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든소 2012. 4. 21. 02:18

10. 산자散子, 산(木+散)子

 

"집에서 사라진 우리말들"을 찾는 일은 초가집의 "초가草家"라는 한자말을 가리키는 우리말을 찾는 것에서 비롯하였습니다. 초가집을 가리키는 우리말을 찾지 못했습니다. 아쉬워서 "이엉집"이란 이름을 새로 붙여 보았습니다. "이엉"이 "기와"와 함께 지붕을 이는 재료와 방법을 대표할 수 있다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엉thatch,felt을 엮는 재료의 다양함도 기와shingle,tile로 쓰는 재료만큼 전세계적이어서, 이엉을 인 집을 이엉집이라 부르는 것이 기와를 인 집을 기와집이라 부른 것에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집을 이를 때 지붕을 보고 이름을 붙여 이릅니다. 기와집이라고 하면 지붕을 인 재료와 그 재료를 인 지붕의 모습도 떠올리게 됩니다. 벽돌집이니 통나무집이니 하고 부르기도 하지만 어떤 집의 눈에 띄는 재료를 가리킬 뿐이지요. 이평주삼량가집은 보통 때 쓰는 말이 아닙니다. 역시 집을 이를 때는 지붕을 보여 주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담이 집채를 가리면 바깥 사람들에게 보이는 집채의 얼굴은 지붕이기 때문입니다.

 

집이 비와 바람을 가리는 것이라면 바람은 바람벽이 막고, 비는 지붕이 가립니다. 지붕은 집채의 윗도리입니다. 지붕은 지붕틀로 짜여져 있고, 지붕틀은 도리와 서까래로 얼개를 이룹니다.  지붕의 모양이나 지붕 재료의 모양, 그리고 지붕을 이는 방법에 따라 지붕틀을 짜는 방법도 달라집니다. 때때로 도리와 서까래의 역활도 바뀌는데, 트라스truss라고 불리는 지붕틀이 도리purlin와 서까래rafter가 바뀐 대표적인 것입니다.

 

기와집이나 이엉집의 지붕틀을 짜는 방법은 같습니다. 서까래가 지붕 재료를 받는 지붕틀의 마지막 뼈대나무입니다. 만들고 싶은 지붕 모양을 좇아 서까래를 깝니다. 서까래는 목수들이 솜씨를 뽐내기에 가장 좋은 뼈대나무입니다. 요즈음 사람들은 자기의 얼굴을 아름답게 가꾸기 위해 살을 가르고 뼈를 깎는 고생을 마다하지 않아 양악수술도 한다고 들었습니다만, 어쩌면 집채의 얼굴인 지붕을 아름답게 보이도록 하는 양악이 바로 이 서까래가 아닐까 싶습니다. 특히 이런 서까래가 외부로 드러나는 처마나 추녀를 생각하는 목수의 지극정성은 지붕이 집채의 얼굴임을 여실히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목수들이 서까래에 쏟는 정성과 솜씨는 서까래감 나무를 고르는 일부터 서까래로 만드는 일과 서까래를 도리에 걸쳐 놓는 일까지, 전체 공정에 걸쳐져 있습니다. 지붕 하나에 올리는 수십 수백 개의 서까래 가운데서 똑같이 만드는 것은 많아야 네 개입니다. 수십 개의 서로 다른 서까래를 하나하나 일일이 깎고 다듬는 일은 정성 그 자체입니다. 목수들이 이룬 공학적, 미학적 성공은 공포共包 이야기 때 이미 나왔지만, 처마나 추녀 서까래에 이르면 또 한번 놀라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우리말 찾기-집에서 사라진 우리말들"은 두 번에 걸쳐 집채의 윗도리이자 얼굴이라 할 수있는 지붕에 대해 공부하고 지붕에서 사라지고 없는 우리말들을 찾아 나섭니다.

 

이엉집은 서까래 위에 산자를 엮어 깔고 알매를 조금 두껍게 올리는 것이 지붕 무게도 알맞고, 지붕 모양도 훨씬 부드러워집니다. 집 천장 마감할 때도 산자로 삐져 나온 흙과 산자발의 나무가 적당히 있어야, 회반죽으로 천장 마감할 때 반죽끼리 붙어 있어 좋지요. 이엉집은 결국 이엉을 여러 겹으로 깔아 추녀 모가 드러나지 않아야 오동통한 것이 후덕해 보입니다.  이엉을 얇게 대충 깔아 놓으면, 비루먹은 개처럼 지붕이 꺼칠해보이고, 추녀 자리가 드러나서 집이 신경질적으로 보입니다.

 

