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든소 2012. 8. 9. 21:29

16. 목재木材

 

궐집 같은 큰 집을 짓기 위해서는 멧갓封山,禁山에 가서 "나무樹木"를 고르고 베는 일부터 해야 하는데, 도목수가 주로 이 일을 맡아 보았습니다. 이렇게 큰 집을 짓는 나무를 골라서 베는 일을 일반적인 산판山坂의 벌목伐木과 구별하여 "작벌作伐"이라 하여 새로운 한자말을 만들어 썼습니다. 큰 집을 짓는 도목수가 아니라 시골 마을의 도끼목수가 집을 지을 때는 생솔을 베고 우선 가지만 쳐서 거죽이 그냥 붙어 있는 "통나무體木,原木"를 만듭니다. 다음 그 통나무의 거죽을 벗기고 건목을 쳐서 "둥글이圓木"를 만드는데, 이때 '건목 친다'란 말의 건목은 말린 "나무木材"를 가리키는 "건목乾木'이 아니라 어떤 물건을 대충 다듬은 상태나 또는 그렇게 한 것을 가리키는 우리말 "건목"입니다. 어쩌면 "'건성'으로 다듬은 '나무木材'"라는 말일지도 모르지요. 그 다음 말리지 않은 "날나무"("물통나무")의 거죽을 벗기든 말려서 거죽을 벗기든 건목 친 통나무, 즉 둥글이를 잘 말려 집 짓는 "나무部材'로 쓸 수 있게 되면, 도끼로 쪼아 기둥으로 세우고, 도끼로 쪼아 보로 걸고, 도끼로 쪼아 도리로 잡고, 도끼로 쪼아 서까래를 얹어 집을 지었습니다.

 

"나무木"의 굵은 가지는 굵은 가지대로 잔 가지는 잔 가지대로 모두 모아 두었다가 집 짓는 "나무材料,木材"로 썼습니다. 산자나 외를 엮을 때 쓰고 남은 잔가지는 울을 칠 때 빈 곳을 채우기도 하고, 정 쓸 데가 없으면 모아 두었다가 "땔나무(땔감)"로 썼습니다. "나무木"는 버리지 않고 모두 다 사용합니다. 그렇지만, 굽기도 하고 휘이기도 한 둥글이를 이리저리 맞추어 집을 짓는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도 알맞는 "나무木材"를 골라 팔 곳은 파내고, 맞대는 곳은 판판하게 다듬어 맞대고, "나무部材"들을 세우고 얹고 붙이고 얽어 매는데, 아귀가 맞지 않아서 못이나 꺽쇠로 고정시키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집이 튼튼하고 야무질 수는 없지요.

 

궐집 짓는 것 같은 나라의 일로 개인이 가진 "산판"이나, 나라가 나무를 함부로 베지 못하게 한 "나무갓"이나, 나라가 풀을 함부로 벨 수 없게 한 "풀갓"이나, 나라가 나무도 풀도가꾸는 땅과 산의 나무도 풀도 벨 수 없게 한 "멧갓"의 나무樹木를 고르는 도목수도 사실 하는 일이 도끼목수나 다름이 없습니다. 하는 일이 주로 큰 집채 일이고, 따라서 "뼈대 나무體木"들도 대부분이 큰 "나무部材"라, 짓고자 하는 집채의 설계에 따라, 처음부터 알맞는 "나무樹木"를 고르고, 베고, 집 짓는 데까지 운반하고, 말리고, 다듬는 일들이 정교하고 계획적이지 않으면, 즉 시행착오가 있으면 비용이 엄청 많이 들어 견딜 수가 없다는 점이 다를 뿐입니다.

 

("갓"이란 말을 쓰면 '금연구역禁煙區域'을 '담배갓'으로, '출입금지구역出入禁止區域'는 '나들갓'으로 바꾸어 부를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함부로 목수를 구해 쓸 수도 없고 유사한 일을 많이 해 본 경험 있는 목수를 골라 도목수로 쓸 수 밖에 없지요. 큰 집채의 도목수는 "나무樹木"를 보고, 기둥감, 대들보감, 들보나 도리감, 서까래감으로 나누고,  몇 그루를 베면 필요한 나무를 다 얻을 수 있는지를 판단할 수가 있어야하지요. 강원도에서 추녀서까래 나무 30개를 보냈는데 목수가 2개만 골라 쓰고 나머지 28개는 쓸 수가 없다 해서, 종이에 쓸 수 있는 "나무木材" 그림- 일종의 현척도를 그려 보내 이에 맞도록 나무를 다시 구해 보내라 했다는 의궤 기록이 있습니다만, 그런 사달이 난 까닭은 아마도 현감이 멧갓에 "나무樹木"를 고르라고 보낸 목수가 도끼목수였거나, 굽은 서까래도 버리지 않고 쓰던 살림집 짓는 목수였던 모양입니다.

 

도끼목수가 베어 쓴 "나무木材"를 통나무 즉 둥글이라 불렀습니다만, 도목수가 골라 벨 정도로 큰 둥글이는 "부등"으로 부르는 이름도 따로 있습니다. 아름드리 "나무樹木"나 아름드리 나무를 벤 통나무原木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아름드리 "나무樹木,原木"를 일컫는 "부등"도 크기에 따라 대중소로 나누고, 특별히 큰 것은 별대別大부등, 별別부등이라 불렀습니다. 한자를 고르는 것도 유행이 있나 봅니다. 요즘 사람들이라면 "別"보다 "特"을 더 좋아해 특대부등, 특부등이라 할 텐데요. 그보다 아름드리 나무를 대소로 나눌 때 기준은 뭘까요? 지름이 한 자 반, 두 자, 그랬나요?

 

그런데 이 "부등"을 국어사전에서 꼭 한자말인 것처럼 "不等"이라 꼭 한자를 적어 놓습니다. "대부등", "중부등", "소부등" 모두 한자가 적힙니다. 그런데, "不等"이 "같지 않다"라는 뜻이면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같은 뜻으로 쓰입니다만, 아름드리 통나무를 가리키는 뜻으로는 우리만 씁니다. 아름드리 나무는 뿌리 쪽 "밑동부리元口,原口"와 하늘 쪽 "끝동부리末口"의 크기가 너무 "같지 않아서", "不等"이라 우리가 붙인 한자말일까요? 아무리 봐도 한자말 같지는 않아 "부등"은 아름드리 나무를 가리키는 우리말 같습니다.

 

부등을 깎아 집채의 "나무部材"로 쓰는 큰 집 짓는 일이 아니면, "나무木材"가 똑바르고 모가 나 있어야 나무 쓰기가 수월합니다. "모나무角材"라야 "나무部材"를 맞대는 부분이 서로 잘 물리도록 파고 끼워서, 못이나 꺽쇠 도움 없이도 나무部材들을 맞추어 쓸 수 있게 됩니다.  나무部材가 힘을 받는 단면도 효율적입니다. 마름질까지 끝낸 20cm 지름의 "마름둥글이"는 사방 18cm의 모나무와 같은 단면을 가졌지만 자리를 더 차지합니다. 그러나 사방 18cm의 모나무角材를 얻으려면 직경이 최소한 26cm가 넘는 곧은 나무를 켜야 하고, 나무가 굽었으면 더욱 굵어야 됩니다. 이것이 둥글이를 쓰는 이유입니다. 통나무原木를 켜서 모나무를 만드는 비용도 비용이지만, 통나무의 껍질을 벗겨 다듬고 "마름질治鍊"을 해서, "마름둥글이治鍊圓木"로 쓰면, "나무木材"의 단면적을 최대한으로 쓰게 되어 훨씬 효율적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둥근 돌만으로는 담장을 쌓을 수 없듯이, 둥근 나무만으로 집을 지을 수는 없습니다. 집채의 "뼈대 나무體木" 전체를 둥근 나무로 할 때, 도끼목수가 지붕 이고, 벽 치는 것까지는 생솔 둥글이나 마름둥글이로 어찌 어찌 지어 나가겠지만, 문을 달 때는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헌 문을 사서 고쳐 달거나, 문 만드는 "소목小木匠"이나 "창호장窓戶匠" 신세를 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문을 만들어 달 때는 문틀이나 지방이나 설주는 말 할 것도 없고, 문얼굴이나 문살까지 모두 "모나무角材"거나 "널빤지板材"인 "켠나무製材木"를 쓸 수 밖에 없지요.

