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찾기-동서남북(2)에서 계속)
3. 바람 이름에서 찾기
이 글을 시작할 때 말했지만, 오래 동안에 우리말 '동서남북'을 찾아왔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에게 우리말 '동서남북'을 아는지 물어보았었고, 우리말 '동서남북'을 언급했을 것이라 생각되는 글도 닥치는 대로 읽곤 했었습니다. 이 와중에 친구들에게 우리말 '동서남북'이 나오면 술 한잔 사겠다는 약속도 나왔지요. 그런데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우리말 '동서남북'이 없다는 사실에 놀라워 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뭐 그런 걸 신경 쓰고 있냐고 핀잔 주기보다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번 알아보겠다며, 우리말 '동서남북'이 없을 리가 없다는 생각을 보였습니다.
이들과는 다르게 우리말 '동서남북'이 있다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그들이 내놓는 우리말 '동서남북'은 바로 '새', 마','하늬' 그리고 '높(노)'입니다. 이는 앞서 "우리말 찾기- 동서남북(2)"의 표에서 보여 드렸던 방종현의 추정과 같아 보입니다. 그들이 방종현이 주장한 추정의 내용을 알고 한 말이었는지 모릅니다만, 그들이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는 데도 불구하고 방종현 이전이나 이후에, 이익과 방종현을 포함하여 지금도 '새, 마, 하늬, 높'을 방위어사라고 쉽사리 간주해 버리는 그들 모두가, 바람의 이름으로서가 아닌 방위어사로서 한자말 '동서남북' 대신 우리말 '새', '마', '하늬', '높'을 사용했던 경우나, 지금도 쓰고 있는 경우를 본 적이 여태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법 많은 사람들이, 우리말 '동서남북'이 사라지고 없다고 할 때, 그게 무슨 말이냐며 우리말 '동서남북'이 있다고 내놓는 바람 이름에 대해 구체적으로 이야기 할 차례가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바람의 이름을 부를 때 제일 먼저 방위어사를 가지고 부르는 방법을 떠올립니다. 아마 요즘 일기예보에서, '태풍'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는 것과 봄철에 "마른 바람"이 동해안 산들을 넘어올 때 '높새"라 부르는 것을 제외하면, 모두 방위어사로 표시해서 풍향을 예고하기 때문일 것 같습니다. 물론 어떤 분은 '높새'도 풍향을 가리키는 말이니 "태풍"을 부르는 것과 다르다고 하시겠지만, 다음에 좀 더 알아보겠습니다. 이때의 방향은 물론 바람이 불어오는 쪽이고 이것은 세계 어디서나 공통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풍향은 기상학이나 지구 물리학과 같은 단위로서는 적합한지 모르겠으나, 우리 실생활에는 그다지 와 닿지 않는 말입니다. "오늘도 강한 북서풍이 초속 몇 미터 내외로 불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바다의 위라면 또 모를까 도시의 작은 골목이나 큰 건물 사이는 더 말할 것도 없고, 벌판이나 산 아래에서, 또한 아침과 저녁에 따라서, 그 변덕이 얼마나 심한지 모르는 바람을 "북서풍이다", "남동풍이다"라고 부르는 것이 참 우습다는 생각에서 그다지 실생활에 와 닿지 않는다고 말한 것입니다.
