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과 술한잔

신선과 술 한잔(온화한 사람)

병든소 2016. 4. 24. 16:28

 

당분간 집에서는 술을 마시지 말아야겠다 마음먹은 건 지지난해 크리스마스 이브 저녁이었고, 그 뒤 한 해가 되던 지난해 크리스마스 이브에는 이제 다시 집에서나 술을 마셔야겠다 마음을 바꾸어 먹고 장보러 나간 아내더러 술을 사오라 문자 보냈습니다. 이런 변덕을 부린 건 뭐니 뭐니 해도 코비드란 돌림병 때문이 틀림없었는데, 그 돌림병으로 아주 고생하거나  안타깝게도 죽는 대다수가 늙은이들이어서 늙은이가 무슨 용무든 밖으로 나다니는 것 자체가 너 나 할 것 없이 여간 부담스러운 일이 아닌 게 되자, 이런 집 안팎 분위기 속에 누구도 먼저 술 한잔 하잔 말 함부로 내지 못해 늙은이들의 술나들이가 확 줄어들고 말았기 때문이고, 술나들이가 뜨문뜨문하자 그렇잖아도 평소 집에서도 한잔씩 해왔던 터에 돌림병 이후로는 거의 맨날 집에서 마시다보니 집술이 점점 늘어 하릴없이 집 안에 갇힌 술꾼으로 내몰리고 말았기 때문이었습니다.

 

평소 집에서 그냥 혼자 마시는 술로는 따로 눈치 볼 일 없다 해도 시도 때도 없이 밥 대신 술만 먹고 지내는 건 말이 되지 않아, 아무래도 몰래 아닌 몰래, 낮이면 아내가 출타했거나 밤이면 아내가 잠자리에 든 뒤에야 술판을 벌이지요. 사실 술판이라 할 것도 없는 게 하루 종일 누워 비비적거리는 방바닥 비닐 장판 위에 그냥 큰 술잔 하나 작은 안주 그릇 하나 그리고 젓가락 한 벌 놓는 것이 전부니까요. 집에서 늙은이 혼자 마시는 술판이 식탁에 안주 늘어놓고 작은 잔에 따루며 홀짝거리는 그림이라면 그저 편안하고 우아하게 보인다기보다 좀 열없거나 궁상떠는 것 같아 보이기 십상 아니겠습니까. 그냥 하던 대로 방바닥에 배 깔고 엎드려 자판 두드리거나 책 갈피 넘기면서 어 너 거기 있었냐는 듯 옆에 뒀던 술 한 모금 마시고 안주 한 젓가락 짚는 술판은 그저 손쉬운 일상의 무심함일 뿐만 아니라, 마치  손자 녀석이 저와 함께 방바닥에 엎드려 옆에 과자 봉지 까두고 만화책 보며 군것질하는 모습 같은 편안함이 더해져 있지요. 그리고 대체로 이 좋은 집술의 무심함과 편안함은 대개 적당한 바깥 술나들이와 아내의 뾰죽한 잔소리로 균형을 이루기 때문에 절대 술꾼 소리 듣지 않고 즐길 수 있는 것인데, 돌림병 사달과 남 아닌 남이 되어버린 아내의 무관심으로 그 균형을 잃어 속절없이 술꾼으로 나가떨어지고 말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젊었을 땐 아내가 밖에서 술 먹고 집에 와서 또 술 마신다며 짜증나서 뾰죽한 말도 하곤 했었는데, 시나브로 같이 늙어가면서 서로 나누는 말수가 점점 줄고 데면데면하다 조금씩 멀어진 탓인지 알고도 모른 척 알고 싶지도 않은 척 별 말 없이 넘어가 준 덕분에 큰 소리 큰 탈 없이 스스로 장만한 안주에 반 세기 전부터 골목 이웃인 송해수퍼에서 사오는 술로 그럭저럭 잘 지냈습니다. 간혹 부부가 함께 늙어가며 같이 술 한잔 하는 사람들을 보거나 그런 사람들 얘기를 들을 때면 아 그런 그림도 좋겠네 하는 정도여서, 굳이 너도 와서 이 거 한번 먹어봐라 할 것 없이  그냥 보고 듣고 흘려버리곤 혼자 마셨습니다.