이엉집 지붕마루에는 용마름이라고 곱새를 올리지만, 추녀마루는 곱새 없이 둥글하게 두는 것도 다 이런 이치입니다. 기와는 욱은지붕이 좋고, 이엉집은 부른지붕이라야 됩니다. 그래야 겉고삿이 이엉에 딱 달라 붙어 누르고 있지요 이엉지붕은 옛날에 모두 벼농사를 짓고, 동네 사람들끼리 품앗이로 이엉을 짜고 올리니까 지붕 재료 가운데서 제일 손쉽고 싸고 따뜻하고 좋은 지붕이였지만, 지금은 따로 이엉도 사고 일꾼들도 부르고, 늦어도 한해 걸러는 이엉갈이를 해야 되니, 이엉집의 비용도 몇 십 년 모으면 만만치 않습니다. 그래서 요즘에 이엉집을 지으려면 기와집에는 없는 걱정, 이엉갈이 걱정도 미리 신경을 써서 지붕 모양을 잡아 두어야 합니다. 특히 기스락과 귀기스락은 좋은 띠茅를 밑에 깔고, 이엉도 잘 골라 두툼하게 깐 다음, 짤라낸 면이 가지런하고 촘촘해야 집이 단단해 보입니다. 궐집이나 절집에는 처마 아래 부분 모두를 부시(부皿아래不/孚시皿아래思, 한자말임, 새그물 또는 짐승 잡는 그물을 가리킴)로 둘러쳐, 새들이 깃들거나 날아드는 걸 막지만, 이엉집은 기스락을 띠도 깔고 볏짚 이엉도 촘촘하게 깔아서 막아야 합니다.

 

지붕틀을 짤 때 서꺼래와 귀서까래를 올리면 그 집 지붕은 우진각지붕이 됩니다.  이엉집에서는 귀서까래가 불거져 보이는 것이 부드러운 맛을 없애지만, 기와를 올리면 추녀 따라 내려오는 추녀마루를 만들어야 비 새는 것도 막고 눈에 띄어 보기에도 좋습니다. 네 칸 이상에 오량가로 큰 집이면 모를까 서너 칸짜리라면 기와집이라도 우진각지붕으로 하는 것도 괜찮습니다. 중국 사람들이 궁궐의 정전을 우진각지붕으로 짓는 것을 보면, 집채가 커도 우진각지붕이 보기가 좋은 모양입니다.

 

네 칸 이상 되는 정면이 긴 집이면 대개 일고주오량가로 짓는데, 이럴 땐 집도 제법 격식을 갖춘 것 같아 팔작지붕이 어울립니다.  집이 커지면 칸살의 배치에 따라 지붕 모양을 조금씩 달리 하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사실 기와집은 지붕이 밋밋하지 않아 좋지요. 그런 가운데서도, 별채나 행랑채 같이 퇴가 없이 두 칸, 세 칸 짓는 집에 박공지붕을 올리면, 밋밋하다는 생각보다는 집이 비록 작지만 단아하고 기품이 있어 보이지요. 

 

지붕 종류는 이름 붙이기 나름이겠지만, 크게 보아 지붕마루가 있나 없나, 추녀가 있나 없나로 나눌 수 있습니다. 또 지붕을 인 재료나, 물매나, 지붕을 몇 가지 모양으로 합쳤느냐, 집채마다 따로 했느냐라는 차이로도 나눌 수 있겠지요. "돔dome"은 지붕마루도 처마도 없는 지붕이네요. 지붕마루가 없는 정자 지붕을 보면 지붕이 정자의 모양대로 사각정은 사각지붕, 육각정 팔각정은 육각 팔각지붕인데, 그런 각들이 모인 꼭지에 상투(절병통節甁桶)를 틀어 놓지 않았습니까? 바로 지붕마루가 없는 모지붕 또는 모임지붕이지요. 삿갓처럼 보여 삿갓지붕이라고도 합니다.

 

추녀가 없는 대표적인 지붕은 바로 박공지붕이고요. 추녀가 없다는 말은 집채의 다른 두 측면으로는 지붕이 없다는 말입니다. 요즘엔 사람들이 박공지붕이라 부르지 않고 모두들 "맞배지붕"이라 부르는데, 집 안에서 서까래 깔린 걸 보면 누가 배船를 내려다 보는 것 같아서 맞배라 불렀다 합니다만, 그렇다면 배를 엎은 지붕이란 말일 텐데 왜 "엎은배"라 하지 않는지 알 수 없네요. 아무래도 "맞배"라 부른 딴 무슨 이유가 있을 텐데. 어쨌거나, 지붕이 우리말이라 그런지 지붕 이름은 모두 우리말이네요. 

 

팔작지붕의 박공이 어쩐지 여덟 팔짜 같아 팔작은 좀 한자말 같은 냄세가 나긴 하지만요. 팔작지붕은 한마디로 이엉집 같은 우진각지붕의 처마와 추녀마루 윗쪽 반을 짤라 내고, 그 위로는 박공지붕을 올려 합쳐진 지붕입니다. 집채의 사방을 처마로 돌리고 귀퉁이는 추녀를 놓는데, 추녀를 중도리에 걸치기 때문에 최소 오량가라야 팔작지붕을 올릴 수가 있습니다. 처마 위로는 정면으로 길게 박공지붕 용마루를 걸쳐 놓는데, 측면으로도 처마를 돌리려 하다 보니 귀마다 추녀가 필요한데, 추녀가 마루도리에 얹혀 있다가 중간에서 짤리니 추녀 얹을 도리를 허공에 새로 짜 넣어야 하니까 자연히 나무가 더 많이 듭니다. 사람들이 보기 좋다고 그러는지 나무가 좀 더 들어도 보통 기와집에 이 지붕을 씁니다. 우리나라 궁궐의 정전은 보통 이런 팔작지붕으로 짓습니다.

 

이 팔작지붕의 대목에서 지난 번에 들보나 도리 공부할 때 지붕에서 말하겠다며 넘겼던 나무 이름이 생각났습니다. 들보는 집채의 측면을 따라 세로로 놓이고, 도리는 정면을 따라 가로로 놓이는데, 충보라는 들보와, 외기라는 도리는 다른 들보들이나 도리들과는 걸리는 방향이 거꾸로라 충보는 도리통, 외기도리는 얄통으로 놓였다고  말한 것이 생각났습니다. 이제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보고 가겠습니다.

