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든소 2010. 9. 22. 01:23

1. 머릿말

 

정치철학은 위대한 전승물들 속에 포함되어 있고, 그래서 그 전승물들이 정치철학의 가망성과  필요성을 보장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와 같은 전승물들에 따르면, 정치철학의 기초를 소크라테스가 놓았다.

 

소크라테스는 책이나 강연문 따위의 글을 쓰지 않았기 때문에, 정치철학이 출범하게 된 연유나 주변 정황에 대한 지식을 완전히 다른 사람들의 기록에 의존하여 알게 된다. 그나마 논의되는 기록들이 서로 완전히 일치하지 않다는 사실로 (그런 연유나 정황을 파악하려는) 어려움이 더 커지고 있다. 주된 기록들로 플라톤의 대화편들, 약간의 아리스토텔레스의 주해들, 크세노폰의 소크라테스에 대한 기록물들, 그리고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곡 "구름"이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대면을 통해서가 아니라, 구두 강의나 기록 자료를 통해서 소크라테스의 사상을 알았고; 아리스토파네스, 크세노폰, 플라톤은 소크라테스 그를 직접 알고 있었다. 크세노폰과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친구이면서 숭배자였던 반면, 아리스토파네스는 경우가 다른데; 그는 소크라테스를 소크라테스식 용어 감각으로 소피스트라고 소개하는 듯하다. 플라톤의 대화편들의 경우, 요즘 학자들은 일반적으로 두 가지 판단을 기초로 한다: 즉 전통적으로 진짜라고 전해진 글들 가운데서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는 것에 대한 판단과; 오직 초기의 대화편들만이 소크라테스적이라거나, 아니면 어쨌든 후기 대화편들보다는 좀 더 소크라테스적이어서 진짜라고 받아들여진 대화편들에 실려서 알려져 온 일련의 지식들에 대해, 부분적인 것을 떼어 내어 벌리는 논쟁에 대한 판단이다. 이 두 가지 판단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이, 플라톤의 대화편들은 모두가 말하듯이 기록물이 아니고, 예술 작품이라서; 그 대화편들은, 논란의 여지에 관계없이, 소크라테스가 직접 생각했던 것들과 플라톤이 그냥 소크라테스의 생각이라고 묘사한 것들을 구별해 내라고 하지도 않는다. 플라톤의 편지라고 전해져 온 것 중에, "지금까지나 앞으로도 플라톤의 글은 없다: 그렇지만 소크라테스에 따른 것이라고 지금 일컬어지는 글들은 명백해지고(우아해지고), 젊어진(새로워진) 소크라테스의 것이다."라고 적힌 것이 있다. 플라톤의 대화편들은 소크라테스를 이상화idealize한다. 플라톤은 절대로 그가 쓴 소크라테스와의 대화들의 신빙성을 보장하지 않는다. 플라톤은 역사가가 아니다. 소크라테스의 동시대 인물들 중에서 그 저작물의 내용에 의거해서 소크라테스에 대한 지식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역사가는 크세노폰뿐이다. 크세노폰은 투키티데스식 역사를 이어왔고, 그리고 그가 쓴 약간의 소크라테스와의 대화들에 대해서도, "한번은 그가 말하는 것을 들었다"고 소개하는 식으로 그 대화 내용의 신빙성을 보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적어도 '언뜻  진실로prima facie' 보이는 소크라테스에 대한 지식을 얻는 일차적인 자료가 소크라테스에 관한 크세노폰의 저작들이라고 보여진다. 이 저작들에 대한 연구가 그런 생각을 바꾸도록 할 것이지만, 그렇다고 그것들의 유용성을 손상시키지 않는다. 만일 지금까지 잽싸게 그리고 함부로 묵살해 왔었던 크세노폰의 증언들의 가치를 그런 식으로 버리지 않았었더라면, 그가 쓴 소크라테스에 대한 적지 않은 실수들이 지금에 와서도 힘을 쓰는 일들을 피해 왔을 수 있었을 것이다.