물론 옛날부터 사람들은 크게 보아서, 그 바람이 어디서 불어오는지에 따라 방위어사로 나타내는 이름으로 부르기도 하였지만, 그런 이름으로 부르기보다, 계절에 따라 같은 성질로 일정한 방향에서 불어오는 어떤 바람의 이름을 그 바람의 성격을 나타내는 말로 지어 더 널리 사용한 듯 보입니다. 높은 산을 오르는 동안 바람이 덥고 건조해져서 건너 내려올 때는 보리나 풀을 말려 농부들이나 목동들을 괴롭히는 바람을 풍향과는 관계없이, 알프스에서는 푄foehn, 록키에서는 치누크chinook, 캘리포니아 남부에서는 산타아나santa ana, 안데스에서는 존다zonda라고 부르며, 오오츠크해에 고기압이 자리를 잡는 늦은 봄과 이른 여름 사이에 태백산맥을 넘어 오는 북동풍을 우리는 '높새'라고 부릅니다. 이렇게 큰 산을 넘어 오면서 바람이 마르고 따뜻해지는 현상을 가리켜 사람들은 알프스 산을 넘는 푄을 대표로 하여 그 바람의 이름을 따서 푄 현상이라고 부릅니다만, 사실 알프스의 바람 '푄foehn'의 어원은 파보니스'favonius'인데, 이 파보니스는 서풍ventus occidens의 이름입니다.
중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를테면 '동풍東風'을 '춘풍春風'이라고도 합니다. 즉, 동풍은 계절풍이고 봄에 분다는 사실입니다. 이 바람의 성격이 온화해서 모든 생명을 가져온다고 생각해서 '조풍條風'이라고 부릅니다. 바람 성격을 보아 부른 것이지요. 워낙 땅이 넓어, 같은 방향에서 같은 계절에 불어오는 바람이 같은 성격이었는지 몰라도, 적어도 '유안劉安'이 팔풍八風, 즉 동서남북과 그 사이 방위의 바람에 대해 기록하였을 때, 복술卜術적 시각보다는, 그가 살던 회남淮南으로 불어오는 바람의 성격을 기준으로 부르던 이름을 풍향 별로 적어 둔 것으로 보입니다. 회남자 뿐만 아니라 중국의 여러 고전에는 여덟 쪽에서 부는 바람, 팔풍에 대해 이름을 붙여 놓았는데, 이아爾雅를 비롯하여 주역의 역술적인 것으로 소길의 오장대의, 건원서제기, 역사서에는 사마천의 사기, 여씨춘추/유시람, 그 밖에 의학서라 볼 수 있는 황제내경에도 조금씩 이름이 다르기는 하지만 바람의 성질로 지은 이름들이 적혀 있지요. 물론, 바람의 성격을 나타내는 쉬운 말이 있는가 하면, 복술적인 음양, 계절, 생사, 등의 뜻을 나타낸 명확한 뜻을 알 수 없는 말도 있고, 유목민이 부르는 이름을 옮겨 적은 것으로 보이는 말도 있습니다만, 시대나 지방에 따라 조금씩 방향이나 성격이 바뀌었던지 같은 쪽에서 부는 바람이라도 그 바람 이름을 다르게 부르기도 하였던 모양입니다.
우리나라의 사정은 어떤가요? 우리나라 주변에 자리 잡는 고기압의 위치에 따라, 바람이 다른 쪽에서 다른 성격의 바람이 불어옵니다. 겨울에 고기압이 몽고나 동시베리아에 자리 잡고 저기압은 일본 너머의 바다에 있어 주로 북서풍인 '된하늬'가 불고, 여름은 그 반대로 기압이 배치되어 남동풍인 '샛마'가 주로 분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봄이 끝날 무렵은 동해의 저 먼 바다에 고기압이 자리 잡아 잠시 동풍이나 북동풍이 불기도 해서 '바람의 방향이 바뀌는 사이'에 부는 바람이라 '새'라 했는지도 모르지만, 잠시 다른 바람이 불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기본적으로 편서풍이 부는 위도에 걸쳐 있어 특별한 기압 배치가 아니면 늘 서풍이나 남서풍이 부는 나라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우리나라에는 계절풍이 지방에 따라 사방 팔방에서 불어온다는 말이고, 따라서 그 바람에 따로 이름이 있을 것이라 생각해도 조금도 이상하지 않다는 말입니다.
