자 그런 집들이 '한옥"이란 이름으로 우리 입에 오르내리게 된 것입니다.

 

집들을 구별할 때 '목조집', '벽돌집', '시멘트집' 등 집 뼈대의 재료로 나누기도 하지만, "슬라브집", "스레트집", "양철집" 등 한결같이 지붕 재료로 집을 구별한 것을 보면 역시 집채에서 으뜸되는 얼굴은 지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집채의 으뜸가는 얼굴이 되는 지붕에서, 비가 오지 않는 건조한 지방의 평지붕과, 이동을 주로 하는 유목민들의 조립식 지붕을 제외하면, '기와'와 '이엉'은 지붕을 이는 방법으로써는 말할 것도 없고, '기와'나 '이엉'을 만드는 재료들의 다양함이 전세계적이기 때문에 지붕을 이는 재료와 방법을 대표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때 "기와"는 한편으로 '흙으로 구워 만든 지붕 재료'를 가리키는 '기와roof tile'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지붕을 이는 흙, 돌, 나무, 쇠, 구리, 납 따위를 비롯한 인공의 모든 "널조각shingle"로 된 재료를 가리키는 말로 쓰이고, "이엉thatch"은 풀을 베어 말린 다음 굵은 줄기 쪽을 한 줌 다발로 묶어 옆으로 계속 엮은 '두루마리roll'를 가리키는데, 이 "이엉"을 만든 재료로는 볏짚, 밀짚, 억새, 띠새, 갈대 따위의 풀이나, 겨릅 같은 줄기나, 야자나무의 잎 같은 것도 쓸 수 있습니다. 그리고 "기와tile,shingle'와 '이엉thatch'은 '지붕을 이는 재료'로서 뿐만 아니라 "지붕을 이는 방법"을 나눌 때에도 대표적인 두 가지를 나타내는 말입니다.

 

 

우리는 집을 구분해서 부를 때 지붕을 인 재료를 보고 크게 "기와집"과 "초가집"으로 나누었는데,  기와집은 와가瓦家 혹은 와옥瓦屋,  초가집은 초가草家 혹은 초옥草屋 또는 모가茅家 혹은 모옥茅屋이라 한자말로 불렀습니다. 그런데 우리말처럼 쓰고 있는 '기와집'이나 '초가집'을 가만히 보니 '집'이란 말은 분명 우리말인데, 그 앞에 붙은 '기와'나 '초가'란 말은 아무리 보아도 한자말로 보입니다. 더군다나 초가집은 '家'와 '집'이 겹쳤습니다. 사람들은 "초가"라는 말을 우리말이라 받아들이지 않듯이, "기와"라는 말도 우리말이라고 쉽게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아마 '기와'의 "와"가 같은 것을 뜻하는 한자 "와瓦", 그리고 "기와를 이다"를 뜻하는 한자말 '개와蓋瓦'라는 말을 연상하기 때문이겠지요. 그리고 이런 의심이 그런대로 합리적이라 생각되는 까닭은 "기와"가 우리말이라는 것을 증명하기가 그리 쉽지 않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더구나 '기와'를 가르키는 옛말인 '디새'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는 더욱 그런 의심이 들겠지요. '기와'가 우리말이냐 아니냐 하는 것에는 여러 논난이 있겠지만, 옛날 사람들이 '기와집'과 '초가집'으로 구별하여 부른 것은 '초가'가 한자말이듯이 '기와'도 한자말이라고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겠습니다. '기와'를 지금의 사전에서 보는 대로 일단 우리말로 싣고 있지만, 옛날 사람들이 본 대로 한자말이라 해도, '기와집'의 우리말은 '디새집'이라고 얼마든지 부를 수 있습니다만, '초가집'은 형편이 그렇지 못합니다. 물론 '초가草家'를 '풀집', '모옥茅屋'을 "띠집"이라 부를 수도 있겠지만, 꼭 장난치는 것 같지 않습니까? 사실 "草초cao"를 우리는 주로 "풀"이란 뜻으로 받아들이지만 중국에서는 "짚"을 가리키는 말로 많이 씁니다. 물론 "풀卉훼hui"이란 일반적인 뜻으로도 많이 쓰지요. 우리가 "짚"을 가리키는 한자말로 "藁gao", "穰rang", "稿gao" 따위를 많이 쓰는 것에 비해 중국은 정작 구체적으로 "짚"이란 말을 하고 싶으면 문어체文語體인 그런 말들보다는 "禾+吉jie"란 말을 주로 씁니다.