 

소크라테스가 정치철학의 기초자라면 정치철학은 철학에서 비롯되었다. 그래서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은 왜 정치철학을 생략하는 것이 가능했는가 또는 정치철학을 생략할 수밖에 없었는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이 의문이야말로 바로 '소크라테스의 문제'의 한 부분인데, 소크라테스 자신은 한 정치철학자로 되기 이전에 한 철학자였기 때문이다. '젊은 소크라테스'에 대한 의문을 품을 필요가 있다는 생각은 플라톤이 이 논점에 대하여 주목했었던 사실로 알 수 있다. 플라톤의 소크라테스는 그가 죽는 날, '사람들이 자연에 대한 탐구라고 부르는 지혜'에 대한 젊은 시절의 열정에 관해 말한다(파이돈96a6-8). 파르메니데스에서 플라톤은 젊은 소크라테스를 소개하기까지도 하고(127c4-5,130e1-4); 이 젊은 소크라테스는 정작 파이돈에서 말했던 젊은 소크라테스보다 더 늙어 보이는데, 후자는 그저 "소크라테스 이전"이고, 전자는 이미 "이데아"에로 결정적인 전환을 마쳤기 때문이다. 디오티마가 에로스의 비밀을 가르쳐 주었던 그 소크라테스 역시 젊은 소크라테스로 보이는데; 파르메니데스가 그에게 그랬듯이 그녀는 소크라테스를 확실하게 검증하였다. 어쨌든 완전히 훌륭한 사람이란 무엇인가라는 의문을 제기하기 전에, 즉 그가 자연에 대한 철학을 그만두고 전적으로 몰두한 이런 종류의 질문들로 이루어진 의문을 제기하기 전에, 소크라테스가 이미 자연에 대한 철학자로서 유명하였거나, 악명이 높았다는 것을 크세노폰을 통해 알고 있다<주1>.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크라테스 이전"식의 소크라테스에 대한 소개 자료로 쓸 수 있는 유일한 것이 아리스토파네스의 "구름"이다.

 