그 중에 아주 특별한 손님으로 여름의 끝과 가을의 초입 사이에 오는 "태풍"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태풍"의 우리말이 있나요? 이 "태풍"의 우리말은 무엇인가요? 태풍은 다른 바람들과는 다르게 어부들 뿐만 아니라 농부들에게도 걱정 끼치는 바람 아닙니까? 우리나라에 颱風taifeng이라는 영어 typoon을 중국 사람들이 음차한 말이 들어오면서부터 이 태풍이라는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도 아닐 텐데 말입니다. 우리는 태풍처럼 강한 바람(全强風)을 "노대" 또는 "노대바람"이라고 합니다만, 태풍을 '노대'라고 부르는 사람 별로 보지 못했습니다. 왜일까요? 아마도 노대는 기운이 아주 차고 마른 바람이어서, 노대만큼 세어도, 기운이 따뜻하고 축축한 태풍을 가리키는 말로는 쓸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 밖에 강풍을 부르는 쉬운 이름으로 '큰, 센, 큰센, 왕, 싹쓸' 등의 말을 붙여서 '큰바람', '센바람' 등으로 부르기도 하지만, 태풍과는 달리 비는 없고 바람만 센 '강바람'('江'도 '强'도 아닌 '깡된장'의 '깡'입니다) 정도입니다. "돌개바람"만이 어쩐지 태풍을 가리키는 우리말 같아 보이는데, 태풍과 같이 열대성 저기압이 일으키는 구풍'風+具'風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 구풍을 가리키는 "돌개바람"이 회오리바람인 선풍旋風을 가리키는 '돌개바람'에게 휘둘려 그만 태풍에 날려 가 버린 모양입니다.
태풍이 주로 남풍이나 남서풍인 것을 감안해도 그 우리말 안에 방위어사가 있었을 리는 거의 없지만 좀 아쉽네요. 지금도 해마다 한두 번은 꼭 불어 사람들을 긴장하게 하고 숱하게 피해를 입히는 태풍의 우리말이 잊혀져 없어졌다면, 실생활 가까이서 계절에 따라서 늘 불던 다른 바람의 이름도 많이 사라지고 없다고 보아야 하겠지요. 일기예보에서 아무런 감흥도 없는 방위어사로 붙인 북동풍이나 남서풍이니 하는 말 대신, 우리말 바람 이름을 찾아 불러주면 짧은 기간에 그 이름들이 우리 생활 속에 다시 살아 움직일 텐데. 요즘 우리가 일상에서 방위어사를 넣고 부르는 바람 이름 이외에 고유한 바람 이름으로 불러 보거나 들어 본 일 별로 없잖아요? 특히 바람을 타고 바다로 나가야 하는 어부들도 없어졌고요. 모르지요, 어부들 대신 윈드 서핑이나 요트 경기처럼 돛을 달아 바람을 타는 놀이를 즐기는 사람들이 다시 부르기 시작할런지요.
이런 우리의 사정에, 다행스럽게도 이익이 그의 성호사설/성호새설에 자기가 농사도 짓고 고기도 잡는 마을 근처에 살아 그 사람들이 비 오고 바람 부는 걸 예측할 때 부르던 바람의 이름들을(余處耕漁之間 多詢俚語 氓俗候雨占 風名號各殊) 모아 적은 뒤, 시를 쓰는 데도 유용할 것이라(皆可以入詩料) 했습니다. 그가 적어 둔 우리말 바람 이름들을 시를 짓는 데가 아니라도 이렇게 우리말 동서남북을 찾는 데 고맙게 쓰고 있는 후학이 있다는 걸 성호선생께서 아신다면, 그런 자료가 이런 데도 쓰이나 하며 놀라워 하실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익이 우리의 바람 이름과 중국의 바람 이름을 비교해 적은 놓은 바람 이름들을 그가 설명한 대로 표로 만들어 보았습니다.
이제 한번 이 표를 보실까요?