 

 

전들 젊은 시절에 여자와 술 마신 적이 없었겠습니까만 단 한 번도 그 자리가 괜찮았다거나 좋았다거나 즐거웠다거나 아주 잘 마셨다거나 하는 느낌을 가진 적이 없었고, 어쩌다 같은 여자와 다시 마셔도 저만 마시고 말아 여자들과의 술자리 자체가 멀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위의 많은 사람들 이야기에는 함께한 술자리가 즐거워지는 여자들이 있어 이 세상에는 같이 술자리를 해도 괜찮을 여자들이 있긴 있구나 하며 지냈지요. 그러던 어느 날  불쑥 니체가 툭 던지 듯 함께 술을 마셔서 아주 좋을 여자를 소개해주었습니다. 처음 그 여자를 만났을 때 단박에 그 여자가 좋았습니다. 니체에게 이 여자 어떤 여자냐고 물을 것도 없이 그 여자는 저의 온 입가에 미소가 피어나게 만들었는데 지금 다시 그 여자를 기억에서 불러낼 뿐인데도 이미 온 얼굴로 번진 미소를 감출 수가 없네요. 니체의 그 여자는 '온화한 사람'입니다.

 

           온화한 사람

 

           여자가 몹시 부끄러워하며

           달빛 아래서 말했다

           술을 마시지 않아도 그리 행복하시다니

           취해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요?

 

             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

 

               젊은 날 후다닥 옮겨놓은 터라 실렸던 시집도 알 수 없다.

               원문이라도 찾아보려 오래 기회 있을 때마다 뒤졌지만 근처도 못 갔다.

             

니체의 '온화한 사람'이 '달빛 아래서 몹시 부끄러워하며 말한' 여자인지, 아니면 '술을 마시지 않아도 그리 행복한' 사람인지, 아니면 '취해 있다면....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지 헷갈리시지 않나요. 답은 간단합니다. '술을 마시지 않아도 그리 행복한 사람' 대부분은 '온화한 사람'이겠지만 뻔한 사람 남 사람인 양 또 뽑아서 김새게 할 리 없고, '취해 있으면... 아주 행복한' 사람 역시 주위로부터 '온화한 사람'이란 소리를 많이 듣고 살겠지만 취해 있어 행복하니 더 마시라 술 권하는 말보다 너무 행복해서 취생몽사할 지경이니 이젠 그만하란 말을 더 많이 들을 것이므로, '달빛 아래서 몹시 부끄러워하며 술을 마시지 않아도 그리 행복하시다니 취해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요'라 말하는 여자를 니체가 아니라도 제가 '온화한 사람'으로 꼽습니다. 그리고 저는 술을 마시지 않아도 행복까진 몰라도 그저 즐거운 때가 많은 사람이고, 취해 있으면 아주 행복하다기보다 좀 더 즐거운 사람이다 보니 니체가 '온화한 사람'이라며 소개해준 이 여자는 제게도 얼마나 '온화한 사람'이던지 첫만남에 환히 제 입가에 미소가 피어오르게 했지요. 세상에! 취해 있으면 얼마나 행복할지 묻는 온화한 여자 사람이 다 있다니!

 

 

돌림병에 갇혀 거의 이태 동안이나 집에서만 술을 먹고 지내는 사이 집에서 먹는 술의 양이 점점 늘어나 잠자코 지내던 아내 눈에도 거슬렸던지, 무관심을 버리고 갑자기 취해서 얼마나 행복할지 묻는 니체의 그 여자와는 결이 아주 다른 '온화한 사람'이 되어, 온 동네 술꾼이라 소문 다 난다며 이젠 자기가 장 보러 갈 때 사다주겠으니 더 이상 송해수퍼에서 술 사다 먹지 말라고 했지만, 잘 사다 먹다가 어떻게 갑자기 끊을 수 있냐며 그냥 계속 사다 먹었지요. 돌림병을 다스리는 약 덕분인지 사람들이 시키는 대로 잘 따라주었는지 지지난해부터 조금씩 금줄이 느슨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럼에도 금방 금방 맞추어 가는 젊은이들과는 달리 우리 늙은이들은 집에서 엉거주춤해 있었고, 봄이 되어 새 대통령이 금줄을 죄다 걷어냈어도 늙은이들은 두어 해 전과는 달리 자주 또 많이 모이지 못했고, 그래서 아내의 뾰죽한 잔소리는 잠시 돌아왔지만 아직 바깥 술나들이가 균형을 맞추지 못하는 바람에 저의 집술은 오히려 늘어만 갔습니다.