 

 박공지붕은 추녀가 없어, 마룻대와 중도리들과 처마도리 위에 서까래를 걸면 지붕틀이 완성됩니다. 집채의 정면과 배면으로 두 지붕면이 지붕 꼭대기에서 만나서 이루는 턱을 집곡지(요즘 말로 집꼭지입니다), 용마루, 또는 지붕마루라고 합니다. 지붕마루를 높이기 위해, 머룻대에 놓는 서까래를 조금 길게 뽑아 그 사이에 나무를 얹어 눌러 두는데, 이 나무를 마루적심積心이라 합니다. 그리고 이 지붕마루를 기둥의 귀솟음 같이 양쪽 끝으로 갈수록 조금씩 들어올려 상승감을 나타내는데, 처마의 끝선과 함께 기와집 정면의 멋을 살리는 중요 포인트입니다.

 (적심積心이란 말은 주로 돌이나 벽돌을 쌓는 일을 할 때 쓰는 말인데, 아마 심지를 박아 둔다는 뜻으로 얼핏 우리가 만든 한자말 같은데, 賊心이라 적은 데도 있는 걸 보면 심지처럼 적심도 심지를 박아 둔다는 뜻의 우리말이 아닌가 싶습니다. 특히 마루도리 위에 얹어 용마루도 높히고 서까래의 움직임도 잡는 나무를 종심宗心 또는 종심목이라 부르는데, 이것이 바로 위에서 말한 마루적심입니다.)

 

박공지붕은 처마가 길게 나온 정면에 비해 처마가 없는 측면이 허술하여, 여러가지 비를 막는 장치나 외관을 꾸미는 나무를 많이 씁니다. 우선 측면에서 비가 들이치지 않도록 지붕의 도리 방향 물매를 따라 따로 짧은 서까래를 내밀어 지붕 양끝에다가 마감 마루 같은 처마를 만듭니다. '박공처마"라 부르지요. 이 박공처마를 다른 우리말로 '막배탕대'라 부르기도 합니다. 박공처마 위를 기와로 덮어 턱을 올리면, 지붕마루 양쪽 끝에서 지붕 아래 처마 양쪽 끝까지 내려오는 내림마루가 "박공마루"입니다. 이때 박공처마를 만드는 짧은 서까래를 "목지木只"라 하고, "모끼", "목기연/목지연木只椽", '목계木계木+평평할'견''라고도 부릅니다. 한자 "只"를 이두자로 사용하여 우리말 "기"를 적었기 때문에, "木只"를 "목지"라기보다 "목기"라고 읽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아마 목수들이 "모끼"라 부르던 것을 누가 木只로 적었고, 한자 냄세를 피우기 위하여 木계(木+평평할 견)라고 고쳐 적은 것도 이해가 됩니다. 그럼에도 目只, 方只, 木妓 등으로 적은 걸 보면, "모기"라는 것은 놓치지 않았네요.  대패 가운데 모서리를 다듬는 목귀대패인 "모끼"가 있는데, 모서리를 옛날에는 "모귀方,隅,角"라 햿던 모양입니다. 이 짧은 나무를 "모끼"라 부르다가 서까래로 승급시켜 "모끼연"이라도 강조했습니다. 이 모끼를 세로로 놓인 본디 서까래 위에 가로로 짧게 덧붙였기 때문인지 모끼부연(方只付椽,方只扶椽)이라고도 합니다만, 목수들은 서까래가 놓이는 방향과는 다른 이 작은 나무에게 "모끼덧서까래"라는 이름을 지어 부를 만큼 박공지붕의 측면 처리는 어렵고 힘들었습니다.

 

모끼 위에 널빤지로 덮고方只蓋板, 그 위에 기와를 얹어 박공마루를 만드는 것으로,  박공처마가 나온 측면의 지붕 끝은 이렇게 마감하였으나, 아무래도 벽면 전체가 허술해 보이고, 중요한 나무인 도리의 끝과 가장자리 서까래가 비바람에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에,  이들이 상하는 것도 막고, 변형이 생기는 것도 가릴 겸, 모끼의 아래로 지붕 물매를 따라 길게 두꺼운 널빤지 한 닢으로 깎아 막은 나무를 "박공(널)"이라 부릅니다. 이 "박공"은 도리의 마구리와 가장자리 서까래에 "박공못"으로 박아 붙이는데, 박공지붕의 이름도 이 널빤지 "박공"에서 땄습니다.