성호사설 제2권(천지문天地門) 팔방풍八方風 우리 이름 중국 이름
東風謂之沙卽明庶風爾雅謂之谷風也 (동풍은 '사' 즉 '명서풍', 이아의 '곡풍'이다) 沙 새 *동부새 明庶風 谷風
東北風謂之高沙卽條風也 (동북풍은 '고사' 즉 '조풍'이다) 高沙 높새 된새 條風
南風謂之麻卽景風爾雅謂之凱風也 (남풍은 '마' 즉 '경풍', 이아의 '개풍'이다) 麻 마 앞바람 景風 凱風
東南風謂之緊麻卽景明風也 (동남풍은 '긴마' 즉 '경명풍'이다) 緊麻 된마 샛마, 시마 景明風
西風謂之寒意卽창闔風爾雅謂之泰風也 (서풍은 '한의' 즉 '창합풍', 이아의 '태풍'이다) 寒意 하늬 갈바람, 가수알바람 창闔風 泰風
西南風謂之緩寒意或謂之緩麻卽凉風也 (서남풍은 '완한의' 혹 '완마', 즉 '양풍'이다) 緩寒意 늦하늬 緩麻늦마, 갈마바람 凉風
西北風謂之緊寒意卽不周風也 (서북풍은 '긴한의' 즉 '부주풍'이다) 緊寒意 된하늬 높하늬, **고든하누 不周風
北風謂之後鳴卽廣漠風爾雅謂之凉風也 (북풍은 '후명' 즉 '광막풍', 이아의 '양풍'이다) 後鳴 뒤울이 높, 된바람, 뒤바람, 댑바람 廣漠風 凉風
(창합풍의 '창'은 '門 안에 昌')
무엇이 무엇인지 눈에 확 들어오지 않아 답답하십니까? 그럼 이표를 보시면 어떠실까요?
[북풍], '후명後鳴', '광막廣漠,莫풍', ''광한廣寒풍', '양凉풍'
'뒤울(이)', '삭朔풍', '호胡풍', '한寒풍'
높(바람), 된바람, 댑바람
뒤(뒤北)바람, 손돌孫乭바람(孫石風,선들바람)
[서북(북서)풍], '긴한의緊寒意', '부주不周풍', '여麗풍' [동북(북동)풍], '고사高沙', '조條풍', '염炎풍'
'된하늬', '여勵풍', '건해乾亥풍' '높새'
높하늬, 고든하누(곧은하늬)(충남 방언) 된새
된하늬바람, 높하늬바람, 마칼바람, '웃,윗바람', 높새바람, 된새바람, 이렛동東풍
[서풍], '한의寒意', '창합풍', '태泰풍' [동풍], '사沙', '명서明庶풍', '조條풍'
'하늬', '여합閭闔풍', '요凹풍' '새', '건새', '도稻풍', 곡谷풍'
하늬바람 샛바람, 아랫바람(연 날릴 때)
갈바람, 가수알바람 동부새, 강소剛素풍, 강쇠바람
[서남(남서)풍], '완한의緩寒意', '완마緩麻', 양凉풍' [동남(남동)풍], '긴마緊麻', '경명景明풍', 혜惠,蕙풍'
'늦하늬' '늦마' '된마', '훈熏풍'
늦하늬바람, 늦마바람 된마바람
갈마바람 시마, 샛마바람, 심마바람(경상도 방언)
[남풍], '마', '경景풍' '거巨풍'
'마', '건들마' '오午풍'
마파람
앞(앞南)바람
위의 표를 보면서 맨 처음 궁금한 것이 이익이 "동풍은 '사' 즉 '명서풍'이라 한다"고 적은 것을 읽는 방법입니다. '동풍', '위지謂之', '즉卽', 그리고 '명서풍'도 중국에서 붙인 바람 이름이라, 한자말임에 틀림없습니다. 아울러 '사沙'는 어떤 우리말의 '뜻옮김訓借'이거나 '소리옮김音借'이라는 것도 한눈에 보입니다. 그리고 훈차일 경우 거의 '모래바람'을 가르킨다고 보아야 한다면, '모래바람'이 봄에 불기는 하지만 서쪽에서 부는 바람이라 그럴 리는 거의 없어 보이고, 음차라면 우리말 '사'나 '새'로 읽는다 해도 무리는 아닐 것 같은데, 지금부터 따져 볼 일이 많아집니다.
