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와 아리스토파네스(단락)

소크라테스와 아리스토파네스(2.구름-2)

병든소 2010. 9. 26. 01:09

2. "구름"

 

(소크라테스와 아리스토파네스(2-1)에서 계속)           스트렙시아데스는 그가 들은 것이 여신들의 음성이라는 것과, 구름이 즉 그가 지금까지 단지 구름일 뿐이라고 보아 왔던 바로 그 구름이 여신들이란 보장이 필요하다. 소크라테스는 그가 단언했던 것을 강조해 다시 보장해 주면서, '구름'이 이해력과 똑똑한 변론술 그리고 경이와 기적에 대한 화술 등의 능력을 가진 게으름뱅이를 좋아한다고 더 보태는데; 어떤 면에서 그는 전번에 '대기ether'에 비교했던 그런 취지로 이번에는 '구름'에 비교한다. 소크라테스가 묘사했던 '구름'에 대해 스스로 약간 감을 잡은 스트렙시아데스는 여신들을 또렷하게 보고 싶어한다. 그가 소크라테스의 문을 두드린 이후, 그냥 경이롭게 보지 않고 찬사를 보냈던 경우들이 변론과 노래들, 그리고 눈에 보인 광경보다는 그 광경에 대한 설명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지금도 소크라테스보다 그가 더 힘든 것은 '구름'이 입장하는 것을 보는 것이다. 그가 눈으로 보는 '구름'과 그가 지금까지 그럴 것이라 생각해 왔던 구름과의 차이 때문에 당황해 하는 것은 이해할 만 하다. '구름'이 자기들에게 베푼 은혜에 대한 보답으로 노래나 다른 무우사에 관한 것들로 '구름'을 찬양하는 많든 적든 모든 종류의 광적인 교양인들이나 상류층 협잡꾼들을 모두 거두어 준다는 '구름'에 관련된 모든 사실을 무시한 스트렙시아데스의 옛날 실수들을 소크라테스는 따져 나간다. 이렇게 따져드는 것이 스트렙시아데스를 당황하게 하지는 않지만 나머지 사람들을 당황하게 만든다. 결국에 소크라테스 스스로는 '구름'에게 아주 뛰어난 헌신자이다: 소크라테스는 자기가 무우사답다고 주장하는가? 또 그는 허풍쟁이인가? 이것 하나만은 분명해 보인다: 이윽고 드러날 것이지만, 아리스토파네스의 소크라테스는 그와 아리스토파네스를 닮은 사람들이 다른 아종이기는 하나 똑같은 종에 속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스트렙시아데스는 이런 어려움으로 곤경에 빠지지는 않는데; 그는 소크라테스의 말을 오로지 '구름'을 찬양한 대가로 사람들로부터 가장 맛있는 음식들을 가득히 차려 받았다는 것을 인정하는 작가에게만 적용하는데; 소크라테스는 더 보태서 이 대가는 공정해 보인다고 동의한다. 이 소크라테스의 모습, 그리고 그의 학생이 그리는 모습들에 의하여 지적되는, 그 학생이 알려준 어제 밤의 저녁식사는 말할 것도 없이, 소크라테스는 작가와 대비해서 볼 때 잘 사는 것을 위해 '구름'을 찬양하지 않는다. 달리 말해 '구름'의 애완종은 배가 고픈 종과 배가 고프지 않은 종으로 되어 있다. 스트렙시아데스를 대단히 어렵게 하는 것은 구름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길래 그를 둘러싼 존재들이 보이는 것처럼 인간인 여자들로 보이는가; 이제는 눈에 완전히 보이는 그 존재들이 불멸의 여자들처럼 (비록 소크라테스는 여신들이라고 하지만), 또 구름처럼 (비록 소크라테스는 구름이라고 하지만) 보이지 않는가; 구름은 분명 불멸의 여자들이 아니며, 그렇게 보이지도 않으며, 오히려 펼쳐 놓은 양털 덩어리처럼 보이는가를 이해하는 것이다. 스트렙시아데스식으로 투박하게 말하면, 구름은 코도 없고; 반면에 지금 스트렙시아데스와 소크라테스를 둘러싸고 있고, 또 인간인 여자들처럼 보이는 존재들은 코가 있다. 스트렙시아데스가 코를 확실한 여성성의 증거로 간주한다고 곧바로 유추해서는 안 된다. 예를 들어 코 달린 괴수?같은 코 달린 구름을 본 적이 없는 사람을 위하여 스트렙시아데스가 그것을 설명하는 어려움에 대해 설명하는 것이 바로 그것을 해결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소크라테스가 설명할 때 구름은 그들이 원하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 그들은 그들이 원하는 모든 형태를 취할 수 있다; 그들은 그들이 보는  대로 똑같이 할 수 있으며; 그 형태를 취함으로써 그들이 보는 모든 것들의 본성도 드러낼 수 있다. 그래서 특히 그들은 우스꽝스런 사람들의 모습들을 과장해서 흉내내며 놀린다. (그들은 특히 희극작가들의 모델이다.) 그들은 켄타로스의 형태와 같이 다른 곳에서는 보이지 않는 굉장한 형태들을 한데 모아 놓는다. 그것은 그들이 신성하다고 증명하는 구름의 유사신<주4>이다. 한마디로 '구름'은 모방의 여신들이며, 그래서 모든 모조 또는 유사제작술이며, 그러므로 특히 화술이다. 스트렙시아데스도 이제서는 그 구름이 여신들이며, 모든 것들의 여왕이라 확신하고, 그에 걸맞게 그들에게 절한다.