 

기와지붕의 살림집은 기둥도 마루도 그 밖의 집채 나무部材들은 "켠나무"를 씁니다. 더군다나 집들이 커지고 칸수가 늘어나면 문도 창도 늘 수밖에 없고, 천장을 달고, 마루라도 깐 집이라면 켠나무가 없이는 도저히 일이 되지 않습니다. 물론 보통 도리와 서까래는 마름둥글이로 씁니다. 특히, 서까래는 좀 굽어서 서로 간격이 조금씩 틀려도 그것도 맛이려니 하고 도리 위에 얹습니다만, 규격이나 간격이 꼭 맞아야 하는 집을 지을 때는 여러 개의 마름둥글이를 놓고 바른 것들만 골라 쓰거나, 심지어 곧고 바른 둥근 나무를 쓰기 위해  모나무角材를 다시 둥글게 깎았습니다. 추녀 뿐만 아니라 처마서까래도 일정한 변화를 주면서 고르게 놓기 위해 정말 수고를 아끼지 않은 "나무部材"였습니다.

 

"켠나무"를 쓰면 집이 규격화 되어 좋습니다. 집마다 쓰는 "나무部材"의 치수가 다르다면 "나무木材"를 켜는 비용이 올라갈 수 밖에 없습니다. 켜는 품도 문제지만, 통나무를 '켜고 잘라서 나누는', "작골作骨"의 수율이 떨어질 수 있습니다. 기둥이나 들보 같은 중요한 "나무部材" 몇 개 정도라면 자귀로 쪼아서 만들면 되지만, 같은 치수의 "나무製材木"가 많이 들면 규격을 정하면 좋지요. 예를 들어, 창과 문 천장과 마루의 "나무材料"들 말입니다.

 

 

 

자연히 "나무장사木商"가 규격화를 주도합니다.  특별한 규격의 "나무木材"는 따로 주문을 받아, 통나무를 특별히 깎고 켜서 팔았지만, 집채의 칸수나 기둥 칸의 길이를 말하면 알맞는 크기의 기둥이나 들보로 쓸 나무"部材"를 켜서 줍니다. "널빤지"나 "오리목" 같은 "나무木材"는 용도에 따라 미리 켜 둔 "(켠)나무製材木"를 그 자리에서 팔았습니다. 이렇게 쓰임새에 따라 나무 크기를 보아 미리 정해 두거나, 미리 켜 둔 켠나무를 "가린나무"라 부릅니다. 자연히 산판에서 나무를 벨 때부터 어디다 쓸지, 어떤 켠나무들이 나올지 정합니다. 나무를 최대한으로 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나무는 비쌌습니다.

 

"뼈대나무"로 쓰지 않고 집채의 마감에 쓰는 켠나무를 "조리목", "오리목"이라 부릅니다. "조리"나 "오리"가 우리말인데 못 알아 들을까 봐 한자말 목木을 붙인 것입니다. 특히 조리목條里木은 오늘날의 국어사전에는 실려 있지 않아 없는 말로 오해하기 쉽지요 

 

("작벌作伐", "작골作骨", "작판作板", 등은 우리가 만든 한자말입니다. 나무를 베어서, 켜고, 자르고, 쪼갠다는 뜻으로 중국이나 일본에서 이런 말을 쓰는 것 같지는 않은데, 그래도 글자를 보여 주면 무슨 말인지는 알지도 모릅니다. '동무하다'라는 중국말은 '作伴zuoban'인데 영어의 'make love'를 비슷하게 '作愛zuoai'라고 만들어 쓰는 것을 보면, "作伐"이 뭔지, "作骨"이 뭔지, "作板"이 또 뭔지, 알아 들을 수도 있겠지요.) 

 

(그래도 주의해야 할 것은 '作案zuoan'이 우리가 볼 때 무슨 '좋은 계획을 세우는 것'처럼 보이나, 중국사람들에게 이 말은 '범죄를 저지르다'는 말인 것처럼, '作伐zuofa'가 나무를 벤다는 '감石+欠伐kanfa'의 뜻이 아니라, '사람을 해친다'는 뜻으로 이해될지도 모른다는 겁니다. 어쨌거나, 우리는 작골作骨을 켜거나 쪼개어 모나무角材를 만드는 것, 작판作板은 켜거나 쪼개어 널빤지板材를 만드는 것을 가리키는 말로 씁니다.)

 

("나무"라는 우리말을 넣고 "나무"에 대해 설명해 온 지금까지의 글에서 "나무"라는 우리말이 얼마나 많은 뜻을 나타내는지 눈치 채셨습니까?)

 

 

뿌리는 땅에 박고 줄기는 하늘로 솟고 잎이 무수히 달린 식물을 일컫는 "나무樹"로부터, 물과 불 또 흙과 쇠와는 다른 성분으로서의 "나무木"와, 그리고 재료를 가리키는 말로 "나무木材,材木", 그리고 또 집채의 뼈대 하나 하나를 가리키는 '나무體木,部材"가 있습니다. 이 가운데 가장 두루 쓰이는 말이 "식물의 한 종류로서 나무樹木"와, 그런 나무를 베어 일상에 유용한 "재료로서의 나무木材,材木"입니다.  "나무"에서부터 가지를 친 말들이 통나무, 켠나무,...등이 있는가 하면, "나무"라는 말을 붙여 쓰지 않는 둥글이, 널빤지... 등이 있습니다.

 

그리고 일상에 유용한 재료인 나무는 바로 켠나무製材木입니다.  옛날에는 정미소만큼 제재소를 많이 볼 수 있었는데, 요즘은 제재목들을 파는 "목재상"도 찾아보기 힘듭니다. 그래서인지 제재목 대신 목재木材나 재목材木이란 말을 더 많이 쓰지요. "우리말 찾기-집에서 사라진 우리말들(대청)"에서 잠간 나온 '계단'과 '단계' 이야기지만, 목재와 재목이 한자 "木"과 "材"를 서로 거꾸로 뒤집은 말이라서 모두 나무로 된 재료材料를 가리키는데, 목재와는 달리 재목은 "어떤 쓸모로 가치와 자격을 갖춘 존재"를 나타내기도 합니다. 우리말 "거리"와 "감"의 차이라고나 할까요?

 

우리말 "거리"와 "감"은 둘 다 "재료"를 가리키는 말이고, 쓰임새도 어떤 경우는 서로 이 말들을 바꾸어 놓아도 좋은 때도 있지만,  그 말을쓸 수 있는 곳과 그렇지 못한 곳도 있어, 주의 깊게 쓰야 합니다. 예를 들면, '바느질거리'와 '바느질감'의 차이입니다. '바느질 재료'를 가리키는 뜻은 둘 다 같지만, '바느질거리'는 '바느질이라는 일' 강조되는 반면,  '바느질감'은 '바느질이라는 일'도 강조하는 말이지만, 거기에 더해 '바느질을 해서 장차 좋은 옷으로 만들 재료'와 같이, 그 재료가 가진 옷을 만드는 용도로 '가치와 자격을 갖추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는 말이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 '뉴스거리'나 '뉴스감'는 같이 쓰도 좋고, '목수木手'가 되려는 사람을 두고 '목수감'은 좋지만 '목수거리'라고 말해선 곤란합니다.

 

 

(우리말 "나무"가 왠만한 한자어들과 큰 마찰 없이 두루 섞여 쓰이는 동안 세월이 변해 이번에는 서양 문물이 들어옵니다. 천 년 동안에는 중국 말로 바꾸어 받았고 백 년 전에는 일본말로 바뀐 것을 받았습니다만, 다행히 일본말도 한자말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 큰 혼란 없이 받아 들일 수 있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이제는 중국말이나 일본말이 아닌 말로 된 것을 우리가 직접 받아들입니다. 계속 "나무" 이야기를 이어가는 동안 서양 문물이 들어오고 나서 말들이 어떻게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받았는지, 지금부터 이 아래에서 계속되는, 꽤 과학적이고 전문적인 나무 이야기를 한번 유심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나무에 있어 그 나무의 가치나 자격을, 즉 무슨 감인지 알아보는 기준은 "나뭇결"입니다. 켠나무는 온몸으로 '스스로 살아온 자취', 그의 이력을 드러내어 보여줍니다. 속이는 법이 없습니다. 켠나무의 모든 겉면에 드러난 "무늬결"이 바로 그 나무가 지나왔던 자취입니다. 간혹 길거리에서 아주 좋아 보이는 바둑판을 들고 다니며 어쩌고 저쩌고 사연을 주절거리며 싸게 판다고 하지만, 그런 바둑판은 한결같이 나무결을 칠로 감추고 있습니다. 옹이 자국도 칠로 가리고 있습니다. 나무 쪽을 이은 자국도 가리고 있습니다. 가리지 않으면 속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어쩌다가 소까지도 호적과 이력서가 있어야, 즉 "언제 어느 명문가에서 태어나, 어느 좋은 환경의 곳에서 얼마 동안 사육되었고, 큰 병치레 없이 잘 지내다가, 나이 몇에 새끼를 몇 번 낳은 뒤, 이제 쇠고기가 되고자 한다"는 이력서 내지 '자기소개서'가 있어야만, 잡혀서 죽어도 잘 팔리는 쇠고기 계급이 되는 세상이 되었지만, 나무는 이런 이력을 자기 스스로 기록하여 둡니다. 바로 "나이테(나이바퀴, 연륜年輪)"입니다. 바로 이 "나이테"로부터 나무에 관한 전문적인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나이테tree ring木理,annual ring年輪,growth ring成長輪"는 나무를 자른 마구리에 나타나는 동심원 형태의 '둥근 테'를 말합니다. 나이테는 색갈이 짙고 발이 가는 테와, 색갈이 옅고 발이 굵은 테가 번갈아 '나무의 중심樹心'에서 나무의 껍데기 쪽으로 퍼져 나가 있습니다. 이 짙은 색의 테를 추재秋材autumnwood, 추목秋木, 또는 만재晩材latewood, 등으로 부르는데, 늦여름에서 늦가을 사이에 성장한 세포벽의 두께가 두껍고 내강이 작은 세포로 구성되어 밀도가 높은 반면, 이 옅은 색의 테는 춘재春材springwood, 춘목春木, 또는 조재早材earlywood, 등으로 부르는데 봄부터 여름에 걸쳐 성장한 세포벽이 얇고 내강이 큰 세포로 구성되어 밀도가 낮습니다. 추재autumnwood는 하재夏材summerwood라고도 부릅니다.