다행히 "사"라는 우리말이 '단추구멍이나 옷단의 오라기가 헤어지지 말라고 감치는 것'을 제외하면 바람의 성격이나 방향을 가리키는 이름으로 쓸 만한 뜻이 없어 간단했습니다. '沙'를 '사'라 읽는다면 '감칠바람'이 될 수도 있다는 추정을 하나만 해도 된다는 정도 일 뿐, 처음부터 우리말 "사"가 우리나라의 동쪽에서 부는 바람을 가리키는 고유어였다는 주장을 반박할 정도는 아닙니다. "마"나 "한의"가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이제 '沙'를 '새'라 읽을 경우입니다. 앞서 지명에서 언급했던, "'하동韓多沙'군 '악양小/少多沙'면 '평사坪沙'리"와 그 벌 아래로 흐르는 섬진강多沙의 '사沙' 셋이 각각 다른 뜻의 음차였음을 기억하신다면, 그리고 '새'가 '新', '鳥', '草', '間' 이외에 많은 뜻을 가진 우리말이라는 것을 이해하신다면, '沙=東'을 좀 더 두고서 보고 싶은 이유를 수긍하실 것입니다. 더군다나 만일 '사沙'가 '草'의 음차이거나 혹은 건조한 바람을 가르키기라도 하면, 위에서 말씀 드린 "푄 현상"까지 연관지어야 할지 모릅니다. 실제 정다산은 그의 한시 가운데 높새바람을 고초풍高草風으로 옮겨 높새의 새가 동이 아니라 풀이라고 생각하였음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당장에 '沙=東'이라고 단정 짓기보다는 '沙卽明庶風'이라 적은 그 '명서바람明庶風'의 뜻과 성격을 알고 난 다음, 沙에 대한 우리말 소리나 뜻을 풀어 보자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이익이 농어촌 사람들로부터 동풍을 '새'라 부른다고 들었을 때, 그 '새'가 '동풍' 즉 동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아니라, 해가 뜨는 "東"쪽으로 알았다면, 그는 틀림없이 '東風'의 보기대로, '沙風' 내지 '沙巴音'이라 적었을 것이고, 또 이익이 '明庶風mingshufeng'이 동풍의 성격을 나타낸 것이 아니라 '東'의 또 다른 중국말이라고 알았다면, 일부러 명서풍을 꺼내어 '새'가 바로 그 말이라고 적지 않았을 것입니다. 언제부터 사람들이 동풍을 우리말로 '새'라 한다는 말을 듣고, 틀림없이 이익의 그 구절을 보고, '새'라면 동쪽을 가리키니 샛바람이 맞는 말이 아니냐며 '샛바람'이라 부르기 시작하자, 이제는 정말 '새'가 '명서풍'을 가리키는 우리말이 아니라 "東"을 가리키는 우리말로 굳어지고 맙니다. 사실 어느 전적이나 사전에도 명서풍이 어떤 성격의 바람을 가리키는지 설명하지 못하고 모두 동풍이라고 적어 두고 있습니다. 심지어 어떤 사전은 명서풍이 뱃사람들이 동풍을 가리키는 말이라고도 했는데, 이는 회남에 부는 동풍이 명서풍이라고 서울에 부는 동풍도 명서풍이라 해야 하는지 한번 따져 보지도 않고 실은 결과이니, 그것은 명서풍의 뜻은 물론 유래도 모르는 사람들이 짠 사전입니다.