 

다시 말해, '초가집'은 굳이 풀이라기보다 짚으로 만든 이엉으로 지붕을 인 집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풀이든 짚이든 띠든 그것들은 이엉을 엮는 재료를 가리키는 말이라, 그런 이엉을 만들어 지붕에 인 집들을 초가집이라 부르고 있는 것이니 초가집의 우리말은 풀이나 짚이거나 띠가 아닌 "이엉집"이라 해야 옳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분명 "이엉집"이라 불러도 아무 문제 없어 보이는 이 말이 사전에 실린 공인된 말은 아닙니다.

 

 

"집에서 사라진 우리말들" 가운데 맨 처음으로 꼽은 말이 "초가집"입니다. 그리고 "초가집"을 가리키는 우리말이 무엇이었는지를 찾는 과정에서 "이엉집"이란 만든 말 이외에, 우리는 사실 한 가지 공인되지 않은 말을 썼습니다. "기와"라는 말을 '흙을 구워 만든 지붕 재료roof tile'라는 본디 뜻 이외에, 거기서 '기와'의 뜻을 넓혀 "기와"가 '지붕을 이는 모든 종류의 "널조각shingle"들을 통틀어 가리킨다고  말했습니다. 물론 이것이 공인된 뜻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앞으로 "초가집"과 같이 이에 해당하는 우리말이 있었는지, 왜 사라졌는지, 또 그랬다면 본디부터 쓰던 말은 무엇이었겠는지를 찾아보다가 정녕 찾을 수 없다면, 한번 새로운 말뜻이나 우리말을 만들어 볼 수도 있지 않겠는가 싶어, "기와"라는 말의 뜻을 넓혀 보기도 하고, "이엉집'이라는 말을 새로 만들어 보기도 하였습니다. "우리말 찾기-집에서 사라진 우리말들"이 처음 넓힌 말뜻과 새로 만든 말이 어떤 근거를 가지고 있는지 지금부터 같이 공부해 나가겠습니다. 그러면 "초가집"의 우리말도 자연히 찾아지겠지요.

 

 

먼저, "기와"를 살펴보겠습니다.

 