 

나이테의 중심인 수심樹心은 "고갱이,수髓pith"인데, 처음 이 곳에서 시작되는 나이테의 '발ring width'이 나무의 성장과정을 그대로 보여 줍니다. 발이 굵으면 밀도가 낮아 나무가 무릅니다. 그 반대로 발이 가늘면 밀도가 높아 나무가 단단해서 구조물에 쓰기 좋습니다. 마구리의 한 치 길이 안에 적어도 열 개에서 스무 개 정도의 나이테가 들어가 있다면 구조용으로 좋을 것입니다. 즉, 나이테의 발이 3mm~1.5mm 정도이면 구조재로 알맞다는 것입니다. 이런 방법 이외에도 특히 나무의 쓰임새를 정할 때, 추재의 분포와 양을 보는데, 이를 "추재율percentage of latewood"이라 합니다. 이 추재율이 높으면 나무의 비중이 커지며, 강도가 높아집니다. 즉, 나무는 '비중'이 '강도强度'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는 말입니다.

 

마구리에서 나이테를 보면서 알 수 있는 것은 나무의 강도 뿐만이 아닙니다. 그 켠나무가 본디 통나무에 속해 있던 곳도 알려 줍니다. 나이테의 중심이 어디에 있을까를 생각해 보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닙니다. 수심이 보이거나 가깝다 싶으면 그 나무는 "속나무,심재心材heartwood"이고, 수심樹心의 위치를 가늠할 수 없거나 멀리 있다고 보이는 나무는, 희한하게도 앞의 '속나무'란 이름에 대응하여 '겉나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 아니라 우리말 나무 대신 한자말 재목材木을 붙여, "겉재목,변재邊材sapwood"입니다. 

 

의궤에는 '용지판龍脂板'용 "갓널邊板" 또는 '중깃中襟'용 "갓널"이라는 말이 보이는데, 옛날에는 "겉"이란 말 대신 "가(가장자리)"를 더 많이 쓴 모양입니다. 그래서 겉재목 대신 왜 "갓나무"를 쓰지 않았나 했더니 이 말은 의자 뒷다리의 맨위에 가로걸친 나무를 가리키는 말이라 합니다.

 

마구리에 보이는 나이테를 상상으로 연장하여 켜기 전 통나무를 그려 보면, 다시 말해, 그 켠나무의 마구리 크기와 원목의 크기를 가늠해 보면, 그 수종樹種의 '다 자란 나무'를 베어 켠 것인지, 덜 자란 나무를 켠 것인지도 알 수 있습니다. '미숙재未熟材juvenile wood'는 그 외피의 모양도 그렇지만, 얇은 세포벽이나 짧은 목섬유질과 낮은 추재율 등 내부의 세포 구성에서 성숙재와는 "다른" 나무로, 비단 나무의 강도 뿐만이 아니라 이 때문에 생기는 과도한 "뒤틀림", 특히 성숙재에서는 거의 나타나지 않는 세로縱방향, 나무가 자란 위아래 방향으로 오는 과도한 변형 때문에 구조재로 쓸 때에는 충분히 이런 사실들 감안하여야 하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나무는 수분을 품고 있는 정도에 따라 그 부피가 줄었다가 다시 돌아오기도 합니다. 나무는 물기를 세포벽cell wall과 세포내강內腔cell lumen에 머금고 있는데, 세포벽이 안고 있는 물기를 "결합수結合水bound water", 세포내강이 담고 있는 물기는 "자유수自由水free water"라합니다. 물론, 나무를 말린다는 말은 이런 물기들을 없앤다는 말입니다. 먼저 자유수가 말라 없어지는데, 이 동안 물기가 마른 만큼 나무의 무게가 줄고, 열을 전달하는 전도율이 떨어지는 것 이외의 변화는 거의 없습니다. 자유수가 모두 사라지고 나무에 결합수만 남아 있는 때를 가리켜서 "섬유포화점纖維飽和點fiber saturation point"이라 부르는데, 수종에 따라 다르지만 대개 함수율 30% 정도로 보시면 됩니다.

 

나무가 계속 말라 결합수를 잃기 시작하고 함수율이 섬유포화점 이하로 떨어지면, 중량 감소, 열전도율 저하 이외에도 체적의 감소라는 수축이 생기고, 나무의 강도도 세어집니다. 나무에 수축이 생기는 것 이외에는 대체로 나무를 쓰는 목적에 부합하도록 물리적 특성이 향상되기 때문에 나무를 말려서 쓰는 것입니다. 나무의 수축은 세三 방향에서 일어나는데, 가장 큰 것이 나이테의 "접선接線방향tangential direction"으로 생기는 수축으로 최대 7% 내외로 보면 되고,  그 다음이 '나이테의 중심에서' "방사放射방향radial direction"으로 생기는 수축으로 최대 5% 이내로 적은 편이며, 마지막은 나무가 자란 "종縱방향longitudinal direction"으로 생기는 수축으로 최대 0.2% 정도라 미숙재가 아니라면 무시해도 좋습니다.

 

함수율이 섬유포화점 이하로 떨어지면 강도나 수축이 어느 정도 함수율의 저하율에 비례하여 수축하고 강도는 증가한다고 보아도 무방합니다. 요즘은 나무의 최대 약점인 부식성과 가연성을 줄이기 위해 방부처리와 내화처리를 하는데, 이런 처리는 나무를 화확 약품에 담궈 주입시키는 방법을 쓰기 때문에 함수율을 올리는 결과를 낳습니다. 다시 말해, 방부처리나 내화처리된 나무를 구조물의 구조재로 쓸 경우, 부재의 크기를 보통 잘 마른 나무와 비교하여 키울 필요가 있다는 말입니다. 어느 정도 키울 것인지는 처리 수준에 따라 따로 정해야 합니다.

 

경험 많은 제재공製材工이라면 나무를 켤 때 켜면서 골라 버리지만, 그래도 속나무 가운데는 부러지기 쉬운 나무가 간혹 나옵니다. 활엽수에서 주로 발견되는데, 나무가 자라면서 하중이 커져 나무 "속髓pith"이 견딜 수 없게 됩니다. 이때 외피 가까운 곳의 새롭게 생긴 세포가 팽창하면서 마치 포도주통을 메운 쇠띠처럼 나무의 속이 터져 나오는 것을 막습니다. 자연스레 나무 속이 받는 무게에 대한 응력과, 나무 외피 부분이 받는 띠처럼 조이는 응력이 균형을 이루어 속이 무른데도 불구하고 나무는 부러지지 않고 성장을 계속합니다. 

 

산生 나무에서 생기는 이러한 일련의 힘들을 "성장응력成長應力growth stress"이라 하는데, 이 결과 속나무는 부스러지기 쉬운 나무, "취성심재脆性心材brittle heart"가 되거나, 별 모양의 갈라지고 벌어지거나 해서 결국은 썪어서 속이 비게 되고, 겉재목은 측면이나 길이대로 굽는 현상이 아주 심해 나무를 켤 때도 톱을 휘감을 정도가 됩니다.

 

 

나이테를 길이대로 켜면 마구리가 아닌 세로 면에 크게 두 가지 '나뭇결木理,樹紋,grain,wood grain'의 무늬가 나타납니다. 하나는 '결理grain'이 줄을 친 듯 나타나는데, 이는 나무를 나이테에 수직으로 켰을 때 생기고, 줄의 모양이 반듯하게 그은 것 같은 "곧은결正目,柾구目,邊目straight/edge grain", 줄이 서로 어긋나게나 끊어져 그은 것 같은 "엇결交目cross grain", 등이 있고, 다른 하나는 결이 불규칙적인 곡선으로 된 모양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나무를 나이테의 접선방향으로 켰을 때 생기고, 그 무늬가 물결이 잔잔하게 흘러가는 듯한 "널결板目falt/flat/plaste/slat grain" 그리고 무늬가 곱슬곱슬한 머리카락처럼 여러가지 형태인 "무늬결紋目curly grain"과, 무늬가 나뭇잎 엽맥이나 그물처럼 퍼져 나간 "그물결網目veining" 등이 있습니다.