 

박공을 한자로 적어 놓은 것들을 보면, "朴工"으로 주로 적었고, '博공木+共' 또는 '박片+專공木+共'으로도 적었는데, 익공이나 행공의 "공"처럼 박공마루를 괴는, 즉 '공구는 나무'로 인식하고 같은 한자로 적게 된 것 같습니다. 실제 박공에다 모끼 자리를 따서 모끼를 받아 괴고 있습니다. 두 박공널이 마룻대 마구리에서 시옷人 자 모양으로 만나는데, 이 맞댄 곳이 어긋나거나 비틀어져 보기 싫어지는 것을 가리려고 꺽쇠를 박아서 단단히 고정해 둡니다. 꺽쇠가 여러 개 달린 철판이면 지네처럼 보인다 해서 "지네철"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또, 나무를 조각해서 두 박공을 맞댄 데를 가린 다음, 시옷 자 아래에는 여러가지 모양의 "현어懸魚"라는 장식을 걸었다는데, 처음에는 지붕 밖으로 나온 도리의 마구리(옛날 우리말로는 "풍열"이라 합니다)를 가리기 위해, 물고기 모양의 장식을 한 나무 쪽을 걸었다고 "현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만, 현존하는 집들에서 이런 현어가 걸린 예를 찾을 수는 없고, 대개는 다른 장식을 조각해서 달았습니다. 그리고 박공을 달 때 크고 굵은 박공못을 박으니, 그 자리에 못대가리가 드러나는데 이것을 가리는 장식 철물을 "방환芳環"이라고 부릅니다. 집채가 크면 박공으로 측벽에 들이치는 비바람을 어찌 할 수가 없어, 따로 "비바람막이"을 박공 아래에서 처마의 밑단 정도까지 널빤지를 늘어트려 매달아 놓았는데, 이를 "풍차판風遮板" 또는 "풍판風板"이라 합니다. 풍판은 집채의 측면을 아름답게 꾸미는 의장적인 역활로도 중요해서, 풍판틀을 달대, 가새, 버팀대로 짜얽어서, 바깥으로 널빤지를 붙이고 널 사이는 솔대松竹를 대어 사이가 벌어지거나 휘는 것을 가렸습니다.

 

 앞에서 모끼를 "덧댄 서까래"로 보고 "모끼부연"이라고도 한다고 했지만, 처마에 서까래를 한 줄 더 얹어 처마를 두 겹으로 만들었는데, 이것이 서까래 위에 덧대어 깐 서까래, 즉 "부연"입니다. 부연이 있으면 겹처마, 없으면 홑처마, 그런 집채는 겹처마집, 홑처마집이라 합니다. 홑처마의서까래는 마구리를 둥글게 깎는데 비해, 그 위에 덧댄 서까래는 네모로 깎고 크기도 조금 작습니다.

 

부연의 椽이 서까래를 가리키는 한자말이니까 "부" 자를 한자로, "付, 附"(덧댄, additional), "浮"(놓인 모양, overlaid), "扶"(하는 일, assisting)로 적은 것은 그런가 보다 하겠는데, "婦"로 적은 것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며느리서까래"라는 말을 목수들이 쓰는 것을 보고는 그대로 뜻을 옮겨 "婦椽"이라 적었는데, 나중에 유식자들이 "며느리서까래"라 부르는것도 이상하고, 앞뒤도 맞는 것 같지 않아서 다른 한자들로 바꾸어 적었다고 해야 그런가 보다라고 할 만큼 "며느리서까래"는 정말 이상한 인연으로 홑서까래 집에 시집 온 며느리 같습니다. 어떤 사람은 "며느리 서까래"의 유래를 전설 따라 삼천리 식으로 말합니다만, 여하튼 "부연"을 가리키는 우리말은 이 말 말고는 "덧서까래"라는 말 밖에 없습니다.

 

서까래가 도리로부터 나와 처마를 만들지만 그 깊이는 마음대로 늘일 수 없는데 서까래를 많이 내밀면 물매 때문에 집이 어두워집니다. 그래서 서까래를 비가 들이치지 않을 정도로만, 그리고 겨울에 햇살이 창을 비출 정도까지만 내민 다음에 지붕의 처마 끝선을 마무리합니다. 이것으로 만족하면 홑처마집이 됩니다. 그런데 처마 끝을 조금 들어 올리면 그만큼 처마가 깊어져도 집은 밝고, 비바람도 막는 데 좋고, 여름에는 햇빛도 더 가릴 수 있게 됩니다. 처마 끝을 들어 올려 미학적 가치도 살릴 겸 그냥 서까래를 늘이는 대신 물매를 죽인 처마를 한 켜를 더 얹는 방법으로 해결하면 겹처마집이라 합니다. 물매가 누워 두 단계로 길어진 처마 끝은 비스듬히 늘어서서 지붕이 하늘을 오르는 상승감을 느끼게 하는 한편 그 비스듬한 각으로 겨울 볕이 집채 깊숙히 베어 들게 합니다. 겨울에는 집이 훨씬 밝고 아늑해집니다. 

 

이것이 "부연"이 집채의 지붕에 나타난 공학적인 배경입니다만, 목수들은 이번에도 이런 공학적 성공에 만족하지 않고, 몇 가지 장치로 처마를 장식하므로써, 지붕마루의 선과 서로 어우러진 처마 선의 아름다움을 완성시켰습니다. 두 켜로 보이는 처마의 끝에다 서까래와 부연 위에 오리목을 놓아 '처마 끝선'을 강조하면서 그 위에 얹히는 부연이나 기와를 받치게 했습니다. 서까래 위에 놓는 오리목은 "초初매기" 또는 "초막이", 부연 위에 놓는 오리목은 "이/재二/再매기' 또는 "이/재막이"라고 부르고, 또 지붕의 가장자리로 처마가 약간 들린 곳 쪽으로 놓는 오리목은 "조로"라고 부르는데, 이 모두를 "평고대平古代,平高臺", "평고자平高子",  또 "평교대平交代,平交臺,平交坮"라 합니다. 위치에 따라 초初, 이二, 재再, 부연婦椽, 등을 이런 이름들 앞에 붙여 부르기도 하고요.