('기와'가 한자말이라 생각하시면, 이 글에서 '기와'로 쓴 곳은 모두 우리말 '디새'로 바꿔 읽어도 좋습니다.)  "기와"는 흙으로 날기와를 만들어 말린 다음, 불로 구워 만듭니다. 그 불의 연기로 날기와의 겉을 검고 매끄럽게 만듭니다. (기와를 검게 만드는 이런 방법을 "꺼먹이"라 합니다.) 기와는 비가 새는 것을 막고, 집채의 모양을 내기 위하여 여러가지 조각들로 이루어져 있어 만들기 또한 까다로워 자연히 비용이 많이 듭니다.기본은 암수기와(암수디새)와 암수막새로 되어 있는데, 조금 모양을 내고 멋을 부리고 싶으면 막새의 둥근 내림혀에 당초문도 넣고, 내림새의 반달 내림혀에는 구름 문양도 넣기도 하며, 용마루나 추녀 끝에 도깨비 얼굴도 넣을 수 있지요. 지붕 생긴 모양에 따라서 마무리로 얹는 기와가 열 가지도 더 됩니다. 그래서 이런 기와집은 처음 드는 돈이 많아서 그렇지 한번 이어 놓으면 틈틈이 조금만 손보면 오래 쓸 수 있어 좋습니다.지붕에 얹는 '널조각tile,shingle' 가운데는 위에서 말한 기와 즉 "디새" 뿐만 아니라 '나무 널쪽' 또는 '얇고 넓적한 돌 널쪽'을 가리키는 "너새"도 있습니다. 굴밤나무의 껍데기를 지붕 재료로도 쓰는데, 점잖게 "굴피"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굴피의 '굴'은 굴밤나무를 줄인 말이고, '피皮'는 껍데기를 한자로 바꾸어 줄였습니다. 요즘 사람들이라면 '굴껍'이라고 줄였을 것인데, 옛사람들은 '굴껍'으로 줄이지 않고 '굴피'라고 했네요. 굴밤나무를 가리키는 '橡'을 넣고 '상피橡皮'라 불렀으면 면무식한 '굴피'보다 유식해지는 건데 아깝습니다. 우리말에 '나무 껍데기' 같은 것을리키는 "죽"(거죽, 죽데기, 쭉정이의 죽)이란 말이 있는데도 "죽새"라는 우리말을 만들어 부르지 못했네요. "죽새"란 말도 못 만들고 굴껍이나 죽 대신에 "굴피"라고 부른 사람들이 나무나 돌의 널쪽을 이르는 멀쩡한 우리말 "너새"도 "너와"라고 고쳐 불렀지 않나 싶습니다. 비록 "죽새"라는 말은 만들어 쓰지 못했지만 그들은 우리말 "새"가 "와"와 같은 말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너새"를 "너와"라고도 부른 것입니다. 옛날 사람들이 너와의 "와"를 기와의 "와"처럼 한자말 "瓦"로 여기고 썼을 수도 있지만, 지금의 사전이 그렇다고 하듯 "와"가 정말로 우리말이라 해도, 옛날 사람들은 "새"나 "와"를 '흙으로 구워 만든 지붕 재료roof tile'를 가리키는 말로 보기보다는 '지붕을 이는 "널조각shingle"을 통틀어서 가리키는 말'로 일고 있었다는 좋은 본보기가 되겠습니다. 다시 말해 흙으로 구워 만든 '새'나 '와'는 '디새'나 '디와'이고, 나무나 돌로 만든 널 조각은 '너새'나 '너와'라고 따로 부른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굴피를 죽새로 불렀다면 참 좋았을 것이란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디새"는 "딜(질, 찰흙)"로 만든 "새"(지붕을 이는 널조각)입니다. 그러나 "디새"란 말은 지새로 바뀌어 일부 지방에서 사용되다가 디와라는 말에 눌려 사라지고 디와가 지와로 그리고 기와로 바뀌어진 말로 보입니다. 너새는 널새가 본디말이었을 것입니다. 어떤 곳에서는 너새를 널기와라부르고 있습니다. 통나무를 두 자 정도의 길이로 짜르고, 그것을 두 치 정도의 두께로 쪼갠 널조각으로 지붕을 이고, 바람에 날릴까봐 군데군데 "봇돌"로 눌러 놓은 지붕이 나무너새지붕입니다. 나무너새 대신에 나무 껍데기로 지붕을 이기도 하는데 바로 굴피지붕입니다. 이 굴피지붕에도 봇돌이 올라 앉아 있습니다. 그리고 나무 널조각 대신 그만한 크기에 그만한 두께의 널조각 돌로 인 지붕이 돌너새지붕입니다. 새를 와로 바꾸어 쓴 까닭이 한자 瓦를 의식한 것이 아니라 해도, 기와를 기새라고 하지 않는 것을 보면, "기"가 "디(딜,질)"나 "너(널)"과는 다른 성격의 말인 것은 틀림없어 보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알 수 있는 실마리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기와"가 꼭 우리말이 아니라 한자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또 "새"란 말이 모든 종류의 널조각으로 된 지붕 재료를 가리킬 뿐만 아니라 그것으로 지붕을 이는 방법도 대표적인 한가지로 설명되는 것이라, 이 참에 지붕에 어떤 "널조각roof tile,shingle"을 얹은 집을 가리키는 우리말로 "기와집"을 쓰기보다 우리말임이 분명한 "새瓦"를 살려 "샛瓦집"('새로 지은 집'을 말하는 '새新집'과는 다르게 사이'ㅅ'을 넣습니다)으로 부르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따라서 "샛집"에는 디새를 얹은 "디새집", 너새를 얹은 "너새집", 굴밤나무 껍데기를 얹은 "굴피집" 따위가 있다고 말할 수 있게 됩니다.

 

 

다음, "이엉"을 살펴보겠습니다.