 

여러가지 무늬의 나뭇결 가운데 대표적인 것은 나이테와 직각으로 켰을 때 생기는 곧은결과, 나이테의 접선 방향으로 켰을 때 생기는 널결이라 할 수 있습니다. 특히, "널결"은 나무가 곧게 자라지 못해 똑바로 켜도 생기고, 나무가 곧게 자랐다 해도 톱을 약간 비스듬하게 켜면 생깁니다.  

 

넓직한 널빤지에서 그 무늬를 확실히 볼 수 있으므로 붙인 이름이지만 유심히 보면 모나무에서도 널결이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널결이 너무 바짝 붙어 있을 경우는 심하게 휘인 나무를 켰거나 나무를 심하게 비스듬히 켠 것이므로 '무늬를 쓰는 경우'가 아니면 조심하는 것이 좋습니다. 왜냐하면, 나무는 나뭇결에 따라 '쪼개지는 강도'에 아주 약한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망치자루가 부러졌을 때, 그 망치자루의 부러진 결을 보면 바로 이해가 되겠지요. 구조물에 쓸 나무가 눈에 띄는 널결을 보이면 일단은 주의를 하는 것이 좋습니다. "나뭇결 경사"가 '1:25'이면 먼저 인장강도가 저하되고, '1:10'이면 압축강도도 따라 저하되는 것도 나무결끼리의 "쪼개짐割裂cleavage"이 먼저 생기기 때문이지요.  '곧은결'일 경우는 눈으로 그 결이 얼마나 비스듬한가를 보면 '나뭇결 경사도木理傾斜度'를 바로 잴 수 있겠지만, '널결'일 경우는 그리 간단치가 않아 특수한 기구를 쓰기도 하지만, 집에서 우선은 널결의 개수를 세고, 마구리에서 그 널결의 발을 재어 곱한 값을 나무 길이로 나누면 그런대로 간단히 경사도를 알아 볼 수도 있습니다.

 

이 밖에도, 나무를 켠 면은 그 나무의 결함을 많이 보여줍니다. 나뭇결 경사도와는 달리 척 보고 알 수 있는 것들입니다. 약간 터진 틈이라든가 그 틈이 계속이어져 나무가 갈라져 있다든지, 옹이가 있거나 나무진이 뭉쳐져 있다든지, 무엇보다 나무가 뒤틀려 있는 것 따위지요.

 

"옹이'와木+厄knot'"는 주로 침엽수에 나타나고 활엽수에서는 흔치 않습니다. 옹이는 살아 있어 나무 속에 그냥 박혀 있기도 하고, 죽어서 흔들거리거나 빠져 나가 구멍만 남은 것도 있는데, 둘 다 나무의 유효 단면적을 줄여 나무를 제대로 쓸 수 없게 할 뿐 아니라, 옹이 주변의 나뭇결이 뒤틀려 있어 정상적인 수축이나 변형을 기대할 수 없게 만듭니다. 물론 미관상으로도 옹이와 그 주변의 뒤틀린 나뭇결은 눈에 거슬립니다. 그런데, 옹이를 가리키는 한자말은 와'木+厄'인데 옹이가 없는 좋은 나무는 무와재가 아닌 무절재無節材, 즉 마디가 없는 나무라 부르네요.

 

옹이들 여럿이 한 곳에 몰려 "옹이뭉치群'木+厄'clustered knots"가 있는 켠나무는 될 수 있는 대로 구조물의 구조재로는 쓰지 않는 것이 좋은데 그 이유는 옹이들이 모여 있을 때 오는 강도의 영향을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하나씩 있다 해도 옹이가 나무의 복판에 끼인 것이 아니라 나무 면의 겉에 있어 그 만큼의 단면적을 직접 잃을 수 있는 나무 역시 구조재로 쓰기에는 마땅치 않습니다. 이렇게 옹이들이 많이 박힌 나무들을 구조재로 꼭 쓰고 싶으면, 통나무 그대로 쓰는 편이 좋습니다.  통나무를 둥글이로 깎아서 쓰면 단면의 효율도 크고, 무엇보다 옹이가 그대로 박혀 있어 강도나 미관의 손상이 적습니다.

 

 

켠나무의 "뒤틀림歪曲warp"은,  통나무로 있을 때는 균형을 이루던 내부응력이 톱으로 켜지는 그 순간 이완하고, 또 이완된 켠나무가 건조될 때 생기는 나무의 수축이 나이테를 기준으로, 접선방향, 방사방향, 종방향, 등에 따라 서로 다르고, 나무의 속 고갱이 쪽과 겉 거죽 쪽이 또 다르기 때문에, 즉 나무를 켜는 방향에 따라서, 나무 내부의 위치에 따라서, 나무의 '수축율'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언제나 발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무가 뒤틀리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잘 마른 통나무를 켜고, 그 다음은 켠나무를 같은 응력이 전체에 골고루 퍼지게 쌓아, 온도와 습도를 전체적으로 같이 유지되도록 보관하여야 합니다.

 

나이테의 모양이 정상적 동심원이 아닌 나무나, 나선형의 나뭇결이거나, 일그러진 나뭇결의 경우 뒤틀림은 더욱 크게 나타납니다. 이 뒤틀림은 크게 "비틀림枉變twist", "굽음灣形crook", "오므림凹縮cupping", 따위의 변형이 각각 또는 복합으로 나타납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정상재正常材"에도 비틀림이 생기는데, 건조나 보관 방법이 적절치 못한 때문입니다. 이렇게 뒤틀린 나무를 구조물의 구조재로 사용해서는 안됩니다.

 

비틀림은 켠나무의 위와 아래 마구리가 같은 축에 있어도 서로 비틀어져 있는 것을 가리키는데, 나이테가 비틀어져 자란 나무이거나 건조될 때 그리고 보관할 때 위아래 마구리 쪽이 서로 다른 환경에 있어 생기는 현상이고, 굽음은 "길이굽음縱灣形"과 "측면굽음側灣形"이 있는데, 길이로 켠 나무에서 길이가 길다 보니 나무의 속 고갱이 쪽보다 나무의 겉 거죽 쪽에서 수축이 더 많이 생겨 나무 전체가 휘어지는 현상이고,  오므림은 널빤지의 너비幅 쪽으로 생기는 굽음이라 할 수 있는데,  나이테의 접선방향으로 켜진 나무의 두 면에서, 주로 널빤지의 "널거죽"과 "널안"에서, 나무 속 고갱이 쪽인 널안보다 나무 겉 거죽 쪽인 널거죽에서 수축이 더 생겨 널빤지의 양 끝이 널거죽 쪽으로 오므라드는 현상을 가리킵니다.

 

널빤지의 오므림이 가져 오는 폐단을 줄이기 위해서 그 오므림이 생기는 면을 먼저 아는 것이 얼마나 중요했는가는 '널거죽'과 '널안'이라는 말 이외에도 '나무겉'과 '나무속'이라는 이름이 또 있는 것을 보아도 잘 알 수 있습니다. 그 오므림이 생기지 않도록, 널빤지의 오므림이 특히 많은 거죽 붙은 널쪽도 마루를 까는 데 쓸 수 있게 한 것이 귀틀마루라고 대청을 설명할 때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나무가 터져서 보이는 "금龜裂crack"이나, 나무가 갈라져서 나누어졌거나 부분적으로 나누어진 "갈라짐分割split"은 켠나무의 여섯 면에서 직접 눈으로 관찰해서 파악할 수 있고, "관솔,나무기름골樹脂溝resin pocket" 역시 (나무)기름이 겉으로 베어 나온 것을 보아 알 수 있으므로 더 이상 설명하지 않겠습니다만, 이렇게 나무는 스스로의 성장 이력과 지금의 모습, 그리고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바뀔 것인지를 그대로 숨김없이 드러내어 보여 줍니다. '그것을 읽고 판단하여 알맞는 자리에 갖다 쓰는 것', 즉 '치목治木'은 전적으로 목수가 할 몫입니다.

 

 

(여기서는 지금까지 한자와 우리말의 구별과는 달리, 영어와 우리말의 관계가 많이 적혀 있는 것을 눈치 채셨습니까? 나무가 젖거나 마르거나 해서 모양이 바뀌는 것을 가리키는 말들의 우리말과 영어 사이에 적힌 한자말은 유식한 채 하고 병든소가 한번 만들어 넣은 것들이라 전문용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중국이나 일본에서 어떻게 번역했거나 표현하고 있는지 아직 알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부득이 제가 만들었습니다.)