"젊은 소크라테스"를 이해하기 위해 "구름"을 인용하는 것은 이 작품이 소크라테스에 대한 공격이었다거나, 아리스토파네스가 소크라테스의 적이었다거나 하는 근거로써 하등 문제가 될 수 없는데, 공격이라 해도 정당화 될 것이고, 적이라 해도 공정할 것이기 때문이다. 플라톤과 크세노폰에 의해서 소개된 소크라테스가 희극작가로서 소개한 소크라테스에 대한 아리스토파네스의 판단과 완전히 일치한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아리스토파네스와 소크라테스가 만난 것이 알려진 것은 "구름"이 처음 상연된 후 일곱 해 뒤인데 플라톤이 '향연'에서 소개했다. 그 만남은 향연의 마지막 무렵에 있었는데, 아직은 술에 덜 취해 깨어 있는 세 사람 가운데 두 사람이 아리스토파네스와 소크라테스였다. 그 당시에 세 사람은 친근한 대화를 나누었으며, 대화는 희극과 비극에 관해, 아리스토파네스에게는 대단히 중요한 쟁점에 대해, 서로 합의하는 것으로 끝났고; 아리스토파네스는 소크라테스의 깊이 있는 관점에 대해 동의했다. 이 유일한 플라톤의 아리스토파네스 소개에서 이 희극작가는 소크라테스와 아주 가까운 사이로 나타난다. 이런 사실로 플라톤의 소크라테스가 분석하는 희극들에서 영혼의 상태를 이해하게 된다. 그 분석 속에서 논란의 일단을 포착하게 된다. 희극에서 영혼의 상태란 가까운 친구가 자신의 지혜에 대해 악의없이 과장할 때 얻는 즐거움과 시샘으로 생긴 고통의 혼합물인데; 그런 영혼의 상태는 어쨌거나 불의라는 것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주2>. 한 친구의 지혜는 그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아닐 수 있으며, 그래서 그가 좀 우스꽝스러울 수 있는데; 그러나 그 친구의 지혜가 다른 사람의 시샘을 일으킬 만큼 충분히 대단할 수도 있다. 이런 생각이 그 자체로 하나의 희극 분석과 같은 것으로 적절할 수 없지만, "구름"과 같은 우수한 희극을 설명하는 것으로는 일리가 있어 보인다: 아리스토파네스는 소크라테스의 적이라기보다 그의 친구고, 그러나 그는 그의 지혜가-  비록 젊은 소크라테스의 지혜였지만- 좀 부러운 친구였다. 그렇지 않다면, 희극작가가 지닌 시샘의 일차적인 목표가 소크라테스의 지혜가 아니고, 작가들이 필연적으로 의존하는 대중의 찬사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독불장군식 경멸이거나, 소크라테스의 완벽한 자유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희극적인 처치가 동정적인 처치를 수반한다는 것을 용인한다 해도, 희극적 처치가 바로 왜곡은 아니라고 다짐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철학자란 다수의 눈으로 보았을 때 별 수 없이 우스꽝스럽고<주3>, 그래서 희극의 자연스런 주제이다. 혹 여러가지 이유로 소크라테스를 선택하는 것이 아리스토파네스에게 떠올랐다면 작가는 거리낌없이 최대한으로 웃음꺼리로 만드는 작업을 했을 것이다. 그런 동안에 한 사람의 철학자 소크라테스의 특출함은 드러낼 필요도 없이 그냥 무너졌을 것이다. 그렇다 하여도 이런 가능성을 고려하기 전에, 아리스토파네스가 단지 관객을 웃음으로 흥미를 불러 일으키는 것 외에 다른 어떤 의도가 없었는지 알아야 한다. 그는 단호하게 그렇지 않다고 주장한다. 그는 심각한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만큼 웃을 만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에 관심이 있다. 작가인 그는 도시에 사는 사람들을 착하고 점잖게 만드는 데 관심이 있으며, 희극작가로서 악덕을 조롱함으로써 악덕으로 끌려 가지 않게 하는 방법으로 악덕을 묻어버리는 데 관심이 있다. 정의에 따른 행동으로 그는 도시에 좋은 것들을 가르치며, 아테네 사람들에게 무엇이 올바른 것인지 감히 말하고 있다. 그러나 희극작가인 그는 올바른 일들을 그것들대로 희극적으로 다루지 않고서는 이러한 일들을 할 수 없다. 착함과 정의가 그와 한편에서 싸운다. 정말로 그는 현명한 사람들이 인정해 주는 만큼 웃는 관객이 인정해 주는 것에 관심 있다<주4>. 그러나 이것이 그들을 웃게 해 주니까 그를 사랑하거나 존경하는 사람들은 그의 지혜를 사랑하거나 존경하는 사람들과 구별되는 일군이라는 것을 암시하는 것은 아닐까? 소크라테스를 그의 방식대로 소개하는 것이 그 무엇보다 정의를 가르치는 목적에, 이를테면 아마 소크라테스가 정의를 공격하는 것에 거역해서 소크라테스를 우스꽝스럽게 소개함으로써 그것을 방어하는 목적에, 기여한다고 자신 있게 추정할 수가 있다. 이것은 아리스토파네스가 소크라테스의 적이 아니라는 사실과 서로 맞아떨어질 것인데; 플라톤의 소크라테스가 트라시마코스와 대화해 가는 일련의 과정에서, 결코 트라시마코스의 적이 되지 않으면서, 그리고 그의 친구가 되면서, 트라시마코스에 반대하여 정의의 연원에 대해 방어하는 것을 상기시킨다<주5>. 