 

그렇게 또 계속 집에서 술 마시며 지내다가 지지난해 크리스마스 이브 저는 그해의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송해수퍼에 술 사러 갔지요. 겨울 밤이 깊어 길 가는 사람이 뜸할 때 수퍼 주인이 제가 안고간 빈병 박스 둘을 거두며 제게 말을 건넸습니다. 이 술들 언제 사가셨는지 아느냐 물었고 어물거리는 제게 보름 전이었다 말했지요. 그랬나 대답이 떨어지기 무섭게 옆에 있던 수퍼 안주인이 걱정스런 얼굴을 감추지 않고 너무 많이 드시는 것 아닌지 또 물었지요. 빈병을 거두며 무심한 척하는 얼굴로 저를 보며 지나가는 듯이 묻는 수퍼 주인과 걱정스레 물어보는 그 안주인에게 괜찮단 말 할 수 없어 줄이긴 줄여야겠다며 다시 술 두 박스를 안고 왔는데, 집에 돌아와 부엌 한 켠에 술 쌓는 제게 다가온 아내가 뽀죽한 성깔로 술꾼 논란을 칼 같이 매듭지었지요. 인제 동네 소문 다 났네. 술꾼 소문 다 났어. 그리고 아내의 잔소리보다 더 뜨끔했던 건 수퍼 주인 부부의 무심한 듯한 얼굴과 지나가는 듯 던진 너무 많이 드시는 것 아니냐는 말이었습니다. 아! 세상에 나만 빼고 다 아는구나!

 

 

그날 송해수퍼가 문 닫을 무렵 크리스마스 이브 거리에 사람들이 거의 보이지 않을 때 저는 그 술 박스 둘을 다시 안고 가 무르고 왔습니다. 그리고 당분간 집에선 술을 먹지 않으려 마음 먹은 걸 전하자 수퍼 주인과 그 아내가 활짝 웃으며 집에서만요라고 물었을 때, 그때 처음 남들은 저를 술꾼으로 본다는 아내의 지적을 사실로 받아들였습니다. 남들이 나를 술꾼으로 본다는 왠지 모를 부끄러움에 그날 밤 저는 정말 오랫만에 다시 다락방을 뒤져 생 떽쥐베리의 어린왕자가 어느 떠돌이별로 가서 그곳 술꾼을 짧게 만나보고 깊은 좌절에 빠지는 장면 하나를 말짱한 정신으로 지켜보았습니다.

 

     어린왕자

     7.

     다음 행성에는 술꾼이 살고 있었는데

     짧은 방문이 어린왕자에게 깊은 좌절을 안겨주었습니다.

 

     "여기서 뭐 하고 계세요?"

     느즐한 술병 더미 앞에 퍼질러 앉은 술꾼을 보자 물었습니다.

     

     "술 마시고 있지."

     애처러운 몸짓을 하며 술꾼이 대답했습니다.

     

     "술은 왜 마시고 있는데요?"

     "잊어버리려고"

     

     "무얼 잊어려고요?"

     술꾼이 안타까워진 어린왕자가 물었습니다.

     

     "내가 부끄럽다는 걸 잊으려 해"

     고개를 떨구며 술꾼이 털어놓았습니다.

     

     "무엇이 부끄러우신데요?"

     술꾼을 돕고 싶어진 어린왕자가 다그쳐 물었습니다.

     

     "술 마시는 게 부끄러워"

     술꾼은 이 말로 그 자신을 철통 같은 침묵 속으로 가두어버렸습니다.

 

     어리둥절한 어린왕자는 그 행성을 떠나며 중얼 중얼거렸습니다.

     "어른들은 진짜 진짜로 괴상해"

 

          생 떽쥐베리

 

          모르기는 몰라도 생 떽쥐베리는

          니체의 그 사람처럼 마시지 않아도 행복해

          술마시기를 꺼려하고 가까이 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술꾼을, 아니 갑자기 술꾼 아닌 어른을,

          진짜 진짜로 괴상하게 만들진 않았을 것입니다.