 

"나이테"라는 우리말은 언제부터 쓰기 시작했을까요?  한자말 "연륜年輪"은 또 언제 만든 말일까요? "年輪"이라 쓴 한자말을 우리는 '연륜'이라 읽고, 중국은 'nianlun'이라 읽고, 일본에서는 'nenlin'이라 읽는데, 그 뜻은 모두 "나이테" 또는 "나이바퀴" 즉 영어로 'annual ring'을 가리킵니다. '나이테'와 '年輪연륜/nianlun/nenlin' 그리고 'annual ring'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는 것까요?  

 

'나이테'나 '나이바퀴', '年輪연륜,nianlun, nenlin' 등의 말은 일상의 언어가 되었습니다마는 중국말 "木+力,력li"나 우리말 "발"은 같은 뜻의 말이면서도 지금은 더 이상 일상의 말이 아닙니다.  중국에서는 '木理muli'나 '年輪nianlun'에 눌리고, 우리나라에서는 '나무결'이나 '나이테'에 눌려 이제는 실생활에 사용되지 않습니다. 일본에서는 무슨 옛말이 있었는지 몰라도 지금은 '木理mokuli '또는 '木目mokume'라고 합니다.  

 

'wood grain'이나 'annual ring'과 함께 '木理'나 '年輪'을 받아들이고, 아울러 '나무결'이나 '나이테'란 우리말을 쓴 것을 보면, 그 당시 우리말을 만들어 쓰자는 바람이 불었거나 해서 우리말로 만들었을 것 같은데 그렇게 만든 말이라 해도 전에부터 있었던 말처럼 제법 그럴듯해 보입니다. 아니면 '옹이'의 경우처럼 이미 있던 우리말을 찾아 쓸 여유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그런 와중에 'resin pocket'이란 말이 나타나서 꼼짝할 수가 없는 경우도 생깁니다.

 

'pocket'은 어찌 '주머니'나 '덩이'나 '골'이라 붙이겠는데 'resin'은 도무지 우리말로 어찌 해 볼 수가 없습니다. '진'이란 말이 얼핏 떠오르지만, '송진松津'이란 말에서 보듯이 '진津'은 우리말이 아닙니다. '진'한 국물이나 '진'보라색의 '진'이 모두다 '짙다'는 뜻을 나타내는 한자말입니다. "관솔"이란 우리말은 "송진"이라는 한자말처럼 소나무에 국한되는 말처럼 보이긴 하지만, 나무의 진이 모여 뭉쳐진 것을 가리키는 말로 본다면, "resin"에 대한 우리말로 얼마든지 쓸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일부러 '樹脂,수지,shuzhi中,jiushi日'를 번역하여 '나무기름'이라고 하는 것 이외에는 별 다른 우리말이 잘 떠오르지 않습니다.  '(나무)기름골'이라고 억지스럽게 우리말을 만들어 써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새로운 말 만들기가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함수율이니 섬유포화점이니 성장응력이니 취성이니 하는 한자어 전문용어가 나오면 이야기가 좀 어려워집니다. 그런 학문이나 기술을 처음 발전시킨 사람들이 붙인 전문용어들이 먼저 정해지고, 그 다음 그 학문이나 기술을 접하는 순서대로 그 전문용어들을 그대로 옮겨 말하게 되므로 직접 우리가 받아들이지 않고 중국이나 일본을 통하면 그 전문용어들을 번역하지 않고 그냥 받아들여도 충분히 알 수 있기 때문에 따로 우리말로 바꾸어 놓을 일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위의 '나무기름'에서 보듯 우리말로 옮기기가 더 힘들었을 것입니다. 

 

나무의 압축강도壓縮强度compressive strength니 인장강도引張强度tensile stength니 하는 말은 나무의 물리적 특성을 특별히 꼬집어 쓰는 말이 아니라, 학문이나 기술의 영역에서 보편적으로 쓰이는 전문용어여서, 일부러 나무를 이야기할 때만 누름세기라든가 당김세기라는 말로 바꾸어 쓴다면 오히려 어색할 겁니다. 취성, 함수율, 포화점 등은 말할 것도 없고, "cell"을 "細包" 대신 새로 "낱칸" 또는 "살이알"라는 말로 바꿔 쓴다고 가정해 보십시요. 당장은 참 어색하지요.

 

그러나, 예를 들어 '춘재春材'나 '추재秋材'라고 이름 지은 나무의 전문용어의 경우는 이야기가 아주 다릅니다. 쉽게 '봄나무'나 '가을나무'라고 부르는 것이 너무 전문성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 아니라, 이때 우리말 '나무'가 'wood材'보다 'tree樹'에 더 가깝다고 느꼈기 때문에 '춘재'나 '추재'라고 불렀을 테지요. 그렇지 않다면, '春材chuncai'나 'springwood' 역시 그들의 일상의 말이기는 마찬가지인데 우리가 굳이 한자를 빌려 쓸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그렇지만 '봄나무'나 '가을나무'가 아니다 싶다고 해서 '나이테'와 '나무결'을 만들던 사람들이 우리말 붙이기를 포기한 것은 좀 아쉽습니다.

 

사실 처음 이름을 붙인 사람이 "발"이란 우리말을 알고 있었더라면 "봄발春材springwood"과 "가을발秋材autumnwood"로 붙일 수도 있었을 텐데 그랬더라면 "발"이라는 우리말이 얼마나 안성맞춤이었을까요? 아니 "발"이란 말을 몰랐다 해도 '나이테'는 분명히 알았을 것인데 왜 "봄테"거나 "가을테"라는 이름을 생각하지 못했을까요?  어쨌든 "wood"가 'springwood'의 알맹이 뜻keyword은 아닌 것 같은데 말입니다.

 

또 다른 경우가 "수髓pith"입니다. "pith", 즉 나무의 속고갱이를 "수髓"라고 부른다면, 거의 대부분의 사람이 영어사전과 국어사전과 한자사전을 번갈아 찾아야만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알 것입니다. 아무리 전문용어라도 영어의 "pith"처럼 일상의 말 "속"이나 "고갱이"로 쓰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끝으로 나오는 우리말 전문용어들은 나무가 젖고 말라서 생기는 여러가지 '뒤틀린warp' 모양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나무에 '금crack'이 가고 '갈라지는split' 것에서부터 나무가 길이로 혹은 마구리에서 '휘어지고twist', '굽고crook', '오므라지는cupping' 모양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너무나 쉽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 있는 이런 우리말을 두고, 어설프게 붙인 한자말 '龜裂'과 '分割'서부터 '歪曲'의 여러 모습으로 '枉變'이나 '灣形', 그리고 '凹縮' 등의 말로 나타낸다면 한자말에 정통하거나 나무의 성질에 정통한 사람이라 해도 영어사전도 찾고 한자사전과 국어사전을 또 다시 찾아야만 무슨 일이 나무에게 생겼는지 알아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나무에 대한 공부가 깊어질수록 "집에서 사라진 우리말들"을 찾는 일이 "집으로 들어오는 새로운 우리말들"을 찾는 일로 바뀔 것 같습니다.

위에서 빠진 나무에 관한 우리말들은 나오는 대로 찾아지는 대로 계속 덧붙여 나가겠습니다.)

 

 

이런 나무는 어떻게 켰을까요? 물론 예나 지금이나 "톱"으로 켰습니다.

 

톱은 톱몸 또는 톱양이라는 길고 얇은 강철판의 긴 쪽 모서리에, 날카로운 세모꼴 이齒를 연속해서 파내어 톱니를 만들고, 그 톱니의 한쪽 면을 줄로 갈아 날을 세운 톱날로 마무리한 연장입니다. 톱은 주로 나무를 켜거나 자르는 데 쓰지만, 쇠나 돌을 자를 때도 씁니다.  켜거나 자를 때는 톱몸이 편하게 왔다 갔다 하도록 톱틀에 끼워서 쓰거나, 자루를 박아 씁니다. 물론, 오늘날의 기계톱이나 전기톱도 자세히 보면 모두 톱틀 속에 있거나, 아니면 톱자루에 달려 있습니다. 다만 작업대saw bench의 모습이거나 무거운 손잡이saw handle의 모습으로 바뀌어 있을 뿐이지요. 