 

부연과 부연 사이의 빈틈도 막고 부연을 움직이지 못하게 채우는 나무를 "차꼬着固"라 하는데, "목기木只"라고 적고 "모끼"라고 읽듯이 "着固"는 "착고"라 읽는 것이 아니라 "차꼬"라고 읽어야 합니다. 원래 "차꼬着錮"가 하는 일이 홈을 파서, 그 속에 넣고 가두는 일이거든요. 평고대 오리목 높이가 부연 상단까지 닿는 나무를 쓰고, 부연 놓일 자리를 따서 차꼬로도 쓰고, 초매기로도 쓰는 것은 "통평고대"라 합니다. 홑처마에서 평고대를 "매기"나 "막이"라고 부른다면, 겹처마에서 "초매기/초막이", "이매기/이막이", 또는 재매기/재막이"라고 부르는 것을 보아 평고대의 우리말 이름이 "매기"나 "막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겠는데, 홑처마에서는 그냥 평고대라고만 부르고, 특히 이엉을 올리는 이엉지붕의 서까래 위에 앉은 얇은 오리목도 초평고대草平高臺라 부르는 것을 보면 "매기"나 "막이"라는 말는 겹처마에서만 쓴 말인것 같습니다.

 

그러면 이 평고대라는 말의 우리말 원형은 무엇일까요?  한자로 적은 그 많은 평고대에서 하나의 공통점은 "平"입니다. 처마의 모든 "고대?"가 "평평하다"라는 뜻의 수식어인 한자말 "平"을 달고 있습니다. 만일 이 "평"이 한자 수식어가 아니라면, 우리말 "평"을 적을 한자가 "平" 아니고는 없기 때문에 적었다고 우기게 됩니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요? 그렇다면 평평하지 않는 "고대?"가 있나요? 녜, 있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조로"입니다. "조로"는 특히 추녀가 하늘로 치켜 올라갈 때, 서까래가 따라 올라갈 길을 인도하도록 천연적으로 굽어진 나무를 골라, 깎아 올린 "평평하지 않고 굽어진 고대?"를 가리킵니다. 굽어서 그런지 "조로대"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어떤 목수는 "조로 평고대"라 하지만, 그럴려면 "고대"가 "古代"라는 뜻이 없듯이 "평"이 "平"의 뜻이 없는 차자借字라야 할 것입니다.

 

여기에서 "구로대久老代,仇老代,求路代", "구루대九累臺,仇累臺', '영로대永老代'("久"를 보고서 "永"을 생각한 모양입니다.)로 불리는 오리목이 생각납니다. 이 나무를 어떤 사람은 차꼬와 평고대 역을 동시에 하는 통평고대를 말한 것이 아닌가 여기기도 합니다만, 이 "구로대"의 "구로"는, "굽어진 오리목"인 "조로"에 대한 상대적인 말로, "굽지 않은 오리목"을 가리키는 말로 여겨집니다. 다시 말해, 지붕 끝의 선을 강조하고 그 위에 얹힌 기와받이 연함이나 부연을 받치는 나무를 "구로"와 "조로"라 하는데, 이 '구로"를 "구로대"로 부르다가, 나중 "평平" 자가 붙어 "평구로대"로 이윽고 "평구대'에서 "평고대"로 굳어진 것이라 보는 거지요. 

 

 이렇게 서까래에 부연까지 얹고 나면, 지붕틀은 다 되었습니다.

목수들이 지붕 이는 기와장이들 앞에 마지막으로 하는 일이 서까래와 서까래 사이(단골)나 부연과 부연 사이를 길이로 막는 일입니다. 지붕 위에서 기와를 놓기 위해 그리고 처마 아래서나, 아니면 집 안의 천장 위에서 노출된 서까래 사이를 무엇으로 막을 것이냐에 따라, 널빤지를 깔면그 널빤지를 "개판蓋板"(덮히는 나무가 뭐냐에 따라, 모끼개판方只蓋板처럼 그 나무 이름을 붙여 무슨 개판)이라 하고, 나무오리, 싸리, 대나무수수대, 겨릅 따위를 발을 짜듯이 엮어 서까래 위에 걸친 것은 "산자散子,'木+散'(이두자)子"라고 불렀습니다.

 

집 안에서 널빤지 마감을 보고 싶으면 개판을 깔았고, 집 안에서 서까래 쪽으로 회나 흙으로 마감할 경우 산자를 깔았습니다. 개판이 서까래나 부연의 길이로 댄 것과는 달리, 산자는 서까래나 부연을 가로질러 깔았습니다. 요즘 쓰는 미장 철망mesh 같은 개념으로 산자 위에서 바른 흙과 산자 아래서 바른 흙이 산자를 사이로 서로 엉켜서 떨어지지 않도록 하지요. 산자는 이따금 절집이나 궐집에서 널빤지로 쓰기도 했는데 이때의 널빤지는 개판의 널빤지와는 다른 이름으로 "산자판"이라 불렀습니다.