'동'만 해도 이런 판국에, 나머지 '서'의 '하늬', '남'의 '마', '북'의 '뒤울(이)'도 그렇게 읽고 해석한다면 아니라고 할 생각은 없지만, 그 말들이 과연 서, 남, 북을 가르키는 우리말인지는 좀더 살펴 보아야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새', '하늬', '마', '뒤울(이)가 바람이라는 말을 굳이 붙이지 않아도, '새'의 예에서 보듯 그 자체로 '동풍', '서풍', '남풍' 그리고 '북풍'을 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의 표를 보실까요.
우선 '새'가 동쪽을 가르키는 말 '새'와 같고(?), '하늬'는 모르겠으나 '갈바람'의 '갈'은 '가을'의 뜻도 있긴 하지만, 도수희의 백제어로 '서西'를 말하는 '갈'과 같고?, '마'도 마찬가지이며, '뒤울이'는 북을 뜻하는 '뒤'와도 연결된 것 같아서, 모두 다 방위어사로 보아도 하등의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더군다나 위의 표는 동과 북의 사이를 동북(북동)이라 하는데, 마찬가지로 동북풍(북동풍)도 둘을 더해 '높새'라 하고 나머지도 모두 그런 방법으로 두 말을 더해 '샛마', '갈마', 높하늬'로 부르고 있어, 영락없이 '뒤울(이)'를 '높'으로 바꾼 방종현의 추정 그대로 아닙니까? 그런데 자세히 보면 조금 이상한 부분도 있습니다. 서남풍을 갈마바람이라고 부르는 것은 높새와 같은 성격이라 그런가 보다 하겠는데, 서북풍을 가리키는 "마칼바람"은 남을 가리키는 '마'와 서를 가리키는 '갈'이 섞였는데 어째 남서풍이 아니고 서북풍인지요? 매섭고 독한 바람인 "칼바람"에 '마'가 붙었다 해도, 그 칼바람은 북풍일텐데 '마'가 남이니 남북풍이라 정말 이것은 이상하지요.
이런 이상한 예를 무시한다 해도, 이런 반론은 또 어떻습니까?
우선 두 말을 더해 새로운 말을 만드는 것은 비단 방향만이 아니라도 얼마든지 만들어 쓰고 있다는 보기를 하나 들어 보이려 합니다. 쌀과 콩을 섞어 지은 밥을 콩밥이라고 두 말을 더해 한 말로 만들어 씁니다. 또 막걸리 맛을 나타낼 때 '시금털털'하다는 말을 쓰는데, 이는 시금한 신맛과 텁텁한 느낌을 더하여 표현한 말입니다. 명사든 형용사든 얼마든지 두 말을 섞어 한 말로 쓸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높'과 '새' 사이를 '높새'라 붙여 쓴다고 반드시 '높'과 '새'가 방위어사라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지요. '높'의 성질과 '새'의 성질을 섞어 가진 바람일 수도 있지요.
그리고 또 우리말을 한자로 적은 '긴緊'과 '완緩'이 들어간 바람들을 눈여겨 보는 일입니다. '緊'을 우리말인 '굳게 얽다/속이 차다/오그러지다/감다/ 단단하다/팽팽하다/되다'와, '緩'을 우리말인 '느슨하다/부드럽다/누그러지다/늦다'의 뜻 옮김으로 보고, '된'과 '늦'으로 읽으면서, 옛날 사람들이 그렇게 표시해 왔던 것으로 받아들이면, 결국 '된'과 '늦(은)'은 수식어이고, '하늬'나 '마'를 꾸미고 있습니다. 도대체 '하늬'나 '마'가 어떤 성질의 바람이길래 '된'이나 '늦'이란 말이 그런 성질을 꾸밀 수 있느냐 하는 궁금증이 생기지 않습니까? 