 

톱은 톱니의 크기와 모양을 달리 하여 나뭇결木理, 즉 나이테가 세로로 잘려서 나타내는 무늬을 따라 나무를 켜는 '켤톱'과 나무의 결을 거슬러 나무를 자르는 '자름톱'을 따로 두고 씁니다. '켜는 일'과 '자르는 일'을 구별치 않고 쓰는 '허튼톱'도 있고, 톱몸의 양쪽 끝 한쪽에는 '켤톱날'을 두고 다른 끝에는 '자름톱날'을 둔 '양날톱'도 있습니다. 그러나, '허튼톱날'은 켤톱날도 아니고 자름톱날도 아니어서 어느 쪽에도 좋지 않으며, 양날톱은 톱날의 날어김의 폭이 켤톱이든 자름톱이든 같도록 해야 하기 때문에,  큰 나무가 아닌 가린나무나 조리목을 다룰 때 잠시 편히 쓸 수 있을 뿐입니다. 마찬가지로 가린나무거나 조리목 정도라면 켤톱으로 자르고 자름톱으로 켤 수도 있지만, 그럴 수가 있을 뿐 본격적인 톱일에는 적당하지 않아, 톱질이 아주 힘들고, 톱일이 반듯하지도 않고, 더군다나 자름톱으로 나무를 켜면 날어김 폭만큼 나무의 손실까지 봐야 합니다.

 

톱은 미는 힘으로 나무를 켜거나 자르거나 하든지 아니면, 당기는 힘으로 나무를 켜거나 자르거나 하는데, 톱니를 "톱줄鉅'注+乙'"로 잘 벼리고 톱몸鋸樑이 나무에 끼이지 않을 만큼 톱니鋸齒가 양옆으로 번갈아 잘 제껴진 날어김을 해야 합니다.  켤톱은 인거引鋸, 잉걸톱, 내릴톱, 세로톱 등으로도 부르는데,톱니가 크고 날어김을 적게 하여 날이 잘 닳지 않도록 한 것이고, 자름톱은 단거斷鋸, 걸톱擧乙鉅,巨+乙鉅, 끈치톱, 썰음톱, 가로톱, 등으로도 부르는데, 톱니도 작고 날어김도 좌우 두 줄이 되게 한 것으로 날이 잘 닳아 자주 쓸어 주어야 반듯이 자를 수 있습니다.  

 

톱은 그 종류가 너무나 많아 일일이 그 이름들을 다 부르기 힘듭니다만, 우선 원목을 다루는 '큰톱'들을 보면 대부등 따위의 '원목을 켜는 톱'인 "인거引鋸,引鉅"와 그런 원목을 '자르는 톱'인 "걸거巨+乙鉅,擧乙鉅"가 으뜸이고, 그 다음으로는 소부등이나 작은 원목들을 먼저 도끼와 자귀로 쪼아 네모나도록 손을 본(初治鍊한) 뒤, -거죽이 붙은 겉재목을 네 번의 인거 톱질로 얻는 가치보다 도끼나 자귀로 쪼아 없애는 편이 싸고 빠른 길이었겠지요- 널빤지로 가르거나, 원목을 인거로 켠 두꺼운 널빤지를 다시 켜서 얇게 하거나, 모나무로 '가르는 톱'인 "기거岐鉅"가 있습니다.

 

물론, '인거'나 '걸거'나 '기거'를 나무의 크기에 따라 골라 쓸 수 있도록 대중소로 만든 것이 나무를 자르거나 켜거나 가르는 톱들입니다.  이들 큰 나무를 다루는 큰 톱들은 주로 두 사람이 밀고 당기며 쓴 데 반해, 한 사람이 쓰는 작은 톱은 주로 작은 나무를 다루도록 만들었습니다. 한편 별도로 용도에 따라 줄톱注밑에乙鉅, 조림(졸임)톱條乙音鉅, 날톱刀鉅, 붕어톱, 쥐꼬리톱, 등대기톱, 장부톱, 등등을 따로 만들어 썼습니다.

 

한번 하면 오래 톱질을 해야 하는 톱들은 왠만하면 모두 톱틀에 끼워 썼습니다. 두 개의 톱자루梗를 세우고, 아래쪽 끝에 톱소매를 달아 톱냥의 구멍에 끼워 걸고, 톱자루 가운데 쪽으로 동발을 넣어 톱자루 둘의 거리를 톱냥에 맞춰 띠우면서 아울러 톱자루가 지렛대처럼 움직이도록 받침 역활을 하도록 하고, 톱자루의 윗쪽 끝에는 탕개줄을 두 가닥으로 걸어 그 중간에 탕개목을 끼운 후 돌려서 줄을 팽팽하게 꼬면, 톱자루의 윗쪽 끝이 오므라들고, 오므라들수록 톱자루의 아래 톱소매 쪽이 반대로 벌어지면서 톱냥이 팽팽하게 당겨지도록 만든 톱틀입니다.

 

톱질하는 동안 톱냥이 휘거나 구부러지지 않아야만 나무를 반듯이 켜거나 자를 수 있습니다.  이런 톱틀에 끼워 건 톱냥은 좀 얇고 좁아도 톱질에는 힘이 덜 듭니다. 오늘날의 전기톱 가운데 '띠톱band saw'이 바로 이런 이치로 움직입니다. 톱자루나 손잡이에 달린 톱냥이 대부분 두꺼운 철판으로 되어 있고 폭도 넓게 한 것 모두 톱냥이 휘거나 구부러지는 것을 막기 위한 것입니다.  탕개줄로 톱냥을 팽팽하게 당겨서 쓰는 틀톱을 "탕개톱"이라 부릅니다. 탕개톱은 톱냥의 크기에 따라 톱틀을 임의로 만들어 쓸 수 있어 틀톱의 꽃이라 부를 만하지요.

 

원목을 다루는 특별히 큰 톱이나 쓸 곳이 정해진 톱은 톱날이 하나지만, 보통 목수가 쓰는 중간 톱이나 작은 톱은 톱냥을 양날톱으로 한 경우도 있는데, 톱소매를 돌리면 톱냥의 위 아래를 바꿀 수 있어 켤톱 자름톱으로 용이하게 쓸 수가 있었습니다. 물론, 보통의 탕개톱은 톱날이 아래로 가게 해서 사용했지만, 톱날을 옆으로 가도록 해서 사용하기도 했는데 이것을 "옆탕개톱"이라 합니다.

 

오늘날의 톱은 실톱이나 활톱을 빼면, 모두 톱몸에서 나온 이음눈에 톱자루를 박아 쓰고 있습니다만, 옛날에도 무량톱이라 해서 톱냥을 톱틀에 끼우지 않고 자루를 박아 썼습니다. 톱틀에 끼운 톱은 주로 밀면서 켜거나 자르는데, 자루톱은 주로 당길 때 켜거나 자르게 되는 차이점이 있어 알아두면 좋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서양사람들은 톱이나 대패를 밀어서 쓰고 우리는 당겨서 쓰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 우리나라도 톱이나 대패를 주로 밀어서 썼고, 자루가 달린 톱이나 작은 특수 대패의 경우만 당겨서 썼습니다. 서양의 톱 중에 톱몸이 두껍고 손잡이 이음눈이 있는 톱몸의 끝은 넓고 그 반대 쪽은 가늘게 만든 톱이 있는데 이런 톱은 손잡이가 달렸고 그 손잡이로 톱냥을 밀어서 켜거나 자릅니다.

 

두 자가 넘는 대부등을 탕개톱으로 켜거나 자르는 데는 톱틀의 크기와 야물기가 보통 큰톱의 톱틀 수준을 넘어야 합니다.  나무를 뒤집어 두 번 나누어 자른다 해도 톱냥과 동발 사이가 한 자 반은 넘어야 하고, 톱냥 길이도 아무리 짧아도 석 자 반은 되어야 톱질을 할 수가 있지요. 단숨에 자른다면 톱틀의 크기가 얼마나 되어야 할지요? 그래서 정말 큰톱을 '아주큰톱別大鉅'이라며 따로 이름을 붙여 불렀습니다. 이런 '아주큰톱"은 톱틀에 끼워 쓰기보다는, 톱몸의 두께도 조금 두껍게 하고 폭도 넓게 키워 톱몸이 자를 곳을 반듯이 지킬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물론 톱틀에서 벗어난 '무량거無樑鋸'라 톱몸 양쪽 끝의 이음눈에 톱자루를 세워 박아 둘이서 맞톱질을 할 수 있게 했습니다.

 

 

사람들이 쇠로 톱을 만들어 한 자짜리 기둥부터 여섯 치 오리목은 말할 것도 없고,  반의 반 치짜리 문살 나무까지 켜서 쓸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톱이란 연장이 아무리 좋아도 정작 중요한 것은 톱을 써서 나무를 켜는 힘과 기술입니다.  그래서 나무는 아무나 켜지 못하고 전문적일꾼인 톱장이鋸匠,鉅匠들이 나무를 켰습니다. 그렇습니다. 나무를 켜는 일은 나무를 쓰는 목수일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전문적인 일입니다.