 

"산자"는 정말 한자 냄세를 많이 피우는 우리말입니다. 옛날 우리말로는 "셔슬"이라 했답니다. 중국말 위박葦箔weibo,즉 갈대발과, 또는 중국말 망판望板wangfan, 즉 지붕널인데 이 두 말을 모두 "셔슬"이라 옮겼습니다. 그리고, "鋪板"은 "널로 셔슬을 싸다(깔다)"로, "鋪簾"은 "발로 셔슬을 싸다(깔다)"로 풀어 옮긴 걸 보면, '셔슬"이 그것의 생긴 모양이나, 재료에서 나온 이름이 아니라, 그것의 역활을 가리키는데, "셔"는 "서까래"로 "셔슬"은 "서까래 위에 깔린 것", 즉 "산자"를 가리킨듯 보입니다.

 

산자는 한자로 散子라고 적기도 했습니다만, 공(木+共)이나 방(木+方,枋)처럼 이두자 산(木+散)을 따로 만들어 적었습니다. 특히 "子"는 중국어에서 어떤 말을 명사로 쓴다는 부호로 명사성 어소의 뒤에 붙여 쓰는 말이라 "산자"를 더욱 중국말처럼 보이게 합니다. 옛날부터 산자는 발箔과 발簾로 엮어 쓰는 것과, 널板,版을 깔아 쓰는 두 종류가 있었는지, '산자발'과 '산자판'으로 구별해서 불렀는데,  희한하게 산자발은 산자박이나 산자렴이라고는 않고 산자발이고 부르면서, 산자판은 산자널이라 부르지 않고 산자판이라 부른 이유는 아마도 목수들이 "덮는널"(개판蓋板)을 "덮개널"이라 부르지 않고 그냥 "개판"으로 부른 것과 연관이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덮개, 마개, 싸개 따위의 우리말에 붙은 접미사 "개"는 그런 역활을 하게 하는 간단한 도구를 가리키는 우리말인데, 앞서 예를 든 덮개, 마개, 싸개, 등의 말들이 모두 한자 "蓋"의 뜻과 연관성이 있어 보이는 말이라, 우리말 "개"와 한자 "蓋"가 헷갈리기 쉽습니다. 어쩌면 "덮개널鋪板"도 "덮는널蓋板"의 蓋에게 눌려 개판이 된 것처럼, 산자판도 그래서 산자널이 아닌 산자판이 된 모양입니다.)

 

이제 지붕에서 목수들이 할 일은 별로 없어 보입니다. 기와장이들이 알매흙을 져다 나르기 전에 다시 한번 지붕틀을 점검해야겠지요. 삼량가는 서까래가 한 지붕면에 하나라 서까래 물매도 하나입니다. 기와의 곡선 물매는 전적으로 기와장이의 알매흙 두께가 결정합니다. 오량가의 경우, 서까래를 한 지붕면에 두 개를 놓는데 마룻대에 걸친 서까래는 길이도 짧고短椽 물매도 꽤 가파르지만, 처마도리에 걸쳐 앉은 서까래는 길이도 길고長椽, 물매도 낮아, 두 서까래가 만나는 중도리 위는 기와의 물매를 생각할 때 움푹 들어가 있게 됩니다. 점검하던 목수들은 장연의 안쪽 끝인 뒷뿌리를 비록 중도리에 못을 박아 고정시켰지만, 나중에 처마에 기와가 올라 앉으면, 더군다나 부연까지 올라 앉으면, 처마도리가 지렛대의 받침이 되면서, 처마의 무게가 지렛대 장연의 한 끝을 누르기 때문에, 장연의 안쪽 끝인 뒷뿌리가 들릴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들리지 않도록 미리 눌러 두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서까래의 뒷뿌리가 들리지 않게 누르는 나무를(때에 따라 봇돌로도 누릅니다) "누리개累里介,累里箇"라 하는데 이 눌리는 나무의 이름을 앞에 붙여 장연을 누르면 "장연누리개"라는 이름으로 부릅니다.

('누리개"의 '개'는 "덮개"의 "개"와 같은 "개'인데 한자로 "蓋"가 아니라 "介"나 "箇"로 적었습니다.)

 

장연누리개를 박아 눌러도 중도리가 있는 이곳은 움푹 들어가 있어, 여러가지(나무 쪼가리나 돌)로 채워야 기와 물매를 잡기 편합니다. 일종의 알매흙에 박는 심지라 보아도 좋겠지요. 이것도 적심積心,賊心이라 부릅니다. 담도 축담도 이렇게 심을 박아 쌓습니다만, 나중에 기와장이들이알매 깔 때 알아서 이리저리 흙 사이에 박아 두겠지요.  이 밖에 산자에 알매를 바른 위에 보온을 위해 까는 잡살뱅이 나뭇조각들을 "발비"라고 하는데, 지붕에는 이런 저런 나무가 많네요.

 

마지막으로 지붕틀에 들어가는 나무가 또 있는데 부연 위의 재매기와 기와와의 빈 틈을 가리면서 기와의 바닥을 받치는 나무입니다. 이 나무는 기와의 골이 생긴 대로 파내어 맞추어야 하기 때문에,  목수들이 다듬는 것이 아니라, 나중에 기와장이瓦匠들이 기와 놓을 때, 놓이는 암기와의 밑면에 맞춰 오리목을 자귀로 쪼아 만듭니다.  이 나무를 우리말로는 "여암"이라 부르는데, "椽檻,椽含,連含"이라 적은 한자 때문에 이따금 연암이라 읽기도 하지만 대부분 "연함"으로 읽고, 또 요즘은 목수도 기와장이도 모두들 "연함"이라 합니다.