우선, '하늬'나 '마'가 '서'와 '남'이면, 그런 방위어사를 꾸밀 수 있는 말로는 정동진처럼 '정正' 밖에는 생각이 나지 않아, '늦하늬緩西'나 '된마緊南'에 붙은 '늦緩'과 '된緊'이 도대체 어떤 이유로 각각 '南'과 '東'의 뜻을 가지게 되었길래, '하늬'와 '마'와 합쳐져서, '남서'와 '남동'을 가리키게 되었는지 알아야 하고, 아니면, '하늬'나 '마'가 어떤 성질, 즉 이익이 말한 '조條'와 '양凉'이라는 성질을 가진 바람인데, 그 바람이 서쪽이나 남쪽에서 분다면, 틀림없이 '늦緩'과 '된緊'이 어떤 성질의 '바람風'을 꾸미는 말일 텐데, 다시 말해 '하늬'나 '마'가 '따뜻하다'든지 '차다'든지 또는 '건조하다'든지 '촉촉하다'든지 하는 '바람'의 성격을 나타내는 말이어서, '된'이나 '늦'이 꾸밀 수 있는 바람의 성질이 어떤 것인가를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방향을 가리키는 말로는 "늦緩'이나 '된緊'을 사용한 예가 없어, 즉 방위어사가 아니어서, 결론은 부는 바람의 성질을 꾸밀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서쪽에서 부는 바람이나 남쪽에서 부는 바람 그 자체를 '늦緩'은 '굳게 얽히고/속이 차고/오그러지고/감기고/단단하고/팽팽하고/되다고' 꾸미고, 또한 '된緊'은 '느슨하고/부드럽고/누그러지고/늦다고 꾸민다고 말할 수는 있겠지만, 같은 바람이라도 조금 더할 수도 조금 덜할 수도 있는 것을 도대체 어떤 성질의 바람이기에 사람들에게 '늦'이나 '된'과 같은 말 한마디가 바람의 성질을 바꾸어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그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을 확 바꾸어 놓는다고 생각하게 만드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미 불어오는 방향은 알고 있는 '明庶'를 포함한 나머지 한자말 바람 이름이 어떤 성격의 바람을 말하는지 알면, '새'가 방향을 가르키는지, 아니면 어떤 바람의 성질을 나타내는지 알 수가 있겠다 싶어 따져 보았지만 결론은 우리말 바람 이름과의 연관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하나 예를 들면 이익이 말한 서남풍은 중국의 팔풍에서는 '양凉풍'이라 하고 이아에서는 북풍을 '양凉풍'이라합니다. 유안은 양풍이 서남 쪽에 있는 백문白門에서 일어, 오는 바람이라 설명하고, 건원서제기나 소길의 오장대의에는 양풍이 팔괘의 곤坤에 해당하며, 계절로는 가을바람, 성질은 서늘하다 합니다. 황제내경에서는 양풍을 '모謨풍'이라고 하는데 땅을 주관하는 바람으로, 여씨춘추에서는 '처凄풍'으로 서늘한 성격의 바람이라고 말합니다. 이 뿐 아니라, 경명풍은 청명풍으로 불리고, 창합풍은 여합풍으로, 광막풍은 광한풍으로, 또한 이아에서 말하는 바람 이름과 회남자의 바람 이름과 다른 것이 있고, '양풍'이나 '조풍'처럼 같은 바람이라도 풍향이 서로 다른 바람도 있으며, 황제내경은 그 안에서도 음양의 이론으로 부르는 이름과 신체 장기에 영향을 주는 정도에 따라 부르는 이름이 따로 또 있을 정도입니다. 이런 바람 이름들은 전 세계적으로 다양해서 일일이 적을 수도 없거니와, 설사 그런 바람 이름을 모두 나열해 보아도 결국 각각의 바람 이름은 방위어사와는 관계가 없고, 바람의 성격을 나타내는 말이며, 다만 그런 성격을 가진 바람이 계절에 따라 불어오는 방향이 달라, 자연히 일정한 계절풍으로(실제로 회남자에는 바람을 여덟 종류로 나누고, 동지서부터 45일간 절기에 따라 바뀌는 순서대로 그 바람의 성격을 나타내는 말로 불렀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만 말씀드릴 수 있을 뿐입니다.