 

나무는 결에 따라 강도가 다르기 때문에 자칫 방심하면 톱날이 여문 데를 피해 무른 데로 쏠려서 빗겨 켜집니다. 빗겨 켜진 만큼 나무를 버려야 할 뿐만 아니라 빗겨 켜진 면을 바로 잡는 데는 톱을 쓰든 대패를 쓰든 쓰는 만큼 품이 또 더 듭니다. 원목을 잘못 건드리면 손해가 더욱 커져서 나무장사가 견딜 수 없습니다. 나무 값이 비싸지면서 톱장鋸匠이들이 더욱 더 그들의 전문성을 인정 받았지요. 처음에는 패稗나 꾼軍이라 불리더니 한 순간 장인匠人으로 불립니다. 

 

그 중에도 으뜸은 맨 처음 원목을 놓고 켤톱질을 하는 켤톱장이引鋸匠입니다. 제일 힘이 많이 드는 요새 말로 3D업종입니다. 켤톱질은 한 패로 무리를 지어 일했는데, 인거장 밑에는 인거꾼引鋸軍들을 두어 원목을 켜는 일을 했습니다. 대부등 통나무를 켜서 두꺼운 널빤지로 만드는 일은 얇은 널빤지나 모나무를 얻는, 즉 가린나무를 얻는 기초적인 일입니다. 대부등 원목을 길이에 맞춰 자르는 걸톱장이'巨+乙'鉅匠 역시 전문적인 톱장이들이었고, 한번 손을 본 나무를 갈라 가린나무로 만드는 기거장岐鉅匠들은 톱장이들의 중심이었지요.

 

대목이 용도에 맞게 나무를 쓸 수 있도록 사용하기 직전의 상태로 켜 둔 나무, 즉 가린나무를 만드는 톱장이가 기거장이었다면, 마감을 하는 데 쓰거나 창호를 만드는 데 쓰는 오리목을 만드는 톱장이들을 조리장條里匠이라 불렀습니다. 조리장들은 공방이나 작업소에서 그들이 주로 쓰던 톱인 조리톱條里鉅 또는 조림톱條乙音鉅으로 수장판修粧板이나 얇은 널빤지를 작게 켜서 조리목(의궤에는 주로 조리목이란 말을 많이 썼는데 요즘은 조리목이란 말이 없어지고 오리목이 표준말이 되었습니다)을 만들었습니다. 조리목은 크기가 아주 다양한 가늘고 긴 켠나무입니다.

 

사실 가늘다고 하나,  사방 두 치의 단면을 기준으로 이보다 더 크면 '큰 오리목', 그보다 더 작으면 '작은 오리목'이라 부를 만큼 굵기의 차이도 많았고, 사실 길다라고 말하지만, 그 길이도 엄청 차이가 많아서, 걸톱장이가 기둥이나 보의 길이대로 짜르고 남은 나무를 가른 4자짜리서부터 평고대로 쓰던 25자도 넘는 정말 긴 오리목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점점 작게 나누어지는 나무가 더 이상 작게 켤 수 없을 때까지 간 것이 문살대입니다.  한 치 오리목을 두 갈래 세 갈래까지 내어 만드는 문살대는 따로 전문적인 톱장이들이 켠 것이 아니라, 창호장窓戶匠들이 그들의 공방에서 일일이 켜고 대패질해서 만들었습니다. 가구공방에서 쓰는 얇은 널빤지나 오리목들은 소목장小木匠들이 그때 그때 필요에 따라 켜거나 잘라 썼습니다.

 

 

그런데 톱 이야기 가운데 이상한 한자가 여럿 보입니다.

앞에서도 톱장이 일에 '작골作骨'이나 '작판作板'처럼 웬지 어울리지 않는 한자말을 만들어 쓰더니 톱을 가리키는 한자 "鋸거"를 멀쩡하게 잘도 쓰고 있다가 갑자기 "鉅거"라는 얼토당토 않는 한자로 적기도 합니다. 켤톱인 인거는 引鋸라고도 적었고 '引鉅'라고도 적었는데, 자름톱은 걸거 '巨+乙鉅'라고만 적었고, 가름톱은 기거'岐鉅'라고 적었습니다. "鋸"자로 적은 톱에 관한 글은 모두 한자인 "거"로 읽어야 합니다. "引鋸"가 아마 대표적으로 "인거"라 읽는 한자말일 겁니다.

 

그런데 같은 톱을 가리키는 "引鉅"를 "인거"라고 읽는 것은 좀 꺼림칙합니다.  왜냐하면, 한자 "鉅"는 "크다"라는 뜻을 가진 "巨"와 같은 글자이기 때문입니다. 신증유합에 "巨"를 풀면서 "鉅"를 적고 "클 거"라고 풀어 놓은 것 보아도 알 수 있지요. 한자 "鉅"는 톱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글자이기 때문에 이 것을 "거"라고 읽는 순간 소통이 톱질 당해 끊어지고 맙니다. 훈민정음의 해례에도 "鉅"를 "톱"이라 했듯이 "톱"이라 읽으면 바로 소통이 이루어집니다. "논畓", "터垈", "시媤", 등의 이두자와 같은 "톱鉅"입니다. 다시 말해,"引鋸"는 "인거"이고, "引鉅"는 "켤톱"입니다. "引"자를 훈몽자회에도 "혈 인"이라고 풀었으니 "引"은 곧 "켤"이고요, "鉅"는 "톱"이니까 "켤톱"이지요.

 

大鉅는 큰톱, 長鉅는 긴톱, 鉅刀는 톱날, 鉅注+乙은 톱줄입니다. 물론, 擧乙鉅나 巨+乙鉅는 "걸톱"이고, 條里鉅나 條任鉅나 條乙音鉅는 모두 다 조리목을 켜는 "조림톱"이라 읽을 수 있겠습니다만, "岐鉅"는 조금 읽기 어렵습니다. 아무래도 "기톱"은 아닌 것 같으니까 사람들이 그냥 "기거"라고 읽고 마는데, 차라리 기톱은 맞는 말일 수 있을지 모르나 "기거"는 확실히 틀린 말입니다. '岐'를 '止+支'로 쓴 것은 보았어도 '鉅'를 '鋸'로 적은 것을 본 적이 없는 만큼 '岐'나 '止+支'를 음독音讀해서 "기"라 할 것인지 훈독訓讀을 해서 "갈림" 또는 "가림" 또는 "가름"이라 할 것인가의 문제일 뿐이고, '鉅'는 틀림없이 "톱"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옛 문헌에 나오는 岐나 '止+支'는 모두 음독을 하여 훈독의 용례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냥 "기톱"이라 불러도 좋겠지만 '引鉅'를 '인톱'-켤톱을 가리키는 말로 "잉걸톱"이라는 말이 있습니다만-이라 읽을 수 없듯이, '岐鉅' 역시 '기톱'이라 부르기가 참으로 거북스럽습니다. 한자를 바로 빌려 쓴 '引'과 '岐'를 제외하면 '톱鉅'을 구분한 나머지 말들은 모두 음독하는 차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岐鉅"는 "가름톱"으로 읽는 것이 옳다는 생각을 굳혔습니다.  의궤에 적힌 "岐鉅"의 역활이 도끼나 자귀로 초치련한 편목이나 켤톱으로 내린 두껍고 큰 널빤지를 켜서 "가린나무"를 만드는 것이라면, 당연히 "가린나무"를 '가리는' "가림톱"이거나 "가름톱"이라 불렀을 것이라 생각한 것입니다.  "조리목"을 만드는 톱을 "조리톱" 또는 "조림톱"('조리다'는 '줄이다'의 옛말입니다.)이라 부르는 것도 이런 생각을 뒷받침해 주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여러가지 톱들의 우리말 이름을 찾아 나서다 보니 정작 "자름톱"의 으뜸인 "걸톱"의 성격이 궁금해졌습니다. '擧乙'도 '巨밑에乙'도 모두 우리말 "걸"을 적은 것이 틀림없을 것인데, 그렇다면 이때 "걸"은 "걸톱"의 어떤 면을 가리키는 말일까요? 

 

"걸"이란 이름이 붙은 연장으로는 "걸낫"이 있는데, "걸낫"은 낫자루를 길게 하여 멀리 있는 풀도 걸어 당겨 벨 수 있도록 만든 낫을 가리킵니다. 연장은 아니지만, "걸쇠"는 마루의 천장이나 처마 아래에 달아 놓는데, 분합을 뜯어 걸어 두는 물건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리고 한자사전에는 이두자인 "巨밑에乙"을 "걸"로 읽고 뜻은 "걸다", "걸어 두다" 라고 한 뒤 용례로 華城城役儀軌에서 '巨밑에乙鉅匠八名'을 들었습니다. 이 말들의 공통점은 "걸다", "걸어 두다"입니다. 그러므로 "걸톱" 역시 "어디/무엇에 걸린/건 톱"이거나, "어디/무엇에 걸어 둔 톱"을 가리키는 말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만, 문제는 톱이란 연장이 무엇을 걸거나 어디에 거는 데 쓰는 물건이 아니라 무엇을 자르거나 켜는 물건이라는 점입니다.