 

그날, 지지난해 크리스마스 이브에, 얼마 동안은 집에서 술 먹지 않으리라 마음먹었습니다. 술꾼 소리 듣기 싫어서가 아니라 그땐 이미 돌림병에 대한 어떤 갓도 금줄도 사라지고 없었기에 슬슬 밖에서 먹으면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집에서 홀짝 홀짝 마신 술이 그렇게나 많았는지 슬쩍 놀랐던 터라 집에서 술 먹지 않겠다 쉽게 마음먹은 것이지요. 그런 마음먹기는 마치 집에서 술 먹기만큼 별 것 아닌 일이기도 했고, 아직은 느즐한 술병 더미 앞에 퍼질고 앉아 술을 마실 정도는 아니라는 생각으로, 또 여태껏 잊기 위해서라거나 어떤 구실을 찾아 술을 마신 적이 없다는 이유로, 어린왕자가 본 술꾼의 모습을 굳이 제 모습으로까지는 비추어보진 않아 난 그 정도는 아니야라며 그 장면을 속에 오래 담지 않았던 탓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장면보다는 앞으로 밖으로 술나들이 나갈 기대가 더 컸습니다. 왜냐하면 이제 밖으로 나가 여럿이 함께 밖에서 먹으면 집에서 혼자 엎드려 넓은 방바닥 장판의 술판에서 먹는 것보다 여럿 모인 식탁이 혹시 장판 바닥보다 좁더라도 술은 훨씬 널널하게 먹을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지난해 저의 술나들이는 니체의 '온화한 사람'이 주는 미소 가득한 기대와는 전혀 달랐습니다. 우선 술나들이 자체가 오히려 지지난해보다 더 줄었습니다. 그 다음 모이는 사람도 줄었습니다. 더군다나 모인 사람들마져 돌림병 전과 달리 술 마시길 꺼려하는 몸짓을 보였고, 실제로 몇 잔 마시지 않아 술자리의 술이 줄었고, 술이 준 만큼 모여서 먹는 시간도 줄었고, 먹고 마시며 나누는 이야기도 줄었습니다. 그런 모임이 한두 번 이어지자 오히려 예전처럼 마시고 싶은 저만 다급해졌습니다. 전에는 술나들이의 술이 모자라더라도 집에가서 마저 마시면 될 일이었지만 집에서는 마시지 않기로 했으니 조금이라도 그 자리에서 더 마시고 싶어졌습니다. 같이 마시는 사람이 없으니 빈잔 채우려 챙기는 사람도 없어 큰 잔을 두고 따르니 느는 건 양이었고 줄어든 시간에 는 술을 마시니 빨라진 술마시기 속도와 늘어난 술의 양에 감당이 애매해진 술기운이 예사롭지 않게 갑자기 머리로 몰려올라와 몸과 마음을 잠으로 덮었습니다. 아마도 어린왕자가 만난 술꾼을 철통 같은 침묵 속으로 가두어버렸던 것도 잠이 아니었을지 모르겠습니다. 술 마시던 멀쩡한 자세로 의자에 앉아 눈 감고 조는 저를 박장대소로 깨워 집에 가서 자라며 술자리 거두고 헤어진 게 서너 번은 더 되었습니다.

 

그런데 술자리에서의 졸음은 그것이 끝이 아니었습니다. 집에 가서 자라며 헤어져 집으로 가는 길에 걸으면서도 조는 것이었습니다. 지하철 타러 내려가다 두 칸이 더 남은 계단을 다 내려온 줄 알고 내딛어 온몸을 냅다 앞으로 내동댕이 치질 않나 차들 싱싱 달리지 말라고 만든 길볼록이에 걸려 자빠지질 않나 당연히 내 걸음을 보곤 충분히 피해 갈 것으로 알고 다가온 자전거에 부딪쳐 체인에 긁히질 않나, 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정신이 확 돌아와 사태가 왜 벌어졌는지 금새 깨닫고 정말 창피해 죽을 맛인데 왜 사람들은 그냥 지나치지 않고 그렇게 염려하며 다가와 괜찮으냐 괜찮으냐 물어대어 사람을 더욱 부끄럽게 만드는 것인지, 아 무너지는구나 이렇게 무너지는구나 고개를 떨구니 당황이 당황이 아니라 황망이었고 탄식이 탄식이 아니라 한탄이었습니다.