 

앞에서 우리말 "새"가 기와를 가리키는 말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새"는 '볏과의 풀草'을 가리키는 우리말이기도 합니다.  억새, 속새, 나래새 따위처럼 풀의 이름 뒤에 '새'가 붙은 말이 참 많이 있습니다. 움집을 만들어 살 때부터 지붕을 덮거나, 바람벽을 막는 재료들을 통틀어 "새"라고 불렀을까요, 그래서 특별히 지붕 재료로 쓸 수 있는 풀들을 가리켜 무슨 "새"라 불렀고, 그래서 지금은 "새"가 '볏과의 풀들'을 이르는 끝말이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그 많은 "새"가 붙은 이름의 풀들을 모두 다 '지붕을 이는 재료'로 쓰는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억새와  벼(짚도 어떤 곳에서는 짚새라 부르기도 합니다)는 지붕을 이는 대표적인 풀들입니다. 이엉을 만드는 재료 가운데는 갈대나 띠도 있는데 이들의 이름에는 '새'란 끝말이 붙어 있지 않고, 또 겨릅은 종류가 다른 풀인 삼麻줄기이기는 하지만 같은 방법으로 이엉을 만들어 지붕을 이는 것이니, 그냥 갈대나 띠나 겨릅이엉으로 지붕을 인 집도 "샛집"이라 부르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마 옛날 사람들도 이렇게 지붕을 이는 재료를 풀에서 나무로 흙으로 돌로 그리고 흙을 굽고 유약을 바르는 정도로까지 넓혀 왔을 것이거 그래서 처음 지붕을 이던 풀의 '새'란 말이 따라 다니며 지붕을 이는 재료면 그것이 무엇이든 '새'라는 말을 붙였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기와집을 "샛집"이라해도 서로 헷갈릴 일도 없겠습니다. 다만, 아직 '기와'가 한자말이라 단정할 수 없고, 기와가 개와蓋瓦에서 왔는지 또는 너새를 너와로 바꾸었듯이 "기새?"라는 우리말에서 기와로 바꾸어졌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앞에서도 "기와집"을 우리말로 보고 썼습니다.)

 

사실 초가집 지붕을 이는 이엉은 그냥 풀을 베어다 말려 지붕에다 깐 것이 아니고, 볏짚이나 볏짚보다 긴 띠나 억새나 갈대 따위를 한 움큼씩 묶고, 그 묶음들을 옆으로 이어가며 엮어 만듭니다. 앞의 샛집에서 새의 종류에 따라 디새집부터 굴피집까지 나왔듯이, 이 이엉을 만든 재료의 이름을 따서 억새로 만들어 지붕을 이면 억새집, 갈대면 갈집, 띠면 띠집, 볏짚이면 짚새집, 겨릅이면 겨릅집 따위로 속편하게 부른다면,이런 집들을 통틀어 부르는 이름으로, 이엉을 새와 같은 것으로 보고 기와(새)를 얹은 집을 기와(샛)집이라 하듯이, 이엉으로 지붕을 인 집들이니까 모두 "이엉집"으로 불러도 좋지 않겠습니까? 이 이엉 지붕의 맨 꼭대기에 올리는 이엉을 "용마름"이라 하는데, 기와집의 용마루와 같은 것으로 이엉도 제법 기와처럼 부품 이름도 있습니다. (이때 "용"은 상상 속의 동물 용龍이 아니라 높은 곳 솟구친 곳 꼭대기를 뜻하는 우리말 "용"입니다.) 이엉을 이어 지붕을 덮었으니 당연히 옛날 사람들도 "이엉집"이라 불렀을 것 같은데 왜 그런 말이 남지 않고, 초가집이란 말에게 자리를 내어 주었을까요? 

 

'세 칸살'의 "이엉집'을 이름하여 '삼간三間초가(또는 초가삼간)'로 부릅니다만, 그 작은 집 안에서도 "초가"처럼 우리말이 사라지고 한자어가 들어와 있는 것을 봅니다. 그래서 집에서 이번 사라진 우리말들을 찾아나서는 동안은 가급적 초가집을 "이엉집"이라 부르려 합니다.

 

 

다음, "우리말 찾기-집에서 사라진 우리말들(칸살)"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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