 

 여기까지 오면 이제 박공지붕틀은 다 짜지고 기와 이을 일만 남았습니다. 모지붕과 우진각지붕에 대해서는 위에서 읍내 목수가 세 칸짜리 이엉집 지붕을 설명할 때 어떤 모양인지 충분히 알아 들었기 때문에, 여기서는 우진각이란 말에 대해서만 짚어 봅니다. (모지붕은 그 자체가 우리말이라 더 이상 따로 알아보지 않아도 좋겠지요?)  "우진각"은 참으로 괴이한 합성어로 보이는 말입니다. 정말 합성어일까요?

 

"우"는 한자로 "隅"로 적었는데 이 한자는 우리말 "모"를 훈차하여 적을 때가 많아 모탕을 隅湯으로 적었지요. 그러나 한자 隅는 모퉁이, 귀퉁이, 구석이라는 뜻과 절개나 정조를 뜻하는데, 모를 뜻하는 方, 角과는 약간 다른 말이고, "진"이라는 피동을 나타내는 우리말 앞에 구태여 "모"라는 우리말을 그냥 쓰지 우隅라는 차자를 쓸 이유도 없으며, "각"은 한자로 "閣"이라 적었는데, 한자 閣에는 물론 여러 집채의 모양을 가리키는 뜻이 있지만, 지붕을 가리키는 어떤 뜻도 없어, 보습을 가리키는 옛말 "각"이 아닌가 여겨집니다. 나중에 합각이 나오겠지만 우진각이나 합각이 모두 보습처럼 삼각형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진각"은 "옆으로 반쯤 누운 욱어진 보습"을 가리키는, "우진각" 그대로 우리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진각지붕의 추녀는 마룻대의 끝과 귀기둥 도리 위에 걸쳐 얹습니다. 추녀가 집채의 네 귀에 걸쳐 있어, 처마가 집채를 삥 둘렀지요. 팔작지붕 마룻대에서는 박공지과 같이 두 지붕면만 있어, 서까래만 걸리고 추녀는 걸리지 않습니다.  어딘가에 추녀를 걸어야지요. 팔작지붕의 지붕틀 얼개는 바로 이 추녀의 윗쪽 끝을 어디다 거는가 바로 이 추녀의 윗쪽 끝을 거는 도리를 어떻게 놓느냐는 겁니다. 추녀를 걸어야 지붕의 처마가 집채의 사방을 삥 둘러 쌀 수 있습니다. 집채의 사방으로 처마가 둘러쳐져 있다는 이야기는 집채의 사방이 모두 같은 모양이라는 말입니다. 한마디로, 측면도 정면처럼 창방이 걸리고, 창방 위에 들보가 대신 도리가 걸리고, 그 위에 서까래가 놓인다는 이야기입니다. 들보가 얹힐 기둥 칸의 너비에 정면과 같은 도리를 얹으려니 측면의 기둥 칸도 정면 기둥 칸처럼 좁혀져야 합니다. 기둥이 측면에 하나 더 들어가서 들보 대신 도리가 올라 앉습니다.  그 대신 집 안에서는 도리가 필요없으니 들보가 앉습니다. 이제는 측면의 중간에 새로 생긴 기둥을 가로로 잡아 줄 나무가 필요합니다. 이 기둥을 안쪽 이웃 들보와 이어 주는 나무가 "충량衝樑"입니다.

 

이 "충량"이 들보의 중간에서 옆의 기둥에 걸렸다고 그런지 우리말로는 "옆보"입니다. 들보와는 직각으로 물려 있습니다. 이런 "옆보"는 도리를 얹기 위해 새로 세운 측면의 기둥 뿐만 아니라, 측면에 있는 고주를 옆의 들보와 잇기 위해서도 필요합니다. 어떤 면에서는 전면의 퇴를 이루는 퇴량이 측면의 변칸이 마치 퇴칸인양 양쪽 측면의 변칸에도 놓여 있다고 보아도 무방할 정도입니다. 용마루와 나란히 도리통으로 걸린 들보를 충량, 또는 옆보라 하고 옆보에서 힌트를 얻은 유식자는 "측량側樑"이라고도 부르는 모양입니다.

 

이제 측면에서 서까래가 가장 낮은 곳에서 앉을 처마도리는 깔았으니, 서까래가 가장 높은 곳에서 앉을 도리만 있으면 됩니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중도리인데, 중도리를 이용한다면 따로 더 나무를 써서 새로운 도리를 넣지 않아도 좋기 때문입니다. 중도리는 고주 위에, 다른 쪽은 종보의 끝에 놓여 있는데, 구조적으로도 안정적이어서, 종보 위에는 서까래를 놓고, 중도리 끝에는 추녀를 얹으면 안성맞춤이지만 문제가 있습니다. 이렇게 할 경우 서까래는 좋은데, 추녀가 놓이는 각이 정방형의 대각선이 아니라, 정면과 측면, 측면과 후면의 처마 깊이가 달라진다라는 것입니다. 미학을 아는 목수들이 결코 받아 들일 수 없는 공학입니다.

 

목수들은 중도리를 네 귀의 기둥과 정방형의 대각선이 되는 지점까지 빼어 내는 궁리를 합니다. 물론 이렇게 하면 중도리의 빼낸 목은 허공에 떠 있는 외팔보cantilever가 됩니다만, 너무 길지가 않다면 추녀를 걸어도 될 것입니다. 어차피 중도리가 빠져 나오면 종보에 서까래를 걸 수도 없는 것, 그래서 이번에는 빠져 나온 두 중도리 끝에 도리를 겁니다. 서까래나 추녀로부터 전달되는 무게가 무거울 것 같으면, 두 충량에서 쪼구미를 하나씩 세워 도리를 받치면 더욱 좋지요.