 

 

어린왕자가 만난 술꾼은 술 마시는 게 부끄럽고, 그 부끄러움을 잊기 위해 술 마시는 참으로 괴상한 어른이었는데, 이 늙은 술꾼은 사람들과 어울려 술 마시며 어울리는 시간이 즐겁고, 그 즐거움을 찾아 술 마시는 참 가벼운 어른이었는데, 이 늙은 어른이 어느새 술에 취해서 벌어진 일들을 마치 졸음 탓인 양 바꾸어 생각하고 변명하는 얍삽한 늙은이가 되는지 이마져 부끄러워지자 왜 평소에 안 하던 짓이 요사이 벌어지는가 곰곰히 따져보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저는 잠이 많지 않습니다. 어렸을 때는 대여섯 시간이면 머리는 맑고 몸은 가벼워 수업 중에 졸거나 따로 낮잠을 잔 기억이 없고, 성인 되어서는 너댓 시간만 자도 활기 있게 사회생활을 이어가 점심에 반주를 곁들이고도 먼 해외출장을 다녀오고도 업무 중에 졸거나 낮잠을 잔 기억이 없으며, 은퇴하고 집에서 책이나 읽고 컴퓨터 놓고 자판 두들기다 잠을 설친 다음 날에도 낮잠 같은 것 없이 평소처럼 지내다 이튿날 밤 대여섯 시간의 잠으로 충분했습니다. 다만 술자리에서 조는 일이 있긴 했으나 꼽기에는 한 손 손가락도 너무 많은 정도였고, 또 다만 술이 과했던 탓인지 피로가 쌓였던 탓인지 몇 해에 한 번 꼴로 차 안에서 졸다가 정류장을 지나쳐 되돌아오거나 한 정거장만 지나친 것 같아 그냥 걸어서 집에 가려다 길을 잃어 한 정거장이 아니었다는 걸 깨닫고 결국 큰길로 나와 택시 타고 집에 간 적은 있었습니다. 그리고 생각해낸 것이 몇 해 전 아니 왠지 돌림병 이후인 것 같긴 한데, 점심에 사람들 만나 반주로 거나하게 마시고 돌아와 컴퓨터 화면 보고 있다가, 화안한 불빛에 문득 잠에서 깨어, 어 언제부터 잔거야, 방문기록 뒤지니 오후 3시 48분, 어 집에 와서 바로 잠들어 두 시간이나 잤네, 하는 두어 번의 낮잠, 그리고 아내가 잠자리에 든 걸 보고 방바닥 장판의 술판을 즐기며 어제 보다만 영화 보고 있다가, 화안한 불빛에 문득 잠에서 깨어, 어 언제부터 잔거야, 방문기록 뒤지니 12시 18분, 어 두 잔째 마시다 네 시간이나 잤네, 하는 서너 번의 밤잠이었습니다.

 