 

그렇다고 톱의 모양을 보고 톱냥이나 톱자루 따위가 어떤 톱틀에 걸린 것을 나타낸 말이라거나,  또는 톱질할 때 톱을 어디다 건 모양을 나타낸 말이라고 해 보았자, 굳이 자름톱인 걸톱이 아니라도, 즉 켤톱인 내릴톱이라 해도 같은 톱틀에 걸려 있을 수 있고,  또 같은 방식으로 톱질할 수 있기 때문에 걸톱이라는 이름을 붙인 이유로는 그리 타당해 보이지 않습니다. 물론 허튼톱이라든지 양날톱이라든지, 붕어톱, 등대기톱, 쥐꼬리 톱, 따위와 같이 톱이 생긴 모양을 보고 붙인 이름도 많지만, 걸톱이란 이름은 아무래도 켤톱이나 자름톱이나 조림톱, 가름톱, 따위의 이름처럼 생긴 모양보다는 톱의 쓰임새나 톱질의 남다름을 보고 붙인 이름이지 싶기 때문입니다.

 

아마 톱쟁이들 특히 걸톱쟁이들이 대부등을 길이에 맞춰 잘라 내는 것을 "두절頭切"이라 하는 모양이던데 이 말과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일까요? 아니면 걸상처럼 가로로 걸터앉는 모양을 나타내는 "걸"로, 톱몸이 대부등을 가로로 걸터앉아 자르는 모습을 보고 "걸톱"이라 했을까요, 아니면 무엇에 가로질러 걸린 모습을 나타내는 걸치다의 "걸"로, 톱몸을 대부등을 가로질러 걸쳐 놓고 자르는 모습을 보고 "걸톱"이라 했을까요?

 

 

어릴 때 집수리 할 일이 있으면, 목수가 동네 근처의 목재상에 가서 가린나무를 규격대로 쌓아 둔 나무 더미에서 필요한 나무를 먼저 골랐지요. 그 다음 목재상 주인과 나무값 셈을 하였는데, 목수가 나무 크기부터 나무 종류까지 일본말로 능숙하게 부르면 주인은 계산서에 받아 적으면서 전체 나무의 양을 합산했지요. 수판을 놓고 전부 몇 "사이"니까 "사이" 당 얼마로 쳐서 도합 얼마라고 목재상 주인이 값을 부르면 목수가 우수리 떼고 남은 돈으로 얼마면 된다며 흥정이랄 것도 없이 싱겁게 셈을 끝내는 것이었습니다.

 

일본사람들은 나무의 양을 부피로 따졌던 모양입니다. 일본사람들은 사방 한 치寸에 길이 열두 자尺인 모나무의 부피 '120 입방치'를 기준으로 "한 사이才sai"로 정해 나무의 양을 계산합니다.  서양에서는 사방 1 피트ft에 두께 1 인치in인 널빤지의 부피를 기준으로 하여 '144 입방인치'를 "1 보드푸트bf.,bd.ft,board foot"라고 정해 나무의 양을 계산합니다. 모두 켠나무의 양을 재는 기준입니다. 통나무를 잰 기준이 따로 있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리고 중국에서는 어떤 기준으로 나무의 양을 재었는지 아직 알지 못합니다.

 

우리나라는 어떤 기준이 있었을까요? 일본의 "사이"가 들어오기 전부터 우리가 써 오던 나무의 양을 재는 어떤 기준이 있었던 것처럼 보이지는 않습니다.  의궤에는 공납 받은 나무들로는 모자라서 지방이나 서울의 목상들이나 나무계꾼들에게서 나무를 사서 쓴 기록들이 있는데, 이 기록 어디에도 일본의 "才sai"나 서양의 "bf"와 같이 구체적인 기준을 가지고 나무의 양을 따져 그 값을 치런 흔적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인지 요즘도 목수들이나 목재상들은 여전히 '나무를 사고 파는 단위'로  일제강점기 때 들어온 것으로 보이는 일본식 나무 부피 단위인 "才sai"를 쓰고 있습니다. 같은 말을 국어사전에는 "재才"라며 싣고 우리말로 순화시킨 것이라 합니다. 그런데 재미 있는 일은 '야드'나 '피트'도 그렇지만 '미터'나 '그램'은 우리말로 순회시키지 않고 그냥 쓰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습지요. 속 보이고. 그냥 "사이"라 쓰면 왜 안 되지요?)

('킬로미터千米qianmi'는 '公里gongli', '킬로그램千克qianke'은 '公斤gongjin'으로 쓰는 중국이 차라리 더 나아 보이지 않습니까?)

 

집 짓는 목수는 집채의 뼈대로 기둥(高柱,平柱,...), 들보(大樑,從樑,退樑,...), 인방, 창방,... 지붕틀로 도리, 서까래, 추녀,...(궐집이나 절집이면 공포), 마감으로 마루, 천장, 난간,... 창호로 대문, 문, 창,... 등등 수많은 나무의 모양形狀과 크기置數를 일일이 꼽은 다음에, 최소한의 손질로 얻을 수 있는 통나무(樓柱,부등,椽木...,), 목수가 일일이 필요에 따라 현장에서 켜거나 잘라서 써야 하는 널빤지(工沓板,厚正板,修粧板,長松板,...,),  그리고 미리 만들어진 가린나무(큰조리목,작은조리목,창호문살,...,) 등으로 나누어 사야 할 나무 물목을 만들었다는 것까지는 여러 기록으로 알 수 있는데, 이들 통나무나 널빤지나 가린나무의 값을 어떻게 쳤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물론, 원목의 값이 켠나무의 값을 결정했겠지요. 원목을 손을 보아 그대로 쓰는 경우도 있고, 원목을 켜서 널빤지나 모나무를 쓰는 경우도 있을 수 있는데, 이때는 얻는 켠나무의 양이 원목의 가치를 좌우합니다. 요즘은 이런 말들을 따로 만들어 씁니다. '통나무의 부피'를 "원목재적原木材積log volume", '켠나무의 부피'를 "이용재적利用材積merchantable tree volume", 그 '비율'은 "이용률利用率rate/degreee of utilization"이라 합니다. 또한, 원목의 크기에 따라 그 원목을 켜서 쓸 수 있는 나무의 크기와 양을 미리 계산해 두었는데, 바로 "이용재적표利用材積表merchantable tree volume log scale/rule"입니다.

 

요즘은 나무를 파는 나라들이 통나무로 파는 것을 꺼리지만,  통나무로 사고 팔던 때는 통나무의 부피를 재는 것이 꽤 까다로운 일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서로 같은 기준으로 부피를 셈하는 것은 거래의 밑바탕이 아니겠습니까? 통나무 단면 둘레의 길이에 얼마의 배율, 즉 원주율에 비해 얼마로 보정해서 적용해야만 '정원正圓'이 아닌 통나무 단면적의 근사값을 얻는가와, 굵기가 달라지는 원목 전체의 길이 가운데 어느 부분에서 통나무 둘레의 길이를 재어야 하는가가 '통나무 부피'를, 즉 "원목재적"을 결정하는 기준이 되겠지요. 이에 따라, 여러 나라에서 제각기 만든 열 가지가 넘는 서로 다른 계산식이 있고, 그 계산식으로 만든 부피를 가리키는 단위가 따라 붙어 있지만,  국제 나무장사가 아니라면 일부러 알아둘 까닭이 없지요. 다만, 그래도 짚고 가야 할 것이 있다면, 여러 나라들이 통나무는 통나무대로 켠나무는 켠나무대로 부피를 재는 기준을 세워 그것으로 나무 거래의 기준으로 삼았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옛 목상木商들이 위에서 말한 용어들이나 '표log scale'를 쓰지 않았다고 해서 그들이 그런 이치를 몰랐다고 하는 것은 장사가 무엇인지 몰랐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모르지요, 그들은 그런 말과 그런 표를 쓰고 있었을런지도요. 한번 톱질을 할 때마다 톱밥으로 쓸려 가는 나무와 품도 따져 가며, 통나무의 굵기를 보고 어떻게 나누는 것이 가장 많이 돈을 버는지 셈하지 않았다고 본다면, 그 장사 속을 우습게 보는 겁니다.

 

그런 목상들이, 그리고 그 목상들로부터 나무를 사다 쓰는 목수들이, 서로 같은 기준을 가지고 거래를 하지 않았다는 것은 참으로 믿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들은 무엇으로 거래의 기준을 삼았을까요? 통나무를 거래할 때와 켠나무를 거래할 때 서로 다른 기준이 있었을까요?

 

 

 

다음 "우리말 찾기-집에서 사라진 우리말들(가구)"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