 

이렇게 허공에서 결구된 지붕틀을 "외기外機"라고 부릅니다.  "외기도리"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냥 "외기"입니다.  외기가 바깥外으로 나온 (베)틀機을 말하는 우리가 만든 한자말인지, 그 자체로 인방이나 창방처럼 한자말 같은 우리말인지 모르겠으나, 우리말로는 "저울대받침"입니다. 그렇지만 목수들이 이런 우리말 쓰는 것을 본 적이 없을 만큼 집에서 사라진 우리말이 되어 버렸습니다. 목수들이 "저울대도리"라거나 "받침도리"라 부르지 않고 "저울대받침"이라 한 것은 거의 틀림없이 이 지붕틀이 양통으로 놓였기 때문일 겁니다. 그런데도 "외기"를 "외기도리"라고 부르면 옛날의 목수들이 가졌던 뼈대 나무 이름짓기의 원칙을 무시하는 일이겠지요?

 

이렇게 하여 추녀도 서까래도 모두 집채의 사방으로 삥 둘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마루도리를 거의 박공지붕 때의 길이만큼 뺄 수 있다면, 지붕의 모양도 균형이 잡히고, 지붕의 용마루와 박공마루와 추녀마루의 이어짐이 그야말로 물 흐르듯 하지 않겠습니까?  목수들의 심미안이 이것을 놓칠 리가 없습니다. 중도리를 빼낸 것보다 좀 더 측면으로 마루도리를 빼내어서 만든 지붕을 "헛집虛家"이라 부르고, 그 나무들도 모두 "허가도리", "허가연", "허가대공", 등으로 불렀습니다. 허가연虛家椽은 그렇다 친다 해도 허가도리나 허가대공은 아무래도 "헛집도리"나 "헛집대공"으로 불러야 되지 않겠습니까?

 

이리하여, 자연스럽게 팔작지붕의 지붕마루가 길어져 우진각지붕과는 확실히 달라 보이는 모습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박공지붕의 측면은 중간허리부터 처마(합각처마)와 추녀가 나오게 되어, 짧은 박공("까치박공")에 둘러싸인 세모꼴의 벽면이 생기는데, 이것을 "합각合閣"이라 부르고, 이 세모꼴의 꼭지점으로 두 까치박공이 맞댄 자리를 "솟을각角", "합각정頂"이라 부릅니다. 아울러 그 벽면은 '합각벽", "박공마루"는 "합각마루"("당堂마루" 또는 "너새"), 지붕은 "합각지붕", 그 집채는 합각집입니다. 합각벽은 풍판으로 막거나 바람벽으로 회를 바르거나, 전돌이나 벽돌을 쌓으면서 문양을 넣어 장식을 하기도 합니다.

 

합각의 "閣"은 우진각의 "閣"과 같은 한자로 적고 생김새도 우진각을 설명할 때 말한 것처럼 삼각형이라 보습을 가리킨다 하겠는데, "합"을 적은 한자 "合"이 한자인지 차자인지 언뜻 분간이 가지 않습니다. 한자라면 '合'이 가진 여러가지 뜻 가운데 합각이란 말에 들어와 쓰일 수 있는 것이 고작 모으는 것, 맞는 것, 만나는 것, 아니면 짝 정도인데 어느 것도 합각의 합이라 보기에 적합하지 않아, 차자인가 생각하여 우리말 합이 무슨 뜻인가 보아도 옛말이라면 모를까, 지금 쓰는 말 중에는 하나도 없어, 결국 어떤 우리말의 뜻을 빌린 훈가차자 아닐까 정도로 생각될 뿐 아직은 잘 몰라, 공부를 좀 더 한 다음 다시 이야기 해야 되겠습니다.

 

"팔작八作지붕"이라 부르는 까닭이 "박공" 부분의 "시옷 자"가 "여덟 팔 자"로 보이기 때문인가 했는데, 이제 합각이란 말을 듣고 보니 그 때문이 아니라는 생각이 확실한 게,  박공지붕도 박공이 만나는 시옷 자가 여덟 팔 자로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팔작지붕이라고 부르지 않는 것을 보면, 팔작이 가리키는 딴 모양이 팔작지붕 안에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도대체 팔작이 지붕의 어디를 보고 나온 말인지 궁금해지기 시작합니다.   

 

팔작이란 말의 뜻에 대한 궁금증을 지닌 채, 이제 사방에 둘러쳐진 처마를 목수들이 어떻게 아름답게 가꾸었는지 보겠습니다. 서까래가 일직선으로 놓인 처마에 대해서는 이미 박공지붕에서 상세히 알게 되었기에,  지금부터는 집채의 네 귀퉁이에 정방형의 대각선 방향으로 나온 추녀가 어떻게 일직선으로 나온 서까래와 이어져서 집채를 돌아가는지 알아 보겠습니다. 자연스럽게 합각지붕이란 말과는 다른 팔작지붕이란 말이 왜 나왔는지도 알 수 있게 될지도 모릅니다.

 

다음, "우리말 찾기-집에서 사라진 우리말들(산방)"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