이 모두가 지지난해 술꾼으로 몰려가던 와중의 술과 잠이 엮이는 중차대한 변화였지만 이를 눈여겨 보고 신중하게 대하지 않고 다만 예의 돌림병이나 온화해진 아내의 무관심으로 늘어난 술 탓으로 가벼이 넘겼던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는 술을 먹기 시작한 이래 한 갑자가 다 되어가는 기간 동안 가장 적게 그것도 현저한 차이로 가장 적게 먹었던 작년에 술 마시다 졸아 박방대소로 깨고 술 마시고 길 가다가 졸아 내동댕이 치고 자빠지고 부딪쳐서 깨는 말이 안 되게 한심하고 부끄러운 꼴을 만천하에 드러내고만 것이었습니다. 이런 일이 벌어지자 '취해 있어... 행복'하기는커녕 '취해 있어... 형편' 없어진 까닭을 찾지 않을 수 없었고, 당장에 눈에 띄는 병이 난 것도 아니어서 그 까닭이 그냥 늙어가서, 그냥 나이를 먹어 늙어간 게 아니라 몸도 마음도 늙어가서, 몸이 마음이 예전 같은 술을 감당하지 못하자 잠이 그 몸과 마음을 덮으려 나선 것이라 쉽게 찾았습니다. 모두가 현명하게 이 사실을 알고 그에 맞게 대처하고 있었는데 이 미련한 병신축구 혼자 돌림병 이전으로 돌아가자며 설레발치고 있었으니.... 술 마시는 게 무슨 큰일이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동안 집에서는 술 먹지 않기로 한 마음을 한 해 만에 뒤집어 지난해 크리스마스 이브 다시 제가 생각하는 정상적으로 가기로, 이를테면 집 안이든 밖이든 술이  생각나면 마신다로, 다시 말해 돌림병 이전으로 돌아가기로, 마음을 바꿔 먹고 지지난해 온화한 사람이 되어 자기가 술 사다주겠다 나섰던 아내에게 술을 사오라 문자를 보낸 것이었습니다. 이런 변덕에는 나름대로 생각한 것 두 가지가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먼저 무슨 내가 병이 든 것도 아니고였고, 다음은 그렇다면 늙은 이 몸을 잠이 덮지 않을 술의 양을 알아야 한다였습니다. 술을 견디지 못해 잠이 몸과 마음을 덮는 것이라면 사실 술을 먹지 않으면 쉽게 끝날 일이지만, 무슨 병 난 것도 아닌데 술을 먹지 않으리란 마음이 들지 않았고, 병이 난 것도 아니어서 계속 술을 마신다면 한심하고 부끄럽고 사람들 염려까지 불러오는 일이 없어야 하고, 그럴려고 조심하려면 어느 정도까진 괜찮다는 양을 알고 있어야 될 것이고.......  다시 밤낮 없이 집 안팎 없이 마신다는 소리를 이리 지저분하게 늘어놓고 있으니....  술 마시는 게 무슨 중뿔스런 거라고....

 

 

무슨 병이 난 것도 아니고 아니고 하다보니 얼핏 무슨 병이 나면 어쩔 건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는 한 옛날 일이 떠올라 피식 웃음이 났습니다. 새로운 밀레니엄이 열리기 열흘쯤 전에, 수술 뒤 실밥을 뽑은지 겨우 사흘이 지난 뒤에, 문안 삼아 일터로 찾아온 선배와 점심을 먹었는데 처음 한 잔은 혼자 마시더니 도저히 안 되겠는지 다빡 물었습니다. 너 술 먹으면 죽나 에이 죽기야 하겠습니까 그럼 한잔 해라며 따룬 술잔을 제게 넘겼고 아 의사가 위장 상태를 네 살짜리 아이의 그것이라고 생각하고 당분간 먹는 것이며 먹는 양을 조절해야 한다던데 지금 네 살짜리가 이 술을 먹네요라며 가볍게 술잔을 부딪고 조금씩 조심해서 위장 반응 살피며 마시는데, 이를 보던 선배가 이번에는 불쑥 백운 이야기를 꺼내들었지요. 병든 백운의 술에 대한 태도였습니다. 그 이야길 듣고 낄낄거리며 우리 둘은 한 순배 더 돌렸지요. 

 

       明日又作                   내일 또 마시리

 

     病時猶未剛辭酒     병 들어도 마다 못하니

     死日方知始放觴     죽는 날에나 술잔 놓으려나

     醒在人間何有味     맑은 머리로 세상 산들 무슨 재미일까

     醉歸天上信爲良     취해서 하늘 가는 게 훨신 더 좋지.

 

        李奎報                           이규보

 

       백운은 일흔넷에 강화서 죽고 강화에 묻혔다.

      스무둘에 급제했으나관직을 얻지 못해 어려운 살림꾸려갔지만

      서른둘에 최충헌에 바친 송시로 출사했고 최이의 호의로 죽을 때까지 술은 마실 수 있었다. 

 

표현은 거칠지만 술에 대한 애정이 집착 아닌가 싶을 만큼 걸지요. 병 들어도 마다 못한다 운을 떼더니 취해서 하늘 가는 게 더 좋다 못을 박네요. 취해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묻는 니체의 '온화한 사람'을 백운이 만났다면 저처럼 온 얼굴에 활짝 미소를 피우는 정도를 넘어 당장 아무리 가난해도 같이 살자 하지 않았을까요.