 

'구름' 코로스는 그들의 차례가 되자, 스트렙시아데스와 그 누구보다 소크라테스를 띄우고 어르면서, 프로디코스를 제외하고는 공중에 높이 뜬 것들에 대한 이 시대의 그 어떤 수다꾼보다 더 좋아한다고 선언하며 그에게 인사한다. 그들은 프로디코스를 그의 지혜와 판단 때문에 좋아하는 반면, 소크라테스는 거리에서의 거만한 처신과 금욕주의 그리고 '구름'과 친밀하다는 표시로 걸친 근엄한 외양 때문에 좋아한다. (그래서 연극 "구름"에서의 소크라테스는 단순한 한 가지만의 대리인이 아니다.<주5>)  그들은 그에게 원하는 것에 대해 묻고, 그들은 그것을 들어주고 싶어서이지만, 그는 너무나 잘 갖추고 있어서 대답을 멈추지도 않는다. '구름'에게 그가 원하는 것은 그들이 이미 보장해 주었었다. 스트렙시아데스는 정말로 그들에게서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래서 그는 이제 스트렙시아데스에게 '구름'은 그 자체로 여신들이며, 그 나머지는 쓸 데 없는 이야기라고 선언한다. '구름'은 이것을 침묵 속에서 듣는다. 스트렙시아데스의 놀라움은 이해할 만하다: 대지는 여신이 아닌가? 무엇보다 올림푸스의 제우스는 신이 아닌가? 태양을 경외하기보다는 이를 연구하던 전천후로 대담한 소크라테스는 스트렙시아데스의 마음에 어떤 의문도 남기지 않는다: 제우스는 신이라 하기 전에 존재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이것은 명백하게 터무니 없다: 만일 제우스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누구가 비를 내릴 것인가? 물론 '구름'이다: 구름이 없는데도 비가 내리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비에 대한 진실은 공포심을 일으키는 천둥의 '진실한 본질mutatis mutandis'이고; 천둥은 위협이 아니다. 그러나 '구름'이 없다면 비도 천둥도 없을 것이고; 이것으로 그들이 비나 천둥의 근원이라거나, 그들이 다른 어떤 것이나 다른 어느 누구- 제우스에 의하여 비가 내리도록 천둥을 울리게 한다는 것을 증명하지는 않는다. 그리하여 제우스의 생명을 위해, 용맹스레 싸우는 스트렙시아데스에 의해, 벽에까지 내몰린 소크라테스는- 그렇지 않으면 이 문제들을 '구름' 자체의 신성에 남겨두었을 것이다- '구름'보다 더 높은 것이 있다고 인정하지만, 더 높은 것이 제우스라는 것만은 절대적으로 부정하는데; 더 높은 것은 에테르의 소용돌이이다. 스트렙시아데스는 이 주장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없다: 지금까지 왕이던 제우스는 그 자신이 크로노스를 폐위시켰듯이, 소용돌이에 의해 왕에서 물러나고, 또 그가 왕이 되었지만; 스트렙시아데스는 여전히 증거를 원한다. 소크라테스는 축제일에 과식으로 속탈이 나는 스트렙시아데스가 자주 겪어 본 경우를 들어 천둥의 기원을 설명함으로써 그에게 증거로 내놓는다. 이런 가정적인 보기가 논란을 끝낸다. 스트렙시아데스의 이해가 현저하게 늘었다: 그는 천둥이 설사에 따르는 소리와 같다고 말하지 않지만(cf.165) 비슷하기는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닮았다는 것은 대단한데; 그것이 높이 떠 있는 것들의 모든 놀랄 만한 매력을 빼앗는다. 소크라테스는 아마도 정의의 정체를 폭로하기 위하여 높이 떠 있는 것들의(소문에 의하면 그가 하늘을 난로라고 받아들였다고 한다.) 정체를 폭로하는 것일 것이다. 한 사람이 명백하게 압도한다면 어려움이 남는다: 벼락은 거짓 증언하는 자들을 그것으로 때리는 제우스의 작품이라고 생각된다. 그럼에도 소크라테스는 그 따위를 믿는 구식 늙은이에게 경멸의 말을 내뱉아 쉽게 스트렙시아데스의 공포를 걷어 낸다: 제우스를 모신 신전과 신성한 참나무들이 거짓 증언자들보다 훨씬 더 많이 벼락을 맞는다. 비와 천둥의 경우에는 제우스가 '구름'과 대기의 신으로 대체되었고; 위증자들을 처벌하는 것에는 제우스가 다른 어떤 것이나 어느 누구로도 대체되지 않는다: 위증자나 어떤 다른 범죄자에게 내리는 신성한 벌은 없다. 