 

젊은 소크라테스를 포함해서, 한번 윤곽을 잡아 본 소크라테스의 문제는 니이체가 언급한 "소크라테스의 문제"에 비하면 겨우 준비물 정도일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입장이 무엇이었느냐는 질문은 불가피하게 소크라테스가 견지했던 입장의 가치가 무엇이냐가 된다. 바꾸어 말하면, 그런 전승물들에 대한 극단적인 의문 때문에, 니이체의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에 대한 공격으로 극에 이른 의문 때문에, 위대한 전승물들의 기원들로 돌아가는 것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니이체는 그의 첫 저작인 '비극의 탄생'에서 이 공격을 시작했다. 니이체는 말년에 그 저작을 어떤 면에서 버려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초년의 언급은 "소크라테스의 문제"라는 그의 가장 포괄적인 표현에 남아 있어서; 그가 말년에 가한 수정의 관점으로 읽는다 해도, 비록 그가 약간 동요하긴 했지만<주6>, 그의 전 생애에 걸쳐 유지된 그의 초년 시절의 언급의 특질들은 파악된다. 

 

니이체는 "미학의 과학"이라는 그의 관심사의 맥락 안에서 "단일한 전환점과 세계사라 불리는 소용돌이"로 소크라테스를 대하였다. 그가 이해하는 과학이란 형이상학적 그리고 생리-심리학적physiologic-psychological 양쪽 인데; "자연 과학"이고; "선악을 넘어"에서 보여준 것처럼 그것은 역사적인 생리-심리학의 맥락에 속해 있다. 니이체의 관심은 단지 이론적인 것이 아닌데; 그는 독일인들의 미래에, 혹은 유럽인들의 미래에- 여지껏 누구도 넘지 못한 최고봉을 훌훌 넘어야 할 인류의 미래에- 관심이 있었다. 종전의 인간사 최고봉은 그리스 비극이거나, 좀 더 정확히 표현해서 아이스퀼로스의 비극에 잘 드러나 알 수 있는 삶의 방식이다. 세상에 대한 "비극적" 이해는 소크라테스가 배척하였거나 부셔버렸는데, 그러므로 소크라테스는 "골동품의 가장 의문스런 현상"이며, 사람보다 더 큰 사람이다: 반신반인이다. 소크라테스는 최초의 이론가이자 과학 정신의 화신이며, 반항적으로 비예술적이고, 비음악적이다. "소크라테스의 인성 속에서, 자연이란 것이 이해 가능한 것이라는 믿음과, 또 지식이란 것이 우주의 숨겨진 힘이라는 것에 대한 믿음이 처음으로 밝혀졌다." 그는 합리주의자의 원형이고, 그래서 낙관주의자의 원형인데, 왜냐하면 낙관주의는 그저 이 세상이 가능한 최고의 세상이라는 단순한 믿음일 뿐 아니라, 모든 상상력을 동원한 최상의 세상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이거나, 혹은 가능한 최상의 세상에 속한 악덕을 지식으로 무해한 것으로 치장할 수 있다는 믿음이기 때문이다: 생각이 존재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그것을 고칠 수도 있고; 삶은 과학으로 이끌어질 수 있으며; 신화 속에 살아 있는 신들은 '기계를 타고 오는 신deus ex machina'들로, 다시 말해 "더 높은 이기주의higher egoism"를 구현하는 것으로 알려졌고 또 그렇게 사용된 자연의 능력들로 대치될 수 있다. 합리주의는 낙관주의인데, 왜냐하면 이성의 힘이란 무제한이고, 필수적으로 이익을 주며, 또한 과학이란 모든 수수께끼를 풀고, 또 모든 사슬을 느슨하게 할 수 있다는 믿음이기 때문이다. 합리주의는 낙관주의인데, 왜냐하면 원인에 대한 믿음은 결과에 대한 믿음에 의존하고<주7>, 또 합리주의는 최고의 선, 지선의 처음과 끝에 대한 믿음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에 의해 영향을 받았거나 제시되었던 변화의 온전하고 궁극적인 결과물들은 오직 이 시대의 서양에서 나타난다: 우주에 대한 계발과 그로부터 우주의 한 국가로서 그 속에 있는 모든 지구적 행복, 공리주의, 자유주의, 민주주의, 평화주의, 또 사회주의 등에 대한  믿음 속에서 말이다. 이러한 결과물들과 과학의 어쩔 수 없는 한계에의 통찰, 이 두 가지가 "소크라테스적 문화"의 근저를 흔들었다: "소크라테스적 인간의 시대는 갔다." 그러고 난 다음에야 소크라테스 이전 시대의 문화의 정점을 넘는 미래, 더 이상 이론적이지 않고, 의지나 판단에 의한 행동에 기초한 미래의 철학, 그리고 "퇴화하거나 기생하는 모든 것들의 무자비한 근절"에 관련된 것을 포함하는 새로운 종류의 정치, 등에 대한 희망이 있다. 니이체 그 자신은 한 사람의 철학자를 이해하기 위해 처음부터 그 철학자의 형의상학적 추론에 대해, 도덕적이고 또 정치적인 의미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건전한 행동을 한다고 말했었다<주8>. 그리하여 그의 소크라테스에 대한 공격은 일차적으로 정치적인 공격으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보인다.