독일의 폭스바겐은 그들이 만들어 내는 차의 모델 이름에 모두 바람의 이름을 붙이고 있습니다. '골프'는 멕시코만에 부는 계절풍의 이름이며, 시로코는 지중해의 계절풍 이름이며, 파사트는, 제타는,........이런 종류의 바람 이름 어느 하나도 그 계절풍이 불어오는 방위를 나타내는 방위어사를 그 이름 가운데 포함하고 있지 않습니다. 사정이 이러한 데도 유독 우리나라에서만은 바람 이름 속에 방위어사를 넣어 불렀다고 보는 것은 아무래도 그렇게 주장할 자료가 모자랍니다. 동서를 나타내는 말 '새'나 '갈'이 붙은 바람의 이름이 있긴 하지만, 그것이 성격을 나타낼지도 모르는 '새'와 '하늬'를 설명해 주지는 못합니다.
따라서 당분간은 바람 이름에서 우리말 동서남북을 찾는 일도 멈추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 동안 열심히 사투리에 남은 바람 이름이나, 아직은 미쳐 찾아내지 못한 우리말 바람 이름들을 찾아 위의 표를 채우는 일이나 더 해 나가야 할 것 같습니다.
* 위의 표에 나오는 말들은 주로 뱃사람들이 쓰는 은어의 일종으로 이해되고 있습니다만, 이익은 분명 농어촌에 있을 때 들은 이야기라 했으니
꼭 뱃사람들만 쓰던 바람 이름은 아닌 것 같습니다. 사전에서 어떤 경로로 뱃사람들 말이라고 단정하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동부새는 농촌에서 쓰이는 말로 동풍을 가르킨다고 합니다. 한자말 "동東" 과 우리말 "부새"가 더해져서 '동풍'을 가르킨다니, "부새"가 무엇을
뜻하는 말인가를 조사해 보았습니다만, 다른 용례도 없었고, (예를 들어, '서西부새'라든지), "부새"가 우리말이라도 "부"와 "새"가 합친 말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부새의 "부"가 "부지깽이"의 "부"의 "부"처럼 불을 가리켜서 "불처럼 뜨거운 새'라는 뜻인데, 그 "새"가 보통 동에서
불어오니까 동부새로 부른 것 아닐까, 그래서 혹시 우리말 '동서남북'을 찾아낼 새로운 단서가 되지나 않을까 실었습니다.
* '고든하누'는 '곧은 하늬'의 뜻으로 충청지방에서 쓰는 사투리라고 합니다. 혹, '하늬'가 바람 이름이라기보다 방위어사라면, '곧은 하늬'에서
'곧은'은 '하늬'를 꾸미는 말이니까, '정동진'의 '正'처럼 '정서正西'를 가르킨다고 보아야 하는가요, 아니면 '하늬'가 어떤 성질을 가진 바람의
이름이고, '곧은'은 그 바람의 성질을 꾸미는 말로 보아야 할까요? 이런 의문을 가지고 실어 두었습니다.
* 강길운은 "계림유사의 신해독연구"에서 손목의 고려어高麗語 단어장 가운데 한 항목인 "東西南北同"을 해독하면서 "고든"을 북北을 가리키는
우리말로 봅니다. '고든'은 '북'인데 '고든바람'은 '북풍'을 가리킨다 적었습니다. 그래서 충남의 사투리라는 고든하누는 북풍을 가리키는 말이
되기도하고 북서풍을 가리키는 말이기 되기도 합니다. 강길운은 현대어 특히 바람 이름 속에 남이 있는 우리말 방위어사로 새,살은 東을, 마,
서마,샘마는 南을, 갈,하늬,하느,하누는 西를, 그리고 고든은 北을 가리키는 말로 남아 있다고 합니다. 강길운이 옛날말 방위어사를 가장 많이
찾아보았을 것 같은데, 그의 작업 요점을 정리해 둔 우리말찾기-동서남북(2) 지명에서 찾기에서 참조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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