소크라테스는 스트렙시아데스를 구식이라 부른다: 높이 떠 있는 것들의 정체를 폭로하는 것은 경외감을 불러오는 황홀함을 걸친 골동품의 정체를 폭로하는 것과 뗄래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다. 스트렙시아데스에게는 소크라테스에게 번개에 대하여 구름과 공기로 설명해 달라고 하는 것 외에는 할 것이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 설명이 되고 스스로 납득하자 때 맟추어 스트렙시아데스는 다른 축제일의 경험들을 기억하면서 '구름'이 말이 걸어도 좋을 정도가 된다. 그는 축복도 받고, 유명해지며, 좋은 기억을 갖도록 배려될 것이라는 약속을 받고, 사고력도 얻으며 그리고 그는 힘든 삶을 끌어가는 것으로써, 운동을 그만두는 것으로써, 행동에서, 정치 모임에서, 혀로 하는 다른 모든 싸움에서 이기는 것을 우선으로 하는 것으로, 지극하게 열심히 공부하는 데에 자신을 바치는데; 성적 금욕은 말없이 요구사항들 속에 포함시킨다. 스트렙시아데스는 한 사람의 검소함이나, 인내심이나, 자제심에 대하여 바랄 수 있는 모든 것을 이행하겠다고 보장해 준다; 그의 생활 태도는(그의 아들과는 다른) 언제나 소크라테스와 그의 학생들의 그것과 비슷했었다. 그의 기억과 생각이 충분한지 아닌지를 찬찬하게 보아야 한다. 소크라테스는 그와 그의 동료들이 받아들이는, 이름하여, 카오스와 '구름'과 그리고 혀와 같은 것들을 제외한 어떠한 다른 신들도 받아들이지 말라고 요구하면서 스트렙시아데스가 입교하는 것으로 결론 짓는다. '구름'은 반대하지 않는다. 스트렙시아데스는, 혹시나 그들을 만나더라도 다른 신들을에게 말을 걸지 않겠다고 그리고 희생물이나 다른 어떠한 명예스러운 제물을 그들에게 바치지 않겠다고 약속한다. 그는 더 이상 나아갈 수가 없다; 그는 신들을 무시하거나, 그들의 왕위나 권력을 부정하는 것과 그들을 부정하는 것의 차이를 알지 못한다. 소크라테스는 그를 고칠 기회가 없는데; 왜냐하면 그가 무어라고 말하기도 전에 스트렙시아데스가 하는 약속에 완전히 만족한 '구름'이 스트렙시아데스에게 그들이 그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것을 그들에게 은밀하게 말하라고 하는 당부의 말로 끼어든 때문이다: 만일 그가 '구름'을 명예스럽게 하고 경배한다면- 그들은 만약에 '구름' 이외의 다른 신들을 명예스럽게 하거나 경배한다면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리고 만약 그가 똑똑해지려고 노력한다면 그는 그가 원하는 것들을 얻을 것이다. 스트렙시아데스는 그가 헬라스 최고 변론가가 되는 것 이상 더는 원하지 않는다고 대답한다. 여신들은 앞으로 그가 아테네 의회에서 가장 잘 나가는 변론가들 가운데 있을 것이라고 그에게 쉽사리 약속한다. 그러나 그의 야망은 그다지 높지가 않다; 그는 아테네인이거나 이방인이거나 똑똑한 어떤 채권자들로부터라도 사취할 능력만 되면 대만족이다. 가능한대로 더욱 편안하게 '구름'은 그런 힘을 그에게 부여한다. 스트렙시아데스는 기쁨에 취한다: 잘 알려진 악한이 되기 위하여 죽음이 아니라면 어떠한 고난도 겪는데; 그는 수단들을 위해 그 끝을 거의 잊는다. 그가 영원히 그들의 동료로서 가장 부러운 삶을 이끌어 갈 것이라고, 그들은 그가 "가장 똑똑한 악한이라는 명성"을 가질 것이라 말하려고 허리를 구부리지는 않는다. 그에게 약속한 다음에 그를 소크라테스에게 넘기고, 소크라테스는 그를 가르치기 시작하고, 그래서 그의 지능을 시험한다. 그들은 스트렙시아데스의 성공이 완전히 '구름'에 대한 경건심과 극기력과 열망에만 의존하지 않는다는 것을 잊어버린 것처럼 보인다. 사실은 그가 그의 마음을 바꾸지 않도록 그들은 네 번째의 조건에 대해서는 그저 침묵하고 있었다. 그들은 똑똑하다. 아니라고 한다면 그들이 어떻게 사람들을 똑똑하게 변론할 수 있도록 가르칠 수 있겠는가?