 

니이체의 열정과 그리고 위대한 전통에 대한 극단적인 공격에 대해 누가 무슨 생각을 하든지 간에, 그는 최소한 그런 전통에 대한 저간의 의문들을 정당화한다는 사실을 지적해 낸다. 소포클레스 비극에 대한 최고의 찬사를 보내는 것과 같이, 소크라테스를 최고의 숭배로 모시는 것은 전통의 하나이다<주9>. 왜냐하면 전통은 진실과 아름다움 사이의, 예술과 과학 사이의 조화를 믿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전통에 따르면, 소크라테스는 에우리피데스와 맞는 만큼 소포클레스와는 맞지 않는다. 소크라테스와 에우리피데스 사이의 깊은 동류의식은- 마치 소포클레스와 특히 아이스퀼레스와 구별하듯이- 단지 소크라테스를 마라톤 전사들의 "예전 좋은 시절"이라는 관점에서 보거나, "일류 혹은 최상의 소피스트"로이거나, 혹은 "하나의 퇴화한 문화"의 증세로 소개한 아리스토파네스에게 분명히 감지되었다. 아리스토파네스가 가진 정치적 자세는 니이체가 가진 정치적 자세의 한 예후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아리스토파네스가 젊은 소크라테스를 소개하는 데 반해, 니이체의 공격은 플라톤의 소크라테스에게 맟추어져 있다: 니이체는, 그의 "비극의 탄생"은, 희극에 대해서는 거의 침묵하면서, 아리스토파네스의 젊은 소크라테스에 대한 비판을 마치 그의 플라톤의 소크라테스에 대한 비판을 의미했었던 것처럼 이용한다. 그는 마치 그가 정의나 경건심을 파괴한 소크라테스를 공격한 바로 그 근거로, 정의와 경건을 옹호한 소크라테스를 아리스토파네스가 공격했을 것이라 암시하는 것처럼 보이며, 그렇지 않다 해도, 플라톤의 소크라테스가 아리스토파네스의 소크라테스만큼이나 마라톤의 전사들과 동떨어져 있다고 암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머릿말 끝.)       

      

  

주1. 크세노폰, '가정(경제)론'Oeconomicus 6.12-13,11.3; '(소크라테스에 대한)회상Memorabilia '1 1.11-16. Cf. 플라톤, '라케스' 186b8-c2

주2. 플라톤, '필레보스' 48a8-50a10.

주3. 플라톤, '국가' 516e8-517d4-6; '테아이테투스' 174a4-d1

주4. "아카르나이 사람들" 645, 655, 661-62; "기사들" 510; "개구리들" 389-90, 686-87, 1008-12, 1049-57; "여자들의 의회" 1155-57.

주5. 플라톤, '국가' 498c9-d1.

주6. 'Ecce Homo'에 있는 '비극의 탄생'을 유심히 보라. 그리고 '우상의 황혼'에 있는 '소크라테스의 문제'라는 부분도, 그러나 무엇보다 '선악을 넘어'를 유심히 보라.

주7. 칼 뢰비트, '니이체의 철학'(Stuttgart,1956),p.122.

주8. '선악을 넘어',nos. 6 and 211.

주9. 크세노폰, '회상Memorabilia' I 4.3.