 

그렇지만 저는 병 들면 술을 마시지 않을 겁니다. 감기에 목만 부어도 술에서 좀 멀고 싶거든요. 변명이지만 수술하고 얼마 가지 않아 술을 마신 건 수술 뒤 일하기 시작하고서이고 병이 걸려 있었던 건 아니었거든요. 그리고 저는 술을 마시고나 안 마시고나 늘 맑은 정신에 가벼운 몸이 더 편합니다. 어떻게 보면 제가 잔뜩 술 취해 해롱거리는 것 싫으니 알게 모르게 스스로 잠으로 덮어버리고 싶어 졸게 되었던 건 아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술을 좀 마시고 취기가 올라 세상이 밝아지고 덩달아 내 몸과 마음이 가벼워져 즐거움이 온 얼굴로 번질 때가 참 좋고, 설사 그것이 술에 취해서 그런 것이라 해도 그 정도 취기 그 기분 그 즐거움에 대한 기대 때문에 술을 뿌리칠 수가 없거든요. 그럼에도 이따금 선을 넘기도 하지만 사실 전 저도 다른 사람도 선이 넘도록 마시는 건 언제나 조심스럽습니다.

 

 

병들어도 마시고 하늘도 취해서 가면 좋겠다는 백운이 이미 자기보다 두 해를 더 살아가고 있는 후생에게 이제는 술과 죽음이 엮인 걸 염두에 둘 때라 가르치는 것 같아 그에 대한 것과는 결이 조금 다른 한 가지 이야기를 함께 마음에 두려 합니다.

 

이제 소개할 이 사람에 대해 제가 아는 것은 '술통'이라는 아래의 짧은 글귀와, 그의 이름이 '모리아 센얀'이며, 일본인이고, 선승이었다는 것이 전부입니다. 이 글이 그가 가진 친구들 술모임에서 나온 하이쿠인지도 아니면 한소식 들은 선승의 오도송인지도 아니면 장난끼 어린 술꾼의 술자리 해학인지도 모릅니다. 더우기 그가 생전에 술 마시기를 즐겨했는지조차 알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이 글은 술 자주 마시던 젊은 제게 이런 경지에, 또는 이런 지경에, 이르도록 술을 좋아한다는 말을 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의 삶은 어떤 것이었일까 나는 어떤가 과연 나 또한 이 지경으로 또는 이 경지에 이르도록 술에 빠져 있는 것인가라는 물음들을 떠올리게 했던 글귀입니다.

 

      술통

 

    내가 죽으면

    술통 밑에 묻어줘

    운이 좋으면

    밑둥이 샐지도 몰라

 

        모리아 센얀

 

이 사람 모리아 센얀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낸다 해도, 그래서 그가 술을 아주 좋아했고 잘 마신 득도한 뛰어난 선승이어서  참으로 놀라워 한다 해도, 혹은 선승이라는 이름으로 저자를 돌아다니며 술 마시길 좋아해서 사람들에게 유쾌한 장난을 많이 치던 술꾼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슬쩍 미소 짓는다 해도, 과연 내가 이 사람의 경지에 이를려하거나 아니면 이 사람의 지경에 빠져들려 할 것인가 하는 물음은 지금 술꾼 소리 듣는 스스로에게 다시 물어도 그럴 경지나 지경에는 전혀 가깝지 않다는 생각은 변함 없네요.

 

지금으로서는 이런 경지, 술통의 밑둥이 셀지도 몰라 그 아래 묻히길 바라는 경지에 올라 있는지 아니면 이런 지경, 술통의 밑둥이 셀지도 몰라 그 아래 묻히길 바라는 지경에 빠져 있는지 스스로 분간해보면 전혀 아니라 말할 수 있고, 앞으로도 전혀 그럴 일 없을 것이라 자신할 수 있어, 그저 주위로부터 손가락질 받지 않을 정도, 바라기는 온화한 술꾼 소리 들을 만큼, 술을 즐길 수 있으면 더 할 나위 없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