 

소크라테스는 '구름'이 유일한 여신들이라 말한다(365). 그리고 그는,대기와 에테르도 역시 신들(264-65)이라고 인사드리는 것처럼 보인지만 그는 신들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그는 스트렙시아데스에게 오로지 카오스와 '구름'과 혀(423-24)<주6>만을 신들로 받아들이도록 요구한다. 만일, "신들"을 생각을 하고, 의지가 있으며, 그리고 말도 하는 초인간적 존재들이라 이해한다면, '구름'은 소크라테스를 위한 유일한 신들이다. 만일, 단지 생각하고, 의지만 가진 존재들을 초인간이라 부를 수가 있다면, 소크라테스에 따라서, 가장 높은 것(공기,에테르)은 초인간이고, 또 그리고 오로지 '구름'만이 초인간이다. 달리 언급되었으나, 포세이돈과 같이(85), 에테르나 대기의 신 역시나 나쁜 것들을 불러 오지만, 반면에 '구름'은 오로지 사람들에게 돌아가는 아주 큰 이익에 대해서만 책임이 있다. 유일한 신들로서의 '구름'은 알려진 그대로 "연기"(320,330)이다; 반면에 다른 신들은 알려진대로가 아니라 진짜로 "연기"이다. 확실히 "구름"이, '구름'들로 구성된 코러스가, 배우들 그들 자체보다 상위에 있는 아리스토파네스 희극의 유일한 현존물이라는 것을 아무도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왜 '구름'은 여성의 신들인가? 소크라테스는 그들의 외양이 인간인 여자의 모습인 것을 그들이 그냥 한 성질이 더럽고 여자같은 아테네인을 본 적이 있었는데 그래서 여자들이 되었다는 식으로 설명한다. 그렇지만 그들이 나타나기 오래 전에 소크라테스는 그들이 여성이라는 사실을 알았다(252-53). 이 성스러운 처녀들은 작가와 다른 음악가들에게 영감을 준다. 그들은 제우스의 처녀 딸들인 무우사들의 자리를 차지한다. 소크라테스는 무우사들을 받아 들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가  단언하는데, 만일 제우스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의 딸들도 존재할 수 없다. 제우스는 소용돌이, 아니 그것보다 대기의 신이나 에테르로 대체된다. '구름'과 대기의 신이나 에테르와의 관계는 제우스와 무우사들의 관계와 비슷하다: 그들은 스스로 에테르를 아버지라고 부른다(569-70). 그들은 확실히 대기의 신에 "속한다"<주7>. '구름'은 자연의 무우사들<주8>이고 소크라테스는 자연적인 무우사들의 사제이다. 만일에 모방적 예술이 지혜의 한 종류라면, 예술은 아르카이archai와 유사함이 틀림없다. '구름'은 즉시에 모든 것들의 시작을 이끄는 것에서 유래해서 동시에 그들이 의문이 있는 것들이라 주장하는 그것들을 모방하므로써 그것들을 숨긴다; 그들은 본능적으로 속인다. 그들은 사물들의 본성을, 그것을  감추어서 들어내는데, 수사법이 그러하듯 거꾸로도 한다. 그들은 모방의 여신들이다: 만일 모방이 자연에 뿌리를 두지 않는 것이라면, 만일에 자연의 모방이 없다면, 인간의 모방하는 기술 역시 없을 것이다. '구름'은 높이 떠 있거나, 가장 높은 것과 비슷한 자연의 모방자들이다<주9>. 이것이 어째서 그들이 자연학physiolosia을 바탕으로 수사학을 가르치는, 즉 수사학과 자연학physiolosia 둘을 가르치는 사람인,  소크라테스의 유일한 신들인가 하는 것의 이유이다. 

 

소크라테스는 스트렙시아데스의 본성과 행실에 대하여 신경 써 보려 하는데 왜냐하면 각 학생마다 또 다른 접근이 필요하고, 스트렙시아데스의 경우에는 그가 새로운 방책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는 스트렙시아데스에게 대놓고 기억력과 학습력이 좋은지를 묻는다. 그러나 이것이 그가 저지런 단 한번의 아니면 최악의 어리석음은 아니다. 가장 놀라운 것은 그가 스트렙시아데스를 입교시킨 후에야 그를 시험한다는 것이다: 그는 스트렙시아데스가 그것들을 감당할 수 있는지를 알아내기도 전에 신들에 대한 가장 놀라운 혁신을 들추어내어 버렸었다. 소크라테스가 보기에는 우수한 기억력과 이해력이 극기력이나 인내력과 그를 여신들에게 내놓는 것보다는 덜 급한 것으로 보였다고 여겨진다<주10>. 그리고 또한 그가 스트렙시아데스를 '구름'이 그렇게 하라고 한 뒤에야 겨우 그를 시험한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아니 된다. 외골수가 되, 그는 그 생각을 못했을 수도 있는데; '구름'이 사람들 가운데서 기억력과 지적 능력에 대한 자연적인 차이의 중요성을 소크라테스보다 더 잘 알고 있다. 스트렙시아데스의 기억력과 이해력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질문에 그의 대답은 기대 이하이다. 그가 현재 타고난 능력은 지혜를 얻기에는 부적합하다; 그는 다른 본성을 획득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크라테스는 그에게 높이 떠 있는 것에 대하여 질문 하나를 던져 보려하지만; 그의 대답은 정말 멍청한 것이다. 그래도 소크라테스가 어떤 사람이 때리면 어떻게 할 것인지 묻자, 비록 그것이 스트렙시아데스가 그의 학생인 경우에 그가 벌릴 짓과, 소크라테스 그 자신에 대한 예언처럼 읽히지만, 그는 소크라테스가 보기에도 별로 틀린 데가 없어 보이는 답을 내놓는다. 그러나 아리스토파네스의 소크라테스는 점치는 능력도 없으며 신에게서 얻는 영감daimonion도 없다. 따라서 그는 스트렙시아데스를 엄숙하게, 아무도 보는 사람 없이, 지극히 개인적인 분위기 속에서 그를 가르칠 마치 공포스러운 동굴 안인 것 같은 실내로 들어가기 위해 두 번째 입교를 준비한다. 지금까지 한번도 예상하지 못했을 성스러운 계시나 아니면 미스테리들에 대하여 관찰해 왔었다. 그러나 교사와 그의 나이 든 신참 학생 간에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지 결코 알지 못할 것이다.(계속)

 

 

<주4>  Cf. 플라톤, '국가' 596b12-e3; '소피스테스' 233e5-234a6.

<주5>  문맥으로 보아 소크라테스와 비교하면 프로디코스가 오히려 더 나약하다; cf. 플라톤, '프로타고라스' 315d4-6.

<주6>  Cf. 크세노폰, '회상' I 1.19와 3인조triad에 대한 언급 419.

<주7>  무우사들은 외출 시 짙은 공기의 베일을 쓴다: 헤시오도스, 신통기 9

<주8>  플라톤, '이온' 534에서는 마치 무우사들이 단지 신(여신이 아닌)들처럼 읽힌다. 아니면 신(단수)로 읽히든지.

<주9>  Cf. 플라톤, '법률' 945e. 

<주10> 크세노폰, '회상Memorabilia 'IV 3.1-2와 5.1-2.

 

 

다음: 소크라테스와 아